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네 가지 선택지, 모두 비싸지고 있다
트럼프의 ‘이란을 쓸어버리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는 단기적으로는 지지층 결집과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실제 군사행동이 반복되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커진다. 전쟁비와 탄약 재고 소진, 에너지 가격과 물가 부담뿐 아니라, 이미 치른 비용 때문에 협상에서 더 큰 성과를 요구받게 되면서 전쟁을 끝내는 정치적 비용까지 상승한다. 결국 트럼프의 사지선다는 네 개의 고정된 선택지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각각의 가격표가 비싸지는 선택지이며, 특히 ‘한 번 더 압박하면 된다’는 판단이 반복될수록 장기 소모전으로 빠질 위험도 커진다.
트럼프 앞에는 여전히 네 개의 답안이 있다.
① 쓸어버린다. ② 지금 조건으로 협상을 시작한다. ③ 한 번 더 압박해 조건을 낮춘다. ④ 상대가 먼저 견디지 못할 때까지 버틴다.
어제까지 이 사지선다의 문제는 어느 답이 현실적인가에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른 문제가 더 선명해지고 있다.
답을 늦게 고를수록 선택지의 가격이 올라간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된 뒤 8월 1일까지 미 국방부가 추가로 부담한 비용을 약 380억 달러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사용한 탄약과 장비 보충, 추가 비행과 작전, 연료비 등이 들어간다. 전투가 계속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돈만의 문제도 아니다.
CBO가 더 크게 지적한 것은 기회비용이다.
이란의 미사일을 막는 과정에서 미국은 상당한 양의 미사일방어 요격탄을 사용했다. 이 재고를 다시 채우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CBO는 중국처럼 대량의 탄도·순항미사일을 가진 상대와 다른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 부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SIS 역시 이란전에서 사용한 패트리엇, THAAD, 토마호크 등 핵심 무기의 재고를 복구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니까 지금 트럼프가 고르는 것은 단순히 네 개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오늘 하나를 고르면 내일 나머지 세 개의 가격도 달라진다.
1. 쓸어버린다
‘쓸어버린다’는 선택에는 분명한 정치적 매력이 있다.
복잡한 협상 조건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버티면 더 강하게 공격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현재 미국 여론을 봐도 강경한 군사행동 자체가 트럼프의 전체 지지도보다 특별히 더 인기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1일 발표된 Reuters/Ipsos 조사에서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2%였다. 이란 공습 지지는 34%였다.
2%포인트 차이는 ±3%포인트인 조사 오차범위 안이기 때문에 두 수치의 우열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트럼프라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이란을 공격하는 행위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강하게 때린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독립된 정치적 효용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한 번의 공격이 끝이 아닐 때다.
공격할 때마다 돈이 든다.
미사일을 쓰면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란이 보복하면 또 요격해야 한다.
중동에 전력을 더 배치하면 다른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의 여유도 줄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더 강하게 공격했는데도 이란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다음 공격은 이전 공격보다 더 강해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설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어버린다’는 선택의 비용은 공격 당일의 폭탄값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공격의 문턱을 스스로 높이는 비용까지 포함한다.
처음에는 가장 단순한 선택이지만 반복될수록 가장 많은 후속 선택을 요구하는 답안이 된다.
2. 협상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두 번째 선택지도 비싸진다.
여기서 드는 비용은 주로 정치적 비용이다.
전쟁 초기에 협상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필요한 압박을 가했고 협상을 시작한다.”
그러나 6개월, 7개월을 싸우고 수백억 달러를 쓴 뒤 같은 조건으로 협상한다면 질문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엇을 얻었는가.”
이미 치른 비용이 클수록 협상에서 얻어야 할 성과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380억 달러를 쓰고도 합의할 수 있다.
500억 달러를 쓰고도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가 커질수록 미국 정부가 국내에 설명해야 할 합의의 최소가격도 함께 높아진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피해가 커질수록 이란 지도부 역시 국내에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전쟁 비용은 단순히 양쪽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타협할 수 있는 공간도 좁힌다.
전쟁 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합의가 전쟁 뒤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합의가 될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 때문에 반드시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이미 치른 비용이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된다.
전쟁을 오래 할수록 평화의 가격도 올라가는 이유다.
3. 한 번 더 밀어본다
그래서 세 번째 답안이 가장 중요해진다.
전쟁을 끝낼 생각은 있다.
다만 지금 끝내지 않는다.
