미국은 이란을 군사·금융·원유 압박으로 단기간에 굴복시키고 더 유리한 협상조건을 얻으려 했지만, 트럼프가 “몇 주면 끝난다”고 공언하면서 장기전을 원치 않는다는 약점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란은 군사적으로 미국을 이기기보다 오래 버티며 호르무즈 불안과 제한적 보복으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비용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고, 결국 전쟁은 장기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페제시키안이 “6월 MOU로 돌아가자”고 제안한 것은 단순한 휴전 요청이 아니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지난 수개월의 전쟁과 압박으로 무엇을 더 얻었는지 설명해야 하고, 거절하면 이미 합의했던 평화를 왜 거부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미국이 이란에게 사용하려 했던 ‘선택지를 줄여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을 이제 이란이 미국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힙합은 샘플링과 장르 혼합을 통해 성장하며 “공식이 없다”는 자유를 강조해왔지만, 동시에 “진짜 힙합”과 “가짜 힙합”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내부의 정통성과 자격을 심사해온 장르이기도 하다. 다른 장르의 요소를 자유롭게 흡수하면서 정작 힙합과 비슷한 음악을 힙합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뒤 “왜 힙합을 그렇게 하느냐”고 비판하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결국 힙합의 가장 흥미로운 모순은 음악적으로는 가장 잡종적이면서 문화적으로는 가장 순혈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데 있으며, “진짜 힙합인가”보다 “어떤 음악인가”라고 묻는 것이 오히려 힙합이 말해온 자유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재건축은 흔히 “사업성이 좋다”, “분담금이 적다”는 말로 설명되지만, 그 사업성의 상당 부분은 조합원이 이미 보유한 대지지분과 개발여력에서 나온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노후화되지만 토지는 남기 때문에, 재건축은 영속적인 토지의 일부를 활용해 수명이 제한된 새 건물을 얻는 거래이기도 하다. 건설사는 공사를 수주해 마진을 남기고 떠나면 되지만 조합원은 그 자산을 장기 보유해야 한다. 따라서 재건축의 진짜 경제성은 단순한 분담금이나 신축 시세가 아니라, 조합원이 얼마나 많은 토지와 개발가치를 투입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효익이 건설사·정부·일반분양자·조합원에게 어떻게 배분됐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주식시장에서 먼저 자산을 산 뒤 다른 사람의 매수를 유도하고 자신은 파는 행위가 불공정거래의 문제로 인식되듯, 부동산시장에서도 호재·신고가·품귀·키 맞추기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동안 실제 매매와 분양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모든 정보가 거짓이라는 데 있지 않다. 교통망이나 산업단지 같은 호재는 실제일 수 있지만, 미래의 기대가 이미 현재 가격에 반영됐다면 그 혜택을 먼저 실현한 사람은 매수자가 아니라 매도자일 수 있다. 더구나 전국 모든 지역이 동시에 인구와 수요를 끌어들일 수는 없는데도 각 지역의 홍보에서는 언제나 자기 지역이 승자가 되는 미래만 제시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거나 무조건 의심하기보다, 누가 그 정보를 만들었고 자신이 매수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경제적 이익을 얻는지 살펴야 한다.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광고는 광고라고 쓰인 광고가 아니라 정보의 얼굴을 한 광고일 수 있으며, 현명한 소비자는 호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호재를 말하는 사람의 이해관계까지 함께 계산하는 사람이다.
미국은 전쟁 전부터 이미 이란을 강하게 제재하고 있었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열려 있었고 핵협상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메네이 제거 이후 이란은 호르무즈를 핵심 지렛대로 전환했고, 이제는 핵 문제에서 뚜렷한 양보 없이 제재 완화와 봉쇄 해제, 배상까지 요구하며 해협 정상화를 거래하려 한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지만 전쟁 전의 질서를 되찾기 위해 다시 군사력을 쓰거나, 제재를 완화하거나, 중국 등 제3국까지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이 전쟁의 핵심 질문은 미국이 이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느냐가 아니라 전쟁 전보다 더 유리한 질서를 만들었느냐이며, 현재까지는 오히려 미국이 이미 가지고 있던 ‘제재된 이란과 열린 호르무즈’라는 상태를 되찾는 데 더 큰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역설이 선명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사시키는 장기 압박전으로 전환했지만, 불과 며칠 뒤 다시 직접 군사타격에 나섰다. 이는 이란이 우세하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시간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자산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란이 버티는 동안 미국 역시 유가와 인플레이션, 국내정치, 해상안보, 군사비용, 중국과의 2차 제재 갈등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패권의 약화라기보다 패권을 행사하는 비용의 상승이다. 그리고 세계가 안보를 위해 공급망·에너지·항로·금융망을 중복시키기 시작할수록 그 비용은 물가와 재정, 결국 금리에 반영된다. 탈세계화란 무역의 종말이 아니라 안보의 가격이 다시 경제에 포함되는 과정이며, 시간이 비싸진 세계에서는 세계화와 평화뿐 아니라 저금리 역시 과거처럼 싸게 얻기 어려워진다.
