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조이면 유가와 국채가 반응한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는 이란을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제재가 곧바로 협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란은 이미 수십 년간 제재를 견디며 우회 거래와 체제 유지 방식을 익혔고, 미국 역시 원유 공급 불안,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재점화, 국채금리 상승이라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제재의 성패는 이란이 얼마나 버티느냐뿐 아니라 미국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정치적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대의 약점만 계산하고 미국 내부와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부메랑 효과까지 충분히 시뮬레이션했는지가 핵심 질문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매우 강력한 카드다.
이란 경제의 핵심은 석유다. 원유 수출을 막고 금융망을 차단하면 외화 수입은 줄어든다. 정부 재정은 압박받고 기업 활동은 위축된다.
미국의 계산은 단순하다.
고통이 커지면 결국 이란은 협상장으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조치를 보면서 다른 질문이 먼저 든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작전의 모든 경로를 충분히 시뮬레이션했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미국이 지금 평상시의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40조 달러에 가까운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과거의 빚에 대한 이자만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이자를 제외하고도 재정적자가 발생한다.
쉽게 말하면 기존 대출의 이자를 갚으면서 생활비가 부족해 또 대출을 받는 상황에 가깝다.
그런 미국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하다.
낮은 금리와 높은 성장이다.
부채를 당장 갚지 않아도 된다.
경제가 부채보다 빠르게 성장하면 된다.
AI와 반도체에 투자하고, 제조업을 다시 세우고, 전력망을 확충하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의 분모를 키워야 한다.
그런데 이란 제재는 잘못 흘러갈 경우 바로 그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성장은 낮추고 금리는 높이는 방향으로 말이다.
가장 먼저 예상해야 할 것은 원유시장이다.
이란은 세계 주요 산유국이다.
경제제재를 강화하면 이란산 원유가 국제 정상시장에 공급되기 어려워진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증산할 수 있다.
미국 셰일도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것만 믿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을까.
셰일이 유가를 원하는 수준까지 즉각 끌어내릴 수 있었다면 미국은 그동안 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지금보다 훨씬 쉽게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산유국 역시 미국 소비자의 물가를 낮춰주기 위해 자신의 원유를 싸게 팔 이유는 없다.
그리고 시장은 실제 공급 감소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이란 원유 수출 감소 가능성.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
중동 전쟁의 확대 가능성.
보험료와 운송비 상승.
이 위험들이 먼저 가격에 반영된다.
유가는 기대만으로도 움직인다.
그리고 유가가 오르면 이야기는 석유시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운송비가 오른다.
전력과 제조 비용이 오른다.
석유화학제품의 가격이 오른다.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 가격도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이 공산품을 막대한 규모로 수입하는 나라다.
같은 물건을 들여오기 위해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다.
미국 소비자의 생활비가 올라간다.
기업의 비용도 증가한다.
소비 여력은 떨어진다.
경제 성장에는 좋을 것이 없다.
미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부채보다 빠른 경제성장인데, 자신이 시작한 경제제재가 오히려 성장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채다.
과거에는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미국이 오히려 혜택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전쟁 위험이 커진다.
투자자는 안전자산을 찾는다.
미국 국채로 돈이 몰린다.
국채 가격이 오르고 금리는 내려간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의 불안까지도 싼 자금조달이라는 형태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정학적 불안은 계속 커졌지만 미국 장기국채 금리는 과거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시장이 이제 전쟁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도 본다.
쏟아지는 국채 물량도 본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인플레이션도 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안한 뒤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기 위해 얼마의 금리를 받아야 하는지 계산한다.
이 상황에서 이란 제재가 국제유가를 다시 밀어 올린다면 경로는 상당히 불편해진다.
이란 제재 강화
→ 원유 공급 감소와 지정학적 위험 확대
→ 유가 상승
→ 미국 물가 상승 압력
→ 연준의 금리 인하 제약
→ 미국 장기국채 금리 상승
→ 차환 비용 증가
→ 정부 이자지출 확대
→ 재정적자 확대
→ 추가 국채 발행 압력
그리고 더 많은 국채를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면 시장은 다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순환이다.
