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헌법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 서울에서 세종으로 바뀌는 선택

서울의 우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해온 사람들조차 높은 주거비와 금리, 세종의 행정수도 기능 강화, 2차 공공기관 이전, 중부권 교통·생활 인프라 확충을 함께 놓고 다른 선택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는 지방 근무가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고 결국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로였다면, 이제는 “서울에 지금 이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세종과 천안·아산·청주·대전 등 중부권은 아직 서울을 대체할 중심은 아니지만 국가가 공급한 운동에너지가 사람과 자본을 끌어당기는 위치에너지로 바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8월 27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3.00% 인상까지 겹치면서, 서울의 고점은 단순한 가격의 꼭짓점이 아니라 서울을 가장 선호하던 사람들의 계산법이 바뀌는 순간으로 읽을 수 있다.

들배지기 · 개인 의견 · 현재 유효 · 공개 · 수정

며칠 전 ‘미중 무역전쟁에서 세종시까지, 세계경제의 그네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라는 글을 썼다. 거창하게는 세계화와 달러 패권의 변화에서 출발해, 작게는 서울과 세종의 관계까지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글을 쓰고 나니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곡점은 국제정치의 거대한 사건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의 선택에서 먼저 보이는지도 모른다.

마침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자 이전 대상이 될 수 있는 기관 직원들 사이에서 “지방으로 가야 한다면 차라리 세종으로 가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기사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근무지만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세종의 생활환경을 보고, 아이를 키우기 괜찮은지를 생각하고, 대통령실과 국회가 들어왔을 때 집값이 어떻게 될지를 계산하고, 과거의 특별공급 같은 주거지원책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까지 따지고 있었다.

언뜻 보면 흔한 부동산 기사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사람들의 계산법이 이미 상당히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전국 단위 인사가 있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무작위로 전국을 떠도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체로 본인이 희망하는 권역을 중심으로 근무지를 옮길 수 있고, 그 사람 역시 오랫동안 서울과 그 주변을 자신의 주된 근무권역으로 삼아왔다.

조직의 중심과 자신의 경력에 상당히 민감한 사람이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야 앞으로의 경력에 도움이 되는지, 조직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형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사람이 최근 충청권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

한 사람의 선택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집을 알아보는 이유는 직장과 가족, 주거비, 교육, 교통 등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 선택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충청권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원래 서울권을 선호해온 사람이 이 지역을 더 이상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만 계산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계산은 비교적 단순했을 것이다.

지방 근무는 몇 년 지나가는 과정이고, 결국 중심은 서울이다.

집을 산다면 서울이나 서울에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이 안전하다.

서울은 비싸지만 결국 더 오른다.

지방은 싸지만 싼 이유가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계산은 꽤 강력했다.

실제로 서울은 한국의 정치·경제·교육·문화가 집중된 곳이었고, 그 집중은 다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렸다. 사람이 모이니 기업이 모이고, 기업이 모이니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있으니 다시 사람이 몰렸다.

서울이 비싸지는 것이 다시 서울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됐다.

이것은 강력한 위치에너지였다.

그런데 위치가 너무 높아지면 계산이 달라진다.

서울의 장점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장점이 이미 가격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묻게 된다.

서울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 우위에 나는 얼마까지 지불해야 하는가.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자금과 대출 규모가 커지고, 금리가 올라가며, 추가적인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도 많아진다.

반대편에는 다른 계산이 생긴다.

서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더 넓은 주거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생활 인프라도 과거보다 좋아졌으며, 수도권과의 교통도 개선되고 있다.

게다가 세종을 중심으로 정치·행정 기능이 계속 내려온다면 충청권이라는 선택지에는 지금의 가격뿐 아니라 미래의 변화까지 붙는다.

사람들이 서울을 싫어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서울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다시 계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부동산의 고점은 반드시 어느 날 차트에 거대한 음봉이 생기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지역을 가장 선호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다른 선택지를 진지하게 계산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더 중요한 변곡점일 수 있다.

“서울이 제일 좋다”는 생각과 “그러니 서울에 집을 사야 한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니다.

전자는 여전히 유지될 수 있다.

후자만 바뀌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세종으로 가겠다’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그들은 세종이 서울보다 더 좋은 도시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직업과 주거비, 가족생활과 자산가격, 앞으로 이동할 국가기능을 함께 놓고 계산했을 때 세종이라는 카드가 현실적인 선택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종시 하나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세종이 행정수도로서 위치에너지를 갖게 된다면 그 효과가 세종시 행정구역 안에만 머물 이유는 없다.

천안과 아산, 청주와 대전까지 포함한 중부권 전체의 계산법이 달라질 수 있다.

국가의 주요 기능이 내려오고, 광역교통망이 연결되고, 안정적인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 정착하면 민간기업과 상업시설이 그 수요를 본다. 건설사는 주택과 업무시설을 공급하고, 교육과 의료서비스가 늘어나며, 다시 사람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정부가 밀어준다.

