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질서로 돌아오지 않은 이란, 석유기업을 탓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이후 미국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자 엑손모빌과 셰브런을 향해 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했지만, 고유가의 근본 원인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불안과 원유 공급 차질에 있다. 이 상황을 중간선거를 앞둔 단순한 책임 전가로만 볼 수도 있으나, 6월 미국·이란 양해각서에 담긴 원유 제재 면제, 동결자산의 통제된 사용, 미국산 농산물 구매 조건과 중국에 대한 불개입 요구를 함께 보면 미국이 군사적 압박을 통해 이란을 자국이 관리할 수 있는 원유·금융질서로 복귀시키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압박한 뒤 협상 국면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이란의 군사적 무력화를 더 원했던 이스라엘과 금융·해협 통제권을 지키려 했던 이란은 서로 다른 종착지를 보고 있었다. 결국 출구전략은 어긋났고, 호르무즈 불안과 유가 상승은 석유기업의 이익, 미국 소비자의 부담, 트럼프의 선거 악재로 돌아왔다.
이란을 달러질서로 되돌리려던 구상과 어긋난 출구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엑손모빌과 셰브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중동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니 휘발유 가격을 낮춰 소비자에게 돌려주라는 요구였다. 친기업·친석유 정책을 내세워 온 트럼프의 평소 태도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장면이다.
보도된 시점에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다시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전쟁 직전보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엑손모빌과 셰브런은 2분기에 합산 약 270억 달러의 이익을 거뒀고, 이는 전년 동기보다 약 세 배 많은 금액이었다.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로 원유 가격과 정제마진이 오르면서 석유기업들이 큰 수혜를 본 것은 사실이다.
석유기업의 이익이 크게 늘었다고 해서 미국의 휘발유 가격을 이들 기업이 임의로 결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국제 원유가격과 공급 차질, 해상운송 위험, 정제시설 가동률과 재고가 함께 가격을 움직인다.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이었고, 석유기업들은 그 과정에서 높은 이익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트럼프가 언급한 일부 수치에도 과장이나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 두 기업 모두 큰 이익을 낸 것은 맞지만 모든 실적 지표가 시장 전망을 크게 웃돈 것은 아니다. 특정 기업이 전년보다 12배를 벌었다는 발언도 어느 기업의 어떤 재무지표를 가리키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석유기업의 전쟁 수혜라는 큰 흐름과 개별 수치의 정확성은 구분해야 한다.
현지 언론은 트럼프의 석유기업 압박을 11월 중간선거와 연결한다. 높은 휘발유 가격이 공화당의 선거 부담으로 작용하자,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기업의 과도한 이익 문제로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갤런당 4달러가 넘는 휘발유 가격은 트럼프와 공화당에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이 설명은 상당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책임 전가라는 정치적 해석만으로는 미국이 전쟁과 협상 사이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이란 원유가 어디로 수출되고, 판매대금이 어떤 통화와 금융망을 통해 움직이는지까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달러패권은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내세우기 어려운 목표다. 미국은 핵 비확산이나 동맹 방어, 항행의 자유를 군사행동의 명분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원유 거래와 국제결제에서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압박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꺼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달러질서가 미국의 전략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달러의 지위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제무역의 결제 관행, 미국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권, 달러 청산망, 자산 동결과 제재를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함께 뒷받침해야 한다. 달러는 미국이 가진 가장 큰 전략적 자산 가운데 하나이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 지위도 유지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6월 미국과 이란이 마련한 양해각서의 경제 조항은 주목할 만하다.
양해각서에는 이란산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출을 허용하고, 그에 필요한 은행거래와 보험, 운송에 대해서도 미국이 제재 면제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미국은 이란의 동결자산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절차에도 합의했다. 이란을 계속 고립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원유와 금융거래를 공식시장에 복귀시키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란이 자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완전히 풀어주는 방식과는 달랐다. 트럼프는 동결자산을 미국이 통제하는 에스크로 계좌에 넣고, 이란이 그 돈으로 미국산 옥수수·밀·대두와 식품, 의약품을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즉각 반발하며 자금의 사용처는 이란이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미국이 제안한 구조는 이란 원유의 수출을 허용하되, 그 수익이 미국의 제재 허가와 금융감독을 거쳐 미국 상품 구매로 다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달러 결제 자체가 양해각서에 명시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이란의 원유대금이 중국과 연결된 제재회피 금융망이 아니라 미국이 감독할 수 있는 공식 결제질서 안에서 움직이게 하려는 성격은 분명히 읽힌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도 이러한 해석에 단서를 제공한다. 트럼프는 6월 20일 공개 발언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중국의 높은 의존도를 언급하며 말했다.
“중국은 원유의 50%를 해협에서 얻지만 관여하지 말라고 했죠. 시진핑 주석은 그러지 않겠다고 했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이 발언의 전략적 의미는 작지 않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이자 이란이 미국의 금융제재를 우회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경제적 통로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이란을 압박하더라도 중국이 원유 구매와 금융·물자 지원을 확대하면 압박 효과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중국에는 호르무즈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이란에는 원유 수출과 동결자산 사용을 허용하는 대신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도록 제안한 행동을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이란의 버팀목 역할을 확대하지 못하게 한 뒤, 이란의 원유와 자금 흐름을 미국이 관리할 수 있는 경제질서로 되돌리려 했다는 해석이다. 중국 역시 에너지 수입을 위해 호르무즈의 정상화를 원했기 때문에 일정 부분 미국과 이해가 일치했다.
