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프리미엄은 영원할까···AI가 바꾸는 교육과 주거수요

AI 시대에도 교육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질 수 있지만, 대치동에서 수천만원을 들여 시험에 나올 문제를 예측하고 각 과목의 점수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의 교육이 지금과 같은 가치를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입시교육이 개별 근육을 크게 만드는 ‘교육 보디빌딩’이었다면, 빠르게 변하는 미래에는 여러 분야의 지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처음 보는 문제를 정의하며 무엇을 새롭게 배워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AI가 문제풀이·예상문제·개인별 취약점 분석까지 값싸게 제공하게 되면 ‘무엇이 시험에 나오는지 아는 것’의 희소가치는 떨어지고, 교육의 중심은 정답 암기에서 지식의 연결과 문제 발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대치동 교육산업이 살아남더라도 매일 대치동에 거주해야 할 필요성은 약해질 수 있으며, 학원가를 기반으로 형성된 대치동의 주거 프리미엄 역시 장기적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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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교육은 앞으로도 그 값어치를 할까

“앞으로도 교육은 중요한가?”

물론 중요하다. 오히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교육의 중요성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과 전혀 다른 질문이 하나 있다.

“앞으로도 대치동에서 수천만원을 들여 남보다 시험문제를 더 잘 풀게 만드는 교육이 그 비용만큼 중요한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시간이 갈수록 ‘아니오’ 쪽으로 상당히 기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지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2026년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는 2037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2038학년도 대학입시를 치른다. 우리가 지금 은마아파트 세입자들이 “아이 학원 때문에 대치동을 떠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입시와 현재의 학원 시스템을 10여 년 뒤까지 그대로 연장해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국가교육위원회가 현재 수립하고 있는 첫 10년 단위 국가교육발전계획의 대상 기간도 2028~2037년이다.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중·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이 바로 이 기간에 들어간다. 현재 미래 대입제도의 구체적인 형태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국가교육위원회는 2026년 8월 현재 ‘국민과 함께 그리는 미래 대입제도’를 주제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현장 토론회에서는 미래사회에 대비한 대입제도와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등이 공식적인 논의 의제로 올라와 있다. 다만 서·논술형 수능 도입 여부나 비중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국가교육위원회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2038년에는 수능이 이렇게 바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방향의 교육을 고민하고 있는가는 이미 상당히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와 첨단과학기술 시대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 질문하는 힘, 선택하는 힘’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시행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도 같은 방향성을 갖는다. 교육부는 학습량을 적정화하면서 비판적 사고와 탐구 중심의 교수·학습 및 평가를 강화하고, 국어에서는 독서와 작문을 연계해 비판적·창의적 사고와 서술·논술 능력을 키우는 방향을 제시했다.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학년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시험문제의 형태가 바뀐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공부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나는 지금까지의 입시공부를 운동에 비유하면 일종의 보디빌딩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보디빌딩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목적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보디빌딩에서는 가슴은 가슴대로, 등은 등대로, 이두근은 이두근대로 각각의 근육을 발달시킨다. 개별 근육을 크게 만드는 것이 경기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운동능력은 다르다.

축구선수가 방향을 바꾸고, 농구선수가 몸싸움을 견디며 슛을 하고, 격투기 선수가 상대의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반응할 때는 특정 근육 하나만 움직이지 않는다.

수많은 근육과 관절, 균형감각, 시각정보와 판단이 동시에 연결된다.

각각의 근육보다 그것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협응하는지가 중요하다.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입시교육은 오랫동안 지식을 매우 잘게 나누어 훈련해왔다.

국어는 국어대로, 수학은 수학대로, 영어는 영어대로 공부한다. 그 안에서도 다시 단원별로 쪼개고 유형별로 나눈다.

수학 100점, 국어 1등급, 영어 1등급.

말하자면 각 과목이라는 근육을 최대한 크게 만드는 교육이다.