나는 얼마 전 미국을 ‘대출의 늪에 빠진 나라’에 비유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당장 파산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은 달러를 발행한다.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 국채는 여전히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오래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비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바이백과 국채 발행구조 조정을 통해 시장의 부담을 관리하려 하고 있다.
장기금리가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시간을 벌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AI를 키워야 한다.
반도체 공장을 지어야 한다.
전력망을 확충해야 한다.
방위산업 생산능력을 키워야 한다.
중국에 넘겨줬던 제조업 일부도 다시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금리가 높으면 그 비용이 커진다.
정부만 돈을 비싸게 빌리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비싸게 빌린다.
주택 구입자도 비싸게 빌린다.
데이터센터도, 공장도, 발전소도 높은 자본비용을 부담한다.
따라서 지금 미국에 높은 장기금리는 단순한 금융시장의 숫자가 아니다.
미국이 다시 성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바로 그래서 이번 이란 제재는 생각보다 훨씬 큰 문제일 수 있다.
미국은 지금 성장으로 부채 문제를 넘어가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런데 유가를 올릴 수 있는 정책은 물가를 자극한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낮추기 어려워진다.
금리가 높으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동시에 민간 투자가 어려워져 성장도 느려진다.
결국 미국이 부채 문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악화시킬 수 있다.
분자는 더 빨리 늘어나고, 분모는 더 천천히 커지는 것이다.
부채는 늘어나는데 경제성장은 느려진다.
미국 입장에서 이것보다 좋지 않은 조합은 많지 않다.
물론 미국이 받는 충격과 이란이 받는 충격은 같지 않다.
미국은 훨씬 강하다.
달러가 있다.
금융망이 있다.
동맹국이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이 있다.
반면 이란은 외화 확보가 어렵고 경제 규모도 작다.
미국은 이렇게 계산할 수도 있다.
우리가 조금 아프더라도 이란은 훨씬 더 아프다.
그래서 결국 저쪽이 먼저 항복할 것이다.
문제는 국제정치에서 더 아픈 쪽이 항상 먼저 항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란은 이미 수십 년간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과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도 이미 보여줬다.
중국에 원유를 팔 수 있다.
우회무역을 할 수 있다.
비공식 금융망을 사용할 수 있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낮아져도 정권은 버틸 수 있다.
이란 지도부의 목표는 미국처럼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체제를 유지하면 된다.
반면 미국 대통령은 다르다.
휘발유 가격이 오른다.
물가가 오른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높게 유지된다.
주식시장이 흔들린다.
경기가 둔화된다.
이 모든 것이 미국 국민에게 바로 보인다.
그리고 선거가 온다.
따라서 장기전에서 미국이 경제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시간의 편에 서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란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미국보다 부유할 필요는 없다. 미국 정치가 우리보다 오래 참지 못하면 된다.
더구나 미국은 이미 한 번 이란에서 매우 위험한 선택을 했다.
하메네이 제거는 이란 지도부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그것이 곧 협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협상 상대를 없애고 이란의 체제 생존 논리를 강화했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새로운 문제까지 만들어냈다.
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것과 상대를 협상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바로 이 차이를 군사작전에서 이미 경험했다면 경제제재에서는 더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단순히 이렇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이란 원유를 막는다.
경제가 어려워진다.
국민이 불만을 가진다.
정권이 압박받는다.
협상한다.
국제정치는 그렇게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두 번째 수가 있다.
세 번째 수가 있다.
그리고 상대에게도 수가 있다.
여기서 나는 얼마 전 썼던 트루스소셜의 ‘Truth API’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트럼프를 비롯한 주요 인사의 게시물을 일반 사람보다 불과 0.001초 먼저 받아보는 서비스에 금융회사들이 월 최대 10만 달러를 지불하려 한다.
그때 나는 이 현상을 미국 정책의 개인화에 시장이 매긴 가격이라고 썼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시장은 미국이라는 시스템을 분석해야 한다.
국무부를 본다.
국방부를 본다.
NSC를 본다.
