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양가 안 통하는 시장, 무턱대고 올려준 공사비는 누가 책임지나?
상승장에서는 공사비 인상분을 높아진 일반분양가로 메울 수 있었으나, 시장이 이를 받아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부풀려진 공사비가 곧바로 조합원들의 가혹한 추가분담금으로 귀환합니다. 검증에 소요되는 시간과 금융비용이 무서워 수백억 원대의 공사비 거품을 눈감아주는 것은 고분양가를 기대할 수 없는 현 시장 구조에서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지금 정비사업의 핵심 성패는 속도전이 아닌, 철저하고 정교한 공사비 검증을 통해 조합원의 실질 분담금을 지켜내는 데 있습니다.
과거 재건축·재개발 시장을 지배했던 공식은 명확했다. "무조건 빠르게 분양하는 것이 장땡이다." 시공사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인상을 이유로 수천억 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해 와도, 조합은 길고 지난한 검증 싸움을 피하곤 했다. 검증에 몇 달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시공사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고, 그만큼 일반분양가를 올려 받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상승장에서는 이 공식이 작동했다.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과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부풀려진 공사비(뻥튀기)를 모두 흡수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받아주는 시장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장 열기가 식고 분양가 상한제나 분양가 저항선에 부딪히는 순간, 시공사에 퍼준 공사비는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는다. 일반분양 수입으로 상쇄하지 못한 공사비 증액분은 오롯이 조합원 각자의 목에 걸린 '추가분담금 폭탄'으로 귀환한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검증을 거친 사업장들에서 감액된 금액만 무려 4조 원에 육박하고, 증액 요구액의 20~30% 이상이 부풀려진 거품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 거품을 "사업 지연이 두렵다"는 이유로 그냥 넘겨준다면, 그 부담은 누가 지는가? 결국 조합원 개인의 자산 손실로 직결될 뿐이다.
물론 "공사비 검증에 6개월 이상 걸려 금융비용이 늘어난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계산해 봐야 한다.
사업 지연으로 발생하는 몇십억 원의 금융 이자가 무서워서, 검증만 거치면 깎을 수 있는 수백억~수천억 원의 공사비 거품을 눈감아주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판단인가? 더군다나 고분양가를 받아낼 수 없는 시장 구조라면, 공사비를 깎아 조합원의 실질 분담금을 단 1원이라도 줄이는 것이 사업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 정비사업 조합들은 '일단 짓고 보자'식의 과거 관성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상승장의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려준 공사비를 일반분양으로 메울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은 지금 같은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공사비 검증은 '지연'이 아니라 '투자'다. 몇 달의 검증 기간은 사업을 망치는 시간이 아니라, 조합원 한 사람당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재산을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투자 시간이다.
정부와 공공의 제도적 지원도 시급하다. 부동산원의 전담 인력을 대폭 확충하여 검증 기간을 단축하고, 사설 CM 업체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신속·공정하게 거품을 빼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격을 올린 만큼 시장이 받아주지 않는 시대, 정비사업의 진짜 경쟁력은 '얼마나 빨리 짓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투명하고 적정한 가격에 짓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앞의 속도전에 휘둘리는 조급함이 아니라, 꼼꼼하게 장부를 들여다보는 철저한 검증의 칼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