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고집 사이, 트럼프의 이란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경제적 비용을 감수하고 있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호르무즈 불안, 고유가, 비축분 소진, 요격탄 부족, 동맹의 부담과 중국과의 경쟁이라는 비용도 함께 커지고 있다. 결국 미국에 필요한 것은 이란을 계속 때리는 것이 아니라 핵 문제와 호르무즈를 안정시키고, 이란이 더 이상 미국의 지속적인 비용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야구에서 감독이 부진한 선수를 계속 기용하려면 관중과 구단의 신뢰가 필요하듯, 트럼프 역시 미국 국민에게 자신의 전략에 목적과 출구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11월 중간선거는 미국 유권자가 트럼프에게 남은 이닝을 얼마나 더 맡길 것인지 판단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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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야구에는 ‘믿음의 야구’라는 말이 유행했다.

타자가 몇 경기 안타를 치지 못해도 감독은 다시 선발로 내보낸다. 투수가 한두 번 무너져도 다음 등판을 맡긴다. 당장의 성적보다 그 선수의 능력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믿음은 선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감독에게도 필요하다.

선수가 부진할 때 계속 기용하는 감독을 보며 프런트와 관중은 기다린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감독에게 생각이 있겠지.

저 선수를 계속 쓰는 이유가 있겠지.

결국 시즌 전체를 보고 내린 판단이겠지.

그래서 믿음의 야구가 성립하려면 두 개의 믿음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감독이 선수를 믿어야 하고, 관중과 구단은 그런 감독을 믿어야 한다.

지금 미국과 트럼프를 보면서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는 이란을 상대로 꽤 큰 베팅을 하고 있다.

전쟁은 이미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미군은 항모전단을 계속 중동에 붙잡아두고 있다. USS 조지 워싱턴과 USS 조지 H.W. 부시가 작전을 지원하고 있고, USS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중동 배치를 위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존 전력의 교대 성격도 있지만 한동안 3개 항모전단이 중동 작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의 군사력이다.

돈도 쓰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은 8월 1일까지 이란전으로 국방부가 추가 부담한 비용을 약 380억 달러로 추산했다. 더 중요한 것은 돈보다 기회비용이었다. 대량으로 사용한 미사일방어 요격탄 때문에 미국의 재고가 수년간 줄어들 수 있으며, 중국처럼 대량의 탄도·순항미사일을 보유한 국가와 충돌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CBO는 지적했다.

미국이 돈이 없어서 이 전쟁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항모도 더 보낼 수 있다.

미사일도 다시 만들 수 있다.

비축유도 풀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상대해야 할 곳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돈이고, 미사일이고, 항모이며, 시간이라는 데 있다.

나는 미국의 장기적인 경쟁상대는 결국 중국이라고 본다.

그 관점에서 미국이 원하는 이란의 모습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란은 미국과 동맹국을 직접 위협할 정도로 강해서는 곤란하다.

핵무기를 갖고 호르무즈를 마음대로 흔드는 국가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란을 완전히 파괴해 미국이 또다시 중동의 끝없는 혼란을 관리해야 하는 것도 미국의 국익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란이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도 미국에는 좋은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편한 이란은 의외로 단순하다.

미국에 위협은 되지 않으면서, 석유를 팔고 먹고살며, 중국에만 의존하지 않는 이란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6월 미국과 이란이 MOU를 체결한 직후 트럼프가 했던 말이 이 전쟁의 종착점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힌트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은 이란의 석유판매 제재를 일시적으로 풀고 동결자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트럼프와 밴스는 그 돈으로 미국산 옥수수와 밀, 대두를 사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란은 그런 구매의무가 합의에 포함됐다는 미국 측 설명을 부인했지만, 적어도 트럼프가 그리고 있던 그림은 명확했다.

이란이 석유를 판다.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산다.

핵 위협은 낮춘다.

호르무즈를 열어둔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돈의 일부는 미국 농민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이란을 없애는 그림이 아니다.

다시 거래하는 그림이다.

그 전에 이란의 중요한 생명선 하나를 미국이 실제로 약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제재를 피해 중국에 원유를 팔고, 그 대가를 중국 금융망 내부의 크레디트와 상품으로 돌려받던 구조가 있었다. Reuters가 취재한 우회결제 구조만 해도 최근 1년 동안 약 20억~25억 달러가 움직인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 미국의 봉쇄가 강화되면서 9월 중국으로 향한 이란산 원유는 하루 약 59만 배럴까지 줄었고 중국의 독립 정유업체들은 이라크와 카타르산 원유를 사기 시작했다.

미국이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한 발 물러나게 했다.

문제는 그 대가다.

전쟁 전에도 이란은 호르무즈를 막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협이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세계는 이란이 호르무즈를 흔들었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았다.

