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때까지 빚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 상호금융 부실채권 48조 원의 경고

상호금융권의 부실채권이 48조 원을 넘어서고 예수금마저 감소하면서 부동산 담보시장의 구조적 위험이 드러나고 있다. 투자 프리미엄이 크게 반영된 부동산은 가격이 하락해도 매수세가 회복되기는커녕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와 신용 축소로 수요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 회수를 위해 담보권을 실행하면 매각 물량 증가가 담보가격을 떨어뜨리고, 낮아진 담보가치는 다시 채권 회수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완화할 금리 인하마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전쟁, 공급망 재편이 세계화의 비용 절감 효과를 약화시키고 물가와 장기금리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보다 협력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차입자의 만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과거의 저금리 환경에서 만들어진 부채와 자산가격을 새로운 고비용 시대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위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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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내려오지 않는다면, 담보는 얼마까지 떨어져야 할까

상호금융 부실채권 48조 원, 세계화의 균열과 고금리의 역설

돈을 빌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금융기관은 담보를 처분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으니 채무자가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경매를 통해 회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적정한 가격에 사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도 있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동안에는 이 전제를 의심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담보가치는 높아지고 있었고, 금융기관은 대출을 늘려왔다.

그런데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10월 31일 「상호금융 5곳 예수금 동반 감소…부실채권 48조원, 건전성 관리 비상」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산림조합 등 5개 상호금융 업권의 예수금이 올해 상반기 모두 감소했고, 6월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은 약 48조 3,000억 원에 달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말보다 약 5조 5,6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고정이하여신이 모두 확정손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담보 처분과 채무조정 등을 통해 회수할 수 있는 금액도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남아 있는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예수금까지 감소하고 있다. 상호금융권 예수금은 지난해 말 약 930조 9,00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약 903조 원으로 줄었다.

물론 예수금 감소가 곧바로 금융기관의 위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금융상품 사이의 금리 차이나 다른 투자자산으로의 자금 이동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대출 부실이 증가하는 가운데 예수금까지 줄어든다면 금융기관은 이전보다 신중하게 자금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금융기관이 당장 무너지느냐가 아니다.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금융기관도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대출을 줄이기 시작하면 시장 전체의 구매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글에서는 부동산 가격을 떠받쳐 온 구매력의 한계를 이야기했다.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가격을 부채가 떠받쳤고, 대출 여력이 줄어들면 새로운 매수자도 감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반적인 수요·공급의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보통 상품은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량이 증가한다.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면 새로운 균형을 찾게 된다.

하지만 부동산은 현재의 사용가치뿐 아니라 미래의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까지 반영되는 투자자산이다.

어떤 아파트의 주거효용과 임대수익 등을 고려한 가치가 10억 원인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15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가격이 14억 원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매수자가 반드시 늘어날까.

15억 원에 거래될 때는 17억 원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사람이, 14억 원으로 떨어지자 오히려 12억 원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할 수 있다.

가격이 하락하면서 구매 부담은 줄었지만 미래의 상승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담보가치 하락과 금융기관의 대출 축소까지 겹친다면 가격이 내려가도 실제 매수세는 더욱 약해질 수 있다.

이는 수요법칙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격 이외의 조건이 동시에 악화되면서 수요 자체가 위축되는 것이다.

상당한 투자 프리미엄이 반영된 자산시장에서는 가격이 하락할수록 매수자가 오히려 줄어드는 구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매수자는 기다릴 수 있어도 모든 매도자가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차입자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담보물을 처분해야 할 수 있다.

금융기관 한 곳이 담보권을 실행하는 것은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여러 금융기관이 동시에 담보권을 실행하면 시장에는 경매와 공매 물건이 쌓인다.

가령 감정가 100억 원인 부동산을 담보로 70억 원을 대출했는데, 경매에서 60억 원에 낙찰됐다면 금융기관은 매각대금만으로 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거래가 주변의 담보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낮은 가격의 거래가 반복되면 다른 금융기관도 담보를 보수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추가 대출이나 만기 연장이 필요한 차입자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그 결과 또 다른 담보권 실행이 발생할 수 있다.

돈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물을 처분하는 행동이 담보가격을 떨어뜨리고, 떨어진 담보가격이 다시 돈을 회수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강제매각과 금융가속 메커니즘이다.

금융기관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대출을 축소하지만, 대출 축소는 새로운 매수자의 구매력을 약화시켜 담보가격에 추가적인 하락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물론 상호금융 부실채권 48조 원이 모두 담보권 실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런 악순환이 이미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위험을 분석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순환을 완화할 방법은 무엇일까.

