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6억 분담금이 드러낸 서울 주거 잔혹사의 자화상... 연 2천만원도 못 모았다
서울 재건축의 거액 분담금은 단순한 공사비 폭탄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집값 상승에 가려졌던 주택의 감가상각과 가계의 자본축적 부족을 드러내는 청구서다. 30년 살던 집을 다시 짓는 데 현재가치로 6억원이 든다면 연평균 약 2천만원의 자본유지 여력이 필요했다는 뜻인데, 많은 가계는 토지가격 상승을 부의 증가로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주거자산을 스스로 재생산할 현금은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낮은 용적률과 일반분양 수익이 이 비용을 대신 부담해줬지만, 공사비와 사업비가 상승하면서 그 착시가 깨지고 있다. 더구나 저출산으로 자손 증가에 따른 자산 분할 압력마저 크게 줄어든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건축 분담금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서울 집값 상승이 실제 가계의 저축과 자본축적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되묻게 한다.
“6억 원에 산 집인데 분담금이 또 6억 원이라고?”
최근 서울 재건축 시장에서 이런 숫자가 등장했다. 서울 정비사업장의 3.3㎡당 평균 공사비는 2021년 578만원에서 2025년 890만원까지 올랐고, 최근 주요 사업장에서는 1,000만원에 육박한다.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기존 전용 31㎡ 소유자가 신축 전용 84㎡를 받으려면 약 6억원의 추가분담금이 예상된다. 최근 매매가격 약 6억8천만원까지 합치면 총투입액은 12억원을 훌쩍 넘는다.
언론에서는 이를 ‘공사비 폭탄’, ‘재건축 불패의 종말’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급등했고,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이 과거보다 악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바꾸면 이 현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낡은 집을 새 집으로 다시 짓는 데 왜 돈이 들지 않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자기 땅 위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았다고 해보자.
그는 집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붕도 낡고 배관도 삭고 콘크리트도 늙는다. 그래서 소득 가운데 일부를 꾸준히 남겼다. 30년 뒤 집이 수명을 다하자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같은 땅에 새 집을 지었다.
공사기간에는 다른 집을 빌려 임차료도 냈다. 특별히 빚도 내지 않고 이 과정을 마쳤다.
이 집안은 부자가 된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현상유지를 잘한 집안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30년 전에도 땅 한 필지와 살 만한 집 한 채가 있었고, 30년 뒤에도 땅 한 필지와 살 만한 집 한 채가 있다. 그 사이 모은 돈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부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자신이 소비한 주거자본을 복구하는 데 쓰였다.
기업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공장에 기계를 설치해 30년 동안 사용하면서 그 기계가 영원히 멀쩡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은 없다. 기계가 닳는 만큼 감가상각을 인식하고, 언젠가 새로운 기계를 살 비용을 준비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택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다른 계산법을 사용해왔다.
아파트를 3억원에 샀는데 10억원이 되면 7억원의 부가 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하나의 가격 안에서는 정반대의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의 땅은 비싸지고 있었다.
그 위의 건물은 매일 늙어가고 있었다.
토지가격 상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건물의 감가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집 전체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니 건물 역시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웠다.
그러다가 재건축이 시작된다.
그리고 어느 날 5억원, 6억원의 분담금 청구서가 도착한다.
“내 집인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또 내야 하는가.”
하지만 그 돈의 상당 부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비용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조금씩 발생했지만 집값 상승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주택의 감가상각비가 재건축이라는 순간에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아주 단순한 계산을 해볼 수 있다.
30년 동안 살던 집을 지금 다시 짓는 데 6억원이 필요하다면, 이를 30년으로 나누면 현재 돈으로 연 2천만원이다.
물론 이것은 금융수익률과 건축비 변동을 무시한 단순한 사고실험이다. 실제로 적립금을 투자했다면 매년 필요한 저축액은 더 적었을 수도 있고, 공사비가 물가보다 빠르게 올랐다면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숫자는 중요한 기준을 보여준다.
오늘의 구매력으로 매년 2천만원 정도를 소비하지 않고 남길 수 있는 소득이 있어야 30년 뒤 자기 집 한 채를 스스로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연 2천만원’이라는 숫자를 현재의 높은 물가로만 보면 조금 과장되어 보일 수도 있다.
30년 전인 1996년으로 돌아가보자.
