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대한민국에 호미질을 가하다

한국은행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 압력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했고, 신현송 총재는 이를 더 큰 충격을 막기 위한 '호미질'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번 금리 인상의 의미는 국내 성장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과 미국의 해상안보 보장 능력 약화, 공급망 재편과 전략자원의 가치 상승은 세계경제의 비용 구조를 바꾸고 있다. 각국이 에너지 비축과 국방, 생산시설 확보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면서 과거의 초저금리 환경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민감한 한국은 성장세가 유지되는 지금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상황에 따라 추가 금리 인상과 장기간의 긴축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호미질은 성장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안정해진 세계경제 속에서 그 성장을 지키기 위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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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 수출은 기록을 갈아치우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높아진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높은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렸다.

7월과 8월 두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10월에는 연 3.00%로 동결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동결을 두고 '호미질의 결실'이라고 표현했다.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호미로 미리 막았다는 것이다.

작은 힘으로 미리 대응했기에 더 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뜻이다. 신 총재는 선제적인 금리 인상 덕분에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에도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됐고, 환율과 수입물가 상승 압력도 완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비유가 지금의 경제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다만 호미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호황은 수출과 투자, 기업이익을 통해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곧 모든 산업과 가계의 형편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아진다고 해서 동네 음식점의 매출까지 같은 속도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이자 지급 능력은 제각각이다.

성장은 경제 전체의 숫자로 나타나지만 그 성과가 도착하는 곳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금리를 올릴 필요는 있다.

중앙은행은 지금 경제가 얼마나 성장하는지만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지 예상하고, 그 위험이 경제 전체로 번지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국내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는 오랫동안 세계경제에 값싼 상품과 자본을 공급했다.

기업은 가장 저렴한 생산지를 찾아 공장을 세웠고,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국경 너머에서 조달했다. 에너지는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는 곳으로 이동했고, 상품은 가장 효율적인 항로를 따라 운송됐다.

그 과정에서 생산비는 낮아졌고 공급망은 길어졌다.

세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히 각국이 자유무역을 선호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넘는 동안 그 이동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국가였다.

막강한 해군력은 주요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지지했고, 달러와 미국 금융시장은 국제거래의 중심에 있었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 그 질서에서 막대한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관세가 올라가고 기술에는 수출통제가 붙었다. 국가들은 상대방의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위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가장 싼 생산지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생산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중동의 전쟁이 더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시장의 핵심 통로다.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와 LNG는 세계 각국의 산업과 가계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된다.

그런데 이제 그 항로가 안전하다는 믿음은 예전과 같지 않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군사력으로도 모든 민간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드론과 미사일이 대형 함대를 격파할 필요도 없다.

상선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위험만 지속되어도 선주는 운항을 주저하고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올린다. 화주는 운송 지연과 손실 가능성을 계산해야 한다.

항로가 열려 있다는 것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에는 미국이 제공하는 해상안보가 국제경제의 기반시설처럼 작동했다. 각국의 기업들은 그 안전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고 가장 효율적인 생산과 운송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 전제가 흔들리면 계산이 달라진다.

안전을 확보하는 데 별도의 비용이 필요해진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CEO는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다시 열리고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더라도, 세계 석유 재고를 다시 채우면서 수요를 충족하는 데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2년.

전쟁이 끝나고 항로가 정상화되어도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를 복구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재고를 채우는 데 2년이 걸린다고 해서 유가가 반드시 2년 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재고를 복구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각국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고를 확보하려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번 사태를 경험한 국가들은 비축유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것이다. 기업들도 하나의 공급망과 하나의 운송경로에 의존하는 위험을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재고를 최소화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영이었다.

이제는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보험이 된다.

그 보험료는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호르무즈가 정상화된다고 해서 세계경제가 자동으로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바다를 건너는 배는 다시 늘어나겠지만, 그 바다가 언제까지 안전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부시 가문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닐 부시가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공개한 것이다.

