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우리 친구 아이가? 미국의 결정적 패착

미국은 이란의 완전한 무장해제보다 핵 문제를 통제하고 협상 가능한 상태로 돌려놓으려 했지만, 이란의 군사역량 자체를 약화하려는 이스라엘과 같은 전쟁에 올라타면서 목표와 종전 조건을 잃었다. 참수작전 참여는 이란 강경파의 논리를 강화했고, 전쟁은 애초 계산에 없던 호르무즈 불안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번졌다. 미국은 이란을 압박해 달러 중심 질서와 패권을 지키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전 세계인의 생활비를 끌어올려 트럼프와 미국에 대한 민심을 잃고 있다. 차라리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공격하기보다 이스라엘을 진정시키고 이란과의 협상 통로를 유지했다면, 종전의 보증인이라는 지위와 더 나은 선택지를 지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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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우리 친구 아이가? 미국의 결정적 패착

미국이 처음부터 이란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핵이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관리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된다.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친이란 무장세력도 미국에 불편한 문제였지만 반드시 모두 제거해야 하는 절대적 위협은 아니었다.

미국이 원한 것은 이란의 파괴가 아니라 방향 전환이었다.

이란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거나 혁명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은 미국에도 위험했다. 인구가 많은 지역 강국이 무너지면 민병대와 무기, 난민과 종파 갈등이 주변으로 흩어질 수 있다. 누가 그 빈자리를 차지할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트럼프가 그렸던 그림은 단순했을 것이다.

강하게 위협한다. 필요하면 제한적으로 공격한다. 이란이 더 큰 피해를 두려워해 협상장으로 돌아오면 핵 문제에서 양보를 받아낸다. 그 대가로 제재를 완화하고 체제의 생존을 묵인한다. 장기전 없이 더 좋은 합의를 얻은 뒤 승리를 선언한다.

트럼프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강압과 거래의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국이 이스라엘과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도 이란의 핵무장을 막으려 했으므로 겉으로는 목적지가 같아 보였다. 이스라엘이 독자적으로 공격하면 이란의 보복이 미군기지와 걸프 지역으로 번질 수 있으니, 차라리 미국이 처음부터 함께 움직이며 작전의 규모와 방향을 통제하는 편이 낫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버스 밖에 두면 혼자 폭주할 수 있다. 같은 버스에 태우고 미국이 운전대를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괜찮은 수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나라는 같은 적을 보고 있었을 뿐, 같은 목적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미국에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협상 가능한 문제였다. 이스라엘에는 자국 도시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생존의 위협이었다. 미국에 친이란 무장세력은 관리해야 할 지역 불안 요인이었지만, 이스라엘에는 국경을 둘러싼 전쟁망이었다.

미국은 핵 문제에서 충분한 양보를 받아내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핵시설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생산시설과 방공망, 드론과 해군, 대리세력과 이를 재건할 국가역량까지 약화하기를 원했다. 가능하다면 혁명체제 자체가 흔들리는 것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은 이란의 행동을 바꾸려 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힘을 없애려 했다.

같은 버스였지만 미국은 협상장에서 내릴 생각이었고, 이스라엘은 이란이 상당 기간 일어서지 못하는 지점까지 가려 했다.

그런데 미국은 버스에 오르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정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내릴 것인가.

누가 정차를 결정할 것인가.

미국이 이란과 합의하면 이스라엘도 공격을 멈출 것인가.

이란이 핵 문제에서는 양보하지만 탄도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전쟁은 끝나는가.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명확한 종전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최초의 패착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의 목표는 점차 이스라엘의 목표와 합쳐졌다. 처음에는 핵 위협을 막기 위한 압박이었지만 공격 대상은 미사일과 방공망, 해군과 지도부로 넓어졌다.

특히 이란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에 미국이 참여한 것은 결정적인 악수였다.

핵시설을 공격하는 것과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낸다.

핵시설 공격은 핵을 포기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도부 제거는 이란이 무엇을 양보하더라도 체제 자체가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신호다.

미국의 목적이 이란을 협상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협상 상대의 지도부를 제거하는 작전에 참여한 것은 자신의 목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한편으로는 핵 문제에서 타협하라고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타협을 결정할 지도부의 목숨과 체제를 위협한 것이다.

이란 내부의 실용파는 원래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다.

미국과 핵 문제에서 합의하면 제재가 완화되고 전쟁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핵시설을 넘어 미사일과 지도부, 체제까지 공격하면 강경파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핵을 양보하면 다음에는 미사일을 요구할 것이다.

미사일을 양보하면 대리세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혁명수비대와 정권 자체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이란의 무력화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미국은 폭격으로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했지만, 이란이 정치적으로 물러설 공간도 함께 좁혔다. 협상장으로 밀어 넣으려던 공격이 협상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부순 셈이다.

