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다 정의가 먼저, 가슴이 웅장해지는 올림픽파크포레온(구 둔촌주공) 변기소송

올림픽파크포레온의 변기 소송은 겉으로 보면 소변 튐이라는 생활 불편에서 시작된 분쟁이지만, 개별 가구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변기를 교체할 수 있음에도 수천 명이 하자 판정과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품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된 유명 제조사의 제품이고 하자 여부도 법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더 비싸고 오래 걸리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 배경에는 “왜 내가 해결해야 하느냐”는 책임의식과 시공사에 대한 신뢰 상실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 신뢰가 남아 있다면 몇십만원짜리 생활용품 문제로 끝날 일이, 신뢰가 무너지면 정의와 책임의 문제가 된다.

들배지기 · 개인 의견 · 현재 유효 · 공개 · 수정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에서 변기 때문에 소송이 벌어졌다. 입주민들은 변기 사용 시 소변이 밖으로 튀거나 변기 커버 등에 묻는다고 주장한다. 악취와 위생 문제를 넘어 일부에서는 요도염과 방광염 같은 건강 이상까지 호소한다. 물론 현재까지 변기 사용과 해당 질환 사이의 직접적인 의학적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토교통부 하자 심사로 넘어갔고, 공동 시공사인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과 변기 제조사 스탠다드인터내셔널은 하자 심사를 신청한 입주민 1600여 명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제 소변 튀는 변기가 공동주택의 하자인지 법원이 판단하게 됐다.

기사를 처음 읽고 든 생각은 단순했다. 건강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그냥 변기를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변기는 집의 기둥도 외벽도 아니다. 수천만원이 필요한 구조공사도 아니다. 매일 사용하는 변기가 그렇게 불쾌하고 위생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건강까지 우려한다면, 개별 가구 입장에서는 하자 판정을 기다리는 것보다 마음에 드는 변기를 사서 교체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최소 5000가구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고 전량 교체를 요구했고, 1600여 명이 하자 심사를 신청했다. 결국 시공사와 제조사까지 법원으로 갔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장면이다. 건강보다 정의가 먼저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입주민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단지에서 많은 사람이 비슷한 현상을 호소하고 특정 모델에서 문제가 두드러진다면 제품의 구조적 적합성을 확인해 볼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누가 봐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길 사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것이 내가 굳이 “그냥 바꾸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묻는 이유다. 문제가 된 제품은 정체불명의 업체가 현장에서 임의로 제작한 물건이 아니라 스탠다드인터내셔널의 아메리칸스탠다드 제품이다. 시중에 판매돼 온 제품이고 시공사 측은 조합이 지정한 모델을 정상적으로 시공했으며 현재까지 제조상·품질상 결함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누수나 파손처럼 결함의 존재가 눈에 보이는 사건이 아니다. 결국 쟁점은 정상적으로 판매되는 변기가 실제 사용 과정에서 불편을 일으킨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주택의 하자가 될 수 있느냐는 꽤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입주민의 민원에는 “여성의 신체 구조를 고려해 설계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도 있다.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법적인 하자로 인정하려면 어디선가 선을 그어야 한다. 여성의 신체 구조를 어느 정도까지 고려해야 정상적인 변기인가. 사람마다 체형과 자세가 다른데 어느 정도의 튐부터 하자인가. 변기 길이가 1cm 길었으면 문제가 줄었다면 그 1cm는 하자인가. 2cm라면 어떤가. 같은 논리를 주택 전체에 적용하면 싱크대 높이가 2cm 낮아서 키 큰 사람이 허리를 조금 더 굽혀야 하는 문제, 세면대 수전이 몇 cm 다른 위치에 있어 물이 조금 더 튀는 문제, 샤워기 거치대가 누군가에게 높고 다른 사람에게 낮은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모든 생활설비에는 언제나 지금보다 조금 더 편한 1cm와 2cm가 존재한다.

그래서 규격과 허용범위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의 신체와 생활습관에 완벽하게 맞는 설계는 불가능하다. 하자 판정이 “조금 더 좋은 설계가 가능했는가”를 묻는 제도가 된다면 사실상 모든 아파트에는 하자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규격에만 맞으면 어떤 사용상의 문제도 하자가 아니라는 뜻 역시 아니다. 일반적인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하는데 동일한 위생 문제가 반복된다면 규격과 별도로 제품의 사용 적합성을 따져볼 수도 있다. 결국 법원이 판단해야 할 것은 ‘최적의 제품이 아니었다’와 ‘정상적인 제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이의 경계일 것이다. 어느 쪽도 결론이 뻔한 싸움은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싸움이고, 개별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당장 불편을 없앨 방법도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굳이 더 어렵고 긴 길을 택했을까. 나는 그 답을 찾으려면 변기보다 올림픽파크포레온, 더 정확히 말하면 구 둔촌주공의 과거를 한번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이 단지가 가진 일종의 원죄가 있다면 분양 단계부터 생긴 불신이다. 2023년 1월 정당계약이 끝났지만 사업 주체는 최종 계약률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를 ‘깜깜이 계약률’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정당계약과 예비당첨자 계약을 거친 계약률이 약 81%였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남은 899가구가 무순위 청약으로 넘어갔다. 이후 무순위 물량까지 계약되며 결국 일반분양 4786가구는 완판됐다. 결과만 보면 성공이다. 그러나 수분양자 입장에서 과정까지 투명하게 느꼈는지는 다른 문제다.

