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중은 계속될까? AI가 바꾸는 도시의 승자와 패자
AI 시대에도 서울 집중은 쉽게 끝나지 않겠지만, 집중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최고급 일자리와 자본은 서울 핵심지에 더 강하게 모일 수 있는 반면, 원격근무와 디지털 서비스의 확산, 세종처럼 교육·주거·생활 인프라를 갖춘 거점도시의 성장으로 ‘좋은 교육과 생활을 위해 반드시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이유는 약해질 수 있다. 앞으로 도시의 경쟁력은 단순히 서울이냐 지방이냐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와 교육·의료·교통·주거를 한 생활권 안에서 제공해 사람들이 굳이 떠날 필요가 없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에서 부동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강력한 전제 가운데 하나는 ‘서울 집중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도 서울, 그중에서도 좋은 일자리와 교육환경을 가진 지역에는 사람이 몰릴 것이고, 결국 집값도 그곳이 가장 오래 버틸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지금까지는 상당 부분 맞았다. 좋은 대학이 서울에 있고, 고소득 일자리가 서울에 있고, 대형병원과 문화시설, 사교육과 기업 본사까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사람이 모이니 기업이 모이고, 기업이 모이니 다시 사람이 모였다. 이 순환이 수십 년간 서울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서울의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수도권 집중이 끝난 것도 아니다. OECD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으로 구성된 수도권은 국토의 약 11.8%에 불과하지만 전국 인구의 50.6%가 거주하고 있다. 2040년에는 그 비중이 52.4%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AI가 이 오래된 구조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직장에 다니려면 반드시 서울에 살아야 할까.
AI는 서울 집중을 해체할까
처음에는 AI와 원격근무가 서울 집중을 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면 비싼 서울 주거비를 감수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코로나 이후 완전한 원격근무보다 사무실과 재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됐다. 그리고 AI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직업 역시 역설적으로 대도시에 많이 모여 있다.
OECD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약 27.1%는 생성형 AI에 노출된 직업에 종사한다. 특히 금융·IT·전문서비스처럼 지식집약적 산업이 많은 대도시일수록 AI 노출도가 높다. OECD 전체에서도 도시지역 근로자가 비도시지역보다 생성형 AI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AI가 서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의 일부 기능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기업일수록 뛰어난 개발자와 연구자, 금융인, 경영자와 가까이 있고 싶어 한다. 벤처캐피털과 대기업 본사, 대학과 연구기관이 가까이 있는 것도 중요하다.
AI가 개인의 생산성을 높일수록 최고의 인재 여러 명이 한곳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강남·여의도·판교 같은 고급 일자리 중심지는 오히려 AI 시대에 더 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반전이 있다.
서울에 살아야 했던 이유가 하나씩 분리되고 있다
사람들이 서울에 사는 이유는 직장 하나만이 아니다.
교육 때문에 서울에 살고, 병원 때문에 서울에 살고, 문화생활 때문에 서울에 살고, 각종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 서울에 산다.
그래서 과거의 서울은 일종의 ‘패키지 상품’이었다.
좋은 직장을 원하면 서울에 가야 하고, 좋은 교육을 원해도 서울에 가야 했다. 한번 서울에 들어오면 자녀 교육 때문에 떠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패키지 가운데 일부가 분리되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세종의 교육 성과가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일보가 서울대 입학생의 출신지역과 지역별 고3 학생 수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세종의 고3 인구 대비 서울대 입학생 비율은 1.750%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에 이어 2위였다. 2021년에는 서울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서울대 진학률 하나로 한 지역의 교육 수준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영재학교와 국제고 등 학교 구성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세종은 자녀 교육을 걱정해 공무원들이 대전으로 자녀를 보내는 일이 거론되던 도시였다. 그런데 세종의 사설학원 수는 2015년 338곳에서 2024년 2244곳으로 약 6.6배 증가했다.
교육환경은 반드시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교육열이 높은 젊은 가구가 충분히 모이고, 소득과 주거환경이 뒷받침되면 학원과 교육서비스가 따라오고 학교 경쟁력도 형성될 수 있다.
즉 사람이 교육환경을 찾아 움직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교육환경도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이것은 서울 집중을 생각할 때 상당히 중요한 변화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서울과 지방의 대결이 아니다
인구감소 시대에는 모든 지방 도시가 살아남을 수 없다.
AI와 원격근무가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경치 좋은 시골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와 병원, 학교와 교통, 음식점과 문화시설이 있는 곳을 원한다.
대신 도시 간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서울 대 지방’이 아니라
‘스스로 생활권을 완성할 수 있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 사이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좋은 일자리가 있고, 괜찮은 학교가 있고, 대형병원과 상업시설이 있으며, 신축 주거와 교통망까지 갖춘 도시라면 굳이 서울 한복판에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아파트만 공급한다고 도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는 없는데 신도시만 만들거나, 산업단지만 만들고 교육·의료·문화시설을 갖추지 못한다면 젊은 가족을 오래 붙잡기 어렵다.
AI 시대에 도시 경쟁력은 결국 하나의 시설이 아니라 ‘묶음’에서 나온다.
일자리와 교육, 의료, 교통, 주거가 서로를 강화해야 한다.
세종의 사례가 흥미로운 것도 그래서다. 정부기관 하나를 옮긴 것으로 끝났다면 지금과 같은 도시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젊은 가구가 이동하고, 주택과 상업시설이 생기고, 교육 수요가 형성되면서 도시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발전했다.
서울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서울 집값은 위험해지는 것일까.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도 어렵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최고급 일자리와 자본, 정보의 집중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OECD도 한국의 고부가가치 서비스 일자리가 서울권에 상당히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에서도 모든 지역이 같은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최상위 일자리와 기업, 대학, 문화시설이 집중된 핵심지역은 희소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면 서울이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격을 인정받던 외곽 주거지는 다른 거점도시와 직접 경쟁해야 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지방에 좋은 직장을 얻어도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교육과 의료, 문화서비스까지 갖춘 지방 거점도시가 늘어난다면 선택은 달라진다.
서울의 경쟁 상대는 전국 모든 도시가 아니다.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웬만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몇 개의 도시’가 될 것이다.
서울 집중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중의 방식은 달라진다
AI가 서울을 해체할 것이라는 예상도 지나치게 단순하고, 인구가 줄어도 서울은 영원히 지금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도 위험하다.
AI는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최고급 인재와 자본이 모여 있는 중심부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힘과, 과거에는 대도시에서만 가능했던 업무와 교육·정보 서비스의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힘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미래 도시구조는 서울 하나와 나머지 지방으로 나뉘기보다, 서울의 초핵심 지역과 몇 개의 강한 거점도시, 그리고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지역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역시 같은 질문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 어느 지역에 집이 얼마나 공급되느냐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 사람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아이를 가르치며, 어디에서 소비하고 치료받을 것인지까지 봐야 한다.
세종의 서울대 진학률이라는 작은 숫자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였던 교육환경조차 다른 도시에서 시간이 지나며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의 도시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서울인가 아닌가’가 아닐지 모른다.
사람들이 굳이 떠날 이유가 없는 도시를 누가 만들어내느냐.
AI 시대 도시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거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