첫 수를 잘못 두자 다음 수의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이스라엘과 공동공격을 시작했으니 이란의 보복에서 이스라엘을 방어해야 했다. 이스라엘을 방어하려니 미국의 요격미사일과 방공자산이 소모됐다. 공격을 멈추려 하니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과 핵 능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계속하자니 미국의 국내 여론과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하나의 악수가 다음 악수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이란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가도 스스로 훼손했다.

핵 합의에서 이란이 원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제재 완화만도 아니다. 핵을 제한하면 공격이 끝난다는 보장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스라엘과 공동전쟁을 시작한 뒤에는 그 보장을 내놓기 어려워졌다. 미국과 합의하더라도 이스라엘이 탄도미사일이나 핵시설 재건을 이유로 다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재공격을 막을 수 없다면 이란은 미국과 합의할 이유를 의심하게 된다.

제재를 일부 풀어줘도 다시 폭격을 받을 수 있다.

원유를 수출해도 다시 봉쇄될 수 있다.

핵을 제한해도 미사일을 이유로 전쟁이 재개될 수 있다.

미국은 군사적 압박으로 협상력을 높이려 했지만, 정작 합의를 성립시키는 데 필요한 종전 보증 능력은 잃었다.

전쟁을 시작할 힘은 강해졌지만 전쟁을 끝낼 힘은 약해졌다.

그리고 여기서 호르무즈 해협이 등장했다.

호르무즈는 미국이 처음부터 해결하려 했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최초 목표는 핵 문제에서 이란을 압박하고 더 유리한 합의를 얻는 것이었다. 해협의 통항체계를 새로 설계하거나 이란과 항로 관리권을 협상하는 것은 애초 계산의 중심에 없었다.

호르무즈는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 오판이 만들어낸 새로운 비용이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정면으로 뒤집을 수 없었다. 대신 전쟁의 범위를 넓혔다.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문제로 바꿨다. 이란을 공격하면 호르무즈와 걸프의 유전, 항만과 미군기지가 위험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미국은 핵 문제 하나에서 양보를 받아내려고 출발했다.

그러나 전쟁이 확대되자 핵뿐 아니라 호르무즈 통항, 국제유가, 선박보험, 걸프국 방어, 미군기지 안전과 탄약 재고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다 여러 개의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물가다.

전쟁과 호르무즈 불안은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을 밀어 올린다. 에너지 가격은 운송비와 전기료, 비료와 농산물,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번진다. 중동에서 시작된 위험이 세계인의 장바구니와 주유소 가격표에 도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국가 통치에서 민심과 가장 가까운 문제다.

사람들은 복잡한 외교전략보다 오늘 오른 기름값과 식료품값을 먼저 느낀다. 군사작전의 명분이나 장기적 안보이익은 설명할 수 있지만, 월급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드는 현실은 설명으로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세계인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의 출발점에는 트럼프의 선택이 있다.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한 것도, 공격 목표를 확대해 전쟁을 장기화한 것도, 호르무즈를 세계경제의 불안요인으로 만든 것도 미국의 결정과 연결된다. 미국이 직접 가격을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을 흔든 최초의 정치적 판단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어렵지 않게 보인다.

유럽의 시민도, 아시아의 시민도, 중동과 개발도상국의 시민도 미국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생활비를 더 지불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란의 핵시설이 얼마나 파괴됐는지가 아니다. 기름값과 전기료, 식료품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가 더 중요하다.

물가가 오를수록 분노의 방향도 선명해진다.

전쟁을 결정하지 않은 세계의 시민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면서, 트럼프는 단순한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세계 물가를 흔든 당사자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미국 국내에서는 힘을 보여줬다고 주장할 수 있어도, 미국 밖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계산을 위해 전 세계인의 생활비를 올린 인물로 기억될 수 있다.

미국은 이란을 압박해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의 민심을 잃고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무역과 안정적인 해상교통, 예측 가능한 국제질서의 보증인을 자처했다. 그러나 미국의 결정이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면, 그 질서를 지킨다는 미국의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다.

군사적으로는 이란의 시설을 파괴했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지도력을 용인하던 사람들까지 돌아서게 만들었다. 미국의 힘이 세계의 안정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비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을 보호해야 할 질서가 아니라 피해야 할 위험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달러패권 콤플렉스도 무시하기 어렵다.

미국은 달러가 국제 결제와 원유 거래, 금융제재의 중심에 있어야 세계질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란이 제재를 우회해 중국과 원유를 거래하고 비달러 결제망을 넓히는 것은 미국에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제재의 효율과 달러의 권위가 함께 흔들리는 문제다.

달러는 미국이 총을 쏘지 않고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다.

그래서 미국은 달러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거래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핵 위협에 대한 현실적 우려와 달러 중심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결합하면서, 이란 문제는 미국이 쉽게 타협하기 어려운 상징적 문제가 됐다.