1996년 소비자물가지수는 54.6이었고, 2026년 7월은 119.77이다. 단순히 소비자물가로 환산하면 지금의 연 2천만원은 1996년 돈으로 약 910만원, 한 달에 약 76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즉 30년 전부터 시작했다면 처음부터 매년 2천만원을 모았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6년에는 현재 구매력으로 환산해 월 70만원대 중반 정도를 집의 미래 갱신을 위해 떼어놓고, 물가와 소득이 상승함에 따라 그 적립액 역시 점차 높여가는 정도의 경제력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물론 당시 월 70만~8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30년 동안 생활비를 쓰고, 아이를 키우고, 교육비를 부담하고, 자동차를 사고, 여행을 하면서도 그것과 별도로 주거자본의 갱신을 위해 꾸준히 이 정도의 금액을 남길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30년 뒤에도 같은 땅에 다시 살 만한 집 한 채를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서울의 많은 가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기서 조금 불편한 결론이 나온다.
대한민국은 성장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결과적으로 많은 가계에게 현재가치 기준 연 2천만원 정도를 꾸준히 저축하고도 생활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지는 못한 셈이다.
물론 도시가 개인의 저축을 문자 그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서울은 지난 30년 동안 엄청난 부를 만들어낸 도시였다. 경제가 성장했고, 소득이 증가했으며, 무엇보다 서울의 토지가격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부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가계는 자기 가족이 30년 동안 사용해 낡힌 주택 한 채를 빚 없이 다시 짓는 정도의 잉여소득을 축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동안 서울이 만들어낸 부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집값은 3억원에서 10억원으로,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올랐다.
숫자만 보면 서울의 주택 보유자는 엄청나게 부유해졌다.
그러나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재건축비가 통장에 쌓이는 것은 아니다.
토지가격 상승은 자산가치를 높여주었지만, 건물을 다시 지을 현금을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수십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자기 집을 새로 짓기 위한 몇억원의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 생긴다.
이것을 단순한 ‘현금 빈곤’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산가격 상승과 자본축적을 혼동해온 결과에 가깝다.
과거에는 이 모순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서울의 초기 재건축 단지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낮은 용적률이었다.
낮은 용적률의 낡은 아파트를 허물어 훨씬 많은 집을 짓고, 새로 생긴 주택 일부를 일반분양하면 그 수입으로 조합원의 건축비 상당 부분을 부담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표현하면 조합원은 자신이 보유한 토지의 미사용 개발권을 외부에 판매한 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용적률이라는 여유 지분을 팔아 남의 돈으로 내 집을 새로 짓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였다.
그 덕분에 주택 소유자는 30년 동안 별도의 ‘재건축 적립금’을 만들지 않아도 됐다.
건물은 계속 낡아갔지만 토지가격은 올랐고, 일반분양 수익은 컸으며, 공사비는 낮았다.
심지어 자기 대지지분의 일부를 사실상 사업에 내놓으면서도 큰 추가분담금 없이 더 넓고 좋은 새 아파트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경험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재건축을 내가 소비한 건물을 내 돈으로 다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아파트를 가지고 기다리면 언젠가 새 아파트로 바꾸어주는 일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나 이제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공사비는 높아졌다.
금융비용도 커졌다.
이미 기존 용적률이 높은 단지에서는 새로 팔 수 있는 개발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대지지분 일부를 내놓아도 부족하다.
일반분양 수입을 보태도 부족하다.
결국 조합원 자신의 현금이 필요해진다.
그 순간 지난 수십 년 동안 감춰져 있던 질문이 나타난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한 집 한 채를 다시 지을 만큼 저축했는가.
물론 지금의 분담금 전체를 가계의 저축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기존 31㎡에서 신축 84㎡로 옮기는 데 필요한 비용은 단순한 현상유지 비용이 아니다. 훨씬 큰 집을 받는 만큼 주거수준 향상에 들어가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공사비 급등, 사업 지연, 금융비용, 각종 규제와 비효율 때문에 정상적인 주택 갱신비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한 사업장도 있다.
따라서 재건축 분담금은 적어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낡은 집을 새 집으로 바꾸기 위해 본래 존재했던 정상적인 자본갱신 비용이다.
다른 하나는 사업구조와 제도, 급격한 공사비 상승으로 발생한 초과비용이다.
후자는 당연히 따져야 한다.
하지만 전자까지 모두 ‘분담금 폭탄’이라고 부르면 훨씬 중요한 사실을 놓친다.
주택도 소비된다.
건물도 늙는다.
그리고 한 세대가 그것을 사용했다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새것을 만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 비용을 일반분양자와 개발이익이 상당 부분 대신 부담했다.
이제는 그 숨을 곳이 줄어들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오늘날의 인구구조까지 겹쳐보면 문제는 더욱 묘해진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한 가문이 가난해지는 데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이유가 있었다.
