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저축한 사람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우리는 과연 그만큼 부유해졌을까. 지난 40년간 명목소득과 부동산 가격은 크게 상승했지만 가계순저축률은 낮아졌고, 중산층의 자본 축적 능력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한때 토지와 건물을 함께 마련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땅 위에 건물 하나를 다시 짓기 위해 토지지분을 나눠야 하는 현실은 이러한 모순을 상징한다. 우리는 늘어난 소득을 저축하고 생산적인 자본으로 축적하기보다 소비를 확대하면서 부유해졌다고 믿어온 것은 아닐까. 진정한 부는 얼마나 비싼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를 위해 남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정말 부유해졌을까.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거리에는 고급 자동차가 넘쳐나고, 해외여행은 일상이 되었으며,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도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40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우리는 훨씬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그렇게 부유해졌다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이 가진 집을 다시 지을 돈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재건축을 추진하는 신반포4차 아파트는 기존 1,212가구를 1,833가구로 늘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토지 위에 새 건물을 지으면서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반분양 등을 통해 건축비 부담을 줄이는 재건축의 사업구조는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40년 전에는 토지와 건물을 함께 살 돈이 있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째서 건물 하나 다시 지을 돈조차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는 것일까.
현재가치 기준으로 매년 1,000만 원씩만 저축했다고 가정해 보자. 40년이면 4억 원이다. 이 정도라면 상당한 규모의 재건축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재건축 분담금은 단지마다 다르고, 모든 소유자가 40년 동안 같은 소득을 얻은 것도 아니다. 일반분양을 통한 비용 절감이 반드시 자금 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례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40년 동안 부를 축적한 것인가, 아니면 부유해졌다고 생각하며 소비해 온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살펴볼 지표가 가계순저축률이다.
우리나라의 가계순저축률은 1990년대만 해도 20% 안팎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한 자릿수로 낮아졌고, 2025년에도 8.6%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 경제 규모는 커졌고, 명목소득과 자산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비중은 과거보다 작아진 것이다.
물론 평균 저축률만으로 모든 가계의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많은 돈을 저축하고, 누군가는 저축할 여유조차 없다. 중산층이 얇아지고 자산 격차가 확대된 사회에서 평균적인 국민소득과 저축률은 오히려 평범한 가계의 현실을 가릴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부라고 생각해 왔느냐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가면 물가가 무척 싸다고 느꼈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여전히 한국보다 저렴한 곳이 많지만, 예전만큼 압도적인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물론 그 나라들이 빠르게 성장한 결과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의 다른 나라들보다 얼마나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는가.
원화로 표시된 소득이 두 배가 되었다고 해서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다섯 배 올랐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다섯 배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다.
한 가족이 집 안에서만 사용하는 화폐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 보자. 아버지가 자녀에게 돈을 지급하고, 자녀가 그 돈으로 부모에게 물건을 사고, 다시 그 돈이 가족 사이를 순환한다. 그 화폐의 발행량이 아무리 많아져도 가족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재화와 서비스가 늘어나지 않았다면 부유해진 것이 아니다.
국가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번영은 돈이 얼마나 많이 돌았는지가 아니라, 같은 노동과 자본으로 얼마나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특히 국제무역은 그 능력을 시험하는 중요한 무대다. 우리가 잘 만드는 것을 수출하고, 외국에서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수입하면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물론 국내 서비스의 생산성 향상도 실질적인 성장이다. 중요한 것은 교환의 범위가 아니라 실제 생산성과 구매력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무엇에 가장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입해 왔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이다. 수많은 가정이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청소년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입시 경쟁에 투입한다. 그 경쟁의 정점에는 의과대학을 비롯한 소수의 안정적인 고소득 직업이 자리하고 있다.
의료는 사회에 꼭 필요한 고부가가치 서비스다. 문제는 의료인의 가치가 아니라, 한정된 우수 인재와 사회적 자본이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창출하기보다 기존의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지위를 차지하는 경쟁에 과도하게 사용될 가능성이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반드시 국가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도 다르지 않다.
집값이 소득에 비해 너무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집값이 오르는 동안, 우리의 소득과 자본 축적 능력은 왜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는가.
토지의 명목가격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물가를 고려한 실질가격도 크게 올랐다. 하지만 그 땅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능력까지 그만큼 커졌다는 뜻은 아니다.
기존의 토지를 신규 소유자들과 나누어 건축비를 조달하는 것은 자산을 활용하는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새로운 부의 창출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미 가지고 있던 토지의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로 건축비 부담을 줄이는 것과, 지난 수십 년간의 소득으로 새 건물을 지을 자본을 축적해 놓은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차이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명목소득이 늘어났으니 부유해졌다고 생각했다. 집값이 올랐으니 재산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더 비싼 자동차를 타고,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우리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믿었다.
물론 소비가 늘어난 것을 모두 낭비라고 할 수는 없다. 소비를 통해 얻는 삶의 질 역시 경제성장의 중요한 성과다. 더욱이 저축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거비와 교육비 등으로 인해 저축할 수 없었던 가계도 많다.
그렇기에 이것은 단순히 개인에게 아껴 쓰라고 충고할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이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축이란 단지 은행에 돈을 쌓아두는 행위가 아니다. 오늘 생산한 것 가운데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남겨, 내일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행위다. 그 자본이 기술과 설비, 새로운 기업과 산업에 투자될 때 사회 전체의 부도 커진다.
물론 저축만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축적한 자본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그보다 많이 소비한다면 자본을 축적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국민소득 4만 달러라는 숫자에 만족하기 전에 물어야 한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남겼는가. 더 비싼 부동산인가, 더 커진 소비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가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자본인가.
부자는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저축한 사람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부유한 사회란 국민이 비싼 물건을 많이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현재의 생활을 누리면서도 미래를 위해 충분한 자본을 남길 수 있는 사회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부의 기준은 어쩌면 이처럼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