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서울 집값도 하락할 수 있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집값 상승의 자연법칙이 아니다. 정부는 실제로 초이노믹스의 대출 규제 완화처럼 신용을 공급해 미래소득을 현재로 당겨 주택가격을 부양할 수 있었지만, 그것 역시 지속적인 수요를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부동산을 움직이는 진짜 시장은 강남의 매물 몇 건이나 서울의 공급량에 한정되지 않는다. 탈세계화와 공급망 충격, 유가와 건설비, 금리, 높은 가계부채, 인구와 가구구조, AI에 따른 화이트칼라 고용 변화, 수도권 산업 재배치까지 모두 시장이다. 과거에는 정부의 인프라·산업·교육 집중 또한 서울의 수요를 키웠지만 앞으로는 세종과 경기남부 같은 새로운 거점 개발이 오히려 서울의 독점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대치동 교육 프리미엄과 고밀도 서울의 재건축 사업성마저 과거와 같지 않다면 문제는 더 이상 “서울에 집이 부족한가”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 가격을 지불하며 서울을 선택할 사람이 충분한가”이다. 정부가 강한 수요를 억누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구조적으로 약해지는 수요를 대출과 세제만으로 되살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정말 이길 수 없는 시장이란 항상 오르는 시장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소득과 필요와 선택이 만들어내는 시장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주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비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세금을 올리고 대출을 막아도 사람들이 원하는 서울의 좋은 집은 부족하니 결국 가격은 오른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최근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세제 강화 방침이 흔들리자 강남의 한 집주인이 31억원에 내놓았던 급매를 거둬들였다는 기사에서도 비슷한 말이 등장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시장이 버티는 법을 배우고, 결국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묘하게 한쪽 방향으로만 사용된다. 정부가 집값을 떨어뜨리려 하면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정부가 집값을 올리려고 할 때도 시장을 이길 수 없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마치 시장이라는 것이 본래 위쪽으로 흐르는 강물이고 정부는 그것을 억지로 막으려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에는 원래 방향이 없다. 수요가 공급보다 강하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약해지면 가격이 내려간다. 정부가 이길 수 없는 것이 정말 시장이라면 이 명제는 상승장뿐 아니라 하락장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정부가 죽어가던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2010년대 초반의 주택시장은 지금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거래는 위축됐고 집값 상승 기대는 약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가 사회문제가 됐고, 집을 사는 것보다 전세로 사는 편이 낫다는 인식도 강했다. 정부는 그 시장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재건축 규제를 손보고 주택 구매를 장려했다. 특히 초이노믹스로 불린 시기에는 LTV와 DTI 규제를 완화하면서 가계가 더 많은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도록 했다. 유명한 표현대로라면 사실상 “빚내서 집 사라”는 방향의 정책이었다.
그 정책은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거래가 살아났고 주택가격도 움직였다. 정부가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변화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말 새로운 주택수요가 만들어졌는지는 다른 문제다. 대출은 사람을 새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소득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미래에 벌 돈을 담보로 지금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원래 몇 년 뒤 집을 살 사람이 오늘 집을 사고, 자기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가격의 주택을 미래소득을 담보로 구매하게 한다. 상당 부분은 미래의 구매력을 현재로 당겨온 것이다.
이 효과는 상당히 강할 수 있다. 주택은 대출 비중이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3억원으로 5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던 사람이 금융규제 완화로 7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게 되면 매수자의 지불가능가격 자체가 올라간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렇게 움직이면 명목 주택가격 역시 상승한다. 가격이 오르면 다시 상승 기대가 생기고, 상승 기대가 새로운 대출과 매수를 부른다. 신용과 가격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과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래소득을 현재로 가져오는 데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오늘 당겨 쓴 소득은 미래에는 부채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돌아온다. 가계부채가 충분히 낮았던 시대와 이미 소득에 비해 막대한 부채를 보유한 시대는 같은 방식으로 부동산을 부양할 수 없다. 대출 한도를 풀어준다고 해서 가계가 무한정 빚을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빚을 갚는 것은 미래의 소득이다.
그래서 지금 서울 부동산을 바라볼 때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상승론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정부는 과거에도 시장에 깊숙이 개입했고, 죽어가던 주택시장에 신용을 투입해 수요를 앞당겼다. 문제는 그러고도 결국 한계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더 큰 부채를 투입해야 같은 효과를 얻는 순간이 오고, 높은 가격 자체가 새로운 진입자의 수요를 억누르기 시작한다. 과거에 효과가 있었던 처방이라고 해서 같은 약을 계속 증량할 수는 없다.