대치동 학원가는 이 훈련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주는 곳이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기출문제와 합격사례, 상위권 학생들의 학습데이터와 유명강사의 경험을 이용해 출제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좁혀준다.

“이 유형은 이렇게 풀어라.”

“이 주제는 반드시 정리해둬라.”

“이런 문제가 나오면 이 구조로 답을 써라.”

정보가 희소하고 시험의 형태가 안정적이었던 시대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남들보다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 부분의 경제적 가치부터 빠르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이런 종류의 분석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의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빈출 개념을 추출하고, 학생 한 명의 오답 패턴을 파악하고, 수준에 맞는 예상문제를 수백 개 만들어주는 데 더 이상 대치동의 정보 독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AI 개인교사가 일상화되면 한 학생이 틀린 모든 문제를 기록해 “이 학생은 확률 자체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조건부확률에서 조건을 해석하는 능력이 약하다”는 수준까지 분석해 개인별 문제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험에 나올 것인가를 미리 아는 것’이라는 정보 자체의 희소가치가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큰 변화가 있다고 본다.

시험에 나올 것을 잘 맞히는 능력 자체의 중요성이 떨어질 가능성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흔히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고 했다.

지식을 외워주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조차 부족할 수 있다.

10년 동안 아주 열심히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웠는데 사회에 나왔더니 아무도 그 물고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AI가 그 물고기를 인간보다 백 배 싸고 빠르게 잡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필요한 능력은 한 단계 앞에 있다.

어느 바다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잡아야 하는가.

환경이 바뀌었을 때 언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가.

즉 이미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보다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발견하는 능력의 가치가 커진다.

이런 능력은 한 과목을 극단적으로 잘한다고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앞으로 서울 집값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현실의 질문을 생각해보자.

부동산 지식만 많다고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구구조를 알아야 한다.

금리와 금융을 알아야 한다.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야 한다.

기업이 어디에 자리 잡을 것인지, 교통망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교육수요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세제와 도시계획은 무엇을 변화시킬지도 같이 봐야 한다.

경제, 기술, 인구, 교육, 도시, 정치와 인간의 심리가 하나의 문제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현실은 “이 문제는 경제 4단원에서 출제되었습니다”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 공부에서 더 중요해질 능력은 개별 지식의 크기보다 지식 사이의 협응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을 알고 역사를 알고 경제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가 나타났을 때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짜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본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능력의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

계산은 AI가 해준다.

번역도 해준다.

요약도 하고 코딩도 하고 자료도 찾아준다.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는 비용은 계속 낮아진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역할은 그보다 위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왜 이것과 저것을 연결해야 하는가.

지금 풀고 있는 문제가 애초에 중요한 문제인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전제가 환경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맞는가.

AI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 역시 단순한 ‘질문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무엇과 무엇을 연결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아챌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지식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폭넓은 독서, 수학과 과학의 기초, 역사, 경제, 사회, 통계 같은 기본 지식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다만 지식을 각각의 서랍에 따로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로 만드는 공부가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현재의 대치동식 교육과 앞으로 필요한 교육 사이의 긴장이 생긴다.

시험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출제범위가 정해져 있을 때는 각각의 시험근육을 극한까지 발달시키는 것이 최적의 전략이다.

하지만 10년 뒤 어떤 직업이 중요할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특정 유형의 문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푸는 능력에 어린 시절의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여전히 최적의 전략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교육투자의 경제성 문제까지 겹친다.

모두가 대학에 가고 모두가 사교육을 받으면 더 많은 투자가 반드시 더 많은 사회적 성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학생이 사교육비를 두 배로 쓴다고 서울대 정원이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하루에 두 시간을 더 공부한다고 상위 10%가 20%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에게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합리적인 투자인데 사회 전체로 보면 서로의 순위를 바꾸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상황이 생긴다.

교육의 투입은 계속 커지는데 추가 투입에 따른 산출은 점점 작아지는 것이다.

