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택, 문제는 공급보다 다음 매수자다
서울 주택은 공급 부족과 신축 희소성만 보고 장기적으로 반드시 유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서울의 높은 주택가격은 정치·경제적 중심성, 화이트칼라 중심의 일자리 구조, 지속적인 신규 인구 유입, 충분한 대출 여건을 전제로 유지돼 왔지만, 행정기능의 이전과 인구 감소, AI에 따른 지식노동 수요 변화, 재건축 비용 상승, DSR과 은행 자본규제 강화는 이 전제들을 조금씩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재건축은 일반분양 수요가 비용을 충분히 떠받치지 못하면 기존 소유자의 추가분담금으로 돌아오고, 대출을 최대한 활용해 집을 산 사람은 장기간의 원리금 부담에 더해 예상치 못한 생활비와 재건축 비용까지 감당해야 할 수 있다. 결국 가장 위험한 생각은 이런 장기 위험을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알면서도 “지금은 오를 것이고 나는 남들보다 먼저 팔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주택은 유동성이 낮아 모두가 빠져나가려는 순간 먼저 팔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집을 살 때는 “얼마나 오를까”보다 “오르지 않아도 오래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집 자체의 장기 가치를 믿는 것인가, 아니면 나보다 비싸게 사줄 다음 사람을 믿는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주택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고 집을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위험요인을 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더 위험할 수 있다.
“나도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 그래도 지금은 오를 테니 먼저 사고, 분위기가 바뀌기 전에 팔면 돼.”
서울의 집값을 둘러싼 논리를 보면 이런 생각이 꽤 그럴듯해 보인다. 서울에 새 아파트가 부족하고 재건축과 재개발은 늦어지고 있다. 공사비는 계속 오르고 좋은 일자리와 교육, 문화, 병원은 여전히 서울에 몰려 있다. 그러니 적어도 당분간은 서울 주택가격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주택이 1~2년짜리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산다면 그 판단은 사실상 앞으로 20년, 30년, 길게는 40년의 소득과 자산을 함께 거는 결정이 된다. 그런데 그 긴 기간 동안 서울을 떠받쳐온 조건들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첫 번째는 서울이 계속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중심일 것인가라는 문제다.
서울의 높은 주택가격에는 단순히 좋은 아파트와 편리한 교통만 반영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 행정부, 사법기관, 언론, 금융기관, 대기업 본사, 대학, 병원과 각종 전문서비스가 한 공간에 오랫동안 집중되면서 형성된 중심성도 가격에 녹아 있다.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정보와 자본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몰렸고, 사람이 몰렸기 때문에 다시 기업과 서비스가 집중됐다.
그런데 이 구조도 영원히 고정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많은 중앙행정기관이 세종으로 이전했고, 앞으로 국회와 대통령 기능의 일부까지 점차 이동한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수도를 어디라고 부르느냐보다 실제 국가의 의사결정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서울의 경제적 중심성이 곧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서울의 주택에 지불하는 높은 가격에는 서울이 앞으로도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정치·경제적 중심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포함돼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장기 주택가격을 판단하면서 현재의 서울이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베팅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도 지금만큼 많은 사람이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서울은 제조업보다 금융, 정보통신, 전문서비스, 행정, 미디어, 회계, 법률, 컨설팅 같은 지식노동이 집중된 도시다. 이것이 지금까지 서울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였다. 좋은 일자리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지방의 청년들이 서울로 왔고,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고 방을 얻고 결혼하고 집을 샀다.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감수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도 결국 서울이 제공하는 소득과 기회였다.
그런데 AI는 바로 이 부분을 건드린다. AI가 모든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없앨 필요도 없다. 과거 1,000명이 필요했던 본사 업무를 800명이 수행할 수 있게 되는 정도만으로도 도시에는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업은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고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서울에 있는 대기업의 경쟁력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잘되는 것과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1,000명의 중산층 직장인이 서울에서 집을 얻고 소비하던 도시와 소수의 고소득 전문가가 같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도시는 전혀 다른 구조다.
특히 자료조사, 보고서 작성, 번역, 기초 분석, 코딩, 디자인과 같은 업무에서 생산성이 크게 올라가면서 신규 채용이 줄어든다면 서울에 새롭게 진입해야 할 젊은 인구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 전국적인 인구 감소까지 생각하면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앞으로 서울 주택시장의 위험은 단순한 공급과잉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공급은 부족한데 그 비싼 집을 새로 사줄 사람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재건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흔히 재건축이 지연되고 신축 공급이 부족하면 기존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에는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재건축에는 막대한 공사비와 사업비가 들어간다.
과거에는 일반분양 수입으로 상당한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새로 서울에 들어오는 사람이 비싼 새 아파트를 사주면서 기존 조합원의 재건축 비용 일부를 대신 부담해준 셈이다. 그러나 공사비가 계속 오르는데 일반분양 가격을 무한정 높일 수는 없다. 결국 그 가격을 받아줄 사람의 소득과 자금조달 능력이 따라와야 한다.
그 힘이 약해지면 비용은 조합원에게 돌아온다. 몇 억원의 추가분담금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20~30년 된 아파트를 대출을 많이 받아 사는 사람은 이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집을 사기 위해 이미 큰 대출을 받았는데 10년, 20년 뒤 같은 집에 계속 살기 위해 다시 수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변화는 돈을 빌리는 환경 자체가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었고, 늘어난 대출이 다시 집값을 밀어 올리는 구조가 비교적 단순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차주에게는 DSR과 스트레스 DSR이 있고, 집값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의 절대한도도 있다.