그러나 달러패권을 지키기 위한 압박이 세계 물가를 끌어올리고 미국에 대한 반감을 키운다면 역설이 발생한다.

세계인은 미국이 달러 중심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제공하는 안정의 혜택보다, 그 질서를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물가 상승의 비용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미국의 정치적 판단에 덜 흔들리는 에너지 공급망과 결제수단을 찾으려는 동기도 강해진다.

달러패권을 지키려는 과도한 힘의 사용이 오히려 달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자극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다 그 힘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이란을 굴복시키려다 세계인의 생활비를 올렸고, 달러의 권위를 지키려다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미국은 한 동맹국과 같은 버스에 탔지만, 그 버스의 연료비는 전 세계인이 나눠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영수증에 적힌 이름은 이스라엘보다 트럼프와 미국에 가깝다.

최근 미국이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다 취소한 것도 이러한 구조 안에서 봐야 한다.

공격 취소는 미국이 갑자기 평화를 선택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란을 더 공격할 군사적 능력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이란에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문제는 파괴하는 능력과 질서를 만드는 능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핵시설과 미사일기지를 파괴할 수 있다. 방공망과 해군을 약화할 수 있다. 지도부를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폭격만으로 호르무즈를 장기간 안전하게 열어놓을 수는 없다. 상선이 다시 다니려면 이란의 묵인이나 협조가 필요하다. 선사와 보험회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걸프국들이 보복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필요하다.

미국은 이란을 파괴할 수 있지만 이란의 협조 없이 자신이 원하는 중동질서를 만들 수는 없다.

공격 취소는 바로 이 한계를 인정한 결정이다.

미국은 이란을 더 때릴 수 있지만, 더 때린다고 원하는 결과가 가까워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른 수는 없었을까.

이스라엘과 같은 버스를 타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결과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반대에도 독자적으로 공격했을 수 있고, 이란의 핵 문제가 미국이 기대한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공격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의 방어는 지원하고, 공격 범위와 시점을 제한하며, 이란과의 협상 통로를 유지했다면 적어도 몇 가지 이점은 있었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목표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이란에 핵 문제에서 양보하면 미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있다는 출구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미사일과 지도부, 체제 문제로 끝없이 확대되는 것을 견제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전쟁 당사자가 아니라 압박자이자 중재자, 종전의 보증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미국이 같은 버스에 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정류장에서 내릴 자유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국익을 추구했다.

이란의 핵과 미사일, 대리세력을 최대한 약화하고 미국의 힘을 이용해 자국에 유리한 지역질서를 만들려 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국가는 동맹을 이용해 자신의 위협을 줄이려 한다.

문제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목표가 자신의 목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차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무기지원, 외교적 영향력을 쥐고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의 방향은 힘의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더 절박한가.

누가 더 오래 싸울 의지가 있는가.

누가 전쟁을 멈추는 것보다 계속하는 편에서 더 큰 이익을 얻는가.

이스라엘에 이란은 제거해야 할 생존의 위협이었다. 미국에 이란은 협상과 제재로 관리해야 할 국제정치의 문제였다. 절박함이 다른 두 국가가 함께 전쟁을 시작하면 더 절박한 쪽이 목적지를 끌고 가기 쉽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통제하기 위해 같은 버스에 탔다.

하지만 버스에 타는 순간 이스라엘의 목표까지 미국의 책임이 됐다. 미국이 적당한 합의를 얻고 내리려 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때 미국은 물었어야 했다.

“이스라엘,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친구라고 목적지가 같은 것은 아니다. 친구가 느끼는 가장 큰 위협이 나의 가장 큰 위협인 것도 아니다. 친구가 원하는 전쟁의 끝이 내가 원하는 전쟁의 끝과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친구라면 같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됐을 수 있다. 때로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달려주는 일이 아니라, 위험한 방향으로 달리지 못하게 붙잡는 일이다.

미국은 이란을 압박하려다 종전 통제권을 잃었다.

핵 문제에서 양보를 받아내려다 호르무즈 문제까지 떠안았다.

참수작전으로 이란을 굴복시키려다 이란 강경파의 논리를 강화했다.

달러패권을 지키려다 비달러 질서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자극했다.

이스라엘을 통제하려다 세계의 물가를 올리고 세계의 민심까지 잃었다.

첫 수는 위험했다.

그다음 수는 나빴다.

그리고 수를 둘수록 더 나쁜 수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의 결정적 패착은 이스라엘을 믿은 데 있지 않다. 한 동맹국의 최대 목표를 자신의 국익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할 때 그 목표를 멈출 수 있다고 착각한 데 있다.

동맹을 이끌어야 할 국가가 한 동맹국의 전쟁에 올라타면서도 자신이 운전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착각의 대가는 지금 미국만이 아니라, 미국의 판단으로 오른 물가를 견디고 있는 전 세계의 시민들이 함께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