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에서 세종시까지, 세계경제의 그네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기술을 먼저 확보한 국가는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한 나라들이 만들어낸 운동에너지를 자본·금융·기술·기축통화라는 위치에너지로 축적하며 세계경제의 높은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와 한국의 하우스푸어, 미중 무역전쟁, 아프가니스탄 철수, 호르무즈 리스크, 미국의 재정적자와 고금리는 이 체제가 더 이상 과거처럼 쉽게 유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노동과 자원을 공급하던 국가들이 기술과 자본을 축적하며 스스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 하자, 미국은 관세·리쇼어링·동맹 비용분담을 통해 패권의 비용을 외부에 재청구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값싼 돈과 세계화가 밀어 올린 서울 중심 성장모델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세종과 충청권을 새로운 행정·건설·산업 축으로 키우려는 중흥의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원히 하늘로 솟는 그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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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하늘로 솟는 그네는 없다. 운동에너지가 사라지고 위치에너지만 남는 순간, 그네는 다시 하강한다.

경제도 비슷하다. 상승이 오래 지속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상승 자체를 법칙으로 착각한다. 자산가격은 장기적으로 오른다고 믿고, 위기가 오면 금리는 결국 내려갈 것이라 믿는다. 미국은 필요할 때마다 세계질서를 지켜줄 것이고, 중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값싼 상품이 계속 공급될 것이며, 세계화는 언제까지나 비용보다 편익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순간은 가장 안정적인 순간이 아니다.

바로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지난 수백 년의 세계경제를 이 그네에 비유해보자.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기술을 먼저 확보한 나라들은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얻었다. 기계화와 금융, 운송기술과 군사력, 산업생산과 국제무역이 서로를 밀어 올렸다.

그러나 그 운동에너지는 그들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의 자원과 노동력이 그 힘에 결합했다.

광산에서 광물을 캐는 노동자, 중동에서 뽑아 올린 석유, 농장에서 생산된 원료, 아시아의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하는 노동자들이 세계경제라는 거대한 그네를 계속 밀었다.

그 과정이 불공정한 착취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자원국과 제조국 역시 무역과 산업화를 통해 성장했고, 수많은 사람의 생활수준이 향상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어디에 더 많이 축적됐느냐는 것이다.

원료보다 설계가 높은 가치를 얻고,

조립보다 특허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며,

생산보다 브랜드와 유통망이 더 큰 몫을 차지하고,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금융과 플랫폼을 통제하는 일이 더 높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자본과 기술을 가진 나라의 진정한 힘은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운동에너지였다.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더 멀리 교역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랫동안 누적되자 성격이 달라졌다.

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변했다.

축적된 자본, 세계적인 금융시장, 특허와 기술, 대학과 연구기관, 글로벌 브랜드, 국제규칙을 정하는 영향력, 기축통화와 군사력 같은 것들이다.

높은 곳에 올라간 국가는 더 이상 처음과 같은 속도로 뛰지 않아도 된다.

위치 자체가 이익을 만들어낸다.

세계의 돈이 안전자산을 찾아 미국으로 들어오고,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국채를 보유하며, 미국 기업이 설계한 기술과 플랫폼을 사용하기 위해 세계가 비용을 지불한다.

운동에너지로 올라간 자리가 스스로 또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정점에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단지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세계의 돈이 모이는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기술기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무역과 금융의 결제통화를 발행했고, 주요 해상로를 보호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동의 에너지, 동아시아의 제조업 노동력, 세계 각국의 저축이 미국 중심의 체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미국은 그 과정에서 거대한 위치에너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 위치가 영원할 수는 없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 구조에 처음으로 큰 균열을 냈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믿음 위에 쌓인 부채가 무너졌고, 금융위기는 미국을 넘어 세계경제 전체를 위협했다.

미국은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낮추고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위기는 진압됐다.

그러나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부채는 다른 형태로 이동했고, 유동성은 다시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주식과 부동산은 회복했고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나타났다.