차입자의 상환능력이 회복되고 매수자의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금리 인하는 그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과연 앞으로 금리가 쉽게 내려올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세계화가 만들어낸 경제질서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상품은 가장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나라에서 만들고,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운송했다. 중국은 거대한 생산기지로 성장했고 세계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산품을 공급받았다.

물론 세계화만으로 저물가와 저금리의 시대를 설명할 수는 없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 통화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화가 생산과 유통비용을 낮추는 중요한 힘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질서가 달라지고 있다.

2018년 미·중 관세전쟁이 시작됐을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양적완화가 아니라 금리 인상과 양적긴축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역 갈등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자 2019년에는 세 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시장은 여기서 하나의 기억을 얻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줄 것이라는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2018년과 다르다.

미·중 경쟁은 관세를 넘어 반도체와 인공지능, 금융과 군사안보의 문제로 확대됐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까지 겹쳤다.

국가와 기업은 이제 가장 저렴한 생산방식보다 가장 안전한 공급망을 선택하려 한다.

공장은 여러 나라에 중복해서 건설되고, 재고는 늘어나며, 운송경로는 우회한다. 국가는 전략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군사비와 안보 예산을 확대한다.

모두 위험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지만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

세계화가 효율성을 통해 비용을 낮추던 질서였다면, 지금의 패권경쟁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질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모순을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 거래를 제재했지만, 국제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미국은 러시아산 경유 거래를 일부 허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유시설을 공격해 왔다.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지정학적 목표와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경제적 목표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란 전쟁에서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지만, 그것이 이란의 정치체제 붕괴나 친미정부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압박했고, 후티 세력을 비롯한 무장집단의 활동은 중동 해상 수송의 불안을 키워왔다.

미국은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 중동에서의 군사적 부담을 줄이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군사적 개입을 축소하면서도 에너지 수송로와 달러 중심의 금융질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란은 중국과의 에너지 거래에서 달러 이외의 결제방식과 제재 우회 구조를 활용해 왔다. 미국이 이를 경계할 전략적 이해관계는 존재한다.

다만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목적이 위안화 결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안정적인 친미정부를 수립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동의 군사적 부담을 줄이고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전략과도 충돌한다.

그렇다고 타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제재와 에너지 거래, 해상 수송로의 안전을 둘러싼 갈등은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든 협상을 통해 타협하든, 과거와 같은 경제질서가 아무런 추가 비용 없이 복원된다는 보장은 없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물자 공급을 줄이는 한편 막대한 재정지출을 발생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만들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국채금리를 낮게 유지했지만 전쟁 이후 물가가 급등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고, 결국 1951년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합의에 도달했다.

국가는 전쟁비용을 낮은 금리로 조달하고 싶어 하지만, 전쟁이 물가를 높이면 중앙은행은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정유시설이 공격받고 해상 수송로가 위협받으면 에너지와 원자재, 운송과 보험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

더욱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업은 공급망 중단에 대비해 생산시설을 분산하고 재고를 늘린다.

물론 일시적인 비용 상승이 영구적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쟁과 제재, 공급망 재편이 반복된다면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비효율 속에 살아야 할까.

누군가는 미국이 중국을 다시 압도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면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은 이제 등장했을 뿐이다.

중국이 미국을 압도해야 이 경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중국을 굴복시켜야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양국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감당해야 할 비용을 계산하고,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해야 한다.

서로를 견제하는 데 사용하는 자원보다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 거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간 관계를 시장의 거래처럼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안보와 패권의 문제는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그 비용 자체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관세를 부과하면 상대방도 관세를 부과하고, 수출을 통제하면 상대방은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며, 금융제재를 강화하면 상대방은 이를 우회할 결제체계를 확보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세계는 경제적 효율성보다 정치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한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의 승리가 갈등의 종료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경쟁의 승자가 결정되는 것과 경쟁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제한적인 협력이 각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때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중국의 부상이 이미 끝난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역량과 한계를 확인하고 새로운 경쟁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제 본격화됐다고 본다.

중국은 이제 등장했을 뿐인데, 우리는 벌써 세계화가 만들어준 낮은 비용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패권경쟁의 시간은 수십 년이 될 수 있지만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차입자의 원리금 상환일은 그만큼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 국채시장의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미국 국채는 오랫동안 세계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었다. 전쟁이나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고, 국채가격이 상승하면서 금리가 하락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이란 전쟁에서는 지정학적 위험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미국 장기국채금리가 오르고 국채가격이 하락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물론 미국 국채가 안전자산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이고 미국 국채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동성이 높은 시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미국 국채 역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국채 발행이 늘어나고 장기적인 물가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자들은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국제 금융질서의 변화 역시 장기적인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미국의 장기국채금리가 반드시 같은 폭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기금리에는 미래의 단기금리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재정, 시장 변동성에 대한 위험보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문다면 한국의 시장금리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금융기관의 부실이 커지면 차입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대출금리에는 추가적인 신용위험까지 반영될 수 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한 부실을 해결하는 열쇠가 반드시 한국 안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최근 오히려 금리를 올렸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7월과 8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이를 호미질에 비유했다.