자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100의 봉토를 가지고 있어도 아들이 다섯이면 다음 세대에는 20씩 나뉜다. 그 자녀가 다시 여러 명의 자식을 낳으면 땅은 또 쪼개진다.
가문 전체의 부가 줄지 않아도 개인이 물려받는 몫은 세대가 갈수록 작아졌다.
그래서 옛 가문의 몰락에는 ‘자손이 늘어나 봉토가 쪼개졌다’는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는 이 설명조차 어렵다.
2025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0명 수준이다.
자녀가 셋, 넷이어서 부모의 집을 잘게 나누는 사회가 아니다.
한 명의 자녀가 부모의 자산 상당 부분을 승계하는 경우도 많고, 외동자녀끼리 결혼한다면 양쪽 집안의 자산이 한 가구로 집중될 수도 있다.
적어도 과거처럼 자손 증가 때문에 봉토가 세대마다 쪼개지는 압력은 현저히 줄었다.
그런데도 한 세대가 누리던 주거수준을 다음 세대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사실이다.
나라가 가난해서도 아니다.
자손이 너무 많아 재산이 잘게 쪼개져서도 아니다.
서울의 토지가격은 오히려 세계적인 대도시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럼에도 한 가계가 30년간 사용한 주택을 다시 만드는 데 필요한 자본을 스스로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성장의 내용을 다시 물어야 한다.
소득은 얼마나 늘었는가.
그중 얼마를 소비했고 얼마를 남겼는가.
우리의 자산 증가는 얼마나 생산과 저축에서 왔고, 얼마나 토지가격 상승에서 왔는가.
그리고 그토록 성장했다는 서울에서 왜 한 가계가 자기 집의 감가를 충당할 정도의 잉여를 축적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는가.
그런 의미에서 “6억에 샀는데 분담금이 6억”이라는 말은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6억원에 낡은 아파트를 샀다는 것은 미래의 신축 건축비까지 미리 지불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된 집을 샀다면 그 가격 속에는 오래된 건물이 들어 있다.
그 집에서 다시 수십 년을 살았다면 건물은 더욱 낡는다.
따라서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6억원에 산 집인데 왜 6억원을 또 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 집에서 수십 년을 사는 동안 우리는 다음 집을 지을 돈을 얼마나 준비했는가.”
그리고 집 한 채를 다시 만드는 데 지금 돈으로 6억원이 필요한 사회라면 이 질문에는 숫자로 된 대략적인 기준도 있다.
현재 구매력으로 연 2천만원.
30년 전인 1996년의 구매력으로는 연 900만원 남짓, 월 70만원대 중반이다.
그 돈을 생활비와 별도로 꾸준히 남길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이 있었는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가능한 설명은 몇 가지뿐이다.
우리의 소득이 생각했던 것만큼 충분하지 않았거나,
소득에 비해 소비가 많았거나,
혹은 집값이 계속 오르니 별도로 저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거나.
아마 세 가지가 조금씩 모두 맞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재건축 분담금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경기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성장’과 ‘부’를 어떻게 이해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결산표에 가깝다.
우리는 분명 더 잘살게 됐다.
서울의 집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그러나 자산의 가격이 오른 것과 그 자산을 스스로 재생산할 능력이 생긴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진정한 축적이라면 한 세대가 사용해 낡힌 것을 다시 만들어놓고도 무언가가 남아야 한다.
자손이 많아 봉토가 쪼개지는 시대도 아니다.
오히려 자녀가 너무 적어 국가가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시대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토지의 일부를 개발에 내놓고, 수십 년 동안 누적된 토지가치 상승까지 활용한 뒤에도 낡은 집 한 채를 새 집으로 바꾸는 현금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한 번쯤 물어보아야 한다.
그토록 많이 오른 서울의 집값과 그토록 크게 성장한 한국 경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축적했는가.
어쩌면 서울은 우리를 엄청난 자산가로 만들어준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작 자기 집 한 채를 한 세대 뒤 다시 지을 수 있을 만큼의 연 2천만원짜리 저축 여력은 만들어주지 못한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6억원의 재건축 분담금은 그래서 단순한 공사비 청구서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우리가 ‘부’라고 믿어온 것 가운데 무엇이 진짜 소득과 저축의 축적이었고, 무엇이 희소한 토지 위에 붙은 더 높은 가격표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산서다.
그리고 그 결산서를 받아든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재건축 불패의 종말’만이 아니다.
집값의 상승을 부의 축적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서울 주거 잔혹사의 씁쓸한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