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상과 이스라엘 건국, 그리고 전후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전후는 오늘날의 국경과 국제 질서가 본격적으로 굳어진 시기였다. 독일과 한반도는 강대국의 점령과 협상에 따라 분단되었고, 중동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배가 남긴 경계 위에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더해졌다. 미국은 전후 국제기구와 경제·안보 체제를 주도하며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고, 이스라엘의 국제적 승인 과정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에는 주권과 민족자결의 원칙이 존재했지만 식민지와 위임통치 지역 주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는 않았으며, 외부 세력이 내린 결정의 비용은 전쟁·분단·난민·국경 분쟁의 형태로 후대에 남았다. 오늘날의 갈등을 이해하려면 현재의 국경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그어졌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은 1945년에 끝났지만, 그 전쟁이 남긴 질서는 오늘날까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바라보는 국경과 국가 체제, 국제기구와 동맹 구조의 상당 부분은 전쟁이 끝나던 무렵에 만들어졌다. 전후 세계는 폐허 위에서 새롭게 출발했지만, 그 출발선은 모든 민족과 주민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기보다 승전국과 강대국이 설계한 질서에 가까웠다.
전쟁 후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한반도에는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왔다. 이 임시적인 점령선은 결국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 진영이 형성되었고, 이후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통해 냉전의 블록이 제도화되었다.
이 시기는 미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으로 올라선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은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며 경제력과 군사력을 크게 확대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국제 연합,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달러 중심의 통화 체제 등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도하였다. 과거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과 프랑스의 힘이 약해지는 동안 미국은 전후 복구와 안보, 국제금융과 외교의 중심이 되었다.
중동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오늘날 중동 국가들의 기본적인 국경선은 대부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현지의 민족·종교·부족 관계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지역을 나누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경계는 이후 수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그 위에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더해졌다. 이스라엘은 19세기 말부터 이어진 시온주의 운동과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조직을 기반으로 건국되었다. 그러나 국제적 승인과 외교적 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미국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은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지지했고,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직후 신속하게 국가로 승인하였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미국의 결정만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영국의 위임통치, 유럽의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 시온주의 운동,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지지,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이 함께 작용했다. 특히 1947년 유엔 분할안이 제시한 경계가 그대로 오늘날의 이스라엘 국경이 된 것도 아니다. 실제 지배 영역은 1948년 전쟁과 이후의 전쟁, 휴전과 점령을 거치며 계속 달라졌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건국은 당시 세계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국제기구와 강대국이 특정 지역의 분할과 국가 수립을 논의했고, 그 결정의 영향을 직접 받는 주민들의 의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유대인에게는 오랜 박해 이후 민족국가를 세우는 과정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거주지를 잃고 난민이 되는 과정이었다. 하나의 민족에게 해방이었던 사건이 다른 민족에게는 상실과 추방으로 경험된 것이다.
이런 사례를 두고 당시에는 주권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확히는 국가 주권이라는 원칙은 존재했지만, 모든 민족과 주민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식민지 주민과 위임통치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토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강대국들은 주권과 민족자결을 말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다른 지역의 국경과 체제를 대신 결정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한반도와 독일의 분단, 중동의 국경선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외부 세력이 만든 결정의 비용을 현지 주민과 후대가 오랫동안 부담했다는 점이다. 국경을 그은 세력은 떠났지만, 그 선을 둘러싼 전쟁과 난민, 민족 갈등과 군비 경쟁은 남았다.
결국 20세기 중반은 식민통치와 세계대전의 상흔이 거대한 외부효과로 번져 나간 시기였다. 승전국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었고, 여러 민족은 독립국가를 세웠지만, 그 과정은 공정하거나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국경과 분쟁을 이해하려면 현재의 국가들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그 국경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그어졌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후 처리는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갈등은 어쩌면 20세기 강대국들이 남겨 놓은 미결산서를 후대가 대신 갚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