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시진핑이 부러웠던 것인가?

트럼프의 대이란 전략 변화는 단순한 군사전술의 조정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판단과 미국의 제도적 의사결정 구조가 충돌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은 미국과 정면으로 싸워 이기기보다 경제제재와 해상압박을 버티면서 호르무즈와 유가, 중간선거를 지렛대로 미국 내부의 정치적 피로가 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과 참모들의 우려에도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강한 대통령을 원하는 트럼프에게 의회·법원·관료조직·선거라는 미국의 견제장치는 장애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미국 시스템의 본질이다. 결국 지금의 대이란 갈등은 미국과 이란의 국력 경쟁인 동시에, 트럼프식 대통령 리더십과 미국식 대통령제 사이의 긴장을 시험하는 싸움이 되고 있다.

들배지기 · 분석 · 현재 유효 · 공개 · 수정

트럼프는 시진핑이 부러웠던 것인가?

― 미국을 강하게 만들려는 대통령과, 대통령을 강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미국

트럼프의 충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가 진심으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한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정치적 성공과 미국의 성공을 사실상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지는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중동 정세를 지켜보면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하나 보인다.

트럼프는 자신의 판단과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판단을 얼마나 구별하고 있는가.

최근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는 분명한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은 이란을 상대로 군사공격과 경제제재, 해상압박을 병행해왔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대규모 군사행동을 서두르기보다는 이란의 경제적 고통이 누적되도록 두는 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트럼프 자신도 최근 미국이 이란 문제를 비교적 낮은 강도로 관리하고 있다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때려서 굴복시키려 했다면, 이제는 말려서 굴복시키려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군사전술이 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 트럼프가 원하는 시간표와 현실의 시간표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본격적인 군사행동에 들어갈 당시에는 지도부와 군사시설, 핵 및 미사일 능력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단기간에 이란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대규모 공습을 다시 확대하면 전쟁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반대로 현 수준의 봉쇄와 경제압박만 유지하면 이란이 언제 굴복할지 알 수 없다.

협상으로 빠르게 출구를 찾으려면 미국 역시 당초 내세웠던 목표 가운데 일부를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생긴다.

어느 쪽도 깨끗한 승리가 아니다.

그 사이 이란 내부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란의 국가안보와 혁명수비대 계열 핵심 인사들이 재배치되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경험한 원로 강경파들이 다시 주요 위치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모센 레자이와 같은 혁명수비대 출신 원로의 재등장은 단순한 인사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미국과의 대립을 일시적인 외교 갈등으로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혁명 이후의 체제 생존과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과의 장기 대립을 직접 경험한 세대다.

따라서 외부의 강한 압력이 반드시 이란 내부의 온건파를 강화하고 협상을 촉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공격 → 내부 결집 → 강경파 강화 → 대미 요구조건 상승 → 미국의 추가 압박

이라는 악순환이다.

이 점은 트럼프가 처음 기대했을 법한 그림과 상당히 다르다.

상대 지도부를 제거하고 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하면 충격을 받은 이란이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에 나올 것이라는 계산은 군사적으로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러나 국가와 체제는 반드시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최고지도자가 제거됐다고 해서 체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군사시설이 파괴됐다고 해서 정치적 의지가 함께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외부의 공격이 오히려 내부 권력을 더 강경한 방향으로 재편한다.

현재 이란의 대응에서도 그 모습이 나타난다.

이란은 미국과 정면으로 군사적 승부를 벌여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대신 미국보다 오래 버티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란이 가진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지리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다.

이란이 이곳의 선박 운항을 위협하거나 방해하면 미국 본토를 공격하지 않고도 국제 유가와 해운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

홍해와 걸프 지역으로 불안이 확산되면 미국과 동맹국들은 더 많은 함정과 항공전력, 방공자산을 에너지시설과 해상교통 보호에 투입해야 한다.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틀어막으면 이란은 세계의 원유 흐름을 불안하게 만든다.

미국이 시간을 무기로 삼으면 이란 역시 시간을 무기로 삼는다.

