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가 오르면 일을 더 해야 할까, 이사를 해야 할까

월세가 오르자 퇴근 후 배달을 하거나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N잡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서울에서 얻는 추가 소득과 경제적 기회보다 높은 주거비와 추가 노동의 부담이 더 크다면, 거주지역을 옮기는 편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사업의 채산성이 맞지 않으면 사업장을 이전하듯 주거 역시 투입하는 비용과 얻는 편익을 비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월세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만한 비용과 노동시간을 지불하면서까지 그곳에 거주할 경제적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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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를 내려고 N잡까지 해야 한다면, 그곳에 계속 살아야 할까

최근 월세가 오르면서 퇴근 후 배달을 하거나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월급만으로는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본업 외에 추가적인 소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대개 안타까운 현실로 소개된다. 열심히 일해도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고, 결국 쉬어야 할 시간마저 노동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거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현상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노동시간까지 늘려야 한다면, 과연 그 지역에 계속 거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까.

기업은 사업의 채산성이 맞지 않으면 비용을 줄이거나 사업장을 이전한다. 생산에 투입하는 비용보다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작아진다면 사업 자체를 중단하기도 한다.

이는 냉혹한 판단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기본적인 원리다.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가장 큰 편익을 얻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개인의 주거 선택 역시 이러한 경제적 판단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 서울에 거주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더 많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 교육과 문화시설, 편리한 교통과 생활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입지는 분명 다른 지역에서 쉽게 얻기 어려운 경제적 편익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높은 주거비를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에 거주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서울에 거주함으로써 얻는 추가적인 편익이 그곳에 거주하기 위해 부담하는 추가적인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월급 350만 원을 받는 사람과 지방에서 월급 300만 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서울에서 월세로 100만 원을 지출한다면 월급에서 월세를 제외한 금액은 250만 원이다. 반면 지방에서 월세 40만 원을 지출한다면 260만 원이 남는다.

명목상 월급은 서울이 50만 원 높지만, 주거비를 차감하고 나면 오히려 지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10만 원을 더 남긴다.

물론 실제 경제성은 이보다 복잡하다. 교통비와 생활비, 이직 비용은 물론 장기적인 소득 상승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서울에서의 경력이 미래에 더 높은 소득으로 이어진다면 당장의 주거비 부담을 감수하는 것도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추가적인 편익이 충분하지 않다면 어떨까.

서울에서 더 높은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서울 거주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그 소득을 얻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자원을 투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N잡의 문제가 등장한다.

월세가 올라 매달 50만 원을 더 지출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추가적인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퇴근 후 부업을 시작하고 매달 50시간을 더 일해 50만 원을 벌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득은 50만 원 늘어났지만 주거비 역시 50만 원 증가했으므로 실제로 남는 돈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노동시간은 매달 50시간 늘어났다.

이 사람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600시간을 추가로 노동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이는 결코 작은 비용이 아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노동에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휴식하거나 공부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다른 기회를 탐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더욱이 노동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노동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동일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N잡을 한다는 것은 소득이 증가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지역에 계속 거주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노동의 대가가 커졌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월세를 낼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그 월세를 계속 지불할 경제적 이유가 충분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소득을 늘리는 것을 당연히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득을 늘리기 위해 무조건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가령 어느 사업자가 임대료가 오를 때마다 영업시간을 늘린다고 생각해 보자.

하루 8시간 영업하던 가게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10시간 영업하고, 임대료가 더 오르자 12시간 영업한다.

