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남긴 청구서, 트럼프가 받은 청구서

미국은 세계질서 유지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는 대신 달러 패권과 국제적 영향력이라는 특권을 누려왔다. 그러나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치른 막대한 군사적·재정적 비용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선언과 이라크 전쟁은 그 부담을 키운 대표적 사례이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러한 문제가 누적된 끝에 나타난 정치적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은 동맹국에 안보 책임을 더 많이 넘기면서도 기존의 특권은 유지하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신뢰와 달러의 영향력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내주고 얻은 다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목소리까지 되찾으려는 것처럼, 미국 역시 과거에 누린 권력의 대가를 피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결국 권력의 이익을 누린 세대와 그 청구서를 받아드는 세대는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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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청구서는 다음 세대에 도착한다

부시 가문의 민주당 지지 선언에서 돌아본 미국 패권의 오래된 계약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부시 가문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닐 부시가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당파적 충성보다 인물의 품성과 정치적 책임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그의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24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었다. 그는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나는 그 발언을 잊지 못한다.

당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였다.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자신이 국제질서를 주도할 능력뿐 아니라 그 질서를 재편할 권한까지 가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권한을 행사하는 것과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쟁의 주요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비축량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은 장기화됐고 그 비용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다.

브라운대학교의 '전쟁의 비용(Costs of War)' 프로젝트는 이라크와 시리아 전쟁의 미국 재정 부담을 미래 참전군인 지원비까지 포함해 약 2조 8,900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 많은 돈으로 미국은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그 돈을 다른 곳에 사용했다면 미국 사회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권력의 비용을 논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야기를 부시 대통령에게서 시작할 수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의 중심에 섰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동맹과 주요 교역로의 안보를 뒷받침했고, 달러는 세계 무역과 금융의 중심 통화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 그 질서에서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누렸다.

이를 하나의 암묵적인 계약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질서 유지의 책임을 떠안는 대신, 달러 패권을 비롯한 국제적 영향력의 편익을 누렸다.

물론 실제로 그런 계약서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달러의 지위도 군사력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 금융시장의 깊이와 유동성, 제도적 신뢰, 국제거래의 관행이 함께 작용했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유지와 그 질서에서 누리는 특권을 완전히 별개로 취급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권력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원을 사용한다. 때로는 미래의 세금을 앞당겨 쓰고, 때로는 협력자에게 특권을 나눠주며, 때로는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약속을 한다.

당장은 효과가 있다. 권력은 안정되고 영향력은 확대된다.

그러나 그렇게 빌려온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돌려줘야 한다.

왕조가 외척에게 권한을 맡겨 권력을 안정시켰다면 언젠가 외척의 영향력을 감당해야 한다. 군벌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켰다면 그들에게 넘겨준 권한이 훗날 중앙권력을 위협할 수 있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재정적자는 국채로 조달할 수 있지만 국채에는 이자가 붙는다. 군사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주둔과 전쟁에는 비용이 따른다. 동맹의 신뢰를 얻으면 영향력이 커지지만 그 신뢰에는 약속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 뒤따른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빌린 것은, 언젠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능력 자체를 제약할 수 있다.

나는 미국이 지금 마주한 문제의 상당 부분을 이 구조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갑자기 나타나 미국의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국에 대한 비용 분담 요구는 오랜 기간 누적된 부담과 국내의 불만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트럼프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미국이 세계를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해 왔다는 인식은 그의 정치적 호소력을 이루는 한 요소였다.

최근 중동에서도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발언이 나왔다.

미국의 톰 배럭 특사는 중동 국가들이 미국에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존할 수 없으며, 미국 역시 과거처럼 지역을 지배하려는 관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간 세계질서의 유지자를 자처했던 미국이 이제 그 책임과 개입의 범위를 다시 계산하는 것이다.

그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느 국가도 무한한 비용을 감당할 수는 없다.

문제는 책임을 줄인 뒤에도 과거와 같은 영향력과 특권을 누릴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인어공주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어공주는 사람의 다리를 얻기 위해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주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인어공주가 다시 마녀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다리는 그대로 두고, 목소리만 돌려주세요.'

마녀는 그 요구를 들어줄까.

어쩌면 다리를 다시 지느러미로 바꾸고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른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문제도 이와 닮았다.

국제질서 유지에 대한 부담은 동맹국에 더 많이 넘기고 싶지만, 달러의 지위와 세계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국제경제의 참여자들은 마녀처럼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줄 의무가 없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의 가치가 달라지면 동맹국도 그 관계의 득실을 다시 계산할 수 있다. 미국의 재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달라지면 국제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 요구하는 수익률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는 상수가 아니다. 달러의 국제적 지위 역시 영구불변의 법칙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달러 패권이 당장 무너진다는 뜻은 아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를 대체할 수단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미국은 막대한 경제력과 금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됐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같은 조건으로 유지된다는 보증은 될 수 없다.

특히 신뢰는 비용을 청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약속을 이행하면서 쌓이지만, 그 약속을 협상 수단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상대방도 새로운 선택지를 찾게 된다.

여기서 다시 부시 가문으로 돌아간다.

닐 부시의 민주당 후보 지지가 곧바로 부시 가문의 과거 정책에 대한 반성이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평가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가 밝힌 이유는 현재 공화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판단에 가깝다.

그러나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부시 가문은 미국이 국제질서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던 시대를 상징한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 질서를 지키고 재편한다는 명분 아래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켰다.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시대에 등장한 것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다. 그리고 이제 부시 가문의 일부 인사는 그 트럼프의 공화당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오늘의 정치적 선택에 과거의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각 세대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판단하고 선택한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이 남긴 비용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권력은 없다. 모든 권력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빌린다. 경제적 자원일 수도 있고, 타인의 협력일 수도 있으며, 미래 세대의 신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권력의 쇠락은 반드시 적에게 패배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누려온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빌린 것들의 대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 그때부터 권력의 성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권력이 누리는 이익과 그 대가를 지불하는 세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내가 24년 전 '악의 축'이라는 발언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시대의 권력자들은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역사가 됐다.

그러나 역사가 됐다고 해서 청구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청구서는 언제나 권력이 가장 빛나던 시절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권력을 물려받은 다음 세대의 문 앞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