더구나 주택시장을 둘러싼 거대한 시장 환경도 달라졌다. 서울 아파트 매물 몇 건과 재건축 공급량만이 시장은 아니다. 탈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원자재와 유가 충격, 건설비 상승, 인플레이션과 금리, 가계부채, 인구와 가구구조, 산업의 입지 변화가 모두 주택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세계화와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되고 금리가 구조적으로 낮았던 시대에는 높은 부채를 활용한 자산가격 상승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공급망 충격으로 물가가 높아지고 금리를 마음대로 낮추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같은 방식의 부양 비용도 커진다.
여기에 AI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했다.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감당해온 중요한 수요층은 금융, IT, 법률, 회계, 컨설팅, 광고와 같은 고부가가치 화이트칼라 노동자였다. AI가 이 직업들을 모두 없앨 필요도 없다. 같은 생산량을 과거보다 적은 사람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퇴직자를 충원하지 않고, 신입사원을 덜 뽑고, 한 사람이 AI를 이용해 과거 두 사람이 하던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 미래의 고소득 주택수요층이 증가하는 속도부터 달라질 수 있다.
고소득 일자리 하나가 사라질 때 영향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서울에서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교육하고 소비하면서 만들어냈던 서비스업 수요도 함께 줄어든다. 반대로 AI와 반도체, 첨단제조업의 새로운 일자리가 판교와 용인, 화성, 평택 같은 경기남부에 만들어지면 과거처럼 반드시 서울에서 돈을 벌어 서울 집을 사야 할 이유도 약해질 수 있다. 서울에서 경기로 잠만 자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경기에서 일하고 경기에서 소비하며 경기에서 집을 사는 경제권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역시 서울, 특히 강남의 수요를 떠받친 중요한 힘이었다. 대치동 교육은 단순한 학원 서비스가 아니라 주택가격에 붙어 있는 거대한 입지 프리미엄이었다. 아이가 매일 학원을 오가야 하기 때문에 좋은 학원이 있는 곳과 사는 곳이 가까워야 했고, 결국 교육 서비스의 가치가 토지가격으로 자본화됐다. 그러나 AI가 개인별 반복훈련, 오답 분석, 예상문제 생성과 맞춤형 설명을 거의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물리적 집적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교육 자체는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이 중요한 것과 학원이 중요한 것은 다르고, 학원이 중요한 것과 대치동 학원이 중요한 것도 다르며, 대치동 학원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대치동에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네 가지가 지금까지 너무 강하게 묶여 있었기 때문에 하나처럼 보였을 뿐이다. AI와 교육제도의 변화가 이 연결고리를 조금씩 끊는다면 대치동의 좋은 교육 서비스는 살아남으면서도 대치동 주택에 붙었던 교육 프리미엄은 달라질 수 있다.
재건축도 서울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하게 만드는 변수는 아니다. 과거 재건축이 돈이 됐던 것은 낡은 건물을 새것으로 바꿨기 때문만이 아니다. 낮은 용적률과 넓은 대지지분을 가진 단지에 훨씬 많은 집을 지어 일반분양하고, 신규 입주자에게 토지지분과 개발권을 높은 가격에 넘겨 그 돈으로 조합원의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건축이라는 행위 자체가 돈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 소유자가 가지고 있던 토지와 개발 가능성을 현금화한 것이다.
앞으로 재건축 연한에 들어오는 서울 아파트들은 과거보다 이미 훨씬 고밀도다. 대지지분은 작고 추가로 지을 수 있는 주택은 적다. 반면 공사비와 금융비용은 크게 올랐다. 일반분양자가 높은 가격을 지불해주지 않는다면 부족한 비용은 결국 조합원 분담금이 된다. 이미 꽉 찬 도시에서 기존 건물을 허물고 더 높은 밀도로 다시 짓는 것은 빈 땅에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보다 갈수록 복잡하고 비싸진다.
