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과 희토류 공급망 ― 우리는 왜 ‘비열한 세계’에서 가난해지는가
세계화는 비교우위와 국제분업을 통해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내는 체제였다. 미국은 기축통화와 기존 국제질서의 최대 수혜자로서 이를 유지할 유인이 컸고, 중국 역시 화평굴기와 세계시장 편입을 통해 성장하는 동안 이 질서를 깨뜨릴 이유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상호의존은 효율의 원천이 아니라 취약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반도체와 희토류 공급망을 분리하고 중국은 기술자립과 핵심광물 통제를 강화한다. 각국은 공급망을 중복하고 전략물자를 비축하며 더 비싼 생산을 감수한다. 국가별로는 안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세계 전체로는 생산성 하락과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결국 세계는 부유해지는 방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더 많은 부를 만드는 대신 그 일부를 안보와 보험료로 지불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냉전 이후 세계경제를 지탱해 온 가장 강력한 믿음 가운데 하나는 비교우위였다.
모든 나라가 모든 것을 직접 만들 필요는 없다. 각자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부족한 것은 교환하면 된다. 미국은 금융과 첨단기술에 강했고, 중국은 제조업에 강했다. 중동은 에너지를 공급했고, 동아시아는 정밀 제조업을 키웠다. 생산은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이동했고, 자본은 가장 높은 수익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그 결과 세계는 더 부유해졌다.
국가가 가진 역량을 100이라고 한다면, 국제분업과 교역을 통해 120이나 150의 산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동일한 자원과 노동과 기술을 가지고도 국제분업이라는 장치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부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효율성에서 나왔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다. 중국에 첨단 반도체와 제조장비가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반도체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한다. 희토류 공급망을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해 미국과 호주, 브라질 등에 새로운 광산과 정제시설을 만든다.
중국 역시 다르지 않다. 반도체와 첨단장비의 자립을 추진하고, 희토류와 핵심광물을 전략자산으로 관리하며, 미국 중심 금융질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줄이고, 일본은 전략물자를 비축하며, 세계 각국이 공급망을 이중화한다.
이 모든 정책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비싸다.
중국에서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을 미국에서 다시 만든다. 하나면 충분했던 공급망을 두 개, 세 개 만든다. 평상시에는 쓰지 않을 물자를 창고에 쌓는다. 더 싼 공급자가 있어도 정치적으로 안전한 공급자를 선택한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공장에도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과거에는 비효율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이제는 안보라고 불린다.
물론 안보는 중요하다.
문제는 안보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세계가 100의 역량을 투입해 150을 얻던 세계였다면, 앞으로의 세계는 100을 투입해 130이나 110밖에 얻지 못하는 세계가 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00을 투입하고도 98이나 97을 얻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사라진 것이 아니다.
보험료로 지불된 것이다.
중복된 공장, 비축된 물자, 높은 관세, 산업보조금, 국방비, 공급망 이전 비용이 모두 지정학적 보험료다.
그리고 그 보험료는 결국 누군가가 낸다.
소비자는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기업은 더 높은 생산비용을 부담한다.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걷거나 더 많은 부채를 발행한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낮아질 수 있다.
결국 같은 노동을 하고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이전보다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에서 가난이다.
세계가 기술을 잃어서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고 자원이 갑자기 사라져서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다만 그 방법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이 변화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희토류다.
희토류는 세계에 중국만 가지고 있는 광물이 아니다. 브라질과 호주,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상당한 매장량이 존재한다.
문제는 광산이 아니다.
광물을 분리하고 정제하고 금속과 합금으로 만들고 고성능 영구자석으로 생산하는 산업생태계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서방 국가들은 오랫동안 계산했다.
중국에서 싸게 살 수 있는데 굳이 환경오염과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희토류 정제시설을 자국에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당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기업과 정부가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 합리적인 선택이 20년, 30년 누적되면서 중국은 희토류 공급망의 핵심을 장악하게 됐다.
이제 미국은 다시 정제시설을 만들려고 한다.
브라질의 희토류도 개발하려 한다.
하지만 브라질 역시 단순히 광물을 캐서 미국에 보내는 나라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땅에서 나온 자원을 국내에서 정제하고 가공해 산업과 기술을 남기기를 원한다.