세계화는 비교우위와 국제분업을 통해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내는 체제였다. 미국은 기축통화와 기존 국제질서의 최대 수혜자로서 이를 유지할 유인이 컸고, 중국 역시 화평굴기와 세계시장 편입을 통해 성장하는 동안 이 질서를 깨뜨릴 이유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상호의존은 효율의 원천이 아니라 취약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반도체와 희토류 공급망을 분리하고 중국은 기술자립과 핵심광물 통제를 강화한다. 각국은 공급망을 중복하고 전략물자를 비축하며 더 비싼 생산을 감수한다. 국가별로는 안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세계 전체로는 생산성 하락과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결국 세계는 부유해지는 방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더 많은 부를 만드는 대신 그 일부를 안보와 보험료로 지불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서울은 오랫동안 산업과 일자리, 교육과 행정이 집중된 ‘필요의 도시’였지만 제조업과 대규모 노동수요가 서울 밖으로 이동하고, 서울 경제가 본사·금융·전문서비스 같은 화이트칼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과거처럼 많은 인구를 직접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서울은 여전히 성공과 중심의 상징으로 선망받고 있으며, 금융은 소득과 주택가격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높은 가격을 지탱해왔다. 그러나 최근 새마을금고의 부실과 재차 확대되는 집단대출, 재건축 현장의 분담금 유예와 판매자금융, 강화되는 건전성 규제와 높은 금리는 자산가격이 소득이라는 궤도에서 무한히 멀어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서울은 점점 실용재보다 지위재·사치재적 공간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선망과 금융이 가격을 오래 지탱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유효수요를 만드는 힘은 결국 소득이며, 빠르게 소득의 중력을 거슬러 오른 가격은 그 지지력이 약해질 때 빠르게 되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서울은 오랫동안 일자리와 산업, 교육, 행정이 집중된 ‘필요의 도시’였지만, 제조업과 대규모 노동수요가 서울 밖으로 이동하고 서울 경제가 본사·금융·전문서비스·문화 같은 화이트칼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더 이상 과거처럼 많은 인구를 직접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서울의 대학·직장·주소는 여전히 성공과 중심성을 상징하고, 세종시로 행정기능이 이전된 뒤에도 서울의 심리적 중심성이 쉽게 약해지지 않은 것은 기능과 위신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서울은 실용성 때문에 선택되는 도시에서 ‘중심에 속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치재적 도시로 변해갈 수 있지만, 이런 상징적 가치는 산업적 필요와 달리 사회적 인식과 구매력에 의존하므로 영구적인 가격방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1998년 일본 영화 《자살관광버스》는 빚과 생활고에 몰린 사람들이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함께 죽음을 계획한다는 블랙코미디다. 버블 붕괴 이후 구조조정과 자살 급증이 이어지던 당시 일본 사회의 불안을 배경으로 보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죽음 자체보다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돈과 생산성으로 계산하게 되는 순간에 있다. 저성장·고령화 시대를 맞는 한국도 비슷한 위험을 피하려면 경제적 실패를 인간의 실패로 바꾸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실패자로 만들지 않을 수는 있다. 앞으로 쉽지 않은 시대가 오더라도 서로를 조금 더 붙잡아주고,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빨리 판결을 내리지 말자. 우리 모두 힘내고, 무엇보다 오래 살아보자.
