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흥망성쇠: 합병·인수·파산으로 다시 그린 금융지도

20세기 후반 월스트리트에는 White Weld, First Boston, Kidder Peabody, Paine Webber, Salomon Brothers, Smith Barney, Dean Witter, Bear Stearns, Lehman Brothers, Merrill Lynch처럼 지금은 사라졌거나 다른 회사에 흡수된 유력 금융사들이 즐비했다. 이들의 역사를 따라가면 White Weld는 Merrill Lynch를 거쳐 Bank of America로, First Boston과 PaineWebber·Kidder Peabody의 계보는 결국 UBS로, Dean Witter와 Reynolds는 Morgan Stanley로, Bear Stearns는 JPMorgan Chase로 이어진다. 반면 Lehman Brothers와 Drexel Burnham Lambert처럼 파산으로 해체된 회사도 있고, Goldman Sachs처럼 오랜 기간 이름을 유지한 곳도 있다. 결국 오늘날의 거대 금융그룹은 처음부터 거대한 단일 회사였던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경쟁자들의 사업·인력·고객·브랜드를 흡수하며 형성된 결과물이며, 월스트리트의 역사는 회사 이름의 생존보다 자본과 사업의 계승이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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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월스트리트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독립 증권사와 투자은행이 존재했다. White, Weld & Co., First Boston, Kidder Peabody, Paine Webber, Salomon Brothers, Smith Barney, Dean Witter, Bear Stearns, Lehman Brothers, Merrill Lynch 같은 이름들은 한때 각자의 간판을 걸고 자본시장의 중심에서 경쟁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낯선 이름도 많지만, 이 회사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의 대형 금융그룹들이 사실 수많은 옛 금융회사들의 합병과 흡수, 파산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White, Weld & Co.다. 한때 미국의 유력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였지만 1978년 Merrill Lynch에 인수되면서 독립적인 역사를 마쳤다. 그런데 Merrill Lynch 역시 영원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Bank of America에 매각되면서 결국 거대한 상업은행 그룹의 일부가 되었다. 반세기 정도의 시간만 압축하면 White Weld에서 Merrill Lynch로, 다시 Bank of America로 이어지는 계보가 만들어진다. 어느 시대에는 인수하는 쪽이었던 회사가 다음 시대에는 다시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것이 금융업의 역사다.

UBS의 계보를 보면 이런 현상이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과거에는 First Boston, Paine Webber, Kidder Peabody, Blyth Eastman Dillon 같은 회사들이 각각 독립된 경쟁자였다. Blyth Eastman Dillon은 PaineWebber로 들어갔고, Kidder Peabody 역시 결국 PaineWebber에 흡수됐다. 그리고 2000년 UBS가 PaineWebber를 인수했다. First Boston은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Credit Suisse와 결합하면서 Credit Suisse First Boston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았지만, 2023년 Credit Suisse가 UBS에 인수되면서 결국 이 계보마저 UBS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 서로 경쟁하던 여러 금융회사가 수십 년 뒤 하나의 거대한 금융그룹 안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Morgan Stanley의 역사도 비슷하다. Dean Witter와 Reynolds & Co.는 원래 별개의 회사였지만 1978년 합쳐져 Dean Witter Reynolds가 되었고, 1997년에는 Morgan Stanley와 합병했다. Smith Barney와 Harris Upham 역시 별개의 증권사였지만 합병을 거치며 Smith Barney 계열로 묶였고, 이후 Salomon Brothers와 결합해 Salomon Smith Barney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 사업들은 다시 Citigroup과 Morgan Stanley 등을 거치며 재편되었다. 지금의 Morgan Stanley를 하나의 연속된 회사로만 보면 보이지 않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옛 증권사의 사업과 고객, 인력이 그 안에 층층이 쌓여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 오랜 통합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Bear Stearns와 Lehman Brothers는 모두 오랜 역사를 가진 월스트리트의 대표 투자은행이었지만 마지막은 완전히 달랐다. Bear Stearns는 유동성 위기에 몰린 끝에 JPMorgan Chase에 인수되었다. 이름은 사라졌지만 조직과 사업의 상당 부분은 다른 금융회사 안에서 이어졌다. Lehman Brothers는 같은 해 파산했다. 이후 북미 투자은행 사업의 상당 부분은 Barclays가, 아시아와 일부 유럽 사업은 Nomura가 인수했다. 한 회사의 역사가 통째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과 사업, 거래관계가 여러 회사로 흩어져 살아남았다.

