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세계화는 왜 다시 오기 어려운가
세계화는 단순히 관세와 미중 갈등 때문에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가 자신이 가진 자원·노동력·시장·기술·자본의 가치를 자각하고 기존 분업구조에서 자신의 몫과 위험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과거로 되돌리기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체 파이가 커지는 한 불균형한 역할 분담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지만, 이제 자원국은 원료만 팔기를 거부하고, 생산국은 조립기지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며, 기술국과 소비시장 역시 전략산업과 공급망을 자국 안에 남기려 한다. 각자의 선택은 합리적이지만 모두가 동시에 자기 몫과 안전을 추구하면 공급망 중복, 보조금, 재고, 국내생산 확대 등으로 세계 전체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비용은 높아진다. 그래서 세계화의 가장 강력한 비가역성은 국경이나 관세가 아니라 자각에서 나온다. 관세는 내릴 수 있고 공장은 옮길 수 있지만, 한번 생긴 “왜 우리는 이 몫만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글에서 나는 세계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 과거형이 되어가고 있다고 썼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긴다.
지금의 갈등이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예전의 세계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국이 관세를 낮추고, 중국과의 갈등이 완화되고, 전쟁이 끝나고, 공급망이 다시 안정된다면 세계는 다시 가장 싼 곳에서 만들고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조달하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가 되돌리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장이 이전했기 때문도, 관세가 생겼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각 나라가 자신의 몫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분업체계처럼 움직였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가 있었다.
석유와 광물 같은 자원을 가진 나라가 있었다.
값싼 노동력과 넓은 생산기지를 가진 나라가 있었다.
거대한 소비시장을 제공하는 나라도 있었다.
모두의 역할은 달랐다.
가져가는 몫도 달랐다.
기술과 금융, 브랜드와 지적재산권을 가진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갔다.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몫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 체제가 유지된 것을 단순히 강자가 약자를 착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40을 받던 나라 역시 이전에는 20밖에 벌지 못했을 수 있다.
농촌에 있던 노동자는 공장으로 이동해 더 높은 임금을 받았다.
자원국은 세계시장에 자원을 팔면서 성장했다.
선진국의 소비자는 싸고 좋은 상품을 얻었다.
기업은 비용을 낮췄고 자본은 높은 수익을 얻었다.
분배는 불균형했지만 전체 파이가 빠르게 커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저 사람보다 얼마나 적게 받는가.”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는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상대적 불균형을 견디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질문이 바뀐다.
자원국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계속 원유와 광석만 팔아야 하는가.
정제하고 가공하고 완제품까지 만들어 더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가면 안 되는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던 나라는 생각한다.
왜 우리는 계속 다른 나라 기업의 제품을 조립해야 하는가.
우리도 기술을 가지고 우리 브랜드를 만들면 안 되는가.
거대한 시장을 가진 나라는 생각한다.
왜 우리 국민이 이렇게 많은 상품을 사주는데 공장은 모두 다른 나라에 있어야 하는가.
우리 시장에서 돈을 벌고 싶다면 우리에게도 무언가를 남겨야 하지 않는가.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 역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반도체와 의약품과 핵심광물까지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 하는가.
왜 해외에서 생산된 값싼 상품을 사는 대신 우리 제조업과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 가운데 특별히 잘못된 것은 없다.
오히려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질문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세계화를 되돌리기 힘든 이유는 누군가 잘못된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옳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번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과거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자원국에 다시 원료만 팔라고 할 수는 없다.
중국에 다시 영원히 세계의 조립공장 역할만 하라고 할 수도 없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같은 거대한 시장을 가진 나라에 시장만 개방하고 산업정책은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미국 노동자에게도 가장 싼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되는 것을 계속 받아들이라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한번 자신의 협상력을 깨달은 사람에게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세계화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성공 때문에 이런 문제를 만들었다.
세계화에 참여한 나라들은 성장했다.
가난했던 나라는 산업화됐다.