호르무즈 해협은 언젠가 다시 열릴 수 있지만, 세계경제가 과거의 저물가·저금리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미·이란 갈등과 공급망 재편이 보여주듯 각국은 이제 가장 싼 생산과 운송보다 안보와 안정성을 우선하며, 관세·리쇼어링·재고 확대·국방비·에너지 안보·우회 물류라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탈세계화는 전쟁이나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변화이며, 세계화가 수십 년 동안 제공했던 강력한 물가 억제 효과도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경기침체 때 금리가 내려갈 수는 있어도 2010년대처럼 낮은 물가를 배경으로 초저금리가 장기간 유지되는 시대가 다시 기본값이 될 가능성은 낮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와 가계부채가 높은 한국에서는 이제 “한국은행이 언제 금리를 내릴 것인가”보다 “앞으로 금리를 과연 어디까지 내릴 수 있는 세계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투자 실패를 사후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원인은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2017년 청담동의 낮은 공실률과 저금리 환경에서 통임대 건물을 매입한 판단은 당시 기준으로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었다. 문제는 이후 상권과 임대수요, 소비 방식, 금리와 코로나까지 시장의 조건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투자자는 임차인을 구하고 건물을 관리할 수는 있어도 시장의 수요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결국 투자의 핵심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상과 다른 세상이 왔을 때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의지와 희망은 사람에게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시장에서는 자산이 아니다.
서울 주택시장은 강남·서초 등 상승을 주도했던 지역부터 변곡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벌써 집값 하락 자체를 문제처럼 다룬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값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주택구입 부담을 낮추는 데 있어야 한다. 주택가격이 소득보다 빠르게 오르면 가계의 원리금 부담과 주거비 비중이 커지고, 이는 가처분소득 감소와 다른 산업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주택가격 상승 과정에서 소득·임대료·주거가치보다 신용 확대와 상승 기대가 더 크게 작용했다면 그 부분은 시장에서 조정될 필요가 있다. 가격 하락기에 무주택자가 매수를 미루는 것도 선택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매수와 임차를 비교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수요 역시 단순한 선호가 아니라 지불능력을 전제로 하므로, 정말 가치 있는 지역의 주택이라면 가격이 내려갈수록 실수요가 유입돼 자연스럽게 가격을 지지한다. 따라서 정책이 걱정해야 할 것은 집값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소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집값을 너무 오래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온타리오호의 미국 내 명칭을 ‘아메리카호’로 바꾸도록 지시한 사건은 단순한 지명 변경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미국은 오랫동안 할리우드와 정치적 서사를 통해 자신을 세계질서를 지키는 ‘세계경찰’로 묘사해왔지만, 최근에는 동맹·무역·달러 패권에서 발생한 비용을 다른 나라에 청구하는 언어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패권의 수익은 자신의 능력과 권리로 계산하면서 그 비용은 세계를 위한 희생으로 계산한다는 점이다. 제조업 쇠퇴와 세계화의 피해가 실제였더라도, 미국 전체가 세계화와 달러 패권에서 순이익을 얻었다면 먼저 그 이익이 미국 내부에서 어떻게 분배됐는지를 물어야 한다. 국내에서 해결하지 못한 분배 실패의 청구서를 중국·유럽·캐나다에 보내기 시작하면 보호무역과 보복, 저성장이 다시 불만을 키우는 ‘둠 루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세계경찰을 자처하며 수십 년간 그 이미지를 팔아온 미국이라면, 이제 와서 경호비 청구서를 내미는 모습이 과연 자신이 만들어온 서사와 모순되지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 아파트 매물이 늘어나는 표면적 이유는 세금 부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아래 깔린 부동산 심리다. 비거주 1주택자는 세제상 불리해지더라도 앞으로 집값이 충분히 오른다고 믿는다면 자기 집에 들어가 실거주 요건을 채우고 기다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집주인이 지금 매도를 택한다는 것은 세금 자체보다 ‘앞으로 2년을 기다렸을 때 지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약해졌다는 뜻일 수 있다. 전월세 매물 감소 역시 비거주 집주인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자신이 살던 임차주택을 비우는 자리바꿈 성격이 있어, 이를 곧바로 임대주택 공급 감소로 해석하는 것은 단순하다. 결국 지금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세금도 전월세 매물도 아니라, 집주인들이 더 이상 시간을 자신의 편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새마을금고의 최근 구조조정은 부실 금고를 파산시키기보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금고에 합병하고, 고금리 특판예금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시간을 버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합병은 부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금고의 대차대조표로 옮기는 과정일 수 있으며, 인수 금고 역시 피합병 금고보다 덜 부실할 뿐 절대적으로 건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고금리 특판 역시 당장의 현찰을 확보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높은 조달비용이 수익성과 자본을 갉아먹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금리까지 다시 상승하면서 예금을 붙잡기 위한 비용은 커지고 차주의 이자부담과 신규 부실 위험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결국 새마을금고의 핵심 문제는 합병 숫자나 특판금리 자체가 아니라, 비싼 현찰로 벌어들인 시간 안에 부실을 얼마나 빨리 정리하고 합병을 받아준 금고의 건전성까지 지켜낼 수 있느냐에 있다.
