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금이 가는 것은 속이 상할 일이다
재건축이 돈을 버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낡은 건물과 균열조차 ‘호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재건축은 제3자가 낡은 건물을 보상해주고 새 아파트를 주는 사업이 아니라, 소유자가 자기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의 개발가치와 추가분담금으로 새 건물을 다시 짓는 과정이다. 건물을 빨리 허물고 다시 지을수록 공사 수요가 늘어나는 쪽은 시공사인데, 정작 비용을 부담할 입주민이 “빨리 부수자”는 논리를 앞장서 말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특별정비구역 지정과 재건축 가능성에 환호하기 전에, 지금 허무는 건물도 내 자산이고 새로 짓는 비용 역시 결국 내 자산에서 나온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갈라진 아파트 벽이 예뻐 보여요.” 분당의 한 아파트 주민이 특별정비구역 지정을 앞두고 했다는 말이다. 오래 기다렸던 재건축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이제는 건물의 균열마저 반갑게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웃으며 한 말이겠지만, 나는 이 한마디에 지금 사람들이 재건축을 바라보는 인식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건물이 멀쩡하면 아쉽고 금이 가면 반갑다. 왜 그럴까. 재건축을 돈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균열이 예뻐 보일 이유가 없다. 내 집 벽에 금이 갔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자산이라면 가치가 훼손된 것이다. 그런데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여기 보세요. 이렇게 낡았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부숴도 되지 않겠습니까. 빨리 재건축해야 합니다.” 건물이 낡았다는 사실을 오히려 반가워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재건축을 ‘내 건물을 부수고 내 돈으로 다시 짓는 일’이 아니라 ‘낡은 집을 새 아파트로 바꾸면서 돈까지 버는 일’처럼 경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사업이 많았다. 기존의 낮은 용적률을 높이고 세대수를 늘려 일반분양을 하면 그 분양대금으로 공사비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 땅값이 오르고 일반분양가격도 계속 상승하면서 조합원은 큰 추가부담 없이 새 아파트를 받거나 환급금까지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이상한 경제관념이 생겼다. 건물이 낡으면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고, 오래된 건물은 빨리 없앨수록 좋으며, 새 건물을 빨리 받을수록 돈을 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안전진단을 빨리 통과하고 싶고, 정비구역으로 빨리 지정되고 싶고, 오래된 건물의 문제점이 많이 발견될수록 오히려 사업에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결국 균열까지 예뻐 보이게 된다.
냉장고를 하나 샀다고 생각해보자. 적어도 10년 정도는 쓸 생각으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는데 5년이 지나자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결국 6년 만에 새 냉장고를 사야 한다면 보통은 기존 제품이 너무 빨리 망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벌써 새 제품을 살 수 있게 됐으니 잘됐다”고 흐뭇해하기보다는 왜 이렇게 빨리 수명이 다했는지 따져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집에서는 조금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 아직 쓸 수 있는 건물이 빨리 낡고 균열이 생기면 “이제 재건축이 더 빨라지겠다”고 반가워하고, 곧바로 다음 신축 아파트의 브랜드와 시공사를 이야기한다. 만약 재건축이 순수하게 비용만 드는 자산교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반응은 나오기 어렵다. 낡은 건물을 빨리 버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익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재건축 과정에서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수익이 기존 건물의 잔존가치와 새로 부담할 건축비보다 훨씬 크게 인식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재건축의 마지막까지 가보면 조금 다른 장면을 만나게 된다. 그 건물을 부수는 사람은 결국 소유자 자신이다. 누군가 내 낡은 건물을 비싼 값에 사준 뒤 새 아파트를 공짜로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유한 건물을 철거하고, 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시행자가 되어 새 건물을 짓는다. 새 아파트의 공사비도 결국 내가 부담한다. 일반분양으로 충당한다고 하지만 그 일반분양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원래 조합원이 가지고 있던 토지 위에 더 많은 집을 지어 새로운 소유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존 조합원의 토지에 존재하던 개발가치 일부를 팔아 공사비를 마련하는 셈이다. 