지금은 걸프 지역의 원유 수출량이 상당히 회복됐는데도 브렌트유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중동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초대형 유조선 운임은 하루 120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공급량뿐 아니라 보험료와 운송비, 정제시설 손상과 위험 프리미엄이 가격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한 공격과 위협도 전쟁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늘었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이란의 경제적 후방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란이 가지고 있던 호르무즈라는 지리적 자산의 가격을 크게 올려주었다.

더 곤란한 것은 전쟁이 오늘 끝난다고 모든 것이 내일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선박보험회사는 휴전문 한 장을 보고 바로 전쟁위험 할증료를 없애지 않는다.

유조선 회사 역시 며칠 조용했다고 바로 예전 항로와 가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략비축유를 꺼내 썼다면 다시 채워야 한다.

사용한 요격탄은 다시 생산해야 한다.

지쳐버린 항모와 승조원도 정비와 휴식이 필요하다. 링컨 항모전단은 이번 작전에서 260일이 넘는 장기배치를 마치고 이제야 귀환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휴전이 아니다.

핵 문제를 검증 가능한 형태로 묶고, 호르무즈가 다시 정상적인 바다가 되며, 이란을 계속 감시하기 위해 항모 두세 척을 상시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도 이란은 계속 비용으로 남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믿음의 야구’가 나온다.

감독이 투수를 믿고 한 타자를 더 상대하게 할 수 있다.

한 이닝을 더 맡길 수도 있다.

그런 결정은 감독의 권한이다.

하지만 관중이 그 결정을 받아들이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감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보여야 한다.

5회에 흔들리는 선발을 계속 던지게 하는 것이 7회까지 맡길 계산인지, 불펜을 아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투수를 바꾸기 싫어서 버티는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미국 국민이 트럼프에게 보내는 신호를 보면 무조건적인 신뢰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Reuters/Ipsos 조사에서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2%였다. AP-NORC 조사에서는 생활비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이 17%, 이란 문제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28%였다. 이것은 ‘신뢰’를 직접 물은 수치는 아니지만, 적어도 관중석이 편안한 상태는 아니라는 강한 신호다.

디젤 가격이 갤런당 6.50달러 안팎까지 뛰자 트럼프는 비도로용 적색 경유를 도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고 세금 납부도 유예했다. G7 국가들에게는 비축유와 디젤을 더 풀라고 압박했다.

그만큼 미국 정부도 관중석의 반응을 보고 있다.

11월 3일 중간선거는 그래서 흥미롭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은 대통령을 다시 뽑지 않는다.

대신 감독에게 남은 경기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맡길지를 결정한다.

공화당 의회를 유지하면 트럼프에게 더 넓은 작전공간이 생긴다.

반대로 의회가 분점되면 예산과 청문회, 조사와 전쟁권한을 통해 그 공간은 줄어든다.

어느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이란전에 대한 국민투표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지금 감독에게 얼마나 많은 이닝을 더 맡길 의향이 있는지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에게 가장 좋은 결과는 단순히 이란을 더 때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항모가 세 척 있다는 사실은 세 척을 모두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에게 사용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가장 값싼 승리일 수 있다.

이란이 핵 문제에서 물러서고 호르무즈가 정상화되고, 미국이 제재를 단계적으로 풀어 이란이 다시 석유를 팔고 농산물과 상품을 사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미국은 중동에서 자원을 회수해 중국과의 경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용한 돈과 군사력은 비싼 협상비용이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반대로 항모를 더 보내고, 다시 공격하고, 이란은 다시 보복하고, 호르무즈 위험은 남고, 동맹국에는 비용을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믿음과 고집의 경계가 흐려진다.

야구에서도 감독에 대한 믿음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연패가 계속되는데도 같은 타선을 고집하고, 같은 투수가 계속 얻어맞는데도 교체하지 않고, 경기 뒤에는 늘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느 순간 관중은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언제 이기는가.

그리고 도대체 어떤 상태가 되면 이겼다고 할 것인가.

트럼프의 이란전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미국은 이란을 상당히 약화시켰다.

중국과 연결된 석유 통로도 흔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호르무즈의 위험을 현실화했고, 유가와 운송비를 올렸으며, 요격탄과 항모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핵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승부수가 아니라 어쩌면 경기의 끝을 설계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믿음의 야구에서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선수를 끝까지 믿는 것이 아니다.

언제 기다려야 하고,

언제 바꿔야 하며,

언제 충분히 이겼다고 판단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미국 국민이 11월 3일 판단하는 것도 결국 그것에 가까울 것이다.

트럼프에게 한 이닝을 더 맡길 것인가.

그 질문의 답은 이란보다 오히려 미국이 먼저 보여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