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여전히 최강이다, 그런데 혼자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지만, 패권국은 동맹과 해상로, 금융질서와 지역분쟁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구조적 부담을 안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정면충돌하기보다 이란·사우디·러시아·글로벌사우스 등과 선택적으로 관계를 넓히며 미국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지금의 전개를 하나하나 미리 계산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의 힘이 여러 지역에 분산되고 각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커질수록 중국의 공간이 넓어진다는 방향성은 오래전부터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패권의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장 강하면서도 더 이상 혼자 규칙을 정할 수 없게 되는 데 있다. 챔피언은 강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그 빈틈을 기다리기에 고독하다.
챔피언은 강하다.
그러나 챔피언에게는 약자가 갖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다.
모두가 챔피언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링에 올라오는 선수는 챔피언 한 사람만 연구하면 된다. 그의 장점과 약점, 오래된 습관을 분석하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챔피언은 다르다. 도전자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상대를 연구해야 하고, 자신의 벨트를 노리는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정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패권국은 강하다. 하지만 그 힘을 유지하려면 세계 곳곳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동맹국을 보호해야 하고, 해상로를 지켜야 한다. 국제금융질서를 유지해야 하고, 자신이 만든 규칙에 도전하는 국가에도 대응해야 한다. 어느 지역을 방치하면 신뢰가 흔들리고, 어느 지역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다른 곳에서 힘이 빠진다.
그래서 챔피언은 강하지만 고독하다.
그리고 역사상 영원한 챔피언은 없었다.
한나라는 약 400년을 이어갔고 로마의 패권도 끝났다. 대영제국도 한때 세계의 바다와 금융을 지배했지만 결국 미국에 중심을 내주었다.
그렇다고 미국의 시대가 곧 끝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자본시장을 갖고 있다. 2026년 1분기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도 57.13%였다. 달러의 경쟁자가 곧바로 미국을 대신할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패권에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없다.
중국도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권 가운데 하나였고 높은 수준의 기술과 행정체계를 가진 문명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서양과의 과학기술·군사력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졌고, 19세기 이후 중국이 겪은 역사는 중국인에게 ‘백년국치’라는 이름으로 기억됐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중국이 자신의 목표를 단순히 ‘성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부흥이라는 단어에는 전제가 있다.
처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간다는 것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근대의 몰락은 정상적인 역사가 아니라 예외적인 역사였고, 현재의 성장은 새로운 중국의 탄생이라기보다 과거의 위치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를 공산당의 역사와 완전히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한나라와 당나라와 명나라와 청나라가 모두 사라졌지만 중국이라는 역사적 공동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체제 역시 중국이라는 훨씬 긴 역사 위에 등장한 제도다.
공산당 역시 영원한 제도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100년을 갈 수도 있고 300년을 갈 수도 있다. 어느 정치체제도 천년의 미래를 보장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체제가 바뀐다고 중국이 자신의 국력과 문명적 위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중국의 장기적인 움직임을 공산주의라는 이념만으로 읽으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1978년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에 깊숙이 들어갔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됐다.
싼 노동력을 공급했고 외국 자본을 받아들였다. 미국 시장에 상품을 팔았고 서방 기업의 생산기지가 됐다.
한동안 중국은 세계 공급망의 아래쪽에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공장만 지은 것은 아니었다.
도로와 항만을 만들었고 대학을 키웠다. 기술자를 양성하고 제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외환을 축적했고 산업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중국은 더 이상 값싼 제품만 만드는 국가가 아니게 됐다.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통신장비에서 경쟁력을 키웠고 반도체와 인공지능, 항공우주 같은 분야에서도 미국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반세기짜리 하나의 계획표에 그려놓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전략에는 정확한 미래예측보다 방향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중동 경쟁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란을 압박해왔다.
핵 문제와 미사일, 지역 무장세력 문제를 놓고 경제제재와 군사적 억지, 협상을 반복했다.
미국이 이란 경제에 상당한 고통을 가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경제적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과 상대의 전략적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그 사이 중국이 등장했다.
중국은 이란을 대신해 미국과 싸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중국은 석유를 사고 미국의 일방 제재와 역외제재에 반대했다. 중국은 지금도 공식적으로 일방 제재와 ‘장팔관할’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란은 자신의 이유로 미국과 대립한다.
중국은 자신의 이유로 이란과 거래한다.
그런데 두 행동이 합쳐지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미국이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할수록 중국과의 거래를 막아야 한다.
그러면 이란 문제가 중국 기업의 문제가 되고 중국 금융기관의 문제가 되며 결국 미중 관계의 문제가 된다.
실제로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협상에서도 이란과 중국의 경제 관계는 중요한 의제로 올라와 있다.
중국이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정확히 계산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방향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미국이 제재라는 무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미국 금융망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동기는 커진다.
미국이 이란을 압박할수록 이란은 중국을 필요로 한다.
미국이 중동에 군사력을 투입할수록 미국의 자원은 그 지역에 묶인다.