한 번만 더 압박하면 조건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선택은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추가 압박이 상대의 계산을 바꿀 수도 있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다.
한 번 더 공격했는데 이란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미국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방금 전보다 조건이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하거나,
다시 한 번 더 압박하거나.
첫 번째를 택하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렇다면 직전 공격은 왜 했는가.”
그래서 두 번째를 선택할 유인이 생긴다.
그리고 또 실패하면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이것이 장기전이 만들어지는 방식일 수 있다.
누군가 처음부터 “7개월간 싸우자”고 결정할 필요는 없다.
한 달마다
“이번 한 번만 더.”
라고 결정하면 결과적으로 7개월 전쟁이 된다.
그리고 매번 들어간 비용 때문에 다음번에는 물러나기가 조금씩 더 어려워진다.
3번의 진짜 위험은 추가 공격 한 번의 비용이 아니다.
추가 공격이 그 다음 결정을 더 비싸게 만든다는 데 있다.
현재 미국이 사용하는 미사일방어 무기가 대표적이다.
요격탄 한 발을 사용하면 당장의 공격은 막는다.
그러나 그 한 발은 향후 몇 년 동안 다른 전쟁에서 사용할 수 없는 한 발이기도 하다.
CBO가 이란전의 핵심 기회비용으로 요격탄 재고를 꼽은 이유다.
전쟁에서 오늘의 군사적 효과와 내일의 전략적 비용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4. 결국 버틴다
네 번째 선택지는 흔히 현상유지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크게 바꾸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전에서 현상유지는 공짜가 아니다.
CBO의 계산대로라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전비와 탄약 보충비가 계속 발생한다.
동시에 호르무즈와 중동의 에너지 공급 차질은 미국 국내 물가로 연결되고 있다. CBO 역시 전쟁의 주요 경제적 충격으로 석유·천연가스 운송 감소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지목했다.
이 비용은 이제 미국 정치에도 나타나고 있다.
Reuters/Ipsos 조사에서 트럼프의 생활비 대응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17%였다.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생활비 대응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처음 앞섰다.
같은 조사에서 82%는 이란전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전쟁을 지지했던 공화당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오와의 애슐리 힌슨과 미시간의 마이크 로저스 등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은 21일 이란전의 신속한 종료를 요구했다. 힌슨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도 트럼프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려는 하원 조치에 반대했지만, 이제는 유권자들이 주유소와 계산대에서 전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공화당 하원의원들도 전쟁 권한 제한 표결에서 기존 입장을 바꿨다.
이것이 미국 정치 전체가 전쟁에서 돌아섰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묻는다.
“미국이 강하게 대응했는가.”
시간이 지나면 묻는다.
“그래서 언제 끝나는가.”
더 지나면 질문은 다시 바뀐다.
“얼마나 들었는가.”
“기름값은 왜 올랐는가.”
“사용한 무기는 언제 채울 수 있는가.”
“다른 전쟁이 터지면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시간이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의 비용 항목이 하나씩 늘어난다.
처음에는 군사비였다.
그 다음에는 탄약 재고가 들어왔다.
에너지 가격이 들어왔다.
물가가 들어왔다.
중간선거가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협상에서 물러날 수 있는 공간까지 비용에 포함된다.
그래서 트럼프의 사지선다는 처음과 같은 사지선다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네 개다.
① 쓸어버린다. ② 협상한다. ③ 한 번 더 압박한다. ④ 버틴다.
그러나 2월의 ①과 9월의 ①은 가격이 다르다.
2월의 ②와 9월의 ②도 다르다.
그리고 오늘의 ③을 선택하면 한 달 뒤 ②와 ④의 가격 역시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여기에 ‘쓸어버린다’는 말의 정치적 역설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가장 단순하다.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복잡한 타협보다 설명하기 쉽다.
대통령 자체에 대한 지지와 별개로 군사행동에 지지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상대가 굴복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계산은 반대로 움직인다.
공격할수록 이미 투입한 돈이 늘어난다.
사용한 무기가 늘어난다.
원하는 협상 성과의 문턱이 높아진다.
국내에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리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타협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가 마주한 문제는 단순히 어떤 답을 고를 것인가가 아닐 수 있다.
답을 고르지 않는 동안에도 답안의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쓸어버린다’는 말은 오늘의 정치에는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반복할수록 내일의 선택지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비싸진다.
전쟁의 장기적 비용은 전쟁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돈만이 아니다.
전쟁을 끝내는 데 필요한 가격까지 함께 올라간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