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라라크섬 공격, 이란보다 먼저 시간이 급해진 쪽은 누구인가
미국은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사시키는 장기 압박전으로 전환했지만, 불과 며칠 뒤 다시 직접 군사타격에 나섰다. 이는 이란이 우세하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시간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자산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란이 버티는 동안 미국 역시 유가와 인플레이션, 국내정치, 해상안보, 군사비용, 중국과의 2차 제재 갈등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패권의 약화라기보다 패권을 행사하는 비용의 상승이다. 그리고 세계가 안보를 위해 공급망·에너지·항로·금융망을 중복시키기 시작할수록 그 비용은 물가와 재정, 결국 금리에 반영된다. 탈세계화란 무역의 종말이 아니라 안보의 가격이 다시 경제에 포함되는 과정이며, 시간이 비싸진 세계에서는 세계화와 평화뿐 아니라 저금리 역시 과거처럼 싸게 얻기 어려워진다.
시간이 미국 편만은 아니었다호르무즈가 드러낸 패권의 새로운 비용
8월 24일, 미국은 이란을 총이 아니라 돈으로 굴복시키겠다는 전략을 꺼내 들었다.
미 재무부는 이를 ‘경제적 D-데이’라고 불렀다.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달러 금융망에서 배제할 수 있는 2차 제재를 확대하고, 이란 정권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논리는 단순했다.
시간이 흐르면 이란은 가난해진다.
석유수출은 줄고, 외화는 부족해지고, 물가는 오르고, 결국 정권 내부의 압력도 커진다.
반면 미국은 기다리면 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고 달러를 가지고 있다. 굳이 값비싼 공습을 계속하지 않아도 세계 금융망과 해상봉쇄를 이용해 상대의 체력을 조금씩 깎아낼 수 있다.
전쟁보다 싸고, 미국인의 희생도 적다.
강대국에게 가장 이상적인 소모전처럼 보였다.
실제로 미국의 압박은 효과가 없지 않았다. 미국의 해상봉쇄와 제재로 중국으로 향하는 이란산 원유가 줄었고, 이란 경제는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매주 새로운 2차 제재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런데 이 전략에는 하나의 중요한 전제가 있었다.
시간이 미국 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봉쇄는 상대보다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쪽이 이기는 전략이다.
이란의 외화가 고갈되는 속도보다 미국이 전쟁의 비용을 견디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이란 경제가 무너지는 시간이 미국 정치가 지치는 시간보다 짧아야 한다.
그리고 호르무즈가 세계경제에 가하는 충격보다 이란이 받는 충격이 더 커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상황이 달라졌다.
8월 30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라라크섬에 있는 이란의 발사대 두 곳을 직접 공격했다.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협에 기뢰를 살포할 준비를 하고 있어 임박한 위협을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곧바로 요르단의 미군기지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다시 말했다.
미국은 이란을 강하게 때릴 것이라고.
한 달 가까이 이어졌던 경제적 대치가 다시 군사적 충돌로 돌아왔다.
물론 이 한 번의 공격만으로 미국의 경제봉쇄 전략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기뢰 설치가 임박했다면 이를 제거하는 것은 경제전과 별개의 전술적 행동일 수도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군사적 억지와 경제제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시간은 미국에게 공짜가 아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란을 경제적으로 말려 죽이겠다고 했다.
그 전략이 성공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군사행동을 최소화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역시 기다리는 동안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첫 번째 시계는 에너지다.
미국과 이란이 다시 충돌하자 국제유가는 곧바로 뛰었다. 브렌트유는 다시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호르무즈의 원유 수송량은 전쟁 초기보다 회복됐지만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선박을 호위하고 새로운 항로를 만들더라도 이란이 기뢰와 미사일을 이용해 해협의 위험을 유지하는 한 안전에는 계속 가격표가 붙는다.
두 번째 시계는 물가와 금리다.
유가는 단지 주유소 가격이 아니다.
운송비가 되고 전력가격이 되고 비료가격이 되고 항공료가 된다.
기업의 비용이 되고 소비자의 생활비가 된다.
그리고 결국 중앙은행의 문제가 된다.
실제로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유럽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충돌 직후 유가와 함께 국채금리가 올랐고, 미국에서도 연준 관계자들이 여전히 끈질긴 물가상승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보다 훨씬 부유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란 경제에 100의 고통을 주는 과정에서 미국과 세계경제가 0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10일 수도 있고 20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비용이 시간이 갈수록 누적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계는 정치다.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8월 말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33%에 머물렀다. 생활비 문제에 대한 불만도 컸고 이란 전쟁과 높은 휘발유 가격은 이미 미국 정치의 부담이 되고 있다.
이란 정권도 내부 불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역시 무한히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있고 여론이 있고 휘발유 가격이 있다.
전쟁에서 시간을 견디는 능력은 GDP의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네 번째 시계는 더 흥미롭다.
달러다.