2026년 미국에서 지역은행 파산이 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2023년처럼 대형은행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금융위기라기보다 장기간의 고금리가 취약한 소형은행의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채권의 평가손실과 유동성 위기를 구분하는 것이다. 금리 상승으로 보유채권 가격이 떨어져도 은행이 만기까지 보유할 수 있다면 당장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금 유출로 현금이 필요해져 손실 상태의 자산을 강제 매각하면 평가손실이 실제 손실로 확정되고 자기자본을 훼손할 수 있다. 여기에 상업용 부동산과 기업대출 부실까지 확대되면 금리위험·유동성위험·신용위험이 서로 연결된다. 따라서 미국 은행 시스템의 진짜 위험 신호는 파산은행 숫자 자체가 아니라 미실현손실, 예금유출, 대출 연체와 대손상각, 자본비율, 문제은행 규모가 동시에 악화되고 은행들이 대출을 축소하기 시작하는지 여부다.
카드론 평균금리 14%는 단순히 대출총량 규제로 카드사가 수익성 높은 상품을 택한 결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카드론은 이미 취약차주가 집중된 시장이기 때문에 금리 상승은 이자수익을 늘리는 동시에 차주의 상환능력을 떨어뜨리고, 상대적으로 건전한 차주를 이탈시켜 남은 차주의 평균 위험도를 높이는 역선택을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높은 가계부채와 생활비 부담, 총량규제, 높은 조달비용에 세계화 후퇴와 공급망 재편까지 겹치면서 과거의 저금리 환경과는 다른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금융회사에는 정교한 신용모형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조합에 대한 충분한 경험자료는 없다. 카드론 감소와 함께 대환대출·현금서비스가 늘어나는 현상은 부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취약한 형태로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14%라는 숫자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어느 순간 금융회사가 “더 높은 금리를 받아도 빌려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신용배급 단계이며, 카드사와 차주, 금융당국 모두가 저금리 시대 이후 처음 만나는 미지의 터널로 한 발씩 들어가고 있다.
서울의 우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해온 사람들조차 높은 주거비와 금리, 세종의 행정수도 기능 강화, 2차 공공기관 이전, 중부권 교통·생활 인프라 확충을 함께 놓고 다른 선택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는 지방 근무가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고 결국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로였다면, 이제는 “서울에 지금 이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세종과 천안·아산·청주·대전 등 중부권은 아직 서울을 대체할 중심은 아니지만 국가가 공급한 운동에너지가 사람과 자본을 끌어당기는 위치에너지로 바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8월 27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3.00% 인상까지 겹치면서, 서울의 고점은 단순한 가격의 꼭짓점이 아니라 서울을 가장 선호하던 사람들의 계산법이 바뀌는 순간으로 읽을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기술을 먼저 확보한 국가는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한 나라들이 만들어낸 운동에너지를 자본·금융·기술·기축통화라는 위치에너지로 축적하며 세계경제의 높은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와 한국의 하우스푸어, 미중 무역전쟁, 아프가니스탄 철수, 호르무즈 리스크, 미국의 재정적자와 고금리는 이 체제가 더 이상 과거처럼 쉽게 유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노동과 자원을 공급하던 국가들이 기술과 자본을 축적하며 스스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 하자, 미국은 관세·리쇼어링·동맹 비용분담을 통해 패권의 비용을 외부에 재청구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값싼 돈과 세계화가 밀어 올린 서울 중심 성장모델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세종과 충청권을 새로운 행정·건설·산업 축으로 키우려는 중흥의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원히 하늘로 솟는 그네는 없다.
