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돈 모아놓고 시작하세요

자동차를 오래 타면 다음 차를 살 돈을 미리 준비하듯, 아파트도 언젠가 노후화되어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해 비용을 준비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재건축은 일반분양 수익과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정작 소유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 공사비 상승과 금융비용 증가로 분담금 부담이 커지고 사업 지연과 갈등이 반복되는 지금, 재건축을 단순한 자산 증식의 기회가 아니라 소유자가 책임져야 할 건물 교체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재건축으로 얼마를 벌 수 있는지보다 재건축을 위해 얼마를 준비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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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돈 모아놓고 시작하세요

자동차를 한 대 사서 10년쯤 타다 보면 슬슬 다음 차를 살 걱정을 하게 된다. 당장 차를 바꿀 생각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씩 돈을 모으기도 하고, 다음 차를 살 때 필요한 비용을 미리 계산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수억 원,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면서도 정작 그 집을 다시 지을 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자동차가 오래되면 교체해야 하듯 건물도 시간이 흐르면 낡는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아파트라도 영원히 사용할 수는 없다. 꾸준히 수선하고 관리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지만, 언젠가는 대규모 보수나 재건축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온다.

그것은 갑자기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처음부터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구입한 순간부터 언젠가 필요한 재건축 비용을 조금씩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건축은 오랫동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지으면 집값이 오른다. 늘어난 용적률을 활용해 일반분양을 하고, 그 수익으로 공사비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입지가 좋은 곳에서는 오히려 재건축을 통해 큰돈을 벌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재건축은 낡은 건물을 교체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 언젠가 새 아파트가 생긴다는 기대가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지, 그 돈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

재건축에 돈이 드는 것이 당연한데,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재건축 비용을 소유자가 전혀 부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분양 수익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상당한 부담을 가려주었던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공사비는 크게 올랐고, 금융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반분양 수익만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곳이 늘어나면서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도 커지고 있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금융비용은 쌓인다. 공사비를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은 길어지고, 이주를 마친 주민들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이주를 마치고도 착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까지 6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동안 주민들은 다른 집에서 살아야 한다. 이주비 대출을 받았다면 이자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 분담금까지 발생하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재건축에 필요한 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사업부터 시작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자동차를 바꾸려는 사람에게 새 차를 살 돈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보자. 대부분은 돈을 더 모으거나, 차를 조금 더 타거나, 형편에 맞는 차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재건축에서는 종종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우선 재건축부터 추진한다. 얼마를 부담해야 할지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구체화된다. 예상보다 공사비가 많이 나오면 갈등이 시작되고, 분담금이 늘어나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놓고 다툰다.

그 사이 시간은 흐르고 비용은 더 늘어난다.

물론 자동차와 아파트는 다르다. 자동차는 소유자 혼자 교체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아파트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소유자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사전 준비가 중요하다.

누군가는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일 수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해서 경제적 여건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이들 모두가 각자의 형편과 관계없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재건축은 자산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아니라, 살던 집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가 된다.

그렇다고 재건축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건물은 언젠가 낡고, 안전과 주거환경을 위해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도 찾아온다. 다만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과 비용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장기수선충당금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공동주택의 주요 시설을 수선하고 교체하기 위해 평소에 비용을 적립하는 것이다.

이 제도에는 중요한 원칙이 담겨 있다.

미래에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비용이라면 현재부터 나누어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장기수선충당금은 기본적으로 기존 건물의 유지·보수를 위한 돈이지, 아파트 전체를 새로 짓기 위한 자금은 아니다.

이제는 재건축에 대해서도 보다 장기적인 비용 준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건물의 예상 수명과 장래 재건축 비용을 고려해 소유자들이 장기간 자금을 축적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재건축을 결정하기 전에 조합원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과 조달 가능성을 보다 엄격하게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수십 년 뒤의 공사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모든 소유자가 충분한 재건축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적립금의 관리와 소유권 이전 시 정산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준비하지 않는 것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준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재건축 비용이 저절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장부상 자산가치가 수십억 원에 이르더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면 분담금과 이주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더구나 모든 아파트가 높은 일반분양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재건축을 하더라도 소유자가 상당한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단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건축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아파트는 사두기만 하면 언젠가 누군가가 새것으로 바꿔주는 물건이 아니다. 재건축은 공짜로 주어지는 혜택도 아니고, 반드시 이익을 보장하는 투자도 아니다.

자신이 소유한 건물을 새로운 건물로 교체하는 일이며, 원칙적으로 그에 필요한 비용을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사업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행정 절차 개선도 필요하다. 불필요한 사업 지연을 줄이고 금융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재건축 비용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유자의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언젠가 다음 차를 살 돈을 걱정한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비싼 집을 구입하면서는 왜 언젠가 그 집을 다시 지을 돈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의 재건축 갈등은 공사비가 갑자기 올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부담해야 할 비용을 수십 년 동안 미래로 미뤄두었다가, 막상 그 시점이 찾아오자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

재건축은 건물이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 아파트를 갖고 싶다는 희망만으로 공사비를 지급할 수도 없다.

이제는 재건축을 통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묻기 전에, 재건축을 위해 얼마를 준비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재건축, 돈 모아놓고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