물론 닐 부시 개인의 선택이 부시 가문 전체의 정치적 전향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간선거의 결과를 예고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화당을 지지해 온 인물이 공개적으로 다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여론조사 수치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존 정치질서 내부의 균열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의 대이란 전략은 이러한 국내정치의 압박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이란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려면 군사적·경제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대치가 길어지면 에너지시장의 불안과 생활비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강경책을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고, 타협하려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게다가 이란은 미국보다 훨씬 적은 군사력으로도 세계경제에 상당한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간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협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대치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사태를 통해 각국이 배운 교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이 예전처럼 모든 것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패권이 당장 무너진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여전히 막강하고, 달러를 대체할 국제통화도 마땅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미국에 의존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변화는 이미 공급망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자본과 기술을 가진 선진국이 생산지를 선택했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면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를 찾았고, 원자재가 필요하면 그것을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는 국가와 거래했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했다.

하지만 세계가 공급망의 취약성을 경험하면서 협상의 조건도 달라지고 있다.

핵심광물과 에너지, 대체하기 어려운 생산시설을 보유한 국가들은 자신들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공급망을 재편하려면 이러한 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자국 내 가공시설과 공장 건설, 기술 이전과 장기 구매계약, 안보협력까지 협상의 대상이 된다.

물론 모든 개발도상국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대외부채가 많은 국가들은 오히려 더욱 취약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하기 어려운 자원과 생산능력을 보유한 국가들의 몸값은 이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세계경제의 생산비와 투자비용을 바꾸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기업들이 가장 효율적인 생산지만을 선택할 수 없게 되고, 전략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과거의 저렴한 공급망은 그대로 복원되기 어렵다.

여기에 각국의 국방비와 에너지 안보 투자,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 건설까지 더해진다.

세계는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은 무한하지 않다.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기업이 공장을 건설하려면 투자자와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자금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면 금리를 높이는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생산성 향상과 저축 증가, 경기 둔화가 그러한 압력을 상쇄할 수도 있다. 막대한 투자가 모두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며, AI와 첨단산업은 새로운 성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과거보다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공급망 유지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었다는 변화는 가볍게 볼 수 없다.

과거의 초저금리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수 있는 이유다.

신현송 총재 역시 10월 23일 국정감사에서 과거와 같은 초저금리 시대로 쉽게 돌아가기 어렵다는 견해에 동의했다.

앞으로 고성장·고금리 상황에 대응해 정책을 펴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나는 이 말이 단순히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설명보다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경제의 금리환경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의 호미질도 다시 보인다.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독립된 섬이 아니다.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국제무역과 수출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나라다.

호르무즈에서 발생한 충격은 한국의 주유소와 공장에 도착한다.

미국의 국채금리와 연준의 통화정책은 한국의 외환시장과 자금조달 여건에 영향을 준다.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입물가가 오른다. 기업의 생산비가 증가하고 가계의 생활비 부담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호르무즈의 선박을 보호할 수는 없다.

이란과 미국의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고, 세계 각국의 공급망을 다시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돌려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외부에서 발생한 충격이 국내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번지는 것은 억제할 수 있다.

환율과 물가에 대한 기대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고, 금융시장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임금과 가격 결정에 스며들고, 환율 불안이 다시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는 상황이 되면 나중에는 훨씬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이것이 선제적인 긴축의 의미다.

작은 금리 인상을 미리 단행함으로써 앞으로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한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호미질 한두 번으로 모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 충격이 반복되고 세계경제의 비용 구조가 장기간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면 한국은행도 추가적인 대응을 검토해야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결정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성장세가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여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가 침체되어 가계와 기업의 형편이 빠르게 악화하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리기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수출과 투자가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중앙은행은 보다 긴 시야에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

높은 성장률은 금리를 올려야 하는 이유인 동시에, 필요한 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기도 하다.

물론 긴축의 비용은 존재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을 보유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 있고, 취약한 차주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수입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환율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면 결국 경제 전체가 더 큰 부담을 질 수 있다.

