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쓸어버릴’ 수 없다면…트럼프에게 남은 세 가지 카드
트럼프가 이란 대응을 두고 고민하는 선택지는 결국 네 갈래로 압축된다. 이란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군사적 선택, 현재 이란이 제시한 조건을 받고 협상장에 들어가는 선택, 추가 압박으로 협상 조건을 미국 쪽으로 더 끌어오는 선택, 그리고 어느 쪽이 먼저 한계에 도달하는지 버티는 소모전이다. 문제는 이란 역시 이미 공개 요구에서 일부를 줄인 만큼 더 물러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이 추가 압박으로 이란의 입장을 바꾸지 못한다면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장기전으로 넘어간다. 결국 트럼프의 고민은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협상 가격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더 깎으려다 시간을 소모할 것인지에 가깝다.
트럼프가 고민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폭스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이란 문제를 두고 ‘결정 모드(decision mode)’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가 입에 올린 선택지는 거칠었다. 이란을 쓸어버리는 것, 경제적으로 고사시키는 것, 그리고 합의하는 것. 그러면서도 유엔총회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은 열어뒀다.
언뜻 보면 세 가지 선택지다.
하지만 지금의 전쟁 상황을 놓고 보면 실제 트럼프 앞에는 네 개의 답안이 놓여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① 쓸어버린다. ② 지금 이란이 내놓은 조건을 받고 협상을 시작한다. ③ 한 번 더 압박해 협상 조건을 미국 쪽으로 당긴다. ④ 어느 쪽이 먼저 견디지 못하는지 계속 버텨본다.
사지선다다.
첫 번째부터 보자.
1. 정말 쓸어버린다
미국이 이란에 막대한 군사적 피해를 입힐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 방공망과 군사시설을 추가로 파괴하는 것과 이란이라는 국가를 굴복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쓸어버린다’의 목표가 이란의 항복이나 정권교체라면 결국 질문은 지상으로 내려온다.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는 누가 이란을 통치할 것인가. 새 정권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혁명수비대와 각종 무장세력이 저항을 시작하면 누가 그 넓은 국토를 통제할 것인가.
최근 CSIS 분석은 이란의 면적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합친 것보다도 크고, 인구가 약 9천300만 명에 달하며, 정규전 이후 혁명수비대가 장기적인 게릴라전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미국에는 이미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기억도 있다.
미군은 2021년 8월 30일 마지막 병력을 철수시키며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을 끝냈다.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미국이 원하는 정치질서를 만들어 유지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따라서 미국이 이란을 더 강하게 때릴 수 있느냐와 이란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느냐는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충분히 가능한 군사옵션이다.
후자는 성공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점령과 주둔, 치안과 반군 대응이라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쓸어버린다’는 말은 위협으로서는 강하지만, 정치적 목표까지 포함한 완전한 승리의 방법으로 보면 선택지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2. 이란이 만든 문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는 이란이 제시한 조건을 대체로 받아들이고 협상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란이 지금 미국에 핵합의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모흐센 레자이는 카타르를 통해 미국에 조건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공개한 것은 모든 전선에서의 전쟁 종료, 동결된 이란 자금의 해제, 미국의 해상봉쇄 종료다. 이란은 총 7개 조건을 전달했다고 했지만 나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거래의 최종가격이 아니다.
협상장 입장료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고농축 우라늄이나 국제원자력기구의 검증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 다음 협상에서 다시 가격을 정해야 한다.
미국에는 아직 줄 카드도 남아 있다. 석유와 금융을 둘러싼 각종 제재, 2차 제재, 장기적인 경제관계와 안보문제 등이 다시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 6월의 MOU도 바로 이런 순서의 문제가 중요했다. 당시 미국과 이란은 60일간 후속협상을 진행하는 틀을 만들었고, 미국 당국자도 각 조치를 어떤 순서로 이행할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두 번째 선택지는 미국이 모든 카드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전쟁을 끝내는 카드와, 이후 핵협상에서 사용할 카드를 분리하는 선택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그 입장료가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한 번 더 밀어본다
그래서 가장 유혹적인 답안이 세 번째다.
조금만 더 때리고, 조금만 더 봉쇄하고, 조금만 더 경제적으로 압박하면 이란이 협상장 입장료를 낮추지 않을까.