재건축을 둘러싼 담론에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 있다. 하나는 ‘재건축은 주택공급이므로 많이 할수록 공익’이라는 프레임이고, 다른 하나는 ‘재건축은 조합원에게 당연히 돈이 되는 사업’이라는 프레임이다. 하지만 재건축은 기존 주택의 멸실과 이주를 먼저 발생시키고, 조합원에게도 분담금·금융비용·사업위험 때문에 반드시 이익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공사비와 개발여력에서 재건축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시장의 신호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재건축은 항상 돈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유지되면 조합원은 사업에 참여하고, ‘공급 부족’이라는 명분이 강해질수록 더 많은 사업장이 열린다. 이 두 프레임 모두에서 가장 일관되게 이익을 얻는 쪽은 건설산업이다. 조합원은 한 판의 승패에 자산이 걸리지만, 건설사는 판이 열릴수록 공사 매출 기회가 늘어난다. 결국 공급과 사업성이라는 공익적 언어 뒤에서 누가 판돈을 걸고 누가 판의 횟수 자체에서 이익을 얻는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금리 상승은 단순한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아니라, 탈세계화와 공급망 재편으로 세계의 균형금리가 구조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값싼 노동력과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 낮은 물가,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 금리를 눌렀지만, 이제는 리쇼어링·에너지 안보·국방비·산업정책·공급망 중복투자에 각국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미국의 구조적 재정적자와 대규모 국채 차환까지 겹치면서 세계 각국은 한정된 저축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특히 수십 년간 제로금리로 세계에 자금을 공급해온 일본마저 3~4%대 국채금리를 제공하기 시작하면 일본 자금이 굳이 미국이나 한국으로 나갈 필요가 줄어들고, 미국·한국 등 다른 국가들도 자국 채권의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 결국 일본 금리발작은 원인이 아니라 세계화가 만들어낸 저물가·저금리 체제가 해체되고 자본의 가격이 다시 높아지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한국의 하우스푸어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침체가 아니라 압축성장이 미래의 소득과 수요를 현재로 끌어온 구조가 한계에 부딪힌 초기 신호였을 수 있다. 과거에는 빠른 경제성장, 서울 집중, 고소득 일자리 증가, 교육투자, 저금리와 신용확대가 서울 부동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수요와 구매력을 공급했고 정부 역시 인프라와 금융정책을 통해 이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고령화, 높은 가계부채, 서울의 과밀과 높은 주거비, 재건축 비용 증가, AI에 따른 화이트칼라 고용구조 변화, 교육 프리미엄의 변화, 수도권 산업분산, 탈세계화와 공급망 충격 같은 과거 성장방식의 반작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서울 부동산의 핵심은 공급 부족 자체가 아니라 과거 집값을 끊임없이 밀어올렸던 성장의 엔진이 계속 작동할 수 있는지이며, 한국은 성장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압축성장의 성공을 위해 앞당겨 사용했던 미래의 비용을 뒤늦게 정산하는 과정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집값 상승의 자연법칙이 아니다. 정부는 실제로 초이노믹스의 대출 규제 완화처럼 신용을 공급해 미래소득을 현재로 당겨 주택가격을 부양할 수 있었지만, 그것 역시 지속적인 수요를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부동산을 움직이는 진짜 시장은 강남의 매물 몇 건이나 서울의 공급량에 한정되지 않는다. 탈세계화와 공급망 충격, 유가와 건설비, 금리, 높은 가계부채, 인구와 가구구조, AI에 따른 화이트칼라 고용 변화, 수도권 산업 재배치까지 모두 시장이다. 과거에는 정부의 인프라·산업·교육 집중 또한 서울의 수요를 키웠지만 앞으로는 세종과 경기남부 같은 새로운 거점 개발이 오히려 서울의 독점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대치동 교육 프리미엄과 고밀도 서울의 재건축 사업성마저 과거와 같지 않다면 문제는 더 이상 “서울에 집이 부족한가”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 가격을 지불하며 서울을 선택할 사람이 충분한가”이다. 정부가 강한 수요를 억누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구조적으로 약해지는 수요를 대출과 세제만으로 되살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정말 이길 수 없는 시장이란 항상 오르는 시장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소득과 필요와 선택이 만들어내는 시장이다.