그렇다고 중국이 중동의 대혼란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역시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국 가운데 하나다.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막히고 중동 원유 공급 자체가 무너지면 중국도 큰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중국에 가장 편한 상태는 어쩌면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일 수 있다.
이란은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도 이란을 방치하지 못한다.
그러나 갈등은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을 파괴할 만큼 폭발하지 않는다.
미국은 계속 비용을 부담한다.
중국은 직접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하면 중국은 중재자가 된다.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국이 중재한 것은 이런 독특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지금도 중국은 이란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걸프 국가들과 동시에 협력하고 있다.
여기서 사우디가 등장한다.
사우디는 중국의 동맹국이 아니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미국 안보체제의 핵심 국가였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는 더 중요한 국가다.
중국이 사우디를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빼앗아올 필요는 없다.
사우디가 미국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안보는 미국과 하고 석유는 중국에 판다.
미국 무기를 구입하면서 중국과 산업협력을 한다.
워싱턴과 전략관계를 유지하면서 베이징과도 협상한다.
이런 국가가 늘어나는 순간 국제질서는 이미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균열은 중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BRICS는 이제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에 더해 이란·이집트·UAE·에티오피아·인도네시아까지 포함하는 훨씬 넓은 집단이 됐다. 이 국가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고 중국의 지휘를 받는 진영도 아니다. 오히려 그 점이 중요하다.
새로운 세계질서가 반드시 ‘미국 진영 대 중국 진영’의 형태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중국에 필요한 것은 세계의 모든 국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게 만들면 된다.
달러를 없앨 필요도 없다.
세계 모든 나라가 위안화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달러가 압도적인 기축통화로 남더라도 일부 거래가 위안화와 유로, 지역통화와 새로운 결제망으로 이동하면 미국 금융제재의 독점력은 조금씩 줄어든다.
사우디를 중국 동맹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면 된다.
유럽을 미국에서 떼어낼 필요도 없다.
유럽이 자신의 산업과 안보, 기술 문제에서 미국과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면 된다.
이것은 패권국에게 상당히 곤란한 게임이다.
도전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유리한 문제만 골라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패권국은 그렇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흔들리면 대응해야 한다.
중동이 흔들려도 대응해야 한다.
대만해협이 긴장해도 대응해야 한다.
동맹국은 미국의 신뢰성을 바라보고 있고 경쟁국은 미국의 빈틈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 최강국의 힘은 크지만 그만큼 지켜야 할 것도 많다.
챔피언의 역설이다.
미국이 원래 합종연횡에 서툰 국가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냉전기의 미국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맹체제를 만들었다.
NATO를 만들었고 일본과 한국을 묶었으며, 닉슨과 키신저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는 거대한 삼각외교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챔피언이었던 국가에는 다른 위험이 생긴다.
자신이 만든 질서를 자신의 힘으로 유지되는 질서가 아니라 세상의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자신을 따르는 국가가 미국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인지, 미국의 가치와 질서에 동의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강대국이 빠지기 쉬운 오래된 함정이다.
중국도 이미 한 번 경험했다.
자신이 천하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은 서쪽에서 일어나고 있던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변화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미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언젠가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선다면 중국 역시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의 힘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챔피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지금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중국인이 특별히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다.
도전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도전자는 기다릴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이 다투면 지켜본다.
사우디가 미국에 불만을 가지면 다가간다.
러시아가 서방과 단절되면 거래한다.
글로벌사우스가 두 나라와 모두 관계하기를 원하면 굳이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챔피언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할 때마다 비용을 지불한다.
중국이 지금의 세계를 어디까지 예측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계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최소한 하나의 방향을 보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 중심의 단극질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
미국이 자신의 힘을 사용할수록 그 힘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도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 틈이 생길 때마다 중국이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 있으면 된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한무제가 장건을 서쪽으로 보낸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한나라는 흉노와 싸워야 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혼자 싸우고 싶지 않았다.
흉노에게 이미 원한을 가진 월지를 찾았다.
그때는 실패했다.
월지는 이미 너무 멀리 떠나 있었고 다시 흉노와 싸울 이유가 사라진 뒤였다.
결국 한나라는 직접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흉노와 싸웠다.
2천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다시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는 월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란도 있고 사우디도 있다.
러시아도 있고 인도도 있으며 수많은 글로벌사우스 국가가 있다.
그 나라들이 모두 중국 편일 필요는 없다.
미국 편만 아니면 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에는 오히려 그들이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이 다극화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패권의 종말과도 다른 이야기다.
미국은 내일도 강할 것이다.
아마 상당히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챔피언에게 진짜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링에서 쓰러지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였던 도전자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자신을 바라보던 관중들이 더 이상 챔피언만 바라보지 않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는 것이다.
여전히 가장 강하지만,
더 이상 혼자 규칙을 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챔피언은 강하다.
그래서 모두가 그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모두가 그의 빈틈을 기다린다.
그것이 챔피언이 고독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