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왜 신고가를 보고 거래를 하셨어요?
아파트 신고가 거래가 취소되었다고 해서 그 가격을 참고해 매수한 사람을 무조건 피해자로 볼 수는 없다. 주택의 거주가치나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면, 그 차액에는 미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 거래가격에도 이미 투자프리미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신고가를 근거로 추가적인 가격 상승을 기대했다면 그만큼 더 큰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허위 거래 신고를 통한 시세조작은 당연히 제재해야 하지만, 타인의 거래가격을 주택의 내재가치로 오인하고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 판단한 당사자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고가는 누군가 지불하기로 한 가격일 뿐, 그 가격이 정당하다거나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는 보증이 아니다.
그러게 왜 신고가를 보고 거래를 하셨어요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 해제율이 5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해 서울에서 해제된 아파트 매매계약은 6,419건으로 전체 거래의 7.66%에 달한다. 특히 신고가로 거래된 아파트의 계약이 뒤늦게 취소되면서, 이를 믿고 높은 가격에 집을 매수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른바 '집값 띄우기' 문제다.
실제로 거래할 의사도 없이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하고 신고한 뒤 이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작했다면,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허위 정보로 시장을 교란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러게 왜 신고가를 보고 거래를 하셨어요?
쌀 10가마니가 나오던 땅
어떤 농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땅에서는 매년 쌀 10가마니가 생산된다. 그런데 토질이 개선되고 생산성이 높아져 이제는 매년 15가마니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이 땅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땅이 만들어 내는 경제적 가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산량은 여전히 10가마니인데 땅값만 50% 상승했다면 어떨까?
물론 쌀값이 오르거나 금리가 하락하는 등 다른 경제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조차 없다면 높아진 땅값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진다.
주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가 제공하는 거주가치에는 입지, 주거환경, 교통, 교육, 생활 편의성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임대수익이나 미래의 주거서비스 가치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어제 10억 원이던 아파트가 오늘 12억 원에 거래되었다고 해서 그 아파트의 거주가치가 하루아침에 20% 증가한 것은 아니다.
서울 시민들의 소득이 그만큼 늘어난 것도 아니고, 해당 아파트가 제공하는 주거서비스가 갑자기 개선된 것도 아니라면 가격 상승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즉 투자프리미엄이다.
10억 원에도 이미 기대가 들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기존 거래가격인 10억 원이 반드시 주택의 내재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10억 원에도 이미 미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
주택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거주 편익과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10억 원이라는 가격을 설명하기 어려워도,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누군가는 기꺼이 10억 원을 지불한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12억 원에 신고되었다.
이를 본 다른 매수자가 11억 5천만 원에 매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의 10억 원에도 투자프리미엄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추가로 지불한 1억 5천만 원은 더욱 강한 가격 상승 기대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매수자는 10억 원이라는 기존 거래가격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 높은 가격을 받아들였다.
왜일까?
아마도 11억 5천만 원을 지불해도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12억 원, 13억 원,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수 있다.
적어도 지금보다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을 것이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기존 거래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이유도 그만큼 줄어든다.
신고가는 가치의 증거가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는 독특한 가격 결정 방식이 존재한다.
누군가 비싸게 샀다는 사실이 다음 사람이 더 비싸게 사야 할 이유가 되곤 한다.
10억 원에 거래되던 아파트가 12억 원에 거래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은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이때 직전 신고가는 일종의 가격 기준점이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누군가 12억 원을 지불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그 아파트의 가치가 12억 원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거래 당사자의 판단일 뿐이다.
그 사람이 합리적인 판단을 했는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가졌는지, 자금 사정은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그 한 사람의 판단이 마치 객관적인 가치평가 결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더 오를 것이라고 믿고, 더 오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그렇게 성립된 높은 거래가격은 다시 다음 매수자의 가격 상승 기대를 뒷받침한다.
가격 상승 자체가 가격 상승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된다면 가격은 주택의 내재가치보다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그 신고가가 취소되었다
이제 다시 앞선 사례로 돌아가 보자.
10억 원에 거래되던 아파트가 12억 원에 신고되었고, 이를 참고한 누군가가 11억 5천만 원에 매수했다.
그런데 나중에 12억 원의 계약이 취소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파트의 면적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교통이 나빠진 것도 아니고, 주변 생활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12억 원이라는 가격을 정당화해 주던 근거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계약 취소만으로 기존의 10억 원이 정확한 내재가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2억 원이 취소되었어도 다른 매수자가 그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
그러나 12억 원의 신고가를 근거로 상승세를 확신했던 매수자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가 믿었던 가격 상승의 근거가 흔들린 것이다.
특히 신고가를 일종의 하방 지지선으로 생각했다면 더욱 그렇다.
12억 원에 거래된 아파트를 11억 5천만 원에 샀으니 적어도 비싸게 산 것은 아니라는 판단.
이제는 그 판단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신고가가 취소되었다고 해서 주택의 가치가 갑자기 하락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 신고가를 주택 가치의 근거로 삼았던 판단이 취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계약은 누가 결정했는가
물론 허위 신고가 매수자의 판단을 왜곡했다면 그 책임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시장에서 제공되는 거래 정보는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고의로 허위 정보를 만들어 가격을 조작하는 행위는 제재해야 한다.
다만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해서 모두 허위 신고인 것은 아니다. 정상적으로 체결된 계약도 다양한 사유로 해제될 수 있다.
더욱이 허위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이후 매수자가 지불한 가격이 전적으로 허위 신고 때문에 결정되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매수자는 자신이 지불할 가격을 결정할 때 여러 요소를 검토할 수 있다.
현재 주택이 제공하는 거주가치, 자금 조달 비용, 소득 대비 부담능력, 향후 시장 전망 등을 종합해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보다 직전 신고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면 어떨까?
그것은 주택 자체의 가치를 평가했다기보다 다른 사람이 얼마를 지불했는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지불가격을 결정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는 상당 부분 투자 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투자에는 언제나 전망이 포함되고, 전망에는 언제나 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도 높은 가격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 믿음의 위험 역시 검토했어야 한다.
집값이 올랐다는 사실은 집값이 올라야 할 이유가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높은 가격 자체가 아니다.
높은 가격이 형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가격이 정당하다고 믿는 태도다.
쌀 10가마니를 생산하는 땅이 15가마니를 생산하게 되었다면 가격 상승을 설명할 근거가 있다.
하지만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땅값이 올랐다면 그 상승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주택이 제공하는 가치나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여건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는데 가격만 상승했다면, 그 상승분에는 미래 가격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런 기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미래를 전망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투자자의 자유다.
그러나 그 전망이 빗나갔을 때는 자신이 무엇을 근거로 가격을 판단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신고가를 허위로 만들어 시장을 교란했다면 그 행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 신고가를 보고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판단해 매수했다면, 그 투자 판단의 책임까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는 없다.
애초에 신고가는 누군가가 지불하기로 한 가격이지, 앞으로 누구도 그보다 싸게 팔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이 비싸게 샀다는 사실은 내가 비싸게 사도 된다는 근거가 아니다.
그러니 묻고 싶은 것이다.
그러게 왜 신고가를 보고 거래를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