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고 내 집 짓는데, 왜 ‘재건축 불가능’이라 부르는가

아파트 재건축 시 소유자가 내 땅 위의 수명이 다한 건물 공사비를 직접 부담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과거 저층 아파트 시절 용적률 여유로 일반분양 수익을 얻어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 집을 받던 ‘무상 재건축’의 환상에 익숙해진 나머지, 남에게 팔 여유 용적률이 없는 15층 중층 아파트 시대에 접어들며 당연히 내야 할 내 몫의 건축비를 내는 상황을 ‘재건축 불가능’이자 ‘사업성 부재’로 왜곡해 바라보는 기가 찬 착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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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신축의 환상이 만든 착시… ‘내 돈 내고 내 집 짓기’가 불가능이 된 나라

‘수명이 다한 내 땅 위의 건물을 내 돈으로 다시 짓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산 소유자에게 이보다 당연하고 지당한 명제가 있을까. 자동차가 10년이 지나 수명이 다하면 내 돈을 들여 새로 사고, 단독주택이 낡아 무너지기 직전이면 땅 주인인 내가 공사비를 들여 목수를 부른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아파트’라는 공간에 도달하면 이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언론과 부동산 시장, 수많은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15층 아파트는 이제 재건축이 불가능하다”고.

참으로 기가 찬 일이다. 분양가 10억 원짜리 신축 아파트를 생각해 보자. 그 안에는 이미 5억 원 상당의 땅값(토지비)과 5억 원의 건물값(건축비)이 들어있다. 30년 된 15층 아파트 주민은 이미 5억 원 상당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분권자다. 따라서 낡아 없어진 건물값 5억 원과 철거비만 내 통장에서 꺼내어 지불하면 10억 원짜리 번듯한 신축 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 내 땅값을 뺀 순수 건축비만 내는 것, 이 얼마나 온당하고 합리적인 셈법인가.

하지만 시장은 이를 ‘사업성 마이너스’, ‘재건축 불능’이라고 부른다. 내 돈 5억 원을 내고 10억 원짜리 새 아파트를 얻는 지당한 거래가 어쩌다 ‘불가능한 사업’으로 낙인찍혔을까.

원인은 지난 40년간 한국 사회가 학습해 온 ‘무상 재건축’이라는 이상 기류에 있다. 과거 5층짜리 저층 아파트 시절, 우리는 남는 하늘(용적률)을 잘라 제3자에게 팔아 치웠다. 그 ‘일반분양’ 수익금으로 내 집 짓는 공사비를 덮고도 남아, 돈 한 푼 안 내고 새 집을 받거나 심지어 환급금까지 챙겼다. 콘크리트는 세월이 지나면 가치가 ‘0’으로 수렴하는 소모재임에도, 우리는 아파트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새것으로 교환되는 불사의 요술주머니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15층 중층 아파트 시대가 도래하며 그 마법의 유효기간이 끝났다. 이미 하늘을 꽉 채워 지은 탓에 남에게 팔아 치울 여유 용적률이 없다. 남의 돈으로 내 공사비를 충당하던 시대가 끝나고, 원래 내야 했던 ‘내 몫의 건축비’를 온전히 내 주머니에서 내야 하는 본래의 이치로 돌아온 것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억울해한다. 당장 현금 5억 원을 내놓을 자금 여력이 없는 노년층 조합원의 현실, 그리고 “옛날엔 공짜로 해줬는데 왜 나만 내 돈을 내야 하냐”는 기대 심리의 부조화가 맞물리면서, 시장은 ‘건축비를 내고 지으면 된다’는 당연한 명제를 ‘재건축의 사망 선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지금 터져 나오는 “재건축이 안 된다”는 비명은 기술이나 법의 문제가 아니다. 사적 재산의 보수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원칙’과, 과거 부동산 대호황기가 남긴 ‘공짜 신축의 환상’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서글프고 기가 찬 착시일 뿐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내 집을 짓는 데 내 돈이 들어가는 것은 ‘재건축의 비극’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가장 단순하고 당연한 상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