산업화된 나라는 기술을 배웠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내수시장이 커졌다.
기업이 성장했고 자본이 축적됐다.
그러자 그 나라들은 더 이상 과거에 맡았던 역할에 만족하지 않게 됐다.
세계화가 성공적으로 작동할수록 세계화의 기존 분업구조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겪어온 교육 경쟁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한 가정의 입장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남들이 대학을 가는데 내 아이만 대학에 가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교육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그 선택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선택을 했을 때 발생했다.
대졸자가 드물던 사회에서 대학 졸업은 강력한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 졸업은 더 이상 특별한 경쟁력이 아니라 출발선이 된다.
그러면 경쟁은 더 좋은 대학, 대학원, 자격증, 어학, 인턴으로 이동한다.
개인의 선택은 합리적이었지만 사회 전체에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경쟁에 참가하지 않는 개인에게는 손해가 발생하지만 모두가 경쟁에 참가한다고 해서 모두의 상대적 위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역설이다.
각자의 최적 선택을 합쳤더니 전체의 최적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 노동시장도 그 영향을 받았다.
오랫동안 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걸맞은 직업을 원한다.
그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선호하면 농업과 제조업, 건설과 돌봄, 각종 서비스업에서는 사람이 부족해진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렇다고 외국인 노동력이 영원히 값싼 대체재로 남는 것도 아니다.
국내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고 생활비가 상승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역시 어느 정도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같은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같은 물가를 부담하며, 더 나은 조건의 사업장으로 이동하려는 선택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기대임금이 올라갈수록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이 늘어날 수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인건비 문제가 영구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임금 격차가 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격차의 일부가 좁혀지고, 외국인 노동력의 가격도 국내 전체 임금 수준과 함께 올라간다.
여기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
개인은 더 나은 일자리를 선택하고, 기업은 부족한 노동력을 외국에서 데려오며, 외국인 노동자도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
각자의 선택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회 전체로 보면 과거에 낮은 비용으로 유지되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삶에 대한 기대 수준도 함께 올라간다.
집은 어느 정도여야 하고, 자녀에게는 어느 정도의 교육을 제공해야 하며, 부모라면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야 한다는 기준이 높아진다.
저출산에는 주거와 고용, 돌봄과 성별 역할 등 수많은 원인이 있으므로 교육 경쟁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를 한 명 키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기준이 계속 높아질수록 출산의 심리적·경제적 문턱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여기에서도 누구 한 사람의 생각이 특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각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모두 더했을 때 사회 전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경제도 이와 비슷하다.
한 나라가 핵심산업을 자국에 가져오면 공급망이 안전해진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같은 산업을 자국에 가져오려 하면 세계에는 필요 이상의 공장이 생긴다.
한 기업이 공급처를 두 곳으로 나누면 위험이 줄어든다.
모든 기업이 그렇게 하면 재고와 설비가 늘어나고 비용도 증가한다.
한 나라가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률을 높이면 위기에 강해진다.
모든 나라가 같은 선택을 하면 세계 전체의 생산은 비교우위에서 멀어진다.
한 자원국이 자신의 자원을 더 높은 가격에 팔고 자국에서 가공하려는 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모든 자원국이 원료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서면 세계 생산비는 올라간다.
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막기 어렵다.
과거의 세계화는 가장 공평한 체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가장 효율적인 체제를 만들려고 했다.
어디서 가장 싸게 생산할 수 있는가.
어디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자원을 구할 수 있는가.
어디에서 가장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가.
누가 가장 잘하는가.
그 답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 전체의 비용은 낮아졌다.
하지만 비용이 낮아졌다고 해서 그 비용과 이익이 공평하게 배분됐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어떤 체제가 260의 비용으로 돌아갔는데 두 사람이 각각 220과 40을 부담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모두 이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220을 부담하던 사람은 왜 자신이 대부분을 부담해야 하는지 묻는다.
