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이라는 해법은 왜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는가
중국의 부상과 세계화는 미국 전체에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제조업 지역과 노동계층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미국 제조업 쇠퇴의 진짜 문제는 중국이 모든 것을 빼앗았다는 데 있지 않다. 미국이 세계화로 얻은 번영을 내부적으로 재분배하고, 산업 전환 과정에서 피해 노동자와 지역을 새로운 기회로 연결하는 회복 시스템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리쇼어링과 관세는 공급망 전략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 제조업 노동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직접적인 해법은 아니다. 미국이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세계가 미국에 무엇을 빚졌는지가 아니라, 미국이 자신이 얻은 번영을 왜 모든 국민과 나누지 못했는가이다.
판을 만든 자와 비용을 낸 자
중국이 빼앗은 일자리인가, 미국이 나누지 못한 번영인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미국 제조업 지역에서 벌어진 일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의 대량 유입은 미국 일부 산업과 지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연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차이나 쇼크(China Shock)’로 인해 미국 노동시장에 발생한 고용 감소 효과는 수백만 개 수준으로 추정된다. 특히 피해는 전국에 균등하게 퍼진 것이 아니라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특정 지역과 공동체에 집중되었다. (한겨레)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 하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한 지역의 경제 생태계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사라지고, 협력업체가 문을 닫고, 지역 상권이 위축되고, 젊은 세대가 떠난다. 한 세대가 믿었던 중산층으로 가는 경로가 끊긴다.
그 고통은 현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그들은 정말 세계를 위해 미국이 치른 희생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미국이 얻은 거대한 이익을 미국 내부에서 공정하게 나누지 못한 결과의 희생자인가.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외부 침략이 아니었다.
중국을 세계 경제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고, 미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하도록 한 것은 미국 스스로가 선택한 전략이었다.
당시 계산은 합리적이었다.
중국의 값싼 생산력을 활용하면 소비자는 더 저렴한 상품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 기업은 비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세계 시장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미국 전체 경제는 그 과정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비용이 누구에게 집중되었는가였다.
강한 달러와 세계 금융 중심지라는 지위는 미국에 부담만 준 것이 아니다.
달러가 세계의 준비통화라는 것은 미국 금융시장에 지속적인 수요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 통화로 부채를 발행할 수 있고, 미국 기업과 금융시장은 세계 자본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달러 패권은 미국이 제공한 국제 공공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이 누린 강력한 권력이기도 했다.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희생했다는 설명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미국은 그 체제에서 막대한 편익을 얻었다.
값싼 수입품을 소비한 미국인이 있었다.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 이익을 키운 기업이 있었다.
세계 자금이 몰리는 금융시장에서 자산 가치 상승의 혜택을 본 투자자가 있었다.
미국 정부는 금융력과 국제 영향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그 이익은 어디로 갔는가.
차이나 쇼크의 진짜 문제는 중국과 경쟁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충격 이후 미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가이다.
과거 미국은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성장 산업이 기존 노동자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다.
농업 노동자는 제조업으로 이동했다.
제조업 노동자는 서비스 산업과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했다.
상처가 생겨도 새로운 조직이 자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와 새롭게 성장한 첨단 산업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한 지역의 숙련 제조업 노동자가 다른 지역의 IT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은 교과서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집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지역 공동체가 있었다.
무엇보다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은 과거 제조업만큼 많은 중간 숙련 노동자를 흡수하지 않았다.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는 미국 내부의 능력이 약해졌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미국 정치가 선택한 설명은 더 단순했다.
“중국이 우리의 일자리를 가져갔다.”
이 서사는 강력하다.
피해자가 존재하고, 책임을 물을 대상이 있으며, 해결책도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관세를 부과하고, 공장을 다시 가져오고, 외국에 비용을 요구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그 공장이 돌아오면 누가 그 공장에서 일할 것인가.
오늘날 미국이 유치하려는 제조업은 과거 중국으로 이동했던 제조업과 다르다.
반도체, 배터리, 첨단 장비 산업은 중요하지만, 과거 의류·가구·단순 조립 산업을 대체하는 형태가 아니다.
자동화 수준은 높고 필요한 기술도 다르다.
공장을 되찾는 것과 잃어버린 노동자의 삶을 되찾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물론 미국이 공급망 안정과 제조업 기반 강화를 고민하는 것은 정당하다.
중요 산업을 국내에 확보하는 것은 경제 안보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과 “과거의 상처를 치료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관세는 산업 정책일 수 있다.
리쇼어링은 국가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으로 지역 쇠퇴와 중산층 붕괴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진짜 필요한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교육과 직업 전환 시스템.
지역 인프라 투자.
노동자의 이동과 정착을 돕는 정책.
성장의 과실이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분배 구조.
미국 제조업 노동자의 분노는 틀리지 않았다.
그들의 상처를 “전체 경제는 성장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의 원인을 모두 외부에 돌리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미국은 세계화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같은 미국인들에게 충분히 보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미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와 금융시장의 혜택을 누렸다.
어떤 미국인은 저렴한 상품과 상승하는 자산 가치의 혜택을 누렸다.
그리고 어떤 미국인은 자신이 평생 쌓아온 기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중국과 미국 중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강한 국가는 충격을 피하는 국가가 아니라, 충격 이후 국민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국가다.
미국이 세계질서를 다시 설계하려 한다면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세계가 미국에 무엇을 빚졌는가.
그보다 먼저,
미국은 미국인들에게 무엇을 빚졌는가.
패권의 비용은 외부에 청구하기 전에, 먼저 내부에서 정직하게 계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