나중에 가래로 막아야 할 상황을 미리 호미로 막겠다는 것이다.

10월 22일에는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하면서 앞선 인상을 '호미질의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결이 긴축의 종료를 뜻하지는 않았다.

앞선 금리 인상으로 정책을 운용할 여유가 생겼지만, 성장과 물가의 상방 위험을 살펴보며 추가적인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10월 동결은 긴축의 마침표라기보다 추가적인 판단을 위한 쉼표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조금 올리는 것이 나중에 훨씬 많이 올려야 하는 상황보다 낫다는 논리를 이미 제시해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다음 금리 인상을 계획해 두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10월 29일에는 11월 추가 인상 가능성을 전망하는 보도가 나왔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지고 물가 상승 압력도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민간소비는 감소했다.

국가경제는 성장하는데 가계의 소비는 줄어드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모든 가계의 소득 증가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채가 많은 가계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에는 높은 금리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할 수 있지만, 금융기관의 부실과 차입자의 상환 부담을 고려하면 금리 하락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은 미래에 가래를 쓰지 않기 위해 지금 호미를 들겠다고 하지만, 이미 부실이 쌓인 차입자에게는 그 호미질조차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상호금융 부실채권 48조 원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금융기관이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담보권을 실행하면 매각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

매수자가 부족한 시장에서 담보물이 늘어나면 가격은 하락 압력을 받고, 담보가격이 하락하면 금융기관의 회수율도 악화될 수 있다.

여기에 금리가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다면 차입자의 상환 부담은 쉽게 완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투자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가격이 내려가도 매수자가 쉽게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금융기관은 팔아야 하는데 매수자는 기다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가 부동산 시장에만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상호금융기관은 지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농어업인에게 자금을 공급한다.

이들이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대출을 축소하면 지역경제의 자금 순환도 영향을 받는다. 사업자는 운전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지고, 투자와 고용을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기존 대출을 갚기 어려운 사업자가 늘어나면 금융기관의 부실은 다시 증가할 수 있다.

물론 채무조정과 만기 연장, 부실채권 매각, 자본 확충 등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지표만으로 금융위기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부실채권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하거나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해서 경제적 손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부실의 원인이 자산가격과 현금흐름의 괴리에 있다면 금융기관의 장부에서 부실채권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차입자의 소득이 원리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부동산 가격 조정이 아닐 수 있다.

과거의 저금리 환경에서 만들어진 부채와 자산가격을 새로운 세계경제의 비용구조 속에서 감당해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낮은 생산비용과 안정적인 물가는 저금리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저금리는 부채를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고, 부채는 자산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제 전쟁과 패권경쟁, 공급망 재편은 물가와 시장금리에 새로운 부담을 줄 수 있다.

과거의 금융환경이 만들어낸 자산가격을 앞으로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원리금을 갚고 있다.

금융기관은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하고, 차입자는 대출 만기를 맞아야 하며, 기업은 매달 이자와 임금, 원자재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패권경쟁의 시간은 길 수 있지만 대출의 만기는 그렇게 길지 않다.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가격이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차입자는 기다리는 데 한계가 있고, 금융기관도 부실채권을 무한정 장부에 남겨둘 수는 없다.

그런데 금융기관이 담보물을 처분하려는 바로 그때 매수자는 가격이 더 내려가기를 기다릴 수 있다.

금융기관이 신규 대출을 줄인다면 그 매수자조차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시장가격을 지탱했던 부채가 이제는 시장가격을 낮추는 압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집값이 얼마나 오를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그 가격에 집을 사줄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차입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금융기관은 담보를 얼마에 처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버틸 수 있는가.

전쟁의 비용은 물가에 남을 수 있다.

물가의 부담은 금리에 남을 수 있다.

금리의 부담은 부채에 남는다.

그리고 부채를 갚지 못하는 순간 그 손실은 금융기관의 장부에 남는다.

세계경제의 비효율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우는 것보다 거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때까지 그 비용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과 차입자는 그날이 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

세상이 다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빚의 만기가 기다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담보를 팔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 담보를 살 사람과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이 존재할 때만 성립한다.

과거에는 금리 인하가 이런 악순환을 완화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균열과 전쟁, 패권경쟁이 물가와 금융비용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는 그 기대 역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금리가 내려오지 않는다면, 담보는 과연 얼마까지 떨어져야 다시 팔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