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우주규제가 싫으면 안 가면 되는가, 트럼프식 미국 리더십의 역설

파리 우주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 정부의 압박 속에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등 주요 미국 우주기업들이 불참을 결정한 사건은 단순한 우주산업 갈등을 넘어, 트럼프식 리더십이 국제질서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유럽의 우주 규제가 과도하거나 미국 기업에 불리하다면 회의에 참석해 반박하고 협상하는 것이 미국이 오랫동안 세계질서를 이끌어온 방식이었다. 그러나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의의 자리 자체를 외면한다면, 이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관철할 수 있는 중국 지도자의 ‘결정의 편리함’을 부러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미국의 힘은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나라들까지 결국 같은 테이블에 앉혀 규칙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파리의 빈 의자는 미국의 리더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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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우주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우주기업들이 잇달아 참석을 취소했다.

기업들이 갑자기 파리에 관심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은 미국 기업들에게 회의 참석이 미국 정부가 반대하는 유럽의 우주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참석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메시지는 충분히 강했다.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스토크 스페이스, 스타클라우드가 결국 빠졌다.

미국이 유럽의 우주정책을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EU 우주법은 유럽 기업뿐 아니라 유럽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위성의 충돌 방지와 우주쓰레기 처리, 사이버보안, 우주활동의 환경영향 평가 등을 요구한다. 유럽연합은 이를 안전·복원력·지속가능성을 위한 공통 규칙이라고 설명한다.

스페이스X처럼 수천 개의 위성을 운영하는 기업에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규제가 과도한지 따져볼 수도 있다.

환경과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유럽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지도 의심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의 압도적인 경쟁력을 규칙으로 늦추려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는 것도 정당하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상하다.

그렇다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규제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과도한 기준이 있으면 데이터를 들고 반박해야 한다.

유럽 기업에는 유리하고 미국 기업에는 불리한 조항이 있다면 협상 테이블에서 뜯어고치라고 요구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회의는 각국이 모여 법률을 확정하는 입법회의도 아니다. 우주의 민간·군사적 이용이 빠르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그런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은 규제에 대한 반론이라기보다 다른 종류의 메시지에 가깝다.

우리가 싫어하는 규칙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우리 기업도 보내고 싶지 않다.

여기에서 묘한 기시감이 생긴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부러운 것인가.

물론 알 수 없다.

트럼프가 중국의 정치체제를 원한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그러나 때때로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에서는 중국의 체제 그 자체보다 중국 지도자가 누리는 어떤 편리함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강대국이 충분히 강하다면 굳이 남을 설득해야 하는가.

자국 기업에 부담이 되는 국제규칙이라면 왜 그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계속 참여해야 하는가.

동맹국이 다른 생각을 한다면 왜 긴 협상을 거쳐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가.

우리가 옳다고 판단했다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중국 지도자에게는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할 정치적 비용이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작다.

결정한다.

국가의 방향을 정한다.

기업은 따라간다.

상대국에는 그 결정을 통보한다.

물론 현실의 중국 역시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는 나라는 아니다. 중국 내부에도 관료조직과 이해관계가 있고 국제협상도 한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하면 최고지도자가 국내의 다양한 독립적 권력기관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관철해야 하는 정도는 현저히 다르다.

반면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지도국가로서 사용해 온 힘은 그렇게 간단한 힘이 아니었다.

미국은 강했기 때문에 규칙을 무시할 수 있었던 나라가 아니라,

강하면서도 다른 나라들을 규칙 안으로 끌어들일 능력이 있었던 나라였다.

회의를 열고,

동맹을 설득하고,

불리한 타협도 하고,

국제기구 안에서 싸우고,

때로는 미국 기업에도 국제규칙을 받아들이게 했다.

답답한 방식이다.

시간이 많이 든다.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준다는 점에서 초강대국에게는 더욱 답답하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힘을 오랫동안 구별해온 중요한 차이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이 만든 질서는 언제나 공정했던 것도 아니고 미국의 국익과 분리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신의 국익을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규칙과 동맹과 제도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규칙이 곧 미국만의 규칙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이번 파리의 장면은 그 반대 방향을 보여준다.

유럽이 제시한 우주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말해야 한다.

우주쓰레기 처리 기준이 비현실적인가.

충돌회피 의무가 과도한가.

사이버보안 기준이 미국 기업에 불공정한가.

환경영향 평가가 과학적 근거에 비해 지나친 비용을 요구하는가.

하나씩 싸우면 된다.

그것이 협상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선택한 것은 미국 기업들에게 그 자리에 가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정치적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논쟁의 성격이 바뀐다.

EU 우주법이 좋은 법인가 나쁜 법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국제규칙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려 하는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후변화에서도,

무역에서도,

기술규제에서도,

동맹국과의 관계에서도 같은 질문이 반복될 수 있다.

협상은 귀찮다.

환경 문제는 특히 그렇다.

지금 당장 오염 비용을 부담하는 기업과 국가는 명확하지만, 깨끗한 대기와 안정된 기후, 안전한 우주궤도의 이익은 수십 년 뒤의 사람들과 다른 나라에까지 흩어진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는 본질적으로 공동규칙이 필요하다.

우주쓰레기는 더욱 그렇다.

미국 위성이 만든 파편이라고 미국 상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유럽 위성이 고장났다고 유럽 위성만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다.

궤도는 국경으로 나눌 수 없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들은 불편한 회의를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앉아,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자기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계산하고,

어디까지 양보할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은 중국 최고지도자의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의 관점에서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이 미국이 오랫동안 자랑해온 방식이었다.

힘이 있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아니라,

힘이 있기 때문에 남을 설득해 결국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나라.

그것이 리더십이라면 파리의 빈 의자는 별로 강해 보이지 않는다.

스페이스X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우주기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우주국가다.

유럽이 미국 기업 없이 우주질서를 설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더더욱 회의장에 가면 된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면 논쟁에서도 그만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유럽의 규제가 터무니없다면 공개적으로 반박하면 된다.

유럽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면 그 모순을 지적하면 된다.

미국이 더 나은 국제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면 된다.

그것이 초강대국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회의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이상한 역설이 생긴다.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고 하면서,

정작 미국을 강하게 만들었던 가장 어려운 능력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게 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나라들과도 함께 일하는 능력이다.

시진핑에게는 미국 대통령이 상대해야 하는 종류의 불편함이 훨씬 적다.

야당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고,

독립적인 의회가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것도 아니며,

동맹국들과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복잡한 협의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미국과는 다르다.

그래서 결정은 편하다.

하지만 편한 결정과 강한 국가는 같은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불편한 협상과 약한 국가는 같은 말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힘은 상당 부분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자기보다 작은 나라에도 발언권을 주고,

동맹국의 불평을 듣고,

기업의 이해와 국가의 이해를 조정하고,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언어로 미국의 요구를 바꾸는 일.

그 과정은 대통령에게는 번거롭지만 패권국에게는 자산이다.

그래서 파리 우주정상회의의 빈자리를 보며 다시 묻게 된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부러운 것인가.

아마 시진핑이라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라는 체제를 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때때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지도자의 편리함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이 그 편리함을 얻으려 할수록 미국은 중국을 닮을 수 있어도, 중국보다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이 가진 가장 큰 특권은 아무도 자기에게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나라가 반대하면서도 결국 다시 미국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나라가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먼저 의자를 비우기 시작한다면,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유럽의 규제가 얼마나 성가신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은 아직도 세계를 이끌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저 세계가 자기 말을 듣기를 원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