대치동은 이 현상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미 상당히 잘하는 학생이 마지막 몇 점을 더 얻기 위해 더 비싼 학원과 더 많은 문제풀이, 더 정교한 컨설팅을 이용한다.

과거에는 그 몇 점이 대학을 바꾸고, 대학의 차이가 직업과 평생소득의 차이로 강하게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이 투자도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기술을 계속 새로 익혀야 한다면, 열아홉 살 때 시험 몇 문제를 더 맞히는 능력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의 수익률은 과거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대치동 학원가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최상위권 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론, 첨삭, 프로젝트, 연구형 교육처럼 지식을 연결하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고급 교육은 더 비싸질 수도 있다.

의대나 특정 최상위권 대학처럼 여전히 입시점수의 가치가 높은 영역도 상당 기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중요한 구분이 하나 생긴다.

대치동 교육산업이 살아남는 것과 대치동에 거주해야 할 필요성이 유지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아이가 매일 저녁 학원에 가야 한다.

그러니 학원과 집 사이의 거리가 중요하고, 결국 교육서비스의 가치가 주택가격에까지 붙는다.

은마아파트 세입자들이 재건축으로 이주하면서도 대치동 학원가를 떠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대학입시를 치르는 것은 2038학년도다.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2035~2037년의 교육을 지금과 똑같다고 전제할 이유는 없다.

현재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고 있는 2028~2037년 국가교육발전계획이 바로 그 아이의 중·고등학교 시절과 거의 겹친다. 그리고 미래 대입제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가 지금 공식적으로 토론하고 있는 주제부터 이미 ‘미래사회에 대비한 대입제도’,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다.

AI가 평소의 개별학습과 반복훈련을 담당하고, 최고의 강의를 온라인에서 듣고, 필요한 경우에만 대면 토론이나 첨삭을 받는 구조가 된다면 대치동 최고의 교육서비스가 살아남더라도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매일 대치동에 거주할 필요는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대치동 부동산을 장기적으로 볼 때도 “교육열이 계속될 것인가”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계속 강할 수 있다.

오히려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한 아이에게 더 많은 돈을 쓰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이 지금과 똑같이 ‘대치동에 살면서 매일 학원에 보내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교육이 중요한 것과 학원이 중요한 것은 다르다.

학원이 중요한 것과 대치동 학원이 중요한 것도 다르다.

그리고 대치동 학원이 중요한 것과 대치동에 살아야 하는 것 역시 다르다.

지금까지 이 네 가지가 너무 강하게 묶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같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AI와 교육제도의 변화는 이 연결고리를 하나씩 끊어놓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앞으로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교육 자체가 아니다.

시험에 나올 범위를 미리 좁혀주고, 정답을 압축해주고, 특정 유형을 반복훈련해 남보다 몇 점 더 받도록 만드는 교육의 상대적 가치다.

반대로 여러 분야의 기초지식을 가지고 처음 보는 문제를 해석하는 능력, 서로 멀리 떨어진 현상을 연결하는 능력, 질문을 만드는 능력,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방향을 수정하는 능력의 가치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입시교육이 지식의 각 근육을 크게 만드는 교육 보디빌딩이었다면, 앞으로 필요한 교육은 그 근육들이 낯선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종합운동에 가까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교육이 중요해질 것인가, 중요하지 않아질 것인가”가 아니다.

교육은 여전히 중요하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문제는 무슨 교육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할 것인가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대학에 갈 2038년에도 대치동에서 수천만원을 들여 각 과목의 시험근육을 극단적으로 키우는 교육이 지금만큼 그 값어치를 할까?”

나는 시간이 갈수록 ‘아니오’라는 답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교육의 중요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는 훨씬 더 어려운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 공부를 넘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찾아내고, 각자 키운 지식의 근육을 서로 연결해 처음 보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교육이 그런 방향으로 바뀐다면 대치동 학원가의 가치뿐 아니라, 그 학원가를 이유로 만들어진 대치동의 주거 프리미엄 역시 10년 뒤에는 지금과 다른 계산법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