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치킨게임과 고유가: 아무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동유럽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뒤에는 트럼프와 이란 등 정치 지도자들의 타협 없는 생존 전략과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이 정권 보유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고유가를 유발하는 치킨게임을 지속함에 따라 그 누구도 선뜻 에너지 가격을 내리지 않는 냉혹한 정치가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
동유럽 정유시설을 겨냥한 화염과 중동 호르무즈 해협의 삼엄한 긴장감 뒤에는 시장 원리나 기업의 셈법을 넘어선 더 거대하고 냉혹한 동인이 작동하고 있다. 바로 정치 권력의 생존 전략과 타협 없는 정치적 자존심이다. 세계는 지금 물가를 잡겠다는 구호와 달리, 정치적 결단으로는 그 누구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기이한 동결 상태를 목도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이란 신정 체제라는 극단의 정치적 리더십이 맞물린 전선은, 아무도 에너지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다는 명제를 기업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확고히 이동시킨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셈법은 명확하다. 대외적으로는 이란을 비롯한 반미 진영에 강력한 압박을 가함으로써 강한 미국의 입지를 과시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 중동에서의 지정학적 긴장을 유지하고 이란의 에너지 수출을 억제하는 강경책은 그의 핵심 정치적 자산이다. 물론 치솟는 유가가 미국 내 물가를 자극하자 임시방편으로 제재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도 하지만, 이란이나 반미 진영과의 정치적 타협을 통한 근본적 유가 하락은 트럼프에게 상징적인 정치적 패배를 의미한다. 정적이나 적국에게 물러섰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권력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 유가를 낮추기 위한 정치적 후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란의 사정은 훨씬 더 치명적이고 강경하다. 서방의 고강도 제재와 압박 속에서 이란 지도부에 물리적·정치적 후퇴는 곧 체제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중동 정세를 불안정하게 유지하고 에너지를 인질로 잡는 것이 서방을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외교적 무기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고 고유가 기조를 유지시키는 것은 이란에게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체제 생존을 위한 배수진이다. 이란 역시 정치적으로 물러설 명분도, 의지도 전혀 없는 셈이다.
결국 중동과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잔혹극의 본질은 누가 먼저 굽히느냐의 정치적 치킨게임이다. 트럼프는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고,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는 순간 정권의 명분을 잃으며, 교전국의 지도자들 역시 지정학적 긴장이 가져다주는 정치적 결집력을 버릴 이유가 없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정치인이 유가 폭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들의 실제 정치적 결단은 고유가를 유발하는 긴장의 끈을 단 한 치도 놓지 않고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보다 무서운 것은 정치인의 생존과 자존심이다. 트럼프도, 이란도, 그 외의 주요 정치적 주자들도 자국의 정치적 명분과 권력 강화를 위해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삼고 있다. 물러설 생각이 없는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치킨게임의 판대기 위에서, 오늘도 국제 유가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경제를 인질로 잡은 한, 아무도 에너지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