40을 부담하던 사람도 왜 자신의 몫이 이렇게 작은지 묻는다.
그러면 가장 단순한 해답은 130과 130처럼 보인다.
전체 비용 260은 그대로 두고 부담만 공평하게 나누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존 역할을 바꾸려면 새로운 공장을 지어야 한다.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사람을 교육해야 한다.
공급망을 복제해야 한다.
재고를 더 쌓아야 한다.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기업은 더 비싼 원료를 사야 한다.
전략산업은 경제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국내에 남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220과 40이 130과 130이 되는 것이 아니라 150과 150이 된다.
260짜리 세계가 300짜리 세계로 바뀐다.
공평함을 높이는 과정에서 전체 비용이 늘어난다.
안전을 높이는 과정에서도 전체 비용이 늘어난다.
자립성을 높이는 과정에서도 비용이 늘어난다.
이 추가 비용을 무조건 낭비라고 부를 수도 없다.
보험도 평소에는 비효율처럼 보인다.
사고가 없으면 보험료는 그냥 사라진 돈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보험의 가치가 나타난다.
공급망 이중화도 그렇다.
국내 생산도 그렇다.
전략비축도 그렇다.
어느 정도의 비효율은 국가가 안전을 사기 위해 지불하는 보험료다.
문제는 그 보험료가 존재하지 않는 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장을 두 개 지으면 하나보다 비싸다.
가장 싼 곳이 아니라 안전한 곳에서 생산하면 제품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
보조금을 정부가 지급하면 재정지출이 늘어난다.
관세를 부과하면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한다.
자원의 가치를 더 인정해주면 그 자원을 사용하는 산업의 생산비도 올라간다.
세계는 더 공평하고 더 안전한 질서를 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과거의 가격으로 살 수는 없다.
여기에서 세계화의 비가역성이 나타난다.
관세는 다시 내릴 수 있다.
공장은 다시 이전할 수 있다.
정권도 바뀔 수 있다.
전쟁도 언젠가는 끝난다.
하지만 한번 생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원료만 파는가.”
“왜 우리는 저 나라에 의존해야 하는가.”
“왜 우리 시장에서 번 돈이 우리 산업에는 남지 않는가.”
“왜 우리는 세계질서의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가.”
“왜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적은 몫을 받아야 하는가.”
한번 이런 질문을 배운 사회는 그것을 모르는 시절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세계화의 가장 강력한 적은 어쩌면 관세도 국경도 아닐지 모른다.
자각이다.
각 나라가 자신의 자원과 시장과 기술과 노동력이 가진 가치를 자각하고, 자신이 떠안고 있는 위험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과거의 세계화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복원되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지금의 변화를 일시적인 보호무역의 유행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미국 대통령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이 완화된다고 해서 중국이 기술자립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유럽이 다시 값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해서 에너지 안보를 잊기도 어렵다.
자원국이 한 번 자국 내 가공과 산업화를 추진하기 시작하면 다시 원료 수출국의 위치에만 머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자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중요하다.
세계화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돼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여전히 필요로 하면서도 각자가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몫과 위험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세계가 완전히 단절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교역은 계속될 것이다.
자본도 이동할 것이다.
기업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생산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도 계속 서로의 상품을 사고팔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과거와 같은 세계화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조건이 붙을 것이다.
더 많은 공장이 중복될 것이다.
더 많은 재고가 쌓일 것이다.
더 많은 보조금과 관세가 등장할 것이다.
각국은 더 많은 산업을 안보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다.
세계는 계속 연결되어 있겠지만 연결의 가격은 더 비싸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장 불편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세계화의 효율성을 되찾으려면 누군가에게 다시 예전의 역할을 받아들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알아버린 사람에게 그것을 잊으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자신의 몫을 계산하기 시작한 나라에게 다시 계산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세계화는 국경이 닫혀서 비가역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비가역적이다.
한번 시작된 자각은 좀처럼 과거형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