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분담금 전쟁, 한쪽은 재건축 환상 판매 중

한쪽에서는 치솟는 공사비와 추가분담금 때문에 조합원들이 갈등을 벌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재건축의 장밋빛 미래를 팔고 있다. 낡을수록 비싸지고, 아직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의 미래 가치는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정작 그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비용은 외면한다. 재건축이 성공한다고 투자까지 성공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어쩌면 철거를 앞둔 아파트 판매의 진짜 골든타임은 신축의 환상은 최고조에 달하고, 현실의 계산서는 아직 온전히 받아보지 않은 순간인지도 모른다.

들배지기 · 개인 의견 · 현재 유효 · 공개 · 수정

철거 앞둔 아파트 판매의 골든타임재건축의 꿈은 최고가에 팔리고, 현실의 계산서는 나중에 도착한다.

한때 아파트 이름은 단 두 글자면 충분했다.

1979년 서울 대치동에 들어선 은마아파트. 은빛 말의 기상을 담은 ‘은마(銀馬)’라는 이름은 지난 40여 년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부와 성공, 그리고 재건축에 대한 기대를 상징해 왔다.

최근에는 길고 화려한 외래어를 붙인 아파트 이름보다 짧고 직관적인 이름이 오히려 고급스럽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은마는 시대를 앞서간 브랜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이 고급스러워도 건물의 노후화를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도 건설비를 대신 내주지는 않는다.

2026년 9월,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안내한 추정 분담금이 화제가 됐다.

기존 전용 84㎡ 아파트 소유자가 재건축 후 같은 면적의 아파트를 받으려면 약 4억 3,000만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 초만 해도 1억 2,000만 원으로 추산됐던 금액이다. 2025년 9월에는 1억 8,000만 원, 2026년 5월에는 3억 2,000만 원이더니 불과 넉 달 만에 다시 1억 1,000만 원이 늘었다. 물론 아직 최종 확정된 금액은 아니다.

40년 넘게 기다린 재건축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자, 가장 먼저 구체화된 것은 새 아파트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추가로 납부해야 할 돈이었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의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재건축 분담금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재건축의 장밋빛 미래를 팔고 있다.

그리고 그 미래에는 언제나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다.

  1. 낡을수록 비싸지는 기적의 상품

세상의 모든 상품은 오래되면 가치가 떨어진다.

자동차는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가격이 내려가고, 가전제품은 고장이 잦아질수록 중고가격이 낮아진다.

그런데 재건축을 기대하는 아파트에는 특별한 경제법칙이 적용된다.

주차장이 부족하다?

재건축이 시급하다는 증거다.

배관이 낡고 누수가 발생한다?

재건축 추진에 더욱 힘이 실리는 호재다.

건물이 오래되어 유지보수비가 증가한다?

그만큼 새 아파트로 바뀔 날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놀라운 일이다.

다른 상품에서는 결함으로 취급되는 요소들이 재건축 시장에서는 투자 매력으로 포장된다.

물론 낡은 아파트의 가치는 건물 자체보다 입지와 대지지분, 장래의 개발 가능성에서 나올 수 있다. 건물이 노후화될수록 재건축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것과 재건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건물이 낡았다고 땅이 저절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건축이 절실하다고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노후화 자체가 미래의 개발이익을 보장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아파트는 낡아가는데, 기대감만큼은 매년 신축이다.

  1. 미래의 시세는 확정, 미래의 비용은 미정

재건축 아파트를 판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태가 아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모습이다.

최신식 커뮤니티 시설, 고급스러운 조경, 넓은 지하주차장, 지역을 대표할 랜드마크.

주변 신축 아파트가 얼마에 거래되는지 보여주고, 재건축이 완료되면 비슷한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유독 흐릿하게 처리되는 숫자가 있다.

바로 추가분담금이다.

"분담금이 얼마나 나올까요?"

"그건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공사비가 더 오를 수도 있지 않나요?"

"사업이 진행돼 봐야 알죠."

"완공은 언제쯤 될까요?"

"그것도 상황을 봐야 합니다."

참 편리한 계산법이다.

미래의 신축 시세는 현재의 매매가격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미래의 공사비와 금융비용은 아직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뒤로 미룬다.

수익을 계산할 때는 미래의 최고가를 가져오고, 비용을 계산할 때는 현재의 추정치를 가져온다.

