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조이려던 유가가 미국을 조이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대이란 압박은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핵·원유 문제를 겨냥했지만, 더 크게 보면 중국의 에너지 취약성과 비달러 거래망을 압박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전략비축유, 러시아산 원유, 전기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예상보다 높은 버티기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낮추며 협상력을 행사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중국의 호르무즈 의존도를 결정적 약점으로 판단했다면 계산이 틀렸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버티는 동안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미국 장기금리 상승이라는 비용은 미국으로 되돌아오며, 결국 중국의 에너지 약점을 찌르려던 전략이 미국의 더 민감한 약점인 국채시장과 달러패권을 압박하는 ‘카운터’가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행보를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국이 지키려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주가도, 유가도, 강달러도 그 자체로는 답이 아니다. 미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을 하나만 고르라면 결국 달러패권이다. 세계의 무역과 금융이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각국이 미국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보유하며, 미국이 필요할 때 달러 결제망을 제재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미국 패권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왜 유가 상승과 금융시장 불안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을 압박했는지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인 상대는 이란이었다.
하지만 전쟁 초기부터 트럼프는 이상할 정도로 중국을 자주 언급했다. 중국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전쟁 도중에는 직접 시진핑을 만났다. 이후 트럼프는 자신이 시진핑에게 이란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중국이 실제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공개적으로 자랑했다.
그렇다면 하나의 가설이 가능하다.
전쟁의 상대는 이란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관객은 중국이었던 것은 아닐까.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국가였다. 이란은 중국에 원유를 팔았고 중국은 할인된 가격에 이를 사들였다. 달러 금융망 밖에서 거래가 확대된다면 문제는 이란의 전쟁자금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와 이란, 중국을 잇는 비달러 에너지 거래가 하나의 생태계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것이 훨씬 근본적인 위협이다.
달러패권은 달러 가치가 계속 높아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미국 금융시스템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란의 원유 수출망을 차단하는 것은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었다.
이란의 돈줄을 끊고, 중국의 값싼 에너지를 차단하고,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는 비달러 거래망을 흔드는 것이다.
여기에 호르무즈가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이고 중동 원유에 대한 직접 의존도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은 중동산 원유에 훨씬 민감하다.
트럼프가 바라본 약점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에너지를 해외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중동 해역을 통과한다.
그렇다면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협이 아니라 중국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전략적 병목이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중국이 실제로 그만큼 취약했느냐다.
최근 중국이 러시아 원유 가격을 후려치는 모습을 보면 이야기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중국이 호르무즈 때문에 궁지에 몰렸다면 러시아에 가서 원유를 구걸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에 가까웠다.
러시아 역시 서방 제재로 구매자가 제한돼 있다. 인도 등 다른 구매자의 수요가 줄어들면 러시아가 중국을 더 필요로 한다. 중국은 비축유도 상당량 가지고 있고 당장 원유를 사지 않아도 버틸 시간이 있다.
그러면 협상 관계가 뒤집어진다.
중국은 러시아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안 사면 너는 누구에게 팔 것인가.”
호르무즈라는 중국의 약점을 공격했는데 그 압력이 러시아라는 더 약한 고리로 전가되는 것이다.
중국은 중동에서 부족해진 원유를 러시아에서 가져오면서 오히려 가격 협상력을 얻는다.
여기서 트럼프의 계산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다.
중국의 에너지 의존도는 분명 약점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그 약점을 알고 있었다.
러시아산 원유, 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 전략비축유, 석탄, 원전, 재생에너지, 세계 최대 규모의 전기차 산업까지 중국이 지난 수년간 벌여온 정책을 하나의 틀에서 바라보면 결국 에너지 안보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특히 전기차는 단순한 자동차 산업정책이 아니다.
석유를 전기로 대체할수록 중국은 말라카와 호르무즈에 덜 의존하게 된다.
중국은 자신의 약점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약점을 공격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사두었다.
그렇다면 시진핑이 이란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의 해석은 간단하다.
미국이 압박했고 중국이 물러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계산은 전혀 달랐을 수도 있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않고도 비축유를 풀고, 소비를 조절하고, 러시아산 원유를 사면서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면 굳이 전쟁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즉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이유가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서 베선트 재무장관의 최근 행보가 다시 중요해진다.
베선트는 엔화, 미국 국채금리, 달러, 금융시장 유동성을 끊임없이 관리하려 한다.
트럼프가 지정학적 압박을 극대화하면서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면 베선트는 그 충격이 미국 금융시장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막는다.
처음에는 이것을 완벽한 역할분담으로 볼 수도 있었다.
트럼프는 중국과 이란을 압박하고 베선트는 달러와 미국채를 지킨다.
하지만 전제가 하나 있다.
상대가 먼저 아파야 한다.
중국의 에너지 약점을 공격했는데 중국이 예상보다 오래 버틴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유가는 올라간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 물가가 다시 압박받는다.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지고 장기 국채금리가 올라간다. 강달러가 나타나고 엔화가 흔들린다. 일본의 미국채 보유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
결국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압력이 미국의 금융시장으로 되돌아온다.
카운터다.
트럼프가 중국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호르무즈가 실제로는 중국이 상당 기간 견딜 수 있는 약점이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게임의 성격은 달라진다.
중국이 얼마나 아픈지가 아니라 미국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과 다른 종류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약점이 원유라면 미국의 약점은 금리다.
중국은 비축유를 풀 수 있지만 미국은 국채시장의 신뢰를 마음대로 소비할 수 없다.
유가 상승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는 있다. 주가 조정도 감수할 수 있다. 달러가 조금 약해지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국채가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미국의 자금조달 비용이 구조적으로 올라가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달러패권의 심장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와 베선트가 정말 같은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아직 결론 내리기 어렵다.
처음부터 목표가 중국의 비달러 에너지 질서를 흔들고 달러패권을 지키는 것이었다면 둘의 움직임은 협동이다.
트럼프는 실물경제의 목을 조르고 베선트는 금융패권을 방어한다.
하지만 중국이 예상보다 잘 버티고 러시아의 약점을 이용해 값싼 원유까지 확보한다면 계산이 달라진다.
트럼프가 상대에게 가하려던 충격을 베선트가 미국 금융시장에서 대신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때부터는 역할분담이 아니라 부조화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앞으로 봐야 할 것은 트럼프의 발언 자체가 아니다.
중국이 실제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러시아산 원유를 어떤 가격에 확보하는지, 중국의 비축유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미국의 유가와 10년물 국채금리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패권국의 전략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상대의 약점을 잘못 판단했을 때다.
강대국끼리 싸울 때 약점을 찌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대비된 약점이었다면, 공격에 사용한 힘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트럼프가 중국의 에너지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찾아낸 것인지, 아니면 이미 중국이 보호대를 차고 있는 곳을 걷어찬 것인지.
지금부터의 유가와 금리가 그 답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