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구축, 재건축 프리미엄은 어디로 갔나? 30년 된 아파트, 이제 호재가 아니라 감가인가.

서울 집값 부담으로 1기 신도시에 수요가 유입되고 있지만, 최근 언론은 30년 넘은 구축 아파트를 더 이상 ‘재건축 기대감이 붙는 자산’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신축 대비 상품성이 떨어지는 노후 주택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재건축은 본질적으로 철거비·공사비·금융비용·분담금·시간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저금리와 집값 상승기에는 미래 신축가치가 이런 비용을 덮으면서 노후화 자체가 프리미엄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주요국 금리가 다시 상승하고 공사비와 분담금이 현실적인 부담으로 부각되면서 구축의 노후화가 다시 ‘감가’로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제 재건축 가치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토지가치와 사업성, 분담금, 사업기간을 모두 계산한 뒤 남는 경제성으로 평가받는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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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몰려온다는데 재건축 기대감 어디로 갔나?

서울 집값과 전·월세 부담이 커지면서 수도권 1기 신도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분당과 평촌, 일산, 산본, 중동은 교통과 학군, 상권 등 이미 완성된 생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서울에서 밀려난 수요를 받아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 보면 과거의 1기 신도시 기사들과 미묘하게 달라진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30년 넘은 아파트가 많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전체 아파트 가운데 준공 30년을 초과한 단지의 비중은 86.5%다. 평촌은 무려 93.1%에 달한다. 그런데 이 숫자를 받아들이는 언론의 문법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과거였다면 이런 숫자 뒤에는 대개 ‘재건축 기대감’이 따라붙었다.

30년이 지났다는 것은 건물이 낡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재건축 연한을 채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오래될수록 새 아파트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 따라서 구축 아파트에는 현재의 주거가치 외에 미래의 신축가치까지 얹어 가격을 설명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기사는 정반대로 이야기한다.

노후 아파트가 너무 많다는 것이 1기 신도시의 ‘문제’이고, 최근 수요자들은 주차장과 평면, 커뮤니티시설 등 상품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구축만으로는 서울에서 넘어오는 수요를 충분히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같은 생활권 안에서도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30년 된 아파트를 바라보는 부호가 어느 순간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30년이라는 시간이 재건축 프리미엄을 만들어내는 ‘플러스’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감가’의 원인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재건축 기대감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언론이 이제야 재건축에 돈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전국 곳곳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수억원의 분담금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공사비 상승과 추가분담금 문제 역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재건축은 처음부터 비용이 발생하는 사업이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해야 하고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 설계비와 공사비가 들고 이주비와 금융비용도 들어간다. 사업이 지연되면 시간비용까지 커진다. 일반분양에서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그 비용은 조합원이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재건축은 ‘돈이 드는 사업’이라기보다 ‘돈을 버는 사업’처럼 묘사됐다.

왜 그랬을까.

재건축 자체가 갑자기 높은 수익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재건축을 둘러싼 경제환경이 비용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저금리는 먼 미래의 가치를 크게 만들어준다.

10년 뒤 새 아파트가 된다는 기대가 있다면 금리가 낮을수록 그 미래가치를 현재 가격에 많이 반영할 수 있다. 돈을 빌리는 비용도 낮다. 사업이 몇 년 지연되더라도 기다림의 비용 역시 상대적으로 작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환경에서는 분담금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억원을 추가로 내더라도 새 아파트가 된 뒤 가격이 4억원, 5억원 올라간다고 믿는다면 분담금은 비용이라기보다 미래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금처럼 느껴진다.

그 결과 구축 아파트의 가격은 독특하게 계산됐다.

건물은 분명 늙어가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재건축이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프리미엄이 붙었다. 일반적인 자산이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가치가 떨어져야 하는데, 재건축 기대가 강한 시장에서는 노후화가 오히려 호재가 되는 역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30년 된 아파트를 두고 ‘낡았다’고 하기보다 ‘재건축이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가 가격을 갖기 시작하면 계산은 달라진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9월 16일 연방기금금리 목표범위를 3.75~4.00%로 0.25%포인트 올렸다. 한국은행 역시 8월 27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3.00%로 인상했고,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두 차례 연속 금리 인상을 확인했다. 일본은행도 9월 18일 정책금리를 1.00%에서 1.25%로 높였다.