매출은 늘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추가로 벌어들인 돈이 대부분 임대료로 지출된다면 사업자는 자신이 늘어난 노동시간에 비해 충분한 이익을 얻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사업장을 옮기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집은 사업장과 다르다. 직장과 가족, 자녀의 교육, 인간관계와 생활 기반이 얽혀 있는 만큼 단순히 비용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 적절한 일자리가 없다면 이전 자체가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기 위해 매달 수십 시간의 추가 노동이 필요하다면, 노동시간을 늘리기에 앞서 거주지역을 바꾸는 선택도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서울을 떠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편익을 비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서 부동산시장 전체로 확대하면 더욱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주택의 가격과 임대료는 결국 그 주택에 거주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월세는 현재의 소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주택 매매가격은 미래의 가격 상승 기대나 자산 축적, 상속과 증여 등을 통해 현재의 노동소득과 상당 기간 괴리될 수 있다.

그러나 월세는 매달 지불해야 한다.

현재의 소득이나 보유 자산으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면 결국 거주를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월세가 계속 상승하려면 그만큼의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는 임차인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주거비가 오를 때마다 임차인들이 더 많은 노동을 공급해 임대료를 감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임차인은 더 오래 일해서 월세를 내고, 임대인은 높아진 월세를 받을 수 있다.

임차인의 추가 노동이 높아진 임대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이 현상만으로 임대료가 부당하다거나 시장가격이 반드시 하락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울의 일자리 집중과 주택 공급 부족, 특정 입지에 대한 선호가 지속된다면 높은 임대료 역시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추가 노동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노동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노동시간을 늘려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조정 과정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는 대체재를 찾는다. 같은 효용을 더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굳이 비싼 상품을 계속 소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주거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만 주택은 지역별로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한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임대료가 상승한다고 해서 곧바로 인구가 이동하거나 임대료가 하락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주거비와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편익 사이의 관계는 중요하다.

서울에 거주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추가 소득이 정체되어 있는데 주거비만 계속 상승한다면, 그 입지의 경제적 매력은 일부 사람들에게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아직 직장을 선택하거나 거주지를 결정하는 단계에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기존에 서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자산과 경력을 축적한 사람과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은 출발점이 다르다.

이미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높은 주거비는 자산가치 상승의 결과일 수 있지만,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벌어들일 소득에서 계속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확산 등으로 노동시장 진입과 경력 형성의 방식까지 변화한다면, 서울이라는 입지가 제공하는 경제적 기회를 과거와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과거에는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더라도 서울에서 경력을 쌓으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러한 기대가 동일하게 실현될지는 따져봐야 한다.

높은 주거비를 정당화했던 것은 서울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월세를 내기 위해 N잡에 나서는 현상은 단순한 생활고의 문제를 넘어선다.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거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무엇을 얻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을 늘려서라도 서울에 남으려는 사람들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서울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일 수 있다. 가족이나 돌봄의 문제로 이동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는 사람들까지 높은 주거비를 당연한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추가 노동만을 해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흔히 주택을 구매할 때 앞으로 가격이 얼마나 오를 것인지 고민한다. 반면 그 주택이나 지역에 거주함으로써 얻는 편익이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얼마나 큰지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임대차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월세가 얼마인지, 얼마나 올랐는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월세를 지불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소득과 시간이 남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주거비를 충당하기 위한 추가 노동이 일상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해당 지역의 주거비가 제공하는 편익에 비해 과도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집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서울이라는 입지 역시 경제적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거주할 이유가 있다는 사실과, 현재의 월세를 지불하면서까지 서울에 거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전에 나는 주택의 장기적인 자산가치를 판단하려면 20년 뒤, 30년 뒤에 그 집을 사줄 사람이 누구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월세시장에서는 질문이 조금 달라진다.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그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시간을 투입해야 하는가.

주거비 상승을 감당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하는 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더 오래 일하는 것이 언제나 더 나은 경제적 선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동시간을 늘리기보다 지출을 줄이는 편이, 비싼 지역에 남기보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편이, 때로는 더 많은 경제적 여유와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는 집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특정 지역에 계속 거주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끝없이 늘려야 한다면 어느 순간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월세가 오르면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더 벌 것인지 고민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렇게까지 일하면서, 반드시 그곳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주거비를 감당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경제적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