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행정부에 막대한 예산과 비상권한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감시와 공개 절차를 약화시켜, 조달 담합과 리베이트, 측근 보호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국민과 병사들이 죽음과 빈곤을 감당하는 동안 권력자와 그 주변이 계약·사업·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면, 이는 단순한 횡령을 넘어 국민의 고통을 수익으로 바꾸는 전시 부패다. 이러한 사익화 논란을 받는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2026년 7월 28일 백악관에서 만나 무기 생산과 군사지원을 협상한 장면은, 국민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전쟁이 최고권력자에게는 돈과 권력, 거래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준다.
스위스처럼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중립국의 무역흑자까지 관세와 투자 압박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은 미국의 힘과 위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미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과 달러의 영향력으로 다른 나라와 기업의 선택을 바꿀 수 있지만, 그 힘을 반복적으로 동원한다는 것은 제조업 공동화와 해외 공급망 의존, 무역적자, 물가 부담과 정치적 불만을 그만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할리우드에서도 나타난다. 과거 영화가 유능한 제도와 영웅을 통해 세계를 구하는 강성한 미국을 홍보했다면, 오늘날의 영화는 분열된 공동체와 작동하지 않는 제도, 내부에 자리 잡은 공포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관세정책과 대중문화가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미국은 아직 다른 나라를 움직일 만큼 강하지만, 지금 세계를 향해 가장 크게 말하고 있는 것은 힘의 자랑보다 자신이 아프다는 고백이다.
화성에 사람 한 명을 보내는 일은 단순히 100kg의 몸을 운반하는 문제가 아니다. 수개월간 필요한 식량과 물, 산소, 생활공간과 생명유지장치를 합치면 사람 한 명당 수 톤의 추가 질량이 발생하고, 이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와 착륙장치까지 연쇄적으로 커진다. 화성에 집 한 채를 지을 정도의 정수·에너지·농업·재활용 기술과 예산이라면 지구에서는 황폐한 토지를 복원하고 물과 전기가 부족한 수많은 사람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기후협약과 환경투자는 비효율적인 비용으로 취급하면서 막대한 공공자원이 필요한 화성 이주와 우주산업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일관된 판단인지 물어야 한다. 우주탐사는 가치가 있지만 화성을 지구의 대체재로 말하기 전에, 이미 대기와 물과 생태계를 갖춘 지구를 지키는 일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생존전략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장과 해협 통제력을 억제해 관리 가능한 질서로 복귀시키려 했지만, 반복된 공습은 이란의 계산을 바꾸지 못한 채 혁명수비대의 영향력과 내부 결속을 오히려 강화했다. 이란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필요 없이 호르무즈와 홍해의 긴장을 조절하고 미사일·드론·대리세력을 활용해 미국의 전쟁 비용을 높이면 된다. 반면 미국은 공격을 멈추면 패배로 보이고 계속하면 유가 상승, 요격미사일 소모, 동맹국 불안과 국내 정치 부담이 커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실질적 무력화를 원하지만 미국은 장기전을 감당하기 어렵고, 중국은 이란의 붕괴와 원유 공급망의 완전한 마비를 모두 피하면서 미국이 중동에 묶이는 상황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결국 이번 대결의 승패는 파괴력보다 누가 더 오래 비용을 견디느냐에 달렸으며, 이란을 관리하려던 미국의 전쟁은 미국 스스로 감당 가능한 출구를 찾는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 연임 표결에서 미국이 144대 10으로 고립되고, 이를 비판한 프랑스와 공개 충돌한 사건은 서방동맹의 붕괴라기보다 미국 중심 질서의 운영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군사력과 달러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동맹국들이 미국의 판단을 자동으로 따르지 않으면서 미국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설득과 압박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프랑스는 미국 진영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동맹 내부의 일방적 위계를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스라엘의 안보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유럽과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미국의 인권 비판에 맞설 정치적 명분을 얻고,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균열을 활용할 기회를 확보했다. 