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이 올랐다, 정말 위험한 건 은행일까? 아니면 영끌 차주일까?

은행의 부실채권 증가는 단순히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바젤Ⅲ 이후 은행은 충당금, 대손처리, 자본관리, 가산금리 조정과 여신 축소를 통해 충격을 흡수하며 살아남도록 설계돼 있지만, 차주는 같은 완충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 저금리 시절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보였던 거대한 차입금은 금리 상승과 함께 전혀 다른 부담으로 변했고, 부실이 늘수록 은행은 더 보수적으로 변해 정상 차주에게도 높은 금리와 까다로운 대출조건을 요구한다. 결국 고금리 국면이 길어질수록 은행은 버티고, 취약한 차주들은 하나씩 탈락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아반떼를 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제네시스 할부금을 내고 있는 셈이며, 지금 나타나는 부실 지표는 그 청구서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차주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들배지기 · 개인 의견 · 현재 유효 · 공개 · 수정

아반떼를 샀는데, 제네시스 할부금이 나온다

은행의 건전성이 심상치 않다는 기사가 나왔다.

5대 은행은 대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냈지만, 동시에 부실채권도 늘고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기사만 보면 먼저 걱정되는 것은 은행이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은행에는 부실을 처리하는 매뉴얼이 있다.

대손충당금을 쌓고, 손실을 인식하고, 담보를 처분하고, 부실채권을 매각하거나 상각한다. 위험자산을 관리하면서 자본비율을 맞추고, 필요하면 신규대출을 줄이고 대출조건을 조정한다.

바젤Ⅲ 이후 금융규제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충격이 와도 은행은 살아 있어야 한다.

은행은 일반 기업 하나가 아니다. 결제와 신용공급을 담당하는 금융 인프라다. 은행 몇 곳의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체로 번지는 일을 막기 위해, 평소에 자본을 쌓고 유동성을 관리하며 손실을 흡수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물론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은행도 위험하다.

하지만 지금 더 먼저 들여다봐야 할 곳은 은행 창구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차주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숫자가 아니다.

그 숫자가 올라오기 전에 누군가는 이미 몇 달째 이자를 힘겹게 내고 있었고, 누군가는 운전자금을 돌려막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만기 연장에 기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영업해서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아직 연체만큼은 피하려고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그 과정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나타나는 결과다.

그래서 은행의 부실지표가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은행보다 먼저 차주 쪽에서 무언가가 깨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더 걱정스러운 이유가 있다.

금리 상승이 끝난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1억원의 대출에서 금리 1%포인트당 연간 이자 100만원이 늘어난다.

100만원만 떼어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사람들이 1억원만 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5억원이면 500만원이고, 10억원이면 1,000만원이다.

금리가 3%포인트 오르면 10억원의 차입금에서 추가되는 이자만 연간 3,000만원이다.

월로 나누면 250만원이다.

가계라면 생활수준 자체를 바꿔야 할 돈이고, 사업자라면 직원 한 명의 인건비나 투자자금에 해당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기업의 차입금이 수십억원, 수백억원으로 올라가면 금리 1%포인트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저금리 시절의 차입을 자동차 할부에 비유하면 지금 벌어지는 일이 쉽게 보인다.

처음 계약할 때는 아반떼를 샀다.

매달 내는 돈도 아반떼 할부금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라면 내 월급으로 낼 수 있고, 내 사업에서 나오는 현금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차를 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청구서를 다시 받아보니 차는 여전히 아반떼인데 매달 빠져나가는 돈은 제네시스 할부금이 되어 있다.

차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엔진이 커진 것도 아니고, 승차감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어제와 똑같은 원금을 쓰고 있을 뿐인데 돈을 사용하는 가격만 훨씬 비싸졌다.

이것이 큰돈을 빌린 차주들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런 금리를 정말 예상했다면 애초에 그렇게 많이 빌렸겠느냐는 것이다.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금리는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는 정도는 안다.

하지만 실제 대출 규모를 결정할 때 금리가 몇 %포인트 오른 상태가 몇 년 동안 계속돼도 버틸 수 있는지를 계산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낮은 금리가 유지되자 저금리는 어느새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환경처럼 받아들여졌다.

낮은 금리가 큰 차입을 가능하게 했고, 큰 차입은 다시 자산가격과 투자를 밀어 올렸다.

그러니 역으로 말하면 금리 인상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지금의 금리를 알고 있었다면 같은 집을 사고, 같은 건물을 사고, 같은 규모로 사업을 확장했을 사람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이제 그때의 판단이 시험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은행과 차주의 운명이 갈리기 시작한다.

차주가 부실해지면 은행은 먼저 원금 회수에 들어간다.

담보가 있으면 담보를 처분하고, 보증이 있으면 보증을 실행하고, 회수 가능한 돈을 최대한 회수한다.

그래도 남는 손실은 충당금과 은행의 이익, 필요하면 자본으로 흡수한다.

대손처리는 손실의 종착점이지 은행의 종착점이 아니다.

은행은 그 손실을 처리하고 다음 장부를 연다.