부동산 상승기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금리가 올라가는 순간 큰 압박을 받았다. ‘하우스푸어’라는 말은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경제적 여유가 전혀 같은 의미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세계는 2008년 이후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보다 더 많은 유동성으로 기존 구조를 연장하는 길을 택했다.

더 낮은 금리.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산가격.

그네는 다시 올라갔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이전과 다른 문제가 커졌다.

미국 전체로 보면 세계화의 이익은 컸다.

값싼 상품을 소비했고, 글로벌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었으며, 금융과 기술산업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모든 미국인이 같은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공장이 해외로 이전한 지역과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세계화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한쪽에서는 자산가격과 금융소득이 올라갔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와 지역경제가 쇠퇴했다.

세계화의 총합이 플러스라고 해서 그 플러스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 모순이 정치로 번역된 사건이었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 전략적 도전이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변화는 중국이 더 이상 세계의 그네를 아래에서 밀어주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립기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반도체를 만들고,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들며, 인공지능과 항공우주에 투자하고 자신의 금융과 기술을 키우려 했다.

말하자면 운동에너지를 제공하던 국가가 자신의 위치에너지를 축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단순히 경쟁자가 더 빨리 달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차지해온 높은 자리로 경쟁자가 올라오는 문제였다.

그래서 관세와 기술규제, 공급망 재편, 리쇼어링은 단순한 무역정책이 아니다.

누가 가치사슬의 높은 곳을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국의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미국은 과거보다 여유가 줄었다.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구조화됐고 정부부채는 크게 늘었다.

적자를 유지하려면 계속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재무부는 국채의 만기와 발행구조를 조정할 수 있지만 적자가 존재하는 한 필요한 자금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부채가 늘어나면 이자비용도 늘어난다.

과거에는 위기가 오면 Fed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강력한 해법이었다.

지금은 그 방법에도 대가가 따른다.

물가가 높으면 금리를 쉽게 낮출 수 없고, 시장이 높은 장기금리를 요구하면 정부가 그것을 명령으로 내릴 수도 없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미국이 선택한 해결책 자체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제조업을 되찾기 위해 관세를 올린다.

관세는 재정수입도 늘려준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와 생산비를 올릴 수 있다.

물가가 올라가면 Fed는 금리를 낮추기 어려워진다.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오래 유지되면 정부의 이자비용은 다시 커진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정책이 금리를 통해 다시 재정을 압박할 수 있다.

그네를 더 높이 밀어 올리기 위해 가한 힘이 어느 순간부터 하강의 힘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캐나다 같은 가장 가까운 우방에게까지 인색해지는 현상도 다르게 보인다.

이것을 단순히 한 대통령의 공격적인 협상술로만 이해하면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패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패권의 비용을 다시 계산하고 있다.

중국에는 관세를 요구하고,

기업에는 미국 내 투자를 요구하며,

동맹국에는 더 많은 방위비와 투자를 요구한다.

미국 시장과 안보질서를 계속 이용하려면 그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도 이 흐름의 다른 장면으로 볼 수 있다.

20년 동안 막대한 돈과 인명을 투입한 뒤 미국은 결국 떠났다.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라기보다 무엇을 위해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위험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거 미국은 중동의 질서를 유지하고 주요 해상로를 보호하는 일을 패권국의 역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셰일혁명 이후 미국의 에너지 구조는 달라졌다.

반면 한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여전히 중동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에 훨씬 더 민감하다.

그러면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온다.

왜 미국 국민의 돈과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가 사용하는 에너지 통로까지 무제한으로 보호해야 하는가.

캐나다에 대한 관세와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요구,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호르무즈를 둘러싼 계산은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공통점이 있다.

높은 위치를 유지하는 비용이 이전보다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달러 패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특권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쌓인 달러는 다시 미국의 국채와 금융자산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미국이 오랜 시간 축적한 거대한 위치에너지였다.

그러나 위치에너지는 공짜가 아니다.

높은 곳을 유지하려면 그 질서를 지탱할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 내부에서도 그 혜택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았다.