미국의 경제전략이 정말로 이란을 질식시키려면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를 실제로 처벌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대상은 중국이다.
이란이 석유를 팔고 그 돈으로 필요한 물자를 살 수 있는 통로가 남아 있다면 경제봉쇄에는 구멍이 생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까지 겨냥할 수 있는 2차 제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제재를 약하게 집행하면 이란이 버틴다.
그렇다고 강하게 집행하면 중국과 충돌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금융기관을 달러망에서 배제하고 에너지 거래를 막으려 들면 이란 문제가 미·중 경제문제로 확대된다.
실제로 미국이 ‘경제적 D-데이’를 선언하면서도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제재를 한꺼번에 집행하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중국 등 주요 교역상대와의 충돌 위험이 지적됐다. 미국은 우선 경고하고 시간을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바로 여기에서 경제적 패권에도 비용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달러가 강력하기 때문에 미국은 제재할 수 있다.
그러나 달러를 제재수단으로 사용할수록 다른 국가는 달러에 대한 의존을 줄일 이유를 하나 더 얻게 된다.
미국 해군이 강력하기 때문에 호르무즈의 항로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군함과 미사일과 방공망을 계속 배치해야 한다면 세계의 자유로운 해상교통은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
강대국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힘을 사용하는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필요가 없다.
미군보다 강한 공군도 필요 없고 더 많은 군함도 필요 없다.
미국이 이란에 요구하는 것은 항복에 가까운 정치적 양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이란이 해야 하는 일은 다르다.
버티면서 미국에도 계속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호르무즈를 완전히 닫지 않아도 된다.
완전히 열리지 않게만 하면 된다.
유가를 200달러로 만들 필요도 없다.
평상시보다 비싸게 유지하면 된다.
미군을 격퇴할 필요도 없다.
미군기지와 선박과 에너지 시설이 항상 방어해야 하는 상태를 만들면 된다.
경제적으로 이란이 더 큰 고통을 받더라도 미국이 아무 비용 없이 기다릴 수 없다면 시간의 계산은 복잡해진다.
실제로 전쟁 6개월을 평가한 최근 분석은 이 상황을 ‘비용이 큰 교착상태’로 표현했다.
이란은 경제적으로 포위돼 있지만 정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스스로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이 교착상태를 깨려면 중국과 인도 등 이란 경제를 지탱하는 국가들에 훨씬 공격적으로 2차 제재를 집행해야 한다.
그 순간 미국은 또 다른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이란이 결국 이길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이란 경제가 먼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제재가 예상보다 강력한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또다시 대규모 공습이 시작될 수도 있고 새로운 협상이 체결될 수도 있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방향이 정해지기 전에도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시간이 일방적으로 미국 편인 전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란전쟁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경제가 누린 안정에는 보이지 않는 전제가 있었다.
해상교통로는 열려 있다.
달러 금융망은 작동한다.
중동의 석유는 필요한 곳으로 흘러간다.
주요 강대국은 세계경제 전체를 파괴할 정도로 충돌하지 않는다.
미국은 그 질서를 유지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
그래서 기업들은 가장 싼 곳에 공장을 짓고 가장 짧은 항로를 이용하고 재고를 최소한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안보비용을 직접 지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르무즈는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 최강국이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어도 해협 하나를 완전히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 국가의 경제를 압박할 수 있어도 그 나라가 세계 에너지 시장에 가하는 충격까지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재를 강화하면 지정학적 분절이 심해지고, 군사력을 사용하면 에너지와 운송의 위험 프리미엄이 올라간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용이 발생한다.
이것은 내가 앞서 이야기했던 탈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탈세계화란 단지 미국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세계가 안보에는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다시 가격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기업은 재고를 더 쌓는다.
국가는 전략비축유를 더 확보한다.
항로를 다변화한다.
에너지원을 분산한다.
공장을 여러 나라에 나누어 짓는다.
군사비를 늘린다.
금융결제망도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모두 효율성만 보면 낭비다.
하지만 호르무즈가 여섯 달씩 흔들리는 세계에서는 그것이 보험이 된다.
그리고 보험에는 보험료가 있다.
그 비용은 운임에 들어가고 상품가격에 들어가고 세금에 들어가고 정부부채에 들어간다.
결국 물가와 금리에도 들어간다.
그래서 저금리 시대가 멀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중앙은행이 변했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세계 자체가 더 비싸게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세계는 효율을 얻기 위해 위험을 무시했다.
앞으로의 세계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효율을 포기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다.
이란보다 훨씬 부유하고 훨씬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패권이란 상대보다 강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호르무즈에서 그 비용의 가격표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말려 죽일 수 있는가.
아마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란이 먼저 견디지 못하는 순간까지 미국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기다릴 수 있는가.
8월 말 미국이 다시 먼저 총을 든 순간, 적어도 그 답이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드러났다.
강대국에게 시간은 언제나 아군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비싸진 세계에서는 평화도, 세계화도, 저금리도 예전만큼 싸게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