이 부분에서는 정부의 역할도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 서울의 현재 경쟁력은 순수한 시장의 산물만이 아니다. 국가가 오랫동안 서울에 도로와 지하철, 대학과 의료시설, 문화시설과 기업 활동의 기반을 집중적으로 만들어왔다. 정부가 만든 인프라 위에서 기업과 사람이 모였고, 그 집적효과가 다시 서울의 가치를 높였다. 서울 부동산 상승을 시장의 자연발생적 결과로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역사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정부 입장에서도 새로운 개발을 서울에 집중시키는 것이 반드시 가장 쉬운 선택은 아니다. 서울은 이미 너무 높은 밀도로 개발돼 있다. 새로운 철도 하나, 도로 하나, 업무지구 하나를 만드는 데 막대한 토지비와 이해관계 조정 비용이 들어간다. 재건축 역시 기존 주민과 세입자, 기반시설, 학교와 교통 수용능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개발이 쉬운 도시가 아니다.
반면 세종 같은 계획도시나 경기의 새로운 산업거점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배치하기 쉽다. 정부기관을 옮기고, 산업단지를 만들고, 도로와 철도, 주거지를 한꺼번에 설계할 수 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까지 생각하면 앞으로의 정부 투자가 과거처럼 서울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갈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과거 정부정책이 서울 수요를 키웠다면 미래의 정부정책은 오히려 서울 밖의 대체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세금으로 사람들이 강하게 원하는 집의 가격을 영원히 누르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이상 과거만큼 원하지 않는 자산을 정부가 영원히 높은 가격에 유지시키는 것도 어렵다. 대출을 풀고 세금을 깎아 일시적으로 매수 시점을 앞당길 수는 있다. 하지만 인구를 만들어낼 수 없고, 영구적으로 소득을 당겨올 수도 없으며, 사람들이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할지를 명령할 수도 없다.
더구나 서울 주택시장은 이미 한 차례 미래의 구매력을 크게 당겨 사용했다. 가계부채는 높아졌고 주택가격 역시 소득보다 빠르게 올라왔다. 다음 부양을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많은 신용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고, 그 신용을 감당해야 할 미래 세대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죽어가던 주택시장을 살리는 데 성공했던 정책 수단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수단을 영원히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최근 세제 변화 가능성 하나에도 강남의 집주인들이 팔지 말지를 고민한다는 보도는 그래서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정말 서울 집값이 구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강하다면 몇 년의 세금 부담 때문에 30억원이 넘는 자산을 서둘러 처분할 이유도 크지 않다. 세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정책 발표 하나에 급매를 내놨다가 거둬들이고, 다시 세무사에게 계산을 맡긴다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 역시 미래가격을 확신하지 못한 채 손익분기점을 계산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더구나 부동산 기사 등에서 실제로 확인된 매물 회수 사례는 소수의 제보에 불과하다. 그 것을 두고 시장이 정부를 이겼다고 선언하는 것은 ‘시장’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좁게 사용하는 셈이다.
진짜 시장은 훨씬 크다. 중국의 성장률도 시장이고, 중동의 유가도 시장이며, 미국의 금리도 시장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도 시장이고, 청년의 소득과 취업도 시장이다. AI가 기업의 인력구조를 바꾸는 것도 시장이고, 반도체 공장이 경기남부에 들어서는 것도 시장이다. 아이를 대치동 학원에 보내야 할 필요가 줄어드는 것도 시장이며, 재건축 일반분양자가 조합원이 원하는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 것도 시장이다.
이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서울 안의 주택공급이 제한돼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장주의라기보다 오히려 시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태도다. 시장을 정말 믿는다면 수요 역시 믿어야 한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수요가 부족하면 정부가 아무리 떠받치려 해도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서울 부동산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정부가 집값을 잡을 수 있는가”가 아니다.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 하든 살리려 하든 그것은 장기 시장을 구성하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앞으로도 서울에서 일하고, 서울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높은 금융비용을 감당하고, 수십억원을 지불하면서까지 서울에 살아야 할 사람이 충분히 존재할 것인가이다.
그 답이 ‘그렇다’라면 서울 집값은 강할 것이다. 정부가 규제한다고 해서 그 수요가 쉽게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이 조금씩 ‘아니다’ 쪽으로 움직인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그때 정부는 세금을 낮추고 대출을 늘리고 규제를 풀어 시장을 다시 살리려 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렇게 했다. 어느 정도 효과도 낼 것이다. 하지만 미래소득을 또다시 현재로 끌어오는 방법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서울 집값도 안심할 수 없다.
정부가 집값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뜻만이 아니다. 언젠가 시장의 방향이 바뀐다면 정부 역시 그 가격을 영원히 떠받칠 수 없다는 뜻이다. 시장을 믿는다면 상승만 믿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가장 냉정해지는 순간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충분한 사람이 그 가격을 지불하려 하지 않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