트럼프가 지금 군사적 파괴와 경제적 고사, 합의를 동시에 언급하는 것도 이 틀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합의하지 않아도 된다.”
이 메시지를 최대한 크게 보여준 뒤 협상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란도 이미 이 계산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20일 한편으로는 출구 없는 장기 소모전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했다. 이란은 싸움과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여기에서 양측의 보상심리가 충돌한다.
이란은 지난달까지 배상 문제를 포함한 더 많은 요구를 내놓은 바 있다. 현재 공개된 세 조건에는 배상 요구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비공개된 나머지 네 조건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란이 배상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문턱은 이전보다 좁아졌다.
그 상태에서 미국이 다시 말한다.
“여기서 하나 더 빼라.”
이란 지도부에는 간단한 문제가 생긴다.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미국의 봉쇄를 견디고, 요구사항까지 줄였는데 여기서 또 물러난다면 국내에는 무엇을 설명할 것인가.
미국도 마찬가지다.
7개월 가까이 전쟁을 하고 돈과 탄약을 소모한 뒤 전쟁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으로 돌아간다면 미국 역시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전쟁에서는 종착점만큼 출발점이 중요하다.
1부터 100까지의 선을 그어 1을 이란의 완승, 100을 미국의 완승이라고 해보자.
실제 타협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 전 출발점이 50이었다면 미국은 55에서 끝나는 것만으로 만족하기 어렵다.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겨우 다섯 칸 움직였다는 질문이 생긴다.
이란도 45에서 끝난다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개월 동안 피해를 견딘 결과가 전쟁 전보다 더 불리한 조건이라면 “그동안 무엇을 위해 버텼느냐”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25에서 75 사이에는 현실적인 타협점이 많이 존재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양측 모두 만족하기 어렵다.
25 아래나 75 위라면 한쪽이 확실하게 이겼다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 영역은 상대방의 완전한 패배 없이는 만들기 어렵다.
결국 현실적인 합의가 가능한 영역과 정치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영역이 서로 어긋난다.
이것이 현재 협상의 가장 큰 문제다.
4. 결국 버틴다
그래서 세 번째가 통하지 않으면 네 번째가 남는다.
시간이다.
미국은 이란 경제가 먼저 버티지 못하기를 기다린다.
이란은 미국의 전쟁비용과 국내 정치적 부담이 먼저 한계에 도달하기를 기다린다.
미국의 시간도 공짜가 아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란전쟁이 8월 1일까지 미 국방부에 약 38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 것으로 추산했다. 낮은 수준의 전투가 이어져도 매달 약 20억~30억 달러가 추가될 수 있으며, 사용한 미사일방어 요격탄 재고를 회복하는 데 적어도 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역시 경제적·군사적 피해를 계속 감당해야 한다.
결국 네 번째 답안은 어느 쪽에도 편하지 않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선택할 이유는 있다.
미국은 ‘조금만 더 버티면 이란이 50에서 55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란은 반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미국이 50에서 45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이란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정치적 시간도 계산할 수밖에 없다.
2026년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있고, 그 다음부터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후반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반드시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란으로서는 자신들의 경제적 시간이 다하기 전에 미국의 정치적 시간이 먼저 불리해질 가능성에 베팅할 유인이 있다.
결국 지금 트럼프의 사지선다는 묘하다.
1번은 말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실행하려면 전혀 다른 규모의 전쟁이 된다.
2번은 전쟁에서 빠져나갈 문이지만, 이란이 정한 입장료를 먼저 지불해야 한다.
3번은 그 입장료를 조금 깎아보는 방법이다.
그리고 3번이 통하지 않으면 4번이 된다.
문제는 이란이 이미 더 깎아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고민은 ‘이란을 쓸어버릴 것인가, 합의할 것인가’처럼 거창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훨씬 현실적인 질문이다.
지금 이란이 내놓은 가격을 받고 협상장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밀어붙여 가격을 깎아볼 것인가.
그리고 한 번 더 밀어붙였는데 이란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지막 답안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서로가 상대방의 시계가 먼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
전쟁에서 어느 한쪽이 완전히 이길 수 없고, 그렇다고 양쪽 모두 지금의 타협점을 승리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상황.
트럼프가 받아든 사지선다에서 어쩌면 가장 쉬운 답은 없다.
다만 오답 하나를 지우려다, 가장 긴 답안인 소모전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