그래서 이 싸움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순수한 국력을 비교하면 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미국이다.

미국과 이란의 경제규모와 군사력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정치의 시간은 다르다.

이란 지도부는 정권을 유지하며 버티면 된다.

반면 트럼프에게는 중간선거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트럼프와 미국 시스템 사이의 엇박자가 중요해진다.

이란과의 충돌이 장기화하면 국제유가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정치 문제가 된다.

미군 사상자가 늘어나면 여론이 움직인다.

전쟁비용이 계속 누적되면 의회가 질문하기 시작한다.

공화당 의원들 역시 자신의 지역구와 중간선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란 문제를 둘러싸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우려와 반대가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민주당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 편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 당 의원이 반대하고, 참모가 정치적 위험을 경고하고, 외교·안보 관료조직이 장기적 비용을 이야기해도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한다면 정책의 중심은 조금씩 이동한다.

‘미국 시스템이 도출한 판단’에서

‘대통령 개인이 옳다고 믿는 판단’

으로 말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들의 지시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일도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필요한 리더십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반대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반대 의견을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거나 검증하는 정보로 보는 것과,

자신의 결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충성심 부족의 증거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에서 ‘시진핑’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트럼프가 중국식 정치체제를 원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트럼프 역시 미국의 선거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질문은 조금 다르게 던질 수 있다.

트럼프가 부러워했을 것은 시진핑이라는 사람보다 시진핑이 가진 의사결정 환경이 아니었을까.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미국 대통령처럼 다음 중간선거에서 자기 당이 몇 석을 잃을지를 계산하면서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없다.

자기 당 의원 몇 명의 이탈 때문에 정책이 흔들릴 가능성도 미국에 비해 훨씬 작다.

대통령의 명령을 법원이 중단하고, 의회가 예산을 막고, 야당이 청문회를 열고, 관료조직과 언론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식 정치의 마찰도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정의 속도만 놓고 보면 훨씬 간단하다.

결정한다.

명령한다.

집행한다.

반면 미국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면 바로 질문이 시작된다.

의회는 동의하는가.

법률적으로 가능한가.

예산은 있는가.

공화당 의원들은 따라오는가.

동맹국들은 협조하는가.

미국 유권자들은 그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트럼프에게는 이런 과정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관점에서는 정반대다.

그 장애물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애초부터 대통령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을 주면서도 전쟁과 예산에서 의회의 역할을 남겼고, 행정부의 결정은 법원의 심사를 받는다.

연방정부 내부에도 수많은 기관과 전문 관료가 존재한다.

느리고 답답하다.

그러나 그 답답함은 우연히 생긴 결함이 아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마찰이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언제나 훌륭한 대통령이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대통령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보다, 잘못된 대통령이 너무 많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상당한 제도적 에너지를 쏟았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정치의 엇박자는 시스템의 고장이 아니라 시스템의 기능이다.

이 문제는 최근 중동 안보질서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파키스탄 사이에서는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하나의 안보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세 나라의 이해관계는 동일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으로부터 자국의 에너지시설과 걸프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튀르키예는 이란뿐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경쟁,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 물류망과 경제권 확보까지 동시에 고려한다.

파키스탄 역시 사우디와의 군사관계뿐 아니라 이란과의 국경 안정, 경제적 지원, 자국의 안보환경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해서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변화가 미국에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이 중동질서를 압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면 지역국가들이 별도의 안보구조를 적극적으로 고민할 이유는 줄어든다.

반대로 미국이 이란과 장기전에 빠지고, 호르무즈와 홍해의 안전까지 완벽하게 보장하지 못한다면 지역국가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미국만 믿고 있어도 되는가.

미국이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동안 주변국들이 스스로의 안전망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미국의 군사력이 강하다는 사실과 미국의 지역질서 장악력이 강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같은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 다시 트럼프의 문제가 나온다.

트럼프는 강한 미국을 원한다.