의회의 논쟁을 본다.
동맹국과의 협의를 본다.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읽는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다음 SNS 한 줄이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정보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책을 분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번 이란 제재에서도 같은 문제가 보인다.
미국에는 이 모든 경로를 계산할 사람이 있다.
이란 전문가가 있다.
에너지 전문가가 있다.
연준과 재무부에는 금융시장 전문가가 있다.
국방부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계산할 사람이 있다.
국무부에는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동맹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판단할 사람이 있다.
백악관에는 그 모든 분석을 모아 대통령에게 선택지로 올리는 시스템이 원래 존재했다.
정상적인 정책 과정이라면 제재를 결정하기 전에 최소한 이런 질문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란 원유 수출은 실제로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중국은 제재에 따를 것인가.
사우디와 UAE는 얼마나 증산할 것인가.
국제유가는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가.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얼마나 영향을 받을 것인가.
국채금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연방정부의 이자비용은 얼마나 증가할 것인가.
미국의 제조업 투자와 AI 투자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란은 몇 년을 버틸 수 있는가.
미국 국민은 몇 년을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제재를 견딘 이란이 정말 협상하러 나오는가.
트럼프 2기에서 내가 계속 불안하게 보는 것은 미국에 이런 전문가가 없어서가 아니다.
존재하지만 그들의 분석이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안보회의는 크게 축소됐다.
정책 조정 기능은 약화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과 소수 측근의 결정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나는 이전 글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의 진짜 힘은 대통령 한 사람이 천재여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시스템에 있었다.
이란 문제야말로 바로 그 시스템이 필요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번 선택에는 군사와 외교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가 연결돼 있다.
인플레이션이 연결돼 있다.
연준이 연결돼 있다.
국채시장이 연결돼 있다.
40조 달러에 가까운 국가부채가 연결돼 있다.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이 연결돼 있다.
AI 투자도 연결돼 있다.
그리고 결국 미국의 다음 성장경로까지 연결돼 있다.
미국은 지금 아무 때나 실수해도 되는 나라가 아니다.
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제조업을 다시 세워야 한다.
AI에 투자해야 한다.
유럽의 안보를 관리해야 한다.
중동도 관리해야 한다.
복지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과거에 발행한 막대한 국채의 이자도 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하면서 다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미국이 가진 자원은 막강하다.
그러나 막강한 자원과 무한한 자원은 같은 말이 아니다.
경제제재는 폭격보다 온건해 보인다.
그러나 시장을 통해 전달되는 경제전쟁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곳을 공격한다.
상대의 원유 수출을 공격했는데 세계 유가가 움직인다.
세계 유가를 움직였는데 미국 물가가 움직인다.
미국 물가가 움직였는데 국채금리가 움직인다.
국채금리가 움직였는데 미국의 이자비용이 늘어난다.
이자비용이 늘어나는데 성장 투자까지 비싸진다.
그리고 미국은 바로 그 성장으로 부채 문제를 넘어가야 하는 나라다.
그러므로 이번 제재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아니다.
이란을 얼마나 아프게 할 수 있는가.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란을 아프게 하는 동안 미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
그리고 그 대가를 미국이 이란보다 먼저 정치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까지 계산했는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경제가 무너지는 시나리오만 돌려봤다면 절반의 시뮬레이션이다.
유가가 오르는 시나리오도 돌려봐야 한다.
국채금리가 다시 오르는 시나리오도 돌려봐야 한다.
성장이 둔화되는 시나리오도 돌려봐야 한다.
이란이 예상보다 오래 버티는 시나리오도 돌려봐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나리오까지 돌려봐야 한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이라고 해서 잘못된 선택의 비용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미국은 막대한 부채 때문에 과거보다 실수의 비용이 커진 나라일지도 모른다.
달러 패권이 허용했던 빚의 시대 끝에서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충격이 아니다.
빚보다 빠른 성장이다.
그런데 미국 스스로 유가를 올리고, 물가를 올리고, 금리를 올려 그 성장의 길을 좁힌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트럼프, 시뮬레이션은 충분히 해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