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커졌지만 사람의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개그콘서트 ‘박대박’의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겠다”는 공약 풍자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일자리의 숫자와 경제적 가치의 차이를 보여준다. 경제 성장의 본질은 사람을 더 많이 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치, 즉 몸값을 높이는 데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산업 발전과 함께 노동 생산성이 올라가며 임금과 생활 수준이 함께 개선됐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일자리 숫자와 소비 수준만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사람의 실질적인 경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높은 생활 수준이 곧 더 부유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짜 성장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더 높은 가치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경제의 목표는 일자리 개수가 아니라 사람 한 명의 가치를 높이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개그콘서트의 ‘박대박’ 코너에는 지금 다시 보면 묘하게 시대를 앞서간 장면이 하나 있다. 약 15년 전,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일상적인 개념이 되기도 전의 개그다. 당시에는 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경제가 성장하는 방식과 일자리의 본질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내용은 이렇다.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겠다”는 공약에 대해 어떻게 만들 것이냐고 묻자, 황당하게도 “기존 근로자 100만 명을 해고하면 된다”고 답한다. 해고된 사람들은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청룡열차를 만들러 가면 된다”고 한다. 앞에서는 청룡열차를 만들 수 없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아까는 만들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100만 명이 생겼다”고 답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한 억지 개그다. 하지만 이 장면의 진짜 풍자는 “일자리의 숫자를 늘리는 것”과 “사람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데 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커지는 과정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노동자의 숫자가 아니라 노동자 한 명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증가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기술 산업과 지식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은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진 일자리로 이동했다. 한 사람이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노동의 가격인 임금도 함께 올라갔다.
그 시기의 중산층은 단순히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노동소득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월급을 받고 생활비를 제외한 돈을 저축하고, 그 돈으로 교육과 자산을 마련했다.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이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값을 높이면 더 나은 삶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성장률이 낮아지고 산업 구조가 성숙할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새로운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으면 사회는 쉽게 숫자에 집중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생겼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취업했는가.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그 일자리가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가.
사람 100만 명을 일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100만 명이 이전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낮은 생산성의 일을 계속 나누어주는 것과, 사람의 능력과 시간을 더 비싸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
‘박대박’의 청룡열차 100만 명은 바로 이 차이를 비튼다. 사람을 모으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높이는 것은 어렵다.
경제가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사람이 성장한다. 더 좋은 기술을 배우고,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된다. 하지만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는 사람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남고, 사람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문제는 뒤로 밀릴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체감한 현실도 여기에 있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자신의 경제적 힘이 커졌다고 느끼기는 어려워졌다.
“오르는 것은 다 오르는데 월급만 안 오른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나 착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느낀 것은 자신의 노동이 만들어내는 가치와 생활비 상승 사이의 간격이었다.
물론 과거보다 생활 수준은 높아졌다.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더 다양한 물건을 소비하고, 더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 풍요가 모두 생산성 향상의 결과였던 것은 아니다.
소비 수준은 높아졌지만 저축 여력은 줄어들었다. 미래를 위해 축적해야 할 소득이 현재의 소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불안한 현실을 잊기 위해 더 좋은 물건, 더 나은 생활 모습을 통해 자신이 뒤처지지 않았다는 위안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소비는 가치 창출의 결과이지 가치 창출 그 자체가 아니다.
더 비싼 것을 살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소비를 한다고 해서 내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커진 것도 아니다. 진정한 풍요는 현재 얼마나 많이 사용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내 몸값이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월급 숫자가 커진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이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는 뜻이다. 한 시간 일해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고, 소비하고 남은 것을 미래를 위해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경제는 일자리가 많은 경제가 아니다.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다.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나누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100만 명이 이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제의 진짜 성장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도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는가”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일자리가 내 시간을 더 비싸게 만들었는가.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물어야 한다.
왜 우리의 노동은 소비의 증가만큼 가치가 높아지지 못했는가.
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가.
결국 사회의 진짜 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일하는가에 있지 않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얼마나 높은 가치로 바꿀 수 있는가에 있다.
일자리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몸값이 올라가는 사회.
그것이 경제 성장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