그런데 차주는 그렇지 않다.

차주에게 부실은 장부상의 숫자가 아니다.

현금이 바닥나고, 담보를 잃고, 사업을 줄이고, 직원을 내보내고, 자산을 팔고, 그래도 견디지 못하면 결국 연체와 구조조정, 파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은행은 포트폴리오 전체에서 손실을 분산할 수 있지만, 차주는 자기 삶과 자기 사업 하나에 손실이 집중된다.

그래서 고금리 국면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장면이 나타난다.

은행은 손실을 입으면서도 살아남는다.

차주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여기서 과정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부실이 늘어나면 은행은 더욱 방어적으로 변한다.

충당금을 더 쌓고, 위험한 대출을 줄이고, 신용등급이 낮은 차주에게 더 높은 금리를 붙인다.

대출한도를 줄이고, 담보를 더 요구하고, 만기 연장을 까다롭게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미 손실을 경험했으니 다음 손실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전체에서 보면 다른 일이 벌어진다.

먼저 부실해진 차주 때문에 아직 정상적으로 돈을 갚고 있는 차주까지 더 비싼 돈을 빌리게 된다.

예상되는 대손비용은 결국 대출금리의 일부가 된다.

부실이 많아질수록 신용의 가격은 올라가고, 신용의 문은 좁아진다.

그 결과 원래는 버틸 수 있었던 차주 가운데 일부가 다시 위험해진다.

고금리로 부실이 늘고,

부실이 늘어 은행이 방어적으로 변하고,

은행이 방어적으로 변하면서 정상 차주의 자금조달 비용까지 올라가고,

그 부담 때문에 다시 추가 부실이 발생한다.

은행은 그때마다 충당금을 쌓고, 대손처리를 하고, 가산금리를 조정하면서 버틴다.

차주들은 그 과정에서 하나씩 탈락한다.

한때 금융기관에는 “맑은 날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오면 빼앗는다”는 오명이 있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냉정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은행이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는 것이 야박하다고 비판할 수 있었다.

이제 은행은 자기 판단만으로 우산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위험이 커지면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하고, 위험자산을 줄여야 하며, 손실 가능성을 빠르게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

비가 오는데도 계속 우산을 빌려주다가 은행 자체가 쓰러지는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금융시스템 전체로 보면 그것이 옳다.

은행은 살아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누가 먼저 죽느냐이다.

은행은 하나의 부실대출을 수천, 수만 건의 정상대출 속에서 흡수할 수 있다.

반면 차주는 자기 대출 하나가 전부다.

은행에게 어떤 기업의 파산은 대손충당금 몇십억원일 수 있지만, 그 기업의 경영자와 직원들에게는 사업과 일자리의 소멸이다.

그래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개별 경제주체의 안정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은행 시스템이 안정적이라는 말은 모든 차주가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은행이 안정적으로 살아남는 시스템일수록 손실은 더 빠르게 인식되고, 위험한 차주는 더 빨리 분리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의 환경까지 달라지고 있다.

세계화가 물가를 눌러주고, 값싼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오가며, 주요국이 성장의 과실을 나누던 시기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가까운 동맹국들과도 관세를 놓고 충돌한다.

공급망은 효율보다 안보를 우선하기 시작했고, 각국은 전략산업을 자국으로 끌어오려 한다.

그 모든 변화에는 비용이 든다.

세계가 서로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하고 가장 효율적인 곳에서 조달하던 시대보다 물가를 낮추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 오래 익숙해졌던 초저금리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경기침체가 심해지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금리가 언젠가 내려간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누가 살아남느냐이다.

금리가 5%에서 4%로 내려가는 날을 기다리며 몇 년 동안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면, 이미 현금이 바닥난 기업에게 그 1%포인트 인하는 너무 늦게 찾아온 구원일 수 있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몇 년 동안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깨고, 자산을 팔면서 버티다가 결국 대출을 정리한 사람에게 나중의 금리 인하는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 은행의 부실채권 증가를 은행만의 문제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은행은 이미 부실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충당금을 쌓고, 원금을 회수하고, 손실을 처리하고, 다시 대출의 가격을 조정한다.

그 비용 중 일부는 결국 다음 차주가 더 높은 가산금리와 더 까다로운 신용조건으로 부담한다.

그렇게 시스템은 스스로를 방어한다.

그리고 시스템이 방어되는 동안 가장 약한 차주부터 하나씩 밖으로 밀려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은행의 부실률 숫자 하나가 아니다.

그 숫자의 뒤편에는 저금리라는 가격표를 보고 집을 사고, 건물을 사고, 사업을 확장하고, 설비를 들이고, 미래의 소득을 앞당겨 쓴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이 계약할 때 계산했던 월 이자와 지금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월 이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생겼다.

아반떼를 샀다.

그런데 청구서는 제네시스가 되어 돌아왔다.

은행은 그 청구서를 받아낼 방법을 알고 있다.

문제는 차주가 언제까지 그 청구서를 낼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지금 나타나는 부실의 숫자는, 어쩌면 그 답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