모든 나라의 사정은 다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돈의 가격이 계속 낮아지는 것을 당연하게 전제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이 변화는 재건축의 경제성을 전혀 다르게 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10년 뒤 얻을 10억원의 가치를 단순히 현재가치로 계산한다고 해보자. 할인율이 2%라면 현재가치는 약 8억2천만원이다. 할인율이 5%라면 약 6억1천만원으로 떨어진다.

미래의 아파트 가격은 그대로인데 오늘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 2억원 이상 달라진다.

그런데 재건축 비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공사비가 오르고 인건비가 오른다. 금융비용도 증가한다. 재건축 기간이 길어지면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시간과 이자의 비용 역시 커진다. 미래 신축의 현재가치는 할인되는데 그 신축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부담해야 할 비용은 오히려 현실적인 숫자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숫자의 이름이 ‘분담금’이다.

그동안 시장은 재건축 이후의 신축 가격에는 매우 민감했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집값 상승이 그 비용을 덮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값 상승만으로 모든 비용을 덮을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지는 순간 질문은 완전히 달라진다.

“언젠가 새 아파트가 되느냐”가 아니라 “새 아파트가 되기 위해 내가 얼마를 더 내야 하느냐”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 구축은 다시 구축이 된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고, 평면이 오래됐으며, 배관과 설비가 노후화되고, 커뮤니티시설이 부족한 아파트는 재건축이라는 미래의 사건과 별개로 현재 주거상품으로서 감가돼야 한다.

이번 기사에 등장하는 ‘구축 기피 현상’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구축 기피는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다. 시장가격의 언어로 바꾸면 ‘감가’이며, 아파트도 결국 소비되고 마모되는 ‘중고 상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우리는 재건축이라는 환상에 가려 낡은 아파트를 ‘중고’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생활권 안에 신축과 구축이 있다면, 자동차처럼 중고아파트에는 당연히 감가된 가격을 지불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생활권에 구축과 신축이 있다면 신축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구축에는 할인된 가격을 지불하려는 현상이다. 자동차나 기계, 대부분의 건물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경제원리다.

그렇다고 재건축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토지가치가 충분히 높고 대지지분이 크며, 용적률과 일반분양 여력이 좋고, 추가분담금을 부담하고도 신축으로 전환했을 때 경제성이 남는 곳이라면 재건축은 여전히 충분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이제는 ‘오래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재건축 프리미엄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구축 아파트의 가격은 보다 냉정하게 나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건물의 감가가 얼마인지, 토지가치가 얼마인지, 신축으로 전환했을 때 얻는 가치가 얼마인지,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분담금은 얼마인지, 그리고 그 돈과 시간을 몇 년 동안 묶어둬야 하는지를 각각 계산해야 한다.

결국 재건축의 가치는 ‘새 아파트가 된다’는 한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숫자를 더하고 빼고 난 뒤에 남는 금액이다.

그 점에서 이번 1기 신도시 기사는 흥미롭다.

서울에서 수요가 몰려온다고 말하면서도 30년 넘은 구축이 많다는 사실을 더 이상 재건축 호재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축의 낮은 상품성을 지적하고 신축의 희소성을 이야기한다.

언론이 갑자기 재건축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돈에 다시 가격이 붙기 시작했고, 기다리는 데에도 비용이 생겼다. 미래의 가격은 더 크게 할인해야 하고 현재의 분담금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저금리 시대에는 건물의 노후화보다 ‘언젠가 새 아파트가 된다’는 기대가 더 컸다.

이제 시장은 반대로 묻기 시작한다.

언젠가 새 아파트가 되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때까지 얼마를 내고,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구축이라면 30년이라는 나이는 더 이상 프리미엄의 근거가 아니다.

그저 30년 된 건물의 나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