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미국의 석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란은 미국의 석유를 탐낸 적도,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질서에 개입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미국이 중동의 석유와 지정학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이란에 개입했고, 1953년 모사데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관여하면서 오늘날 반미감정의 역사적 토대를 만들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역시 서구 열강의 개입을 빼놓고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란 정권의 억압과 군사적 행동은 별도로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개입 역사를 지워주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다시 거론한 '장대한 분노'라는 작전명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미국이 먼저 중동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적대관계를 다시 군사개입의 명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또 한 번의 '장대한 분노(Operation Epic Fury)' 작전을 거론했다. 지난 2월 이란을 공격하면서 붙인 이름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작전명부터 묘하다. 장대한 분노라니.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그렇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란은 미국의 석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페르시아만에는 이미 석유가 넘쳐났고, 이란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해 미국의 자원을 확보하거나 정치질서에 개입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늘날 미국과 이란이 서로를 적대하는 관계가 된 것은 결코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20세기 초까지 이란은 영국과 러시아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을 우호적인 국가로 바라보기도 했다. 당시 이란인들에게 미국은 자신들의 주권을 위협하던 전통적인 제국주의 강대국들과는 다른 나라였다.
그 관계가 결정적으로 뒤틀린 사건이 1953년에 일어났다.
1951년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는 영국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던 자국의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자기 나라 땅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나라가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미국 CIA와 영국 정보기관이 지원한 쿠데타로 모사데그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은 이후 팔레비 왕정을 뒷받침했고, 이란에서 누적된 반미감정은 1979년 이슬람혁명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여기서 역사의 인과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란이 미국의 석유를 빼앗으려다 미국과 충돌한 것이 아니다. 자기 나라의 석유를 통제하려다가 미국과 충돌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중동 개입을 석유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냉전 시기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전략도 있었고, 이스라엘을 비롯한 동맹국의 안보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전략의 중심에 중동의 석유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은 중동의 석유가 필요했고, 더 정확히는 그 석유가 세계시장에 공급되는 질서에 막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직접 소비할 석유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경제를 움직이는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 역시 미국의 전략적 목표였다.
1980년 카터 대통령은 페르시아만에 대한 외부 세력의 지배 시도를 미국의 중대한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필요하다면 군사력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미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페르시아만이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걸린 지역이 되었다. 정작 그 바다를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란의 입장에서는 외부 강대국이 자기 지역의 질서를 관리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문제에서도 서구의 개입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빼놓을 수 없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공통된 종교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와 성지, 신앙의 정통성을 둘러싼 갈등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렇다고 현대 중동의 갈등을 단순히 종교적 광신이나 오래된 민족적 증오의 결과로 설명할 수는 없다.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과 이후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는 그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서구 강대국의 의사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역시 각자의 역사와 민족적 열망을 가진 주체였다. 그러나 그러한 열망이 충돌하는 정치적 질서를 형성하는 데 서구 열강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중동에는 서구가 개입하기 전부터 갈등이 있었다. 그곳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였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왕정의 억압도 있었고 종교적 대립과 민족 간 충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역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과 외부 강대국이 그 문제를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는 문제는 당연히 비판받을 수 있다. 이란이 주변 지역의 무장세력을 지원하거나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동 역시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과거 개입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란의 반미주의를 비판하려면, 먼저 그 반미주의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미국이 이란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석유와 냉전 질서를 이유로 특정 정권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관계가 형성되었을까.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이란은 다른 이유로 미국과 충돌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적대관계가 이란의 종교나 민족성에서 필연적으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있었던 외세 개입과 그에 대한 반작용을 살펴보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종종 결과가 원인을 가린다.
한 국가가 다른 지역에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저항과 적대감이 형성된다. 시간이 흐르면 강대국은 그 적대감을 다시 자신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개입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되면 최초의 개입은 이야기에서 사라지고, 그 개입에 대한 반작용만 남는다.
트럼프가 말하는 '장대한 분노'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이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란이 왜 미국을 적대하게 되었는지, 미국이 그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좀처럼 같은 무게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란이 미국의 석유를 얻으려고 아메리카 대륙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동의 석유와 전략적 이익을 위해 그 지역에 깊숙이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적대관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역사의 모든 책임을 미국 하나에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장 강력한 개입 능력을 가진 국가가 자신이 형성하는 데 관여한 갈등의 역사를 외면할 수도 없다.
이란은 미국의 석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란의 석유에 이해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수십 년의 적대와 충돌을 거쳐 또다시 군사작전의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미국은 그 작전에 '장대한 분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작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그 역사에서 정말 분노할 이유가 있었던 쪽은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