Burnham and Company의 운명도 흥미롭다. 이 회사는 여러 차례의 합병을 거쳐 훗날 Drexel Burnham Lambert의 일부가 되었다. Drexel은 1980년대 마이클 밀켄과 정크본드 시장을 앞세워 월스트리트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전성기는 길지 않았고 1990년 파산했다. 금융업의 역사에서는 규모가 커지는 것과 생존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회사가 불과 몇 년 뒤 흔적만 남기는 일도 반복됐다.

반대로 거의 같은 이름으로 살아남은 회사들은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Goldman Sachs가 대표적이다. Goldman Sachs는 오랜 기간 수많은 경쟁사 가운데 하나였지만 White Weld, Kidder Peabody, Salomon Brothers, Bear Stearns, Lehman Brothers 같은 동시대 경쟁자들이 독립회사로 사라진 뒤에도 자신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Goldman Sachs라는 이름이 특별히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회사가 성장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함께 경쟁하던 상당수의 이름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Oppenheimer와 Fahnestock의 역사는 회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사례다. 두 회사는 원래 전혀 별개의 증권사였다. 그런데 Oppenheimer의 사업이 CIBC에 인수된 뒤 2003년 Fahnestock Viner Holdings가 Oppenheimer의 미국 사업과 이름을 인수했다. 이후 Fahnestock은 자신의 회사 이름을 Oppenheimer로 바꾸었다. 법인과 사업의 계보를 따지면 Fahnestock의 후손인데, 현재 사용하는 이름은 Oppenheimer인 셈이다. 회사라는 존재가 법인인지, 브랜드인지, 인력인지, 고객관계인지에 따라 역사에 대한 답도 달라진다.

Paribas는 이름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보존한 사례다. 프랑스의 Paribas는 2000년 BNP와 합병해 BNP Paribas가 되었고, Paribas라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금융그룹의 이름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A. G. Becker처럼 한때 독립적인 명성을 누렸던 투자은행은 여러 번의 합병과 매각을 거치며 결국 다른 금융회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떤 회사는 조직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고, 어떤 회사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사업과 인력이 다른 회사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이런 역사를 따라가면 오늘날의 Bank of America, UBS, JPMorgan Chase, Morgan Stanley, Citigroup 같은 대형 금융회사를 단순히 하나의 회사라고 보기 어려워진다. 각각의 내부에는 과거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수많은 금융회사의 흔적이 겹겹이 들어 있다. White Weld는 Merrill Lynch를 거쳐 Bank of America로, First Boston은 Credit Suisse를 거쳐 UBS로, PaineWebber와 Kidder Peabody 역시 UBS로, Dean Witter와 Reynolds는 Morgan Stanley로, Bear Stearns는 JPMorgan Chase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뿌리에서 출발한 수많은 회사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몇 개의 거대한 금융그룹으로 압축된 것이다.

결국 월스트리트의 역사는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단순한 경쟁사가 아니다. 한 시대의 승자가 다음 시대에는 인수 대상이 되고, 파산한 회사의 사업이 경쟁사 안에서 다시 살아나며, 사라진 회사의 이름이 다른 회사에 의해 부활하기도 한다. 오늘날 거대한 금융회사들도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던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경쟁자들의 사업과 인력, 고객, 브랜드를 흡수하며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오래된 금융회사들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해진다.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은 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자본과 사업이다. 간판은 사라지고 법인은 합쳐지지만, 그 회사가 만들었던 고객관계와 금융기법, 인력과 거래망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계속 움직인다. 한때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이름들이 사라지고, 그 잔해 위에서 새로운 거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야말로 현대 금융사의 가장 흥미로운 풍경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