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레빗은 왜 백악관을 떠났나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사임 이유는 공식적으로는 가족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트럼프와 관계를 끊었느냐가 아니라 권력의 최전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야심이 뚜렷한 20대 정치인에게 백악관 대변인 자리는 막대한 자산인 만큼, 트럼프가 여전히 확실한 ‘황금동아줄’이라면 지금 그 자리를 포기하는 선택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이란전 장기화와 호르무즈를 둘러싼 트럼프의 거침없는 행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모든 말을 직접 방어해야 하는 부담은 커지고 있다. ‘외부 자문’이라는 관계를 남겨둔 것도 반드시 강한 충성의 증거라기보다, 인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드러운 거리두기의 방식일 수 있다. 레빗의 속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권력의 변곡점은 때때로 여론조사보다 그 주변 사람들이 자기 의자를 조금씩 뒤로 빼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먼저 드러난다.
황금동아줄에서 내려오는 법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사임한다.
공식적인 이유는 가족이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업무에 복귀했지만 어린 두 자녀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과 백악관 대변인의 막대한 업무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백악관 대변인은 평범한 직업이 아니다. 매일 세계의 언론 앞에 서야 하고 대통령의 모든 발언과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 어린 자녀 둘을 키우는 부모에게 그 생활이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의심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눈치는 빠르네.”
“슬슬 하향곡선을 그리니까 탈출하는 거지.”
“침몰하는 배에 있어봤자 덕 될 게 없다고 판단했겠지.”
이런 댓글들이 적지 않은 공감을 얻었다.
사람들이 레빗의 속마음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속마음은 모르지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비슷한 장면을 너무 많이 봤다.
사람이 어떤 조직이나 사람에게서 멀어질 때 반드시 싸우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수록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직책을 내려놓는다.
책임을 줄인다.
거리는 벌리지만 관계는 유지한다.
그리고 말한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필요하면 계속 돕겠다.
외부에서 자문하겠다.
레빗도 트럼프와 절연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그녀가 앞으로도 외부 자문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이런 문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관계가 좋다는 것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얼마든지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레빗이 무엇을 계속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그만두는가다.
그녀는 트럼프와 연락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말을 매일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방어하는 일을 그만둔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레빗은 아직 20대다.
이미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트럼프 대선 캠프의 대변인을 거쳐 역대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이 됐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 우연히 백악관에 들어갔다가 가족을 위해 원래 생활로 돌아가는 경우와는 다르다.
그녀에게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자리는 세계에서 가장 힘든 직업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정치적 경력 가운데 하나다.
특히 대통령이 잘나갈 때 그렇다.
권력의 중심에서 매일 전국에 얼굴을 알리고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20대 정치인에게 그보다 좋은 발판은 흔치 않다.
그래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트럼프가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정치적 ‘황금동아줄’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굳이 지금 그 동아줄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내려올 이유가 얼마나 클까.
물론 가족이라는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사람의 결정은 하나의 이유로만 내려지는 것도 아니다.
가족이 70이고 정치적 판단이 30일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밖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식적인 한 줄보다 행동의 방향을 본다.
그리고 지금 행동의 방향은 분명하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동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시점이다.
최근 트럼프의 대통령직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그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은 길어지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의 위험요인이 됐다.
유가가 오르고 미국 내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트럼프의 발언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란을 완전히 패배시킨 뒤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선포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 발언이 레빗 사임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간상으로도 레빗의 사임 발표가 먼저였다.
오히려 이 발언은 다른 것을 보여준다.
지금 백악관 대변인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만들겠다”고 말하면 세계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정말 미국 정부의 정책인가.
국제법적으로 가능한가.
국방부와 협의됐는가.
동맹국은 알고 있었는가.
실제로 점령하겠다는 뜻인가.
선박 통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은 어디까지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 백악관 대변인이다.
대통령의 말이 신중할수록 대변인의 일은 쉽다.
대통령의 말이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대변인은 어려워진다.
대통령의 말과 정부의 정책 사이에 간격이 생길수록 그 간격을 메워야 하는 사람이 필요해진다.
그 자리에 레빗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래서 레빗의 사임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트럼프를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끝났다고 확신했다고 생각할 근거도 없다.
그보다 인간적으로 훨씬 익숙한 선택처럼 보인다.
가능성은 남겨두고 위험은 줄이는 선택이다.
트럼프가 앞으로 다시 상승하면 관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대통령의 자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상황이 더 나빠지면 그녀는 더 이상 매일 브리핑룸에 서서 그 모든 결정을 자신의 얼굴로 방어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관계를 두 가지로 생각한다.
붙어 있거나 떠나거나.
충성하거나 배신하거나.
하지만 현실의 인간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권력 주변에서는 더 그렇다.
가장 흔한 방식은 문을 세게 닫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문은 열어놓은 채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들어갈 수도 있고, 상황이 나빠지면 그대로 걸어갈 수도 있다.
“외부 자문”이라는 자리는 그런 면에서 절묘하다.
동아줄은 손에서 완전히 놓지 않는다.
하지만 온몸의 무게를 더 이상 그 줄에 걸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이다.
몇 년 뒤 레빗이 다시 트럼프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온다면 지금의 사임은 정말 가족을 위한 잠깐의 휴식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녀가 점차 다른 정치적 길을 걷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이번 사임을 그 출발점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레빗의 진짜 속마음을 맞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이다.
권력의 운명은 때때로 여론조사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보여준다.
잘나가는 권력에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앞으로도 얻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대수익보다 위험이 커지기 시작하면 가장 영리한 사람부터 조금씩 거리를 조정한다.
처음에는 사임이다.
그다음에는 외부 활동이다.
그다음에는 독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돌아보면 한때 대통령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아직 트럼프에게 그런 순간이 왔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레빗 한 사람의 사임만으로 그렇게 판단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권력의 변곡점은 언제나 거대한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 관계는 그대로라고 말하면서 자기 의자를 조금 뒤로 빼는 것이다.
캐럴라인 레빗은 트럼프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의 ‘입’이라는 자리에서는 내려왔다.
지금은 그 차이만 기억해둘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