중국 역시 브라질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 가운데 하나다.
결국 중국의 공급망 하나를 대체하려면 또 하나의 거대한 산업생태계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 비용을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세계는 왜 이런 선택을 하기 시작했을까.
비교우위라는 경제학이 틀렸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비교우위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전제가 하나 있었다.
교환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물건을 사올 수 있다면 내일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정치적 이유로 공급을 끊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이 존재하는 동안 상호의존은 평화를 만드는 힘이었다.
당신이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고 내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만든다면, 서로 싸울 이유가 줄어든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같은 관계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호의존이 평화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압박할 수 있는 약점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희토류를 중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더 이상 효율적인 국제분업이 아니라 중국이 미국의 산업을 멈출 수 있는 취약점으로 해석된다.
중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첨단 반도체를 미국에 의존하고 달러 결제망에 의존하는 것은 효율적인 세계경제 참여가 아니라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약점으로 보인다.
상호의존의 의미가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상호의존이 서로를 자제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상호의존이 서로를 두렵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다.
일반적으로 국제질서의 1위 국가는 그 질서를 깨뜨릴 이유가 많지 않다.
게임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게임의 규칙을 뒤집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다. 미국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망을 갖고 있다. 기술표준과 금융질서와 해상질서 역시 상당 부분 미국이 주도해 왔다.
미국에게 기존 세계질서는 불편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전체적으로 매우 유리한 질서였다.
반대로 2위 국가는 다를 수 있다.
기존 질서 안에서 성장하더라도 어느 순간 그 질서 자체가 자신이 1위로 올라서는 것을 막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보면 미국은 현상유지국이고 중국은 잠재적인 수정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미국이 질서를 깨뜨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유가 없다는 것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오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미래의 패권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이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 반도체를 막고, 기술을 차단하고, 공급망을 분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은 그것을 보고 또 다른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아무리 평화롭게 성장해도 미국은 결국 우리의 성장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자립을 강화하고 희토류를 무기화하며 미국 중심 질서의 대안을 만들기 시작한다.
미국은 다시 그것을 보며 말한다.
역시 중국은 기존 질서를 뒤엎으려 했다.
이것은 위험한 순환이다.
처음의 의심이 사실이었는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의심에 대응한 행동이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고, 그 변화가 처음의 의심을 현실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비열한 거리》가 떠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실제로 배신하려 했는지가 아니다.
상대가 언젠가 나를 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기는 순간 내가 먼저 칠 유인이 생긴다.
그리고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한다.
결국 누구도 처음에는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 만들어진다.
국제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싸우기 때문에 불신하는 것인지, 서로 불신하기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인지 어느 순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세계는 이미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희토류 공장을 중복해서 만들고, 반도체 공급망을 두 개로 나누고, 전략물자를 비축하고, 국방비를 늘리고, 관세장벽을 세운다.
모두 미래의 충돌을 대비하기 위한 비용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히 탈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신뢰의 붕괴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경제적 비용이다.
세계가 더 이상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하지 않고 가장 안전한 곳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효율성보다 회복탄력성을 선택하고, 비교우위보다 전략적 자립을 선택하고 있다.
각 국가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동시에 그렇게 행동하면 세계 전체는 가난해진다.
이것이 오늘의 역설이다.
어느 누구도 가난해지고 싶어서 이런 정책을 선택하지 않는다.
미국도 안보를 원하고 중국도 안보를 원한다. 유럽도 공급망의 안전을 원하고 일본도 전략적 자립을 원한다.
모두가 자신의 안전을 높이기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모두가 안전을 추구할수록 세계경제의 효율성은 낮아진다.
그리고 세계는 조금씩 가난해진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희토류도 아니고 반도체도 아닐지 모른다.
신뢰일 것이다.
세계화의 가장 값싼 원료는 사실 신뢰였다.
상대방이 내일도 물건을 팔 것이라는 믿음.
국제규칙이 갑자기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경제적 의존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 덕분에 우리는 모든 것을 두 벌씩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 믿음이 사라지자 세계는 다시 모든 것을 두 벌씩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공장의 비용을 우리는 이제부터 지불해야 한다.
세계는 가난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유해지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방법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더 많은 부를 만드는 대신 더 많은 안전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안전의 가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