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분담금은 늘어나는데 왜 계속 호재인가: 공급부족론 뒤의 건설사 이해관계

재건축을 둘러싼 담론에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 있다. 하나는 ‘재건축은 주택공급이므로 많이 할수록 공익’이라는 프레임이고, 다른 하나는 ‘재건축은 조합원에게 당연히 돈이 되는 사업’이라는 프레임이다. 하지만 재건축은 기존 주택의 멸실과 이주를 먼저 발생시키고, 조합원에게도 분담금·금융비용·사업위험 때문에 반드시 이익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공사비와 개발여력에서 재건축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시장의 신호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재건축은 항상 돈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유지되면 조합원은 사업에 참여하고, ‘공급 부족’이라는 명분이 강해질수록 더 많은 사업장이 열린다. 이 두 프레임 모두에서 가장 일관되게 이익을 얻는 쪽은 건설산업이다. 조합원은 한 판의 승패에 자산이 걸리지만, 건설사는 판이 열릴수록 공사 매출 기회가 늘어난다. 결국 공급과 사업성이라는 공익적 언어 뒤에서 누가 판돈을 걸고 누가 판의 횟수 자체에서 이익을 얻는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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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만 파는 건설사는 판이 많이 열릴수록 이득이다

재건축 기사를 읽다 보면 이상한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재건축은 낡은 집을 새로 짓는 일이다. 멀쩡히 사용하던 건물을 철거하고, 주민들이 이주하고, 막대한 공사비와 금융비용을 들여 다시 짓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부동산 담론에서는 오랫동안 정반대의 전제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재건축은 당연히 돈이 되는 일이다.

집이 낡으면 재건축을 하고, 재건축을 하면 새 아파트를 받고, 새 아파트를 받으면 자산가치가 크게 오른다.

그래서 재건축을 추진했는데 분담금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사업성이 안 나온다.”

“이러면 누가 재건축을 하느냐.”

“정부가 재건축을 막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은 분담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데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쪽이 더 이상하다.

최근 한국경제의 「집 부족하다면서 재건축 왜 막나…수도권 곳곳 아우성」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이 오래된 전제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기사에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 있다.

첫 번째는

재건축 = 주택공급

이라는 프레임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깊숙하다.

재건축 = 조합원에게 당연히 돈이 되는 사업

이라는 프레임이다.

두 프레임을 함께 놓고 보면 재건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


도대체 누가 ‘집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가

“집이 부족하다면서 재건축을 왜 막느냐.”

제목만 보면 집을 구하지 못한 무주택자들이 정부를 향해 항의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기사 속에서 실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다.

이미 집을 가지고 있다.

그 집에서 살고 있거나 임대를 놓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더 나은 사업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재건축은 장기적으로 주택을 순증시킬 수 있다.

기존 1,000가구를 철거하고 1,400가구를 짓는다면 최종적으로 400가구가 늘어난다.

따라서 재건축을 주택공급의 한 수단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1,400가구가 생기기 전에 먼저 1,000가구가 사라진다.

기존 주민 1,000가구는 공사기간 동안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

즉 장기적으로 400가구를 순증시키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기존 주택 1,000가구를 멸실하고 1,000가구의 추가적인 임시 주거수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재건축을 한꺼번에 추진하면 주변 전월세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이미 집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멸실과 이주 속도를 관리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그러니 여기서 첫 번째로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집을 허물기 위해 이주하면서 ‘집이 부족한데 왜 재건축을 막느냐’고 말한다.

이들이 주택 공급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주택이 부족해서 살 곳이 없다’는 무주택자의 이해관계와 같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실제 요구를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렇다.

“우리가 가진 기존 주택을 더 좋은 신축주택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사업 조건을 개선해달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다.

다만 이것을

“주택 부족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공급 확대를 요구한다”

는 언어로 바꾸는 순간 사적 이해관계와 공익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런데 한 겹을 더 벗기면 더 이상한 전제가 나온다

기사에서 광명 재건축 단지들이 걱정하는 핵심은 공공임대가 늘어나 일반분양 물량이 줄고, 그 결과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누구나 자기가 내야 할 돈이 커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 논의에는 거의 질문조차 받지 않는 전제가 있다.

