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서울은 지금만큼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할까
서울은 이미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산업 구조도 금융·IT·전문서비스 등 AI에 노출되기 쉬운 화이트칼라·서비스업 비중이 높아 장기적으로는 공급 부족보다 수요 기반의 약화에 더 민감할 수 있다. 특히 재건축은 공사비 상승 자체보다, 과거처럼 일반분양 수입으로 사업비를 충분히 분담하기 어려워지면서 조합원 부담이 커지는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재건축은 서울에 머무는 비용을 높이는 선택이기도 하므로, 현재의 공급 부족만 보고 “서울이니 결국 된다”는 기대보다는 향후 서울이 지금만큼 많은 사람과 높은 구매력을 계속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서울은 공급 부족보다 수요 부족에 더 민감한 도시일 수 있다
최근 서울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공사비 상승과 금융 규제, 조합 갈등 등으로 잇따라 지연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공급 부족으로 향한다. 앞으로 서울에 새 아파트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대편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에 얼마나 많은 주택이 공급되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앞으로도 과연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서울에 머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의 인구는 이미 감소하고 있다. 물론 서울 인구 감소의 상당 부분은 높은 주거비로 인해 경기·인천 등 수도권 외곽으로 거주지가 이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행정구역상의 이동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앞으로도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서울은 제조업 도시가 아니다. 금융, 정보통신, 전문서비스, 행정, 광고, 미디어, 회계, 법률, 컨설팅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와 서비스업이 밀집한 도시다.
지금까지 이것은 서울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었다.
좋은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으니 청년층이 서울로 이동했고, 사람들이 몰려드니 기업은 다시 서울에 자리 잡았다. 대학과 병원, 문화시설, 교육기관과 각종 전문서비스도 이를 따라 집중됐다.
서울의 높은 생활비를 감수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 역시 결국 일자리였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 구조에 과거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주로 생산직 노동을 대체했던 것과 달리 생성형 AI가 가장 빠르게 파고드는 영역은 문서를 만들고,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계산하고, 코드를 작성하는 지식노동이다.
바로 서울이 가장 많이 보유한 일자리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모두 없앨 것이냐가 아니다.
기업이 같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가 조금만 줄어도 충분하다.
과거 1000명이 필요했던 본사 조직이 AI를 활용해 800명으로도 같은 수준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 보자. 기업의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매출과 이익도 늘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회사 한 곳이 잘되는 것과 그 회사 때문에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은 바로 이 점에서 수요 감소에 민감한 도시일 수 있다.
서울 생활에는 이미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높은 주거비뿐 아니라 긴 통근시간, 교육비와 생활비, 혼잡, 작은 주거면적 등이 모두 서울에 머무르는 대가다.
사람들이 그 비용을 감수해온 것은 서울이 그 이상의 경제적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소득과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계산은 달라진다.
서울에 거주하기 위한 한계비용은 높은 반면 서울에 거주함으로써 얻는 한계편익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젊은 화이트칼라다.
기업의 신입사원이 담당하던 자료조사, 보고서 초안, 번역, 기초적인 재무분석, 문서작성, 코딩, 디자인, 고객응대 같은 업무들은 AI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기업들이 성장하면서도 예전만큼 많은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서울에 취업하고, 서울에 방을 구하고, 몇 년 뒤 가구를 형성하는 과정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
서울을 지탱해온 것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매년 새롭게 서울의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서 진입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서울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평가하려면 단순한 인구 숫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서울이 앞으로도 새로운 사람에게 충분한 경제적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물론 AI가 반드시 서울의 쇠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상위 인재와 자본, 연구기관과 기업의 의사결정 기능이 서울에 더욱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AI로 기업의 생산성이 크게 올라가면 서울의 경제적 위상 자체는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1000명의 중산층 직장인이 존재하던 도시와 300명의 고소득 전문가가 같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도시는 기업의 관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어도 도시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구조다.
도시는 생산액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이 집을 구하고, 식사를 하고, 자녀를 키우고, 소비하고, 이동하면서 유지된다.
그래서 앞으로 서울이 직면할 수 있는 문제는 '서울 경제의 쇠퇴'보다 훨씬 미묘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서울의 기업과 산업은 성장하는데 서울에 거주해야 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만큼 늘지 않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생각하면 최근의 재건축 문제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재건축 공사비가 크게 올라 조합원의 부담이 커졌다는 이야기를 흔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의 문제로 설명한다.
물론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합원이 공사비 상승을 갑자기 크게 체감하게 된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과거의 재건축에서는 새로 늘어나는 주택을 일반분양하고 그 분양수입을 사업비에 투입함으로써 조합원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새로 서울에 들어오려는 외부 수요가 기존 주민의 재건축 비용 일부를 대신 부담해주는 구조였다.
그래서 재건축의 사업성은 단순히 새 아파트를 얼마나 비싸게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일반분양에서 얼마나 많은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크게 좌우됐다.
그런데 공사비는 빠르게 상승하는 반면 일반분양을 통해 그 증가분을 무한정 흡수할 수는 없다.
분양가격을 계속 올리면 그것을 받아줄 수요자의 소득과 자금조달 능력이 따라와야 한다. 일반분양 가구 수 자체가 적은 사업장이라면 비용을 전가할 대상도 제한된다.
결국 일반분양 수입이 추가 사업비를 충분히 상쇄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공사비 증가는 직접 조합원 분담금으로 돌아온다.
최근 재건축에서 추가분담금 문제가 유독 민감해지는 것은 단순히 건설사가 공사비를 많이 요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비용을 대신 부담해줄 일반분양의 힘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앞서 말한 서울의 장기 수요 문제와도 연결된다.
서울에 들어오려는 새로운 수요가 충분하다면 재건축 비용의 상당 부분을 일반분양을 통해 외부로 이전할 수 있다.
반대로 신규 수요의 구매력이 약해지면 재건축 비용은 점점 기존 소유자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재건축은 단순한 주택 공급 사업이 아니다.
서울에 계속 머물기 위한 비용을 한 단계 높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기존 주택에서는 큰 추가 지출 없이 거주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재건축을 선택하는 순간 수억원의 분담금과 이주비,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사업이 지연되면 이 비용은 더욱 증가한다.
따라서 '서울이니까 결국 된다'는 기대만으로 재건축에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그 판단에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전제가 숨어 있다.
10년 뒤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서울에 들어오기를 원하고, 그들이 더 높아진 건설비와 토지가격을 포함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도 있을 것이라는 전제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는 이미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이어지고, 서울 산업의 중심인 화이트칼라 노동의 생산방식까지 AI로 바뀐다면 이 전제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재건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늘 사업을 시작하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은 오늘의 서울이 아니라 10년 뒤 완공될 때의 서울이다.
현재 신축 공급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보고 장기간의 사업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과 미래에도 그 비용을 부담해줄 충분한 신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근 치솟는 재건축 분담금 자체가 하나의 신호일 수도 있다.
건설비가 올랐다는 신호인 동시에, 그 비용을 일반분양이라는 외부 수요에 넘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신호 말이다.
서울은 지금까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생기는 문제'를 걱정해온 도시였다.
앞으로는 반대의 질문도 해야 한다.
서울은 앞으로도 이렇게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사람들이 들어오고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일 것인가.
그리고 재건축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한다.
새 아파트가 얼마나 부족할지를 생각하기 전에, 그 아파트가 완성될 때까지 늘어난 비용을 부담할 새로운 수요가 정말 존재할 것인가.
공급 부족만으로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서울을 둘러싼 수요의 조건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