그러나 강한 대통령과 강한 미국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상대를 강하게 때릴 수 있는 것은 단기적으로 힘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진짜 힘은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동맹국이 미국의 정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신뢰,

의회가 장기적으로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

군과 관료조직이 축적한 전문성,

대통령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정책의 연속성,

그리고 미국 내부에서 잘못된 결정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제도적 신뢰가 모두 미국의 힘이다.

개인의 결단력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이 자산들이 약해질 수도 있다.

현재 트럼프가 중동에서 직면한 문제도 여기에 있다.

가자,

레바논,

이란.

여러 전선을 동시에 관리하면서 중간선거 전까지 대규모 충돌을 정리하거나 최소한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들 필요가 있다.

완벽한 승리를 얻는 것보다 유권자들에게 전쟁이 통제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그러나 이란에서는 어느 선택도 간단하지 않다.

다시 대규모 공습을 하면 전쟁이 확대된다.

봉쇄와 경제제재만 유지하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란과 타협하면 처음에 제시했던 목표 가운데 일부를 낮춰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의 저강도 전략은 단순한 여유의 표현이라기보다 현실이 트럼프에게 강요한 전략적 조정일 가능성도 있다.

처음에는 지도부와 군사시설을 강하게 공격해 빠른 결론을 내려 했다.

충분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원유 수출과 자금줄을 조이는 경제압박을 강화했다.

그러자 이란은 호르무즈와 주변 해상교통을 지렛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미국과 이란 가운데 누가 더 많은 미사일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다.

이란 경제가 먼저 무너지느냐, 미국 정치가 먼저 지치느냐다.

바로 이 때문에 트럼프가 자기 당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란은 미국 항공모함을 격침시켜야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가를 올리고,

중동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미국 유권자들을 지치게 하고,

공화당 의원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백악관과 의회의 계산을 서로 다르게 만들면 된다.

이란의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승리의 형태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 전쟁을 지속할 정치적 합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트럼프를 이길 필요가 없다. 트럼프와 미국 시스템 사이의 거리가 벌어질 때까지 버티면 된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트럼프가 자기 당과 의회의 우려를 무시할수록 단기적으로는 대통령의 결단력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 그 결단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정치적 기반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트럼프가 의회의 반대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강한 지도자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장기간 전쟁을 수행하려면 결국 의회의 예산과 정치적 지지, 국민의 인내, 동맹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 시스템과 계속 충돌하면서 미국의 힘을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부러웠던 것인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부러웠던 것은 시진핑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정의 편리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대하는 의원을 설득할 필요가 없고,

다음 선거를 걱정하는 자기 당 정치인들과 타협할 필요가 없으며,

수많은 기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지도자의 판단을 곧바로 국가의 판단으로 만들 수 있는 편리함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바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든 나라다.

미국 대통령은 강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충분히 강하지 않다.

의회가 있고,

법원이 있고,

주정부가 있고,

관료조직이 있고,

언론이 있고,

선거가 있고,

심지어 자기 당 안에도 대통령에게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존재한다.

그것이 때로는 미국을 답답하게 만든다.

중국보다 결정이 느리고,

전쟁에서도 국내정치를 계산해야 하고,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대통령 마음대로 끝까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을 제거하는 순간 미국은 다른 나라가 된다.

따라서 지금 트럼프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엇박자를 단순히 ‘대통령과 야당의 갈등’이라고 보는 것은 부족하다.

때로는 트럼프 대 민주당이고,

때로는 트럼프 대 공화당이며,

때로는 트럼프 대 의회이고,

더 크게 보면

트럼프식 대통령제와 미국식 대통령제의 충돌이다.

그리고 이란은 그 틈을 보고 있다.

미국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력의 시간은 미국 편이다.

경제력의 시간도 미국 편이다.

군사력의 시간 역시 미국 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의 시간까지 미국 대통령 편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지금 트럼프의 대이란 전략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다.

그리고 어쩌면 트럼프가 지금 싸우고 있는 가장 어려운 상대는 이란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에게 시진핑처럼 행동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미국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