재건축을 하면 조합원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돈이 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보다 더 강한 전제다.

재건축은 원래 돈이 되는 사업이고, 돈이 안 된다면 무언가 정책이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다.

분담금이 너무 크다.

그러면 “재건축의 경제성이 그 정도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 “사업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분양 물량이 적다.

그러면 “현재 토지와 밀도에서 추가 개발여력이 그만큼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보기보다 용적률을 더 요구한다.

공공기여가 크다.

그러면 추가 개발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기보다 “사업성을 훼손한다”고 표현한다.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이미 정해져 있다.

재건축은 조합원에게 이익이어야 한다.

왜 그런지는 잘 묻지 않는다.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면 원래 돈이 든다

자동차가 낡았다고 새 자동차로 바꿀 때 제조사가 돈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공장이 노후했다고 기계를 교체하면서 새 설비 가격보다 더 많은 이익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건물도 자산이다.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고치거나 교체하려면 비용이 든다.

더구나 재건축은 아직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의 잔존가치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철거비가 든다.

설계비가 든다.

공사비가 든다.

주민들은 이주해야 한다.

이주비 이자가 발생한다.

사업이 길어지면 금융비용도 늘어난다.

따라서 재건축은 본질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자산 갱신이다.

재건축 후 주택가치가 높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가치상승이 재건축 비용을 초과하는지는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 당연한 계산이 뒤집혀 있었다.

재건축이 돈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보다, 재건축하면 돈을 번다는 경험이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왜 정말 돈이 됐을까

이 믿음이 아무 근거 없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과거 재건축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기존 아파트의 용적률이 낮았다.

가구당 대지지분이 컸다.

주택수요는 빠르게 증가했다.

주택가격도 장기적으로 상승했다.

1,000가구가 살던 저밀도 단지를 철거하고 1,500가구를 지으면 새로 생긴 500가구를 일반분양할 수 있었다.

일반분양자들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 그 돈으로 기존 조합원의 공사비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합원은 적은 돈을 추가하고 새 아파트를 받았다.

때로는 추가 부담보다 자산가치 상승이 훨씬 컸다.

그러니 정말 돈이 됐다.

하지만 건물을 허물었기 때문에 돈이 생긴 것은 아니다.

기존 소유자가 갖고 있던 토지의 일부와 추가 개발 가능성을 신규 입주자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용적률을 높여줬다면 새롭게 허용된 개발권도 함께 현금화했다.

즉 과거 재건축의 수익성은 상당 부분

저밀도 토지의 개발여력 × 계속 상승하는 신규주택 가격 × 강한 신규수요

에서 나왔다.

재건축 그 자체의 마법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조건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 재건축 연한에 들어오는 아파트들은 과거와 다르다.

처음부터 상당한 밀도로 지어졌다.

기존 용적률이 높다.

가구당 대지지분은 작다.

추가로 지어 팔 수 있는 일반분양 물량도 과거보다 적다.

반면 공사비와 인건비는 크게 올랐다.

금융비용도 만만치 않다.

처분할 개발여력은 줄었는데 새 건물을 짓는 비용은 커졌다.

그러니 분담금이 커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계산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이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건축인데 왜 돈이 안 되지?”

라고 묻는다.

질문이 거꾸로 되어 있다.

“왜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데 당연히 돈이 되어야 하지?”

라고 먼저 물어야 한다.


재건축이 돈이 안 된다면 그것도 시장이다

여기서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상승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장이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해도 시장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공사비와 토지가격, 금리, 용적률, 일반분양 가격을 모두 계산했더니 조합원이 몇억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하자.

그래서 주민들이

“이 정도 돈을 내고 멀쩡한 집을 허물 바에는 그냥 살겠다”

고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시장 아닌가.

경제적 편익보다 비용이 크니 거래하지 않는 것이다.