상품 자체에서도 분양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주방뷰’다. 일부 84㎡E 타입은 맞은편 세대의 주방창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1.8m 정도에 불과했다. 시공사업단은 불투명창과 엇갈린 개폐창을 적용해 세대 간 간섭을 줄였다고 설명했지만, 모델하우스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 설계는 분양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실제 청약 과정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것 역시 법적으로 잘못된 설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수억원을 들여 새 아파트를 산 사람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지었어야 했나”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장면이다.

계약률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법 분양이었다는 뜻도 아니고, 동 사이가 좁다고 해서 그 자체로 기만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청약자는 도면을 보고 계약했고 결국 시장에서 물량도 모두 소화됐다. 그러나 사람의 신뢰는 적법과 위법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몇 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이 사업에서 나보다 사업자의 이해가 언제나 먼저였던 것 아닌가”, “나는 충분한 정보를 받고 선택했던가”라는 의문이 생기면 그 다음 사건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전에는 사소한 불편이었던 것이 “또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문제인가”로 읽히기 시작한다. 이것이 실제 올림픽파크포레온 주민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집단적인 행동을 설명할 하나의 가설로는 생각해볼 만하다.

신뢰가 깨지면 사람은 종종 가장 싼 해결책보다 가장 비싼 해결책을 택한다. 내 돈으로 변기를 바꾸면 오늘부터 편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결국 또 내가 알아서 해결했다”는 감정이 남는다. 신뢰가 남아 있는 관계라면 “이 정도는 내가 바꾸지”라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신뢰가 깨진 관계에서는 “왜 내가 바꿔야 하지?”가 된다. 변기의 가격은 작은데 원칙의 가격은 점점 커진다. 문제 해결의 목적도 ‘소변이 튀지 않게 하는 것’에서 ‘누구 책임인지 확인하는 것’으로 이동한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신뢰가 무너지면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랫동안 안보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협력해 왔고, 미 국무부 자료에서도 걸프 지역 안보와 이란의 영향력 견제가 양국 안보협력의 중요한 요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쪽에게 제공되는 안보가 다른 쪽에서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미국과 사우디의 협력이 깊어질수록 이란이 그것을 자신을 견제하는 질서로 받아들인다면, 그다음부터는 상대의 행동을 호의적으로 해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어느 한쪽이 선하거나 악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뢰가 사라진 관계에서는 똑같은 행동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국가들은 타협보다 훨씬 비싼 군비와 제재와 대립의 비용을 감수하기도 한다.

개인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신뢰하는 상대와 문제가 생기면 가장 싸고 빠른 해결책을 찾는다. 믿지 않는 상대와 문제가 생기면 먼저 책임부터 따진다. 누가 잘못했는가, 누가 인정해야 하는가, 왜 내가 돈을 내야 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정작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비용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신뢰가 사라진 관계에서는 그 행동이 당사자에게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이번에 한번 양보하면 다음에도 내가 부담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올림픽파크포레온 변기소송의 승패보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가 더 궁금하다. 정말 사람들은 몇십만원짜리 변기 하나 때문에 1600명이 하자 심사를 신청하고 법정에서 시공사와 제조사를 만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분양과 입주를 거치며 “우리가 제대로 대우받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조금씩 쌓였고, 변기가 그 불신을 밖으로 드러낸 마지막 계기였을까. 공개된 사실만으로 입주민들의 내면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정이다. 하지만 경제적 실익만으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이 집단적으로 나타나고, 더구나 법적으로도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싸움에 그만한 비용과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건강이 정말 걱정된다면 변기를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변기를 바꾸는 대신 책임을 가리기로 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이길 것이 보장된 싸움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더 좋은 변기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문제라고 했을 때 당신들은 우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왜 또 우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지도 모른다.

신뢰가 남아 있었다면 변기 하나는 생활용품의 문제로 끝났을 수 있다. 신뢰가 사라지면 몇십만원짜리 변기도 정의의 문제가 된다. 사람들이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문제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승패가 불확실한 싸움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눈앞의 문제만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눈앞에서 고장 난 것은 변기일지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고장 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신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