금융과 기술, 자산을 가진 계층이 큰 이익을 얻는 동안 제조업의 쇠퇴를 경험한 지역과 노동자들은 상당한 비용을 부담했다.

그 고통이 실제라는 것과 달러 패권 자체가 미국의 희생이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지금 미국의 시도는 패권이 주는 이익은 유지하면서 그 패권을 유지하는 비용을 외부와 더 많이 나누려는 데 가깝다.

이 변화는 미국 밖의 국가에 더 중요하다.

한국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질서의 수혜자였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질서 아래에서 수출했고, 중국과 동남아의 생산망을 활용했으며, 세계적인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의 혜택을 누렸다.

기업의 가치가 상승했고 부동산 가격도 올랐다.

서울의 집값 역시 그 세계와 무관한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뉴욕, 런던, 홍콩, 서울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의 부동산이 함께 상승한 것을 인구와 지역별 공급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값싼 돈이 있었다.

낮은 금리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축적된 자본이 있었다.

그 자금이 안전하고 희소하다고 여겨지는 도시의 토지와 주택으로 흘러갔다.

강남의 아파트 역시 세계 금융질서라는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섬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바다의 조류가 변하고 있다.

금리는 과거처럼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각국의 재정은 무거워졌다.

공급망은 효율보다 안보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관세가 돌아왔고 에너지 가격에는 지정학이 다시 깊숙이 개입한다.

미국도 세계질서의 비용을 과거처럼 아무 조건 없이 부담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시기에 국가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역대의 많은 왕조와 국가가 그랬다.

기존의 중심지가 과도하게 비대해지고 성장의 힘이 약해지며 이해관계가 굳어지면 새로운 수도를 만들고,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길과 철도를 내고, 산업을 옮기며 또 한 번의 중흥을 시도했다.

그것이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새 수도는 나라를 다시 일으켰고 어떤 거대한 토목사업은 오히려 쇠퇴를 재촉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기의 시기에 국가는 그대로 하강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운동에너지를 만들려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세종이 그런 공간처럼 보인다.

세종을 단순히 정부부처 몇 곳이 이전한 신도시라고만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국회와 대통령 집무기능이 더해지고 중앙행정 기능이 확대되며 충청권 광역교통망과 주변 도시 개발이 결합한다면 세종은 단순한 행정도시가 아니라 국가의 또 다른 중심축이 될 수 있다.

서울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서울 하나에 지나치게 집중된 체제에 두 번째 축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인 이해가 있다.

성장이 둔화되고 민간수요가 약해질수록 정부가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요 가운데 하나는 도시와 인프라다.

새로운 행정 중심에는 철도와 도로가 필요하다.

청사와 주택이 필요하다.

학교와 병원이 필요하다.

상업시설과 산업단지, 연구시설도 따라온다.

도시 하나를 키우는 일은 수십 년에 걸친 투자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에는 지역균형발전과 경기활성화라는 명분이 생긴다.

지방에는 인구와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민간 건설사에는 새로운 장기 사업지가 필요하다.

한국의 건설산업 역시 기존 방식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시점에 들어서고 있다.

인구는 줄고 지방의 기존 주택수요는 약해진다.

서울의 재건축과 재개발만으로 산업 전체를 계속 끌고 가기도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새로운 도시축을 만들고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면 국가정책과 건설업계의 이해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그것을 곧바로 결탁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필요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거점을 필요로 한다.

지방은 사람과 기업을 필요로 한다.

건설사는 새로운 개발수요를 필요로 한다.

교통과 인프라 산업도 장기 사업을 필요로 한다.

정치권 역시 국민에게 보여줄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를 필요로 한다.

세종과 충청권 개발은 이 이해관계를 하나의 축으로 묶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최근 등장하는 ‘부동산 대이동’이라는 표현 역시 조금 다른 의미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이 무너져 사람들이 도망가는 식의 이동이 아닐 것이다.

국가가 먼저 행정기능과 교통망을 옮기고, 인프라가 따라가며, 기업과 자본과 인구가 오랜 시간에 걸쳐 그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에 가까울 것이다.