스티븐 미란의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미국 제조업 쇠퇴와 무역적자를 초래한 ‘비용’이라고 진단하고, 관세·환율정책·안보비용 분담을 통해 이를 다른 국가와 나누려 한다. 그러나 달러 패권은 동시에 미국에 막대한 금융·외교·안보상의 이익을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미국 전체가 달러 패권으로 순이익을 얻는 동안 제조업 노동자와 산업도시가 손실을 입었다면, 그것은 세계가 미국에 비용을 떠넘긴 문제인 동시에 미국 내부에서 패권의 이익과 비용이 불균등하게 배분된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설계하려 한다면 먼저 “세계가 미국에 무엇을 빚졌는가”를 묻기보다, 달러 패권으로 얻은 이익이 왜 그 비용을 감당한 미국인들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미국은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통해 막대한 금융·외교적 힘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달러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 제조업 공동화라는 부담도 떠안았다. 스티븐 미란의 보고서는 이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달러 패권은 유지한 채 관세·안보우산·장기국채 등을 통해 그 비용을 동맹과 교역국에 나누어 부담시키자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세계에 반드시 하나의 절대적인 기축통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달러의 역할이 여러 통화와 금으로 분산된다고 세계무역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제조업을 되살리고 막대한 부채를 관리하며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시점에 달러 패권까지 현재 모습 그대로 지키려다 동맹의 신뢰와 미국 자신의 실물경제를 훼손한다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달러가 미국을 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강한 미국이 달러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달러 패권이 지나치게 무거워진 순간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모든 비용을 남에게 떠넘기며 왕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그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달러 패권이 약해져도 강한 미국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미란 역시 자신의 구상이 미국에 대한 노출 축소와 대체 준비자산 탐색을 촉진할 위험을 인정한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는 이란을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제재가 곧바로 협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란은 이미 수십 년간 제재를 견디며 우회 거래와 체제 유지 방식을 익혔고, 미국 역시 원유 공급 불안,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재점화, 국채금리 상승이라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제재의 성패는 이란이 얼마나 버티느냐뿐 아니라 미국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정치적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대의 약점만 계산하고 미국 내부와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부메랑 효과까지 충분히 시뮬레이션했는지가 핵심 질문이다.
미국이 캐나다 같은 전통적 동맹국에도 관세와 경제 압박을 사용하는 모습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보여준다. 국가는 친구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전략적 필요에 따라 행동한다. 6·25 당시 미국이 대한민국을 도운 이유 역시 한국이 특별히 예뻐서가 아니라 한반도가 동아시아 질서에서 핵심적인 전략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태평양에서 미국의 해양 거점이라면 한국은 대륙 세력과 맞닿은 전진 거점이며, 유사시 미군이 동아시아에서 작전하기 위한 중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 국가부채, 패권 유지 비용 증가로 인해 과거처럼 모든 동맹국에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미국은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공짜 친구가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동맹은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며, 한미관계 역시 호의가 아니라 이해관계 위에서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진짜 위기는 40조 달러의 국가부채 자체가 아니라, 달러 패권이 허용한 값싼 차입 구조에 의존해 온 재정 시스템이 이제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국채를 통해 패권 유지 비용과 국내 지출을 감당했지만, 중국이 단순한 제조기지가 아닌 기술·산업 경쟁자로 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반도체·AI·제조업·에너지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지만, 이미 높은 부채와 이자 부담을 안고 있다. 재무부의 바이백은 장기금리를 낮추며 시간을 벌 수 있지만, 부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 구조를 조정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미국이 살아남는 방법은 또 다른 금융기법이 아니라 AI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부채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인데, AI 시대에는 생산성 증가가 반드시 GDP와 세수 증가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새로운 도전까지 맞고 있다.
압구정 신현대 등 강남 초고가 아파트에서 수십억 원 단위의 가격 조정이 나타나는 것은 단순한 일시적 하락이 아니라 서울 부동산을 지탱해온 구조적 조건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과거 강남 집값 상승은 교육·입지뿐 아니라 “결국 오른다”는 기대, 저금리, 인구 증가, 소득 상승이라는 환경 위에 형성됐다. 그러나 현재는 고금리와 예금 등 대체 투자처의 등장, 소득 증가 둔화, 인구 감소, AI로 인한 화이트칼라 노동 가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의 핵심 투자 논리였던 미래 상승 기대가 약화되면 보유 판단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강남의 경쟁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모든 부동산이 장기 상승한다는 시대는 끝나고 자산가격과 노동가치의 관계가 재평가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