잔존가치가 있는 기존 건물을 계속 사용하는 편이 지금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히려 시장은 이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아직 재건축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용적률을 더 달라, 공공기여를 줄여달라, 부담금을 낮춰달라, 사업 절차를 더 풀어달라

고 요구하면서 어떻게든 재건축이 다시 돈이 되도록 만들려고 한다면 역설적인 장면이 된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 하면 안 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정작 시장이 보여주는 ‘재건축은 이제 예전처럼 돈이 되지 않는다’는 가격 신호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개의 프레임은 누구에게 가장 유리할까

여기서 재건축 담론의 벡터를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프레임은 이렇다.

재건축 = 주택공급

이 프레임이 강할수록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사업 속도를 높이고, 더 많은 단지를 동시에 정비해야 한다는 정치적 명분이 생긴다.

판이 많이 열린다.

두 번째 프레임은 이렇다.

재건축 = 조합원에게 당연히 돈이 되는 사업

이 믿음이 유지될수록 조합원들은 오랜 사업기간과 이주를 감수하고 재건축에 동의한다.

분담금이 조금 늘어도 언젠가 신축 프리미엄이 보상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린 판이 실제 공사까지 굴러간다.

이 두 프레임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향으로 유리하지 않다.

조합원에게는 그렇지 않다.

분담금이 너무 크다면 기존 집에서 계속 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재건축 후 신축가격이 기대보다 낮다면 결과적으로 손해일 수도 있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몇억원의 현금과 수년의 이주를 감수하면서 새 아파트를 받는 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주택자에게도 반드시 그렇지 않다.

장기적으로 순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공사기간에는 대규모 이주수요가 주변 전월세 가격을 압박할 수 있다.

완공된 일반분양 주택이 너무 비싸면 그 공급이 자신의 주거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방정부 역시 무조건 재건축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용적률이 높아지면 도로, 학교, 공원, 교통, 상하수도 같은 도시 인프라가 추가 수요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공공기여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건설사 입장에서는 두 프레임이 거의 완벽하게 같은 방향을 향한다.

판이 많아질수록 좋고, 판이 실제로 돌아갈수록 좋다.


조합원은 승부를 하지만 건설사는 판이 열려야 한다

조합원에게 재건축은 자기 자산이 걸린 투자다.

종전자산가치가 있다.

추가분담금을 낸다.

이주비와 금융비용을 부담한다.

몇 년 뒤 신축주택을 받는다.

그 모든 것을 계산한 최종 결과가 플러스일 수도 있고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

조합원의 질문은 명확하다.

“이 재건축을 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인가?”

건설사의 질문은 다르다.

“이 사업이 실제로 열리는가?”

사업이 열리면 공사 수주가 생긴다.

수천억원 또는 수조원의 공사비 매출이 발생한다.

건설사 역시 원가 상승과 미수금, 공기 지연 등의 위험을 부담한다. 모든 사업에서 일정한 이익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 전체의 최종 자산가격 위험을 조합원과 똑같이 떠안는 것은 아니다.

일반분양 수입이 줄었다고 공사비가 그만큼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공사비가 증가하거나 수입이 감소해 사업수지가 악화되면 부족한 돈은 결국 추가 차입이나 조합원 분담금 문제로 돌아온다.

건설사는 가능한 한 공사비에서 자기 원가와 마진을 확보하려 한다.

따라서 조합원과 건설사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것이다.

조합원은 그 판에서 이겨야 한다.

건설사는 우선 판이 열려야 한다.


광을 파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승자가 아니다

고스톱에서 직접 승부를 하지 않고 광을 판다고 생각해보자.

판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광을 파는 사람에게는 다른 계산이 있다.

이번 판에서 누가 이기느냐도 중요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판 자체가 계속 열리는 것이다.

한 번보다 두 번이 좋다.

열 번보다 스무 번이 좋다.

재건축 시장에서 건설사는 이런 위치에 가깝다.

강남 한 단지가 재건축하는 것보다 강남과 목동과 분당과 평촌과 광명에서 동시에 사업이 열리는 편이 낫다.

재건축 가능 연한이 빨라지는 것도 좋다.

사업 절차가 짧아지는 것도 좋다.

용적률이 늘어 조합원이 재건축에 동의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좋다.

‘집이 부족하다’는 담론은 판의 숫자를 늘린다.