기관을 옮기고 청사를 짓고 도로와 철도를 놓는다.

이것은 운동에너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정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계산으로 그 지역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그때 운동에너지는 위치에너지로 변한다.

국가가 계속 밀어주지 않아도 위치 자체가 사람과 돈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국토정책의 방향을 보면 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세종의 행정수도 기능을 완성하고, 대통령 집무기능과 국회의 기능을 확대하며, 추가적인 공공기관 이전과 광역교통망 확충까지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여기에서 오래된 법적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을 관습헌법으로 인정했다.

서울이 수도라는 명문의 헌법조항은 없지만, 오랜 기간 이어진 관행과 국민의 법적 확신, 폭넓은 국민적 합의를 통해 헌법적 규범이 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결정은 수도를 옮기려면 헌법개정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논리 안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관습헌법은 말 그대로 관습에 의해 성립한다.

그렇다면 그 관습을 떠받치던 현실과 국민적 인식이 장기간 변화한다면, 그 법적 의미 또한 영원히 고정돼 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2004년과 지금 사이에는 이미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중앙부처 상당수가 세종에 자리 잡았다.

국회 기능은 세종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기능의 이전도 추진되고 있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까지 논의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을 데려오고 집을 사고 장기적인 생활기반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수도의 이동은 대통령이 어느 날 이삿짐을 싸는 사건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 집을 사고,

어디에서 아이를 키우고,

어디를 미래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지가 수십 년 동안 바뀌면서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2004년 헌재 결정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한 번에 수도를 옮기는 길은 막았다.

대신 한국은 중앙부처를 하나씩 옮기고, 국회의 기능을 옮기고,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고,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고,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20년 넘게 조금씩 움직였다.

관습헌법이 급격한 수도 이전을 막았기 때문에 오히려 수도의 기능은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충분히 길어지면 어느 순간 움직이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일 수 있다.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만든 것이 사람들의 오랜 인식이었다면, 그 관습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역시 결국 사람들의 인식일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누군가 충청권의 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예전과 조금 다르게 듣게 된다.

그 사람이 실제로 집을 살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의 선택이 시장을 바꾸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에서

“여기에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로.

“그래도 집은 서울이지”에서

“서울에 지금 이 가격을 지불해야 할까”로.

그 계산법의 변화가 누적되면 어느 순간 통계가 된다.

그리고 통계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그것을 구조변화라고 부르게 된다.

더구나 국가의 방향과 개인의 계산이 같은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부는 세종의 행정수도 기능을 강화하려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이전지역의 생활환경과 집값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해온 사람들 중에서도 충청권을 장기적인 거주지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긴다.

건설사와 상업자본은 사람이 실제로 움직이는지를 바라볼 것이다.

여기에 서울의 높은 주거비가 반대편에서 사람을 밀어낸다.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동시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또 하나의 숫자가 추가됐다.

3.00%.

한국은행은 8월 27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인상이다.

이번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올라갔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물가와 성장뿐 아니라 수도권 주택가격의 높은 상승세와 가계대출 증가를 금융안정 측면에서 계속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금리 역시 지금의 서울 부동산 가격을 아무 조건 없이 떠받쳐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이 결정이 당장 서울 집값의 고점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세종이나 충청권의 상승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계산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하나가 다시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돈의 가격이 올라갔다.

가격이 높은 자산일수록 같은 0.25%포인트가 요구하는 절대적인 비용은 크다.

서울의 장점은 그대로인데 서울을 선택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다시 높아졌다.

반대로 서울 밖의 선택지를 검토할 이유는 조금 더 커졌다.

이런 점에서 나는 ‘서울의 고점’이라는 말을 단순히 가격의 꼭짓점이라는 뜻으로 쓰고 싶지 않다.

서울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도 많고, 일자리도 많고, 대학과 병원과 문화시설도 집중돼 있다.

고점은 곧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의미일 수 있다.

너무 높아져서, 그곳을 가장 원하는 사람조차 가격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하는 상태.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 장면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의 우위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우위에 얼마까지 지불할 것인지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종과 중부권은 아직 서울을 대신할 중심이 된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계산표 바깥에 있던 선택지가 이제 계산표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구조변화로 발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행정기능 이동과 교통망 투자, 공공기관 이전, 민간의 주거 선택, 서울의 높은 자산가격, 그리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 금리가 같은 시기에 겹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관습은 법률보다 느리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한번 바뀌기 시작하면 법률보다 먼저 사람들의 삶을 움직이기도 한다.

수도의 이동도 어쩌면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국가가 먼저 기관을 옮긴다.

사람이 집을 알아본다.

가족이 정착한다.

자본이 뒤따른다.

그리고 어느 날 돌아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도가 이미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