이 관점에서는 미국이 이란에 가장 강경한 이스라엘과 굳이 군사행동을 함께한 이유도 다르게 보인다.
미국의 목적이 이란의 완전한 파괴였다기보다 이란의 협상 비용을 최대한 높이는 데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이 계속 저항하면 핵·군사시설과 경제기반이 훼손되고, 협상을 선택하면 제재 완화와 원유 수출 재개를 얻을 수 있는 구도다.
트럼프의 행동은 위협을 극대화한 뒤 거래할 수 있는 시점에 갑자기 출구를 찾는 방식으로 자주 나타난다. 비판자들이 ‘TACO’라고 부르는 후퇴의 패턴을, 트럼프 자신은 상대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를 버스에 비유하면 미국은 이스라엘과 같은 버스를 타고 이란을 향해 달려간 뒤, 군사적 압박이 충분해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함께 내리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미국은 제재 완화와 원유 수출, 동결자산을 협상 카드로 내놓고 이란을 미국이 관리할 수 있는 경제질서로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같은 종착지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이 원한 것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억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어 유가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이란산 원유를 통제된 조건으로 시장에 복귀시키고 전쟁을 끝내면, 트럼프는 군사적 승리와 경제적 거래를 동시에 주장할 수 있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대리세력, 장기적인 군사력 재건 능력까지 약화시키려 했다. 6월 합의 당시 이스라엘은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미국·이란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점령한 지역에서도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미국은 충분히 압박했으니 이제 거래로 전환할 때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봤다. 같은 버스에 탔지만 내릴 정류장이 달랐던 셈이다.
이란이 생각한 종착지도 미국과 달랐다. 이란은 원유 제재 해제와 동결자산 반환을 원했지만, 자금의 사용처를 미국이 통제하거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권한을 양보하는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제재 완화는 받되 경제주권과 해협의 통제력은 지키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역시 이란의 협상전략으로 보이기는 한다. 이란 입장에서 중요한건 핵을 지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호르무즈 통행료를 걷을 수는 없다.
결국 양해각서에는 세 주체의 서로 다른 기대가 동시에 들어갔다.
미국은 군사적 압박 뒤 경제적 거래를 원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적 무력화를 더 오래 지속하기를 원했다. 이란은 전쟁을 끝내고 제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지만 미국 중심의 금융통제에 완전히 복귀할 생각은 없었다.
이 충돌은 곧 드러났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과 철수 거부, 미국과 이란의 동결자산 사용권 다툼,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권에 관한 상반된 해석이 겹치면서 양해각서는 흔들렸다. 후속 최종협상으로 넘어가기는커녕 기존 양해각서를 복구하기 위한 별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미국의 구상이 예상대로 진행됐다면 이란 원유가 공식시장으로 돌아오고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면서 국제유가와 미국 휘발유 가격도 내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고 유가를 낮췄으며 미국 농산물 수출까지 늘렸다고 선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호르무즈의 불안은 계속됐고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다시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석유기업들은 높은 원유가격과 정제마진으로 막대한 이익을 냈지만, 미국 소비자는 전쟁 비용을 주유소 가격으로 부담하게 됐다.
트럼프가 이제 엑손모빌과 셰브런을 향해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장면은 단순한 기업 때리기로만 보기 어렵다. 중간선거를 앞둔 책임 전가인 동시에, 군사적 압박 뒤 이란 원유를 통제된 방식으로 시장에 복귀시키고 유가까지 낮추려던 구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궁극적인 목적이 달러패권이었다고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달러질서라는 표현은 미국의 공식 문서나 언론의 일반적인 해설에서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분석에서 제외할 필요도 없다. 이란산 원유의 제재 면제, 관련 금융거래 허용, 동결자산의 에스크로 관리, 미국산 농산물 구매, 중국의 개입 억제를 하나의 흐름으로 놓으면 미국이 이란을 단순히 굴복시키는 것보다 미국이 통제할 수 있는 원유·금융질서로 되돌리려 했다는 해석은 충분한 설명력을 갖는다.
다만 이것은 확인된 비밀계획이 아니라, 공개된 행동들을 연결해 제시하는 분석이어야 한다. 그 경계를 지킬 때 달러질서라는 관점은 음모론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한 현실적인 가설이 된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같은 버스에 탔다. 그러나 미국은 협상과 경제적 거래가 가능한 지점에서 내리려 했고, 이스라엘은 더 멀리 가려 했다. 이란 역시 미국이 정한 방식으로 승차할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미국은 이란을 달러 중심의 질서로 안정적으로 되돌리지 못했고, 전쟁이 끌어올린 기름값과 선거 부담을 함께 떠안았다. 최근 트럼프의 석유기업 압박은 바로 그 어긋난 출구전략이 미국 국내정치로 되돌아온 장면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