이런 방식이라면 수익이 나지 않을 재건축 아파트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은마아파트의 사례는 이 불확실성이 어떻게 숫자로 바뀌는지 보여준다.

한때 1억 원대였던 추정 분담금은 사업이 구체화되면서 4억 원대로 올라섰다.

공사비 상승과 기존의 높은 용적률, 제한적인 일반분양 수입 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기대감만으로 설명하던 재건축이 비로소 원가계산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재건축의 꿈은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화되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비용도 함께 구체화된다.

그동안 장밋빛 전망을 듣던 조합원들에게는 이제 자금조달계획이 필요해졌다.

부동산 광고에서 보던 미래의 신축 아파트가 어느 날 은행 대출 상담창구 앞에 나타난 셈이다.

  1. 그래서 철거를 앞둔 지금이 판매의 골든타임?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재건축 아파트를 팔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

사업성이 충분하고 시장 상황도 뒷받침된다면 재건축이 진행될수록 아파트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재건축 아파트가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재건축 기대감이 이미 매매가격에 충분히 반영된 단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업 초기에는 모든 것이 가능성이다.

몇 층까지 올라갈지, 몇 세대가 들어설지, 얼마나 고급스럽게 지어질지, 완공되면 얼마에 거래될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될수록 가능성은 하나둘 숫자로 바뀐다.

용적률이 정해지고, 일반분양 물량이 드러나고, 공사비가 산정되고, 조합원 분양가와 추정 분담금이 구체화된다.

그동안 막연하게 기대했던 개발이익이 실제로 얼마나 남는지도 점점 분명해진다.

여기서 재건축 시장 특유의 역설이 발생한다.

사업이 불확실할 때는 기대감으로 가격을 설명할 수 있지만, 사업이 구체화되면 숫자로 가격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사업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남아 있는 시기가 오히려 아파트를 가장 아름답게 설명할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으니 미래의 신축가격을 이야기할 수 있다.

아직 최종 비용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분담금은 변수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으니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도 구체적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미래의 가치를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히 사업이 진행됐지만, 그 미래를 실현할 비용을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것이 어쩌면 재건축 기대감을 판매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실제 매도 시점에 관한 조언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재건축 단계와 규제지역 여부에 따라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될 수 있고, 양도소득세와 거래 가능 여부까지 검토해야 한다.

다만 기대감을 판매하는 논리만 놓고 보면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파트가 철거되기 직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대수익률이 철거되기 전에 파는 것이다.

  1. 재건축이 성공해도 투자자는 실패할 수 있다

재건축 시장에서는 흔히 완공된 아파트의 미래 가격을 기준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재건축 사업의 성공과 재건축 투자자의 성공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가령 재건축이 완료된 신축 아파트가 20억 원에 거래된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는 이를 보고 역시 재건축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아파트를 재건축 이전에 15억 원에 매수하고, 추가분담금으로 5억 원을 지불했다면 어떨까.

이미 취득원가만 20억 원이다.

여기에 취득세, 대출이자, 보유비용과 각종 부대비용까지 더하면 실제 투자 성과는 마이너스일 수 있다.

동네에는 멋진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거환경도 좋아졌다.

아파트 가격도 과거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투자자는 돈을 벌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래의 개발이익을 현재의 매매가격에 미리 지불했기 때문이다.

이는 재건축 투자의 핵심적인 위험이다.

아무리 미래 가치가 높은 아파트라도 그 가치를 지나치게 비싸게 사면 투자수익은 남지 않는다.

물론 오랜 기간 보유한 원조합원과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진 뒤 매수한 투자자의 수익구조는 전혀 다르다.

같은 신축 아파트를 받더라도 누가 언제 얼마에 취득했는지에 따라 투자 성적표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건축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완공 후 아파트가 얼마가 되느냐가 아니다.

그 아파트를 얻기 위해 내가 총 얼마를 지불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1. 누군가에게는 프리미엄, 누군가에게는 청구서

이쯤에서 다시 은마아파트로 돌아가 보자.

2027년 상반기 이주를 목표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은마아파트의 조합원들에게는 이제 오랜 기다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아파트를 얻기 위해 수억 원의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현실도 함께 다가왔다.

외부에서는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다.

"강남에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정도 돈도 없나요?"

하지만 부동산 자산이 많다는 것과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많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수십 년간 거주하면서 집 한 채가 자산의 대부분이 된 고령 가구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집값은 올랐지만 소득이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니다.