결국 이번 충돌은 미국의 힘이 사라진 사건이 아니라, 미국이 이란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럽까지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AI가 가져오는 가장 큰 경제적 변화는 단순한 생산량 증가가 아니라 정보와 전문지식의 가격을 낮춰 개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넓히는 데 있다. 과거에는 정보비대칭과 기술적 진입장벽 때문에 외부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이제는 AI를 활용해 자료 조사, 문서 작성, 기초 분석, 코딩과 같은 작업을 직접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생산성과 소비자 후생은 증가하지만 기존 서비스 거래와 매출은 감소해 GDP에는 그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AI가 정형화된 작업의 원가를 낮출수록 서비스업의 진짜 가치는 기술적 수행이 아니라 고객의 모호한 요구를 구체화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에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앞으로 전문가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처리하기 어려운 맥락과 불확실성을 해석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역할로 이동할 것이며, 국가는 국민의 실질적 효익은 커지지만 소득과 거래를 기반으로 한 과세표준은 줄어드는 새로운 재정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AI 시대에는 GDP와 시장 매출만으로 경제적 풍요를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증가한 생산성과 편익을 어떻게 측정하고 분배하며 고용과 국가재정을 유지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헤지펀드의 공격이나 금융당국의 일시적 실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였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로 대표되는 3저 호황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수출 확대와 고성장을 안겼지만, 동시에 과잉투자와 과도한 부채, 단기 외채 의존을 키웠다. 이후 엔저와 중국의 가격 경쟁력 강화로 수출 환경이 악화되자 기업 부실과 경상수지 적자가 드러났고, 감독 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이뤄진 성급한 자본시장 개방과 고정환율제는 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특히 단기 외화를 빌려 장기 설비와 부동산에 투자한 만기 불일치, 환위험을 회피하지 않은 외화부채 구조는 자본 유출과 환율 급등이 시작되자 기업과 금융기관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결국 1997년 위기는 대외 경제환경의 반전이 도화선이 되고, 호황기에 누적된 부채와 제도적 취약성이 화약이 되어 폭발한 사건이었으며, 국가적 경제위기의 규모는 외부 충격 자체보다 그 충격을 견딜 내부 구조의 내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와 달러 패권을 구축해 막대한 금융·군사적 특권을 누렸지만, 그 과정에서 무역적자와 산업공동화, 금융화와 양극화를 스스로 심화시켰다. 이제 그 비용이 내부 정치의 위기로 돌아오자 미국은 중국과 동맹국을 가해자로 지목하며 피해자 서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문제는 힘의 부족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동시에 개입해야 하는 오버리치에 있다. 모택동이 ‘종이호랑이’라는 표현으로 간파했듯 미국은 개별 전투에서는 압도적일 수 있어도 전선이 넓어지고 장기화할수록 재정·물류·동맹·국내 여론의 부담에 갇힌다. 이란과 중동은 이러한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적 전선이며, 미국이 힘을 사용할 때마다 패권의 유지비가 높아지고 그 비용이 효익을 넘어서는 순간 패권은 자산에서 부채로 바뀐다. 미국의 일장춘몽은 세계 최강국이 된 데 있지 않고, 자신이 만든 질서가 영원히 미국에만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라 믿은 데 있으며, 이제 미국은 패권의 특권을 끝까지 지킬 것인지, 한계를 인정하고 내부 산업과 재정, 사회적 신뢰를 복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2026년 상법 개정에 따른 자기주식 의무소각, 2027년 시행되는 IFRS 18과 MPM 공시, 기업 밸류업 정책은 모두 기업이 자본을 왜 보유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회사에도 이어지는데, 현재의 바젤Ⅲ 체계는 바젤Ⅱ가 확립한 위험가중자산 중심의 자본관리 방식을 폐기하지 않고 자본·유동성 규제와 아웃풋 플로어를 추가해 그 한계를 보완한 구조다. 결국 기업은 설명하기 어려운 내부유보와 자기주식을 줄이고, 은행은 규제자본 대비 수익성과 측정 가능한 위험을 중심으로 자산을 배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주환원과 금융 안정성은 강화될 수 있지만, 신용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분야보다 담보가 명확하고 위험을 계산하기 쉬운 국채·부동산·고신용 자산으로 집중될 가능성도 커진다. 