은행 역시 단순히 “이 사람이 갚을 수 있는가”만 보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할 때 은행이 부담해야 할 RWA, 즉 위험가중자산이 있고, 부도 시 얼마나 손실이 발생하는지를 계산하는 LGD가 있다. 은행이 자체 모형으로 위험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Output Floor도 있으며 여기에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관리까지 겹친다.
결국 차주에게도 브레이크가 걸리고 은행에도 브레이크가 걸리는 구조다. 그래서 앞으로의 주택시장은 점점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이기는 시장에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시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현재의 주택대출 규제는 차주의 상환능력뿐 아니라 은행의 자본 부담까지 함께 제약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DSR 40%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DSR 규제를 통과하면 그 정도 대출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0년 동안 집만 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아이 교육비가 들 수 있고 부모 부양이 필요할 수 있으며 질병이나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예상보다 빨리 퇴직할 수도 있고, 오래된 아파트라면 어느 날 재건축 추가분담금이라는 수억원짜리 청구서가 올 수도 있다.
DSR은 이런 인생을 계산하지 않는다. 현재 확인되는 소득과 부채를 바탕으로 금융회사가 얼마까지 빌려줄 수 있는지를 계산할 뿐이다. 따라서 대출한도 끝까지 집을 사는 것은 금융회사가 허락한 행위일 뿐, 반드시 안전한 재무행위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30년, 40년짜리 대출에서 DSR 한도를 거의 끝까지 사용한다는 것은 현재 소득을 기준으로 한 상환여력을 장기간 주택에 먼저 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뒤에 어떤 지출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재건축 추가분담금처럼 집 때문에 다시 큰돈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규제상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실제 가계가 그 주택을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쉽게 이렇게 생각한다.
“그건 10년 뒤 이야기잖아. 서울이 정말 예전 같지 않게 되기 전에 팔면 되지. AI가 그렇게까지 영향을 주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야. 행정수도 이전도 금방 이루어질 일이 아니고, 대출규제가 더 강해져도 지금 산 사람이 당장 문제가 되겠어?”
각각의 말은 모두 어느 정도 맞을 수 있다.
문제는 결국 마지막 한 문장이다.
“나는 그 전에 팔 수 있어.”
사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투기 논리다.
어떤 자산이 장기적으로는 부담스럽거나 지나치게 비싸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는 이유는 내가 마지막 보유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늦게 들어올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분위기가 바뀌기 전에 자신은 먼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
집값이 오를 때는 모두 자신이 남들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뉴스도 더 많이 보고, 정책도 더 잘 이해하고, 지역도 더 잘 알고 있으니 위험 신호가 나타나면 먼저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그렇게 움직이기 어렵다. 주택은 주식처럼 버튼 하나로 팔리는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거래량이 줄어든다. 매수자는 조금만 기다리면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매도자는 아직 가격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대출한도가 줄거나 금융비용이 올라 매수자의 구매력이 약해진다. 그래도 매도자는 과거의 최고가를 기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반드시 팔아야 하는 사람이 먼저 가격을 낮춘다.
그때부터 시장가격이 바뀐다.
문제는 대출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기다릴 자유도 적다는 것이다. 이자 부담이 계속되고 소득이 줄 수도 있으며, 다른 곳에서 큰돈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재건축을 앞두고 추가분담금까지 요구된다면 더 이상 가격 회복을 기다릴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택투자의 핵심은 미래 가격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틀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서울이 앞으로도 강할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이 생각보다 제한적일 수도 있고, AI가 오히려 서울의 상위 인재와 기업 집중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인구가 줄어도 핵심 지역의 주택 수요는 계속 강할 수 있고, 재건축이 지연되면서 신축 희소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울의 좋은 주택은 앞으로도 비쌀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이지 보증이 아니다.
반대 방향의 변화도 이미 존재한다. 국가 기능은 조금씩 이동하고 있고 인구는 줄어들고 있으며, 화이트칼라 노동의 생산방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재건축 비용은 커지고 있고 금융은 과거보다 레버리지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대출시장에서도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은행에서 얼마까지 빌릴 수 있는가”에서 “빚을 제외하고 내가 실제로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로 조금씩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미래를 낙관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모든 위험을 알고도 대출을 최대한 받아 집을 산 뒤, 자신은 변화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시장을 이길 정도로 똑똑해야 하는 투자는 애초에 위험한 투자다.
좋은 투자는 내가 남보다 빨리 도망쳐야만 성공하는 투자가 아니라 예상이 조금 틀려도 버틸 수 있는 투자에 가깝다. 집값이 생각보다 늦게 오르거나 몇 년간 오르지 않아도, 금리가 예상보다 높아도, 소득이 잠시 줄어도,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도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집을 살 때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앞으로 더 오를까?”보다 먼저 “오르지 않아도 나는 이 집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내가 이 집을 사는 이유는 정말 이 집이 장기적으로 그 가격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보다 늦게 더 비싸게 사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가.”
두 질문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후자라면 결국 판단의 근거는 집이 아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가장 비싼 대가는 종종 바로 그 믿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