높은 물가는 대출이 없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모든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감소한다. 기업의 비용이 상승하면 생산과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금리 인상으로 발생하는 부담은 눈에 잘 보인다.

대출이자 청구서에 숫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면 선제적인 금리 인상으로 막아낸 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발생하지 않은 환율 급등과 인플레이션, 일어나지 않은 금융불안을 숫자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방적인 정책은 언제나 평가하기가 어렵다.

호미로 막아냈다면 애초에 가래가 필요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앞으로의 문제는 금리가 얼마나 더 오르느냐에만 있지 않다.

높은 금리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도 중요하다.

6개월의 높은 금리는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3년, 5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낮은 금리로 빌렸던 대출의 만기가 돌아오고, 새로운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동안 누적된 이자비용은 가계와 기업의 현금흐름을 약화시킨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모든 경제주체가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업은 수출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어떤 기업은 높은 원자재 가격과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가계는 자산과 소득이 증가하지만, 어떤 가계는 생활비와 이자 부담이 소득 증가분을 넘어선다.

따라서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통화정책만큼이나 취약한 경제주체의 부채와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부실이 불필요하게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생산성 향상과 산업구조 개선을 통해 경제가 높은 자금조달 비용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높은 금리에 적응하는 경제를 만드는 것은 중앙은행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의 재정정책과 산업정책,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기업과 가계의 재무적 선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세계경제가 변했다면 우리 경제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초저금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때는 금리가 낮아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구조적으로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고, 물가상승 충격이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

물론 영원한 고금리 시대가 온다는 뜻은 아니다.

경기침체가 깊어지면 금리는 내려갈 수 있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물가상승 압력도 완화될 수 있다. 지정학적 갈등이 완화되면서 국제교역의 비용이 다시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금리가 한 차례 내려가는 것과 과거의 초저금리 시대가 복원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세계화 시대의 낮은 금리는 단지 중앙은행이 돈을 싸게 공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효율적인 공급망과 안정적인 국제질서, 상대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 풍부한 저축과 자본의 흐름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조건들이 달라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고, 국가들이 전략자원의 가치를 새롭게 계산하며, 미국조차 과거처럼 국제질서의 모든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 비용은 결국 세계경제 어딘가에 남는다.

국채의 이자비용으로, 기업의 생산비로, 가계의 생활비로 나타난다.

한국은 그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국제교역과 수입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은행의 호미질은 앞으로도 필요할 수 있다.

한 번의 인상으로 충분할 수도 있고, 몇 차례의 추가 인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금리를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금리 인상 자체를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성장하는 경제에도 금리 인상은 필요하다.

특히 성장하는 경제가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 놓여 있다면, 그 성장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선제적인 방어가 필요할 수 있다.

신현송 총재는 호미질로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시간을 벌었다는 것은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니다.

호르무즈가 정상화되어도 세계 석유 재고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각국이 늘린 국방비와 공급망 투자는 전쟁이 끝났다고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이미 누적된 국가부채와 훼손된 국제질서의 신뢰가 단기간에 복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경제는 오랫동안 익숙했던 저비용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와 같은 값싼 돈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세계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한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앞으로 다가올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금리 인상은 때로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불안으로부터 경제를 지키는 데 필요한 비용일 수도 있다.

호미질은 밭을 망가뜨리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작물이 자라는 동안 잡초를 제거하고 물길을 정비하며,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작은 손질을 하는 일이다.

경제도 다르지 않다.

성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위험을 방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성장하고 있을 때 준비해야 한다.

경제가 약해지고 금융시장이 흔들린 다음에는 호미로 해결할 수 있었던 일에도 가래를 동원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행이 호미를 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동안 대한민국의 성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장을 지키려면 때로는 금리를 더 올릴 준비도 해야 한다.

호미질의 목적은 성장을 멈추는 데 있지 않다.

다가올 위험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