서울의 갑작스러운 몰락보다는 새로운 중심의 탄생이다.

그것은 쇠퇴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중흥을 위한 시도일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서울의 고가주택 거래 감소와 강남권 조정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영상과 세종·충청권으로 국가 중심축이 확장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한 시대의 같은 불안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구체적인 가격 전망이 모두 맞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주장이 지금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몇 가지를 너무 당연하게 믿었다.

서울의 핵심 부동산은 결국 오른다.

위기가 오면 금리는 결국 내려간다.

미국은 언제나 세계의 마지막 보증인이 된다.

값싼 노동력과 값싼 자원은 세계 어딘가에서 계속 공급된다.

중국은 생산하고 미국은 소비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달러는 다시 미국의 자산으로 돌아간다.

자본과 기술을 가진 나라는 계속 높은 곳에 있고, 자원과 노동을 제공하는 나라는 계속 아래에서 그 체제를 밀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마지막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자원을 가진 국가가 자원의 가치를 더 많이 가져가려 한다.

노동력을 제공했던 국가가 기술을 개발한다.

조립하던 국가가 설계를 시작한다.

상품을 생산하던 국가가 브랜드를 만든다.

달러로 결제하던 국가들이 다른 결제수단을 고민하고, 기술을 수입하던 국가가 자신의 특허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네를 밀어주던 사람들이 이제 그 그네에 올라타려고 한다.

이것이 지금 세계경제의 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세계화가 끝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패권이 당장 끝난다는 뜻도 아니다.

서울의 시대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뜻 역시 아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을 가능하게 했던 에너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는 기존 체제의 금융적 한계를 드러냈다.

하우스푸어는 그 금융적 충격이 개인의 대차대조표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줬다.

미중 무역전쟁은 자원과 노동을 제공하던 국가가 기술과 자본의 영역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충돌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미국이 세계질서의 유지비용을 다시 계산한다는 신호였다.

호르무즈 리스크는 그 비용을 미국이 덜 부담할 경우 세계 다른 국가들이 무엇을 지불하게 될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높은 금리는 위기가 와도 과거처럼 쉽게 돈을 풀 수 없는 새로운 제약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종은 그런 환경에서 한국이라는 국가가 새로운 공간에 다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이 모든 사건에 하나의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서브프라임 때문에 세종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아프가니스탄 철수 때문에 강남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사건들이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개별 사건보다 그 아래 흐르는 힘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원과 노동이 만들어낸 운동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자본과 기술을 가진 나라의 위치에너지로 변환돼왔다.

그 위치에너지는 다시 자본과 기술의 우위를 강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경제의 거대한 상승을 만들었다.

하지만 위치에너지만으로 그네가 영원히 올라갈 수는 없다.

새로운 운동에너지가 공급되지 않거나, 그 에너지를 공급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밀어주지 않는다면 운동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세계화의 붕괴가 아니라 에너지 배분 방식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값싼 돈.

값싼 노동.

값싼 자원.

값싼 안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가능했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그 변화는 먼 국제정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의 재정에 도착한다.

기업의 생산비에 도착한다.

가계의 대출금리에 도착한다.

정부의 도시정책과 산업정책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채의 집 가격에도 도착한다.

그렇다고 하강이 곧 몰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의 국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려 했다.

새로운 수도를 만들고,

새로운 산업을 키우고,

새로운 길을 내고,

새로운 기술에 투자했다.

낡은 그네가 속도를 잃으면 다른 곳에 새로운 그네를 세웠다.

지금 한국에서 그 장소가 세종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시도가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세종이 진정한 두 번째 국가 중심축이 될 수도 있고, 거대한 개발사업 하나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도 자체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기존의 중심에서 더 이상 충분한 운동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한 사회가 새로운 높이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을 때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 가장 넓게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속도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만 보느라 누가 그네를 밀었고, 어떤 에너지가 그 높이를 만들었는지 잊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높은 위치 자체를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증거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하늘로 솟는 그네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