결국 대지지분도 내 재산인데, 그 재산을 일부 깨서 건축비로 쓰는 것이 과연 그렇게까지 신날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추가분담금을 낸다. 결국 재건축 비용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토지 일부의 개발가치로 내든 현금으로 내든 결국 소유자가 가지고 있던 경제적 가치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업이 거의 끝나갈 때가 되면 처음과는 조금 다른 질문이 등장한다. “분담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죠. 공사비가 왜 이렇게 비싸죠. 내 대지지분은 왜 이렇게 줄었죠.” 그때서야 새 건물이 공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 예뻐 보였던 그 균열 때문에 허문 건물도 내 것이었고, 그 자리에 다시 세운 건물의 공사비도 결국 내 것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균열이 예뻐 보인다”는 말은 꽤 상징적이다. 건물이 망가지는 것을 반가워한다는 것은 그 건물의 가치보다 재건축을 통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익을 훨씬 크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기대이익이 충분하지 않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20년, 30년밖에 사용하지 않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수억원의 건축비를 투입해야 한다면 건물이 낡은 것이 반가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왜 벌써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공사비가 크게 올라 추가분담금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건물을 빨리 부수고 다시 지을수록 분명하게 좋은 주체가 있다. 시공사다. 건물을 50년 사용하는 사회보다 25년마다 다시 짓는 사회에서 건설회사는 더 많은 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 물론 개별 사업마다 원가와 위험은 다르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건물의 교체주기가 짧을수록 새로운 공사수요가 더 자주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시공사 입장에서 “이 건물은 너무 낡았습니다. 빨리 철거하고 새로 지읍시다”라는 논리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이야기를 시공사가 아니라 입주민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건물에 균열이 생겼는데 내가 반가워하고, 내가 가진 건물을 빨리 철거해달라고 요청하며, 수년 뒤에는 그 철거비와 공사비를 내가 다시 부담한다. 소비자가 자기 물건의 수명이 빨리 끝나는 것을 반기면서 제조업자의 입장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회사라면 소비자가 차를 20년 사용하는 것보다 5년마다 바꾸는 것을 좋아할 것이고, 가전회사 역시 냉장고를 20년 쓰는 것보다 자주 교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산 소비자의 이해관계는 반드시 같지 않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새 아파트가 오래된 아파트보다 좋은 것은 당연하다. 주차장도 넓고 단열도 좋고 평면도 개선되며 각종 편의시설도 좋아진다. 문제는 새 아파트가 좋은가가 아니다. 그 새 아파트를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다.
아직 사용할 수 있는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공사기간 동안 이주하고, 공사비와 금융비용을 부담하며, 필요하면 토지의 개발가치를 일반분양자에게 넘긴다. 그래도 부족하면 현금을 더 낸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지은 새 아파트도 20년, 30년이 지나면 다시 구축이 된다. 그때도 똑같이 벽에 균열이 생겼다고 좋아할 것인가. “드디어 다시 재건축할 수 있겠네요”라고 말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아주 비싼 건물을 지어놓고 너무 짧게 쓰는 이상한 사회가 된다. 결국 재건축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언제 허물 수 있습니까”가 아닐 수 있다. “이 건물을 왜 벌써 허물어야 합니까.” 그리고 그다음 질문은 더 중요하다. “이걸 허물고 다시 짓는 돈은 누가 냅니까.”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결국 내 돈이다. 건물이 낡았다고 환호하는 순간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업의 끝에 가면 다시 만나게 되는 돈이다.
그래서 나는 ‘갈라진 아파트 벽이 예뻐 보인다’는 말이 재건축 시대의 묘한 풍경처럼 느껴진다. 건물을 빨리 철거하고 다시 지을수록 공사가 늘어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자기 건물을 철거하고 그 비용까지 부담할 사람이 먼저 나서서 낡은 건물을 반긴다. 재건축이 돈을 버는 사업이라는 오랜 착각이 만들어낸 장면은 아닐까. 균열은 호재가 아니다. 그저 내가 가진 건물이 낡고 있다는 표시다. 그리고 그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다음 계산서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