우리는 여전히 바젤Ⅱ가 만든 ‘측정된 위험에 따라 자본을 배분한다’는 인식론 안에 살고 있으며, 바젤Ⅲ는 그 세계관을 대체한 제도가 아니라 그 실패를 제한하기 위해 덧댄 안전장치에 가깝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별개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군사분계선을 사실상의 국경으로 바꾸며 체제 생존을 위한 장기 분리를 선택하고 있다. 남한에서도 통일 비용에 대한 부담과 세대 변화로 통일의식이 약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국회의 세종 이전은 대한민국의 정치·행정 중심을 현재 영토의 중앙부로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 이 변화가 곧 서울의 몰락이나 집값 폭락을 뜻하지는 않지만, 금리 상승과 강남 등 선도지역의 약세가 겹치는 상황에서 높은 이자를 감당하며 서울 부동산을 보유해야 할 장기적 유인은 약해질 수 있다. 대통령이 실제로 세종에서 집무하고 공공·민간 투자가 충청권으로 조금씩 분산된다면 서울은 여전히 경제·문화 중심지로 남더라도, 국가의 모든 신규 기능과 개발이 당연히 집중되는 도시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결국 서울의 위험은 단기 폭락보다 신규 투자와 도시의 신선도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장기적으로 상대적 가치와 성장성이 재평가되는 데 있다.
세계화는 값싼 노동력과 에너지, 안전한 해상 물류를 바탕으로 물가와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의 레버리지 투자를 가능하게 했지만, 공급망 분절과 물류·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그 시대가 끝나가면서 고물가·고금리가 새로운 질서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때 영끌한 사람들은 집값 하락보다 먼저 원리금과 생활비 상승으로 현금흐름이 막히고, 자산을 가졌지만 직업과 소비, 가족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는 길을 걷게 된다. 권력투쟁이 한창이던 시대에 감택·반중·배송지가 눈앞의 권력과 이익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과 원칙을 지켜 살아남았듯, 부동산 광풍 속에서도 ‘지금 사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와 탐욕을 견딘 사람은 수익의 기회를 일부 놓쳤을지언정 삶의 선택권을 지켰다. 탐욕의 잔치가 끝난 뒤 승자가 되는 사람은 가장 많은 것을 차지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판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다.
재건축은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낡은 집을 다시 짓기 위해 비용을 부담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재건축의 수익성으로 여겨진 것도 실제로는 기존 소유자가 대지지분과 개발 가능성 일부를 일반분양자에게 넘기고, 그 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한 결과에 가깝다.
일반분양자가 높은 가격으로 들어오면 조합원 분담금이 줄어들어 이익처럼 보이지만, 일반분양 수입이 부족하면 공사비와 금융비용은 결국 조합원에게 돌아온다. 아직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철거할 경우 건물의 잔존가치와 주거서비스도 사라지므로, 철거 자체가 순손실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시장은 재건축 후의 신축 가격과 기대이익을 먼저 반영했지만, 대지지분 감소, 기존 건물의 폐기, 이주비, 금융비용, 사업 지연 위험은 뒤로 미뤄왔다. 최근 커지는 추가분담금은 재건축의 수익성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비용이 뒤늦게 드러나는 과정이다.
결국 재건축의 사업성이란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능력이라기보다, 보유한 토지와 개발권을 얼마나 비싸게 처분해 신축비용으로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재건축은 일률적인 호재가 아니라, 기존 건물의 잔존가치와 대지지분 손실, 총사업비를 따져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자산 갱신 사업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은 이미 패권국이다. 타자와 투수의 war측정방법이 같을 이유가 없듯,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같은 형태일 필요는 없다. 다만 누가 더 영향력있는가? 미국은 이미 이이제이판에 들어와있다. 이란과 석유거래를 하는 것만으로 달러패권이라는 역린을 건드렸지만, 미국은 대놓고 그걸 명분삼지 못한다.
달러 패권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이를 영구적인 권리로 착각하고 내부 생산 기반을 방치한 대가가 눈앞의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진정한 강대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달러라는 보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패권의 안락함을 일부 내려놓고 내부 산업과 실물 경제의 체력을 복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