‘재건축은 당연히 돈이 된다’는 믿음은 조합원을 판에 앉힌다.

두 프레임 모두 건설사에는 우월한 전략이다.

하나는 판을 열기 위한 명분이고,

다른 하나는 판을 계속 굴리기 위한 믿음이다.


공공임대도 공급인데 왜 공급을 막는다고 하나

이런 시각에서 보면 광명의 갈등은 특히 흥미롭다.

추가 용적률을 주는 대신 공공임대를 요구한다.

주택 수 자체는 늘어난다.

공공임대 역시 명백한 주택공급이다.

그런데 조합이 걱정하는 것은 일반분양 물량이 줄면서 분담금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갈등의 핵심은 ‘공급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추가로 생긴 개발가치를 누가 가져가느냐다.

일반분양으로 팔면 그 수입이 조합의 사업비로 들어온다.

공공기여로 제공하면 그만큼 조합이 현금화할 수 있는 몫이 줄어든다.

그래서 조합은 반대할 수 있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적 이해관계다.

하지만 그 요구를 다시

“정부가 주택공급을 막는다”

고 표현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공급의 문제가 개발이익 배분의 문제로 바뀌었다가 다시 공급 문제로 포장되는 것이다.


‘재건축은 돈이 된다’는 믿음이 필요한 산업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재건축이 실제로 조합원에게 큰 이익을 주지 않는 시대가 오면 누가 가장 곤란할까.

당연히 집주인도 아쉽다.

하지만 집주인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그냥 살면 된다.

배관을 고치고, 승강기를 바꾸고, 외벽을 보수하면서 건물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재건축보다 낫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건설사에는 그 선택이 다르게 보인다.

건물을 20년 더 사용하면 대규모 철거가 없다.

수조원짜리 신축공사도 없다.

사업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재건축은 돈이 된다’는 믿음은 단순히 집주인들에게 즐거운 신화가 아니다.

정비사업이라는 거대한 산업을 계속 작동시키는 연료이기도 하다.

조합원이

“재건축하면 어차피 돈을 번다”

고 믿어야 몇 년의 사업기간을 견딘다.

분담금도 낸다.

이주도 한다.

사업이 실제 착공까지 간다.

반대로 조합원이 재건축을 자동차 교체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산법이 달라진다.

“새것으로 바꾸고 싶기는 한데 5억원을 낼 만큼 필요한가?”

라고 묻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당수는

“아직은 아니다”

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 순간 수천억원짜리 공사 하나가 사라진다.


공급이라는 말 뒤에서 이해관계의 방향을 봐야 한다

재건축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물은 언젠가는 교체해야 한다.

노후주택의 안전과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도심의 토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순공급을 늘릴 필요도 있다.

건설사 역시 그 일을 수행하고 정당한 이윤을 얻어야 한다.

문제는 각 집단의 이해관계를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데 있다.

조합원은 자산가치를 높이고 싶다.

건설사는 공사를 수주하고 싶다.

무주택자는 감당 가능한 집을 원한다.

세입자는 이주수요 때문에 임대료가 급등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는 주택을 공급하면서 교통과 학교, 기반시설을 감당해야 한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완전히 같지 않다.

따라서 재건축을 둘러싼 주장을 들을 때는 먼저 질문해야 한다.

누가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 유리한 것이 왜 사회 전체에도 당연히 유리한가.

특히 “재건축이 안 되면 공급이 막힌다”와 “사업성이 없으면 재건축을 할 수 없다”는 두 문장이 연달아 등장하면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전제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 전제는 대개 이것이다.

재건축은 당연히 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건축이 돈이 되지 않는 것이 반드시 시장의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비용과 개발여력에서 아직 기존 건물을 계속 사용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시장의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책을 통해 모든 재건축을 계속 돈 되는 사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때는 공급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정책으로 누가 가장 안정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얻게 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조합원은 판돈을 건다.

판이 끝난 뒤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

하지만 광을 파는 사람에게는 다른 계산법이 있다.

한 판의 승패보다 판의 횟수가 중요하다.

그래서 건설산업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계는 명확하다.

집은 항상 부족해야 한다.

재건축은 항상 돈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판은 계속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