재건축을 기다렸지만 그 기간에 현금이 쌓인 것도 아니다.

재건축이 가져다줄 자산가치 상승과 당장의 자금 부담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여기서 시장의 시선은 묘하게 갈린다.

이미 재건축을 진행 중인 단지에서는 추가분담금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아직 재건축을 기다리는 단지에서는 미래의 신축 프리미엄을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공사비 인상과 분담금 문제로 갈등을 겪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재건축 사업의 빠른 진행을 최고의 호재로 받아들인다.

전자는 공사비를 걱정하고, 후자는 미래 시세를 기대한다.

전자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후자는 주변 신축 아파트의 최고가를 검색한다.

전자는 비례율과 종전자산평가액을 따지고, 후자는 몇 년 뒤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같은 재건축인데 누구는 계산서를 보고 있고, 누구는 광고지를 보고 있다.

어쩌면 가장 큰 차이는 재건축을 경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비용을 자신의 돈으로 지불할 차례가 왔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직 재건축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분담금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하지만 분양신청을 앞둔 조합원에게 분담금은 바로 자신의 생활과 자금계획에 영향을 주는 현실이다.

어제까지 자산가치 상승의 상징이었던 재건축이 오늘은 현금 조달 능력을 시험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1. 철거는 건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낡은 아파트에는 언제나 두 개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하나는 지금 시장에서 거래되는 매매가격이다.

다른 하나는 그 아파트를 실제 신축으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첫 번째 가격표에는 미래의 기대감이 반영된다.

그러나 두 번째 가격표는 공사비와 금융비용, 일반분양 수입, 각종 사업비라는 현실적인 숫자들로 결정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첫 번째 가격표를 볼 때 두 번째 가격표를 지나치게 낙관하기 쉽다는 점이다.

'재건축되면 얼마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열광하면서도, '그때까지 얼마가 더 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그렇게 기대감은 현재의 매매가격에 반영되고, 비용은 미래의 조합원에게 남겨진다.

물론 모든 재건축 투자가 실패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업성이 뛰어나고 취득가격이 적정하다면 재건축은 상당한 개발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문제는 개발이익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지금의 매매가격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비싼 것은 때로 건물이 아니라 기대감이다.

그리고 기대감은 건설사가 시공하지 않아도 만들어지고, 분양가상한제의 적용을 받지도 않으며, 공사비 인상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보다 매력적인 상품이 있을까.

미래의 신축 아파트를 보여주면서 오늘의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추가분담금은 별도다.

금융비용도 별도다.

사업 지연에 따른 기회비용 역시 별도다.

심지어 미래의 신축 시세를 보장해 줄 의무도 없다.

미래의 수익은 판매가격에 포함하면서, 미래의 위험은 구매자에게 이전하는 구조다.

에필로그. 환상은 철거되지 않는다

은마아파트의 추정 분담금 4억 3,000만 원은 단순히 어느 강남 재건축 단지의 부담금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그 숫자는 재건축이라는 장밋빛 미래가 현실로 바뀌는 과정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건설사는 공사비를 받아야 하고, 금융기관은 이자를 받아야 하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각종 비용 역시 누군가는 지불해야 한다.

아무리 입지가 좋고 이름값이 높은 아파트라도 이 계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롭다.

어느 동네에서는 분담금 때문에 조합원들이 고민하는 동안, 다른 동네에서는 여전히 재건축만 되면 엄청난 시세차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수십 년 기다린 재건축의 최종 계산서를 받아 들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 계산서를 받아볼 날이 멀었다는 이유로 꿈의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철거를 앞둔 아파트 판매의 진짜 골든타임은 언제일까.

어쩌면 그것은 철거 날짜와 관계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신축 아파트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그려져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그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비용은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순간.

파는 사람은 미래의 신축을 이야기하고, 사는 사람은 미래의 시세차익을 상상하는 순간.

그리고 아직 누구도 그 미래의 최종 계산서를 받아보지 않은 순간.

그때 재건축 아파트는 가장 아름다운 상품이 된다.

철거되는 것은 낡은 콘크리트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무너지는 것은 누군가의 기대수익률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계산이 끝나갈 무렵, 또 다른 동네의 낡은 아파트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말이 들려올 것이다.

"여긴 재건축되면 진짜 대박입니다."

아파트는 철거되지만, 재건축의 환상은 철거되지 않는다.

그저 다음 재건축 예정 단지로 이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