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의 가격을 묻는 이란, 답을 재촉하는 이스라엘
세계화가 정점을 지나 후퇴하기 시작한 지금,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핵심 문제는 더 이상 미국이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힘을 유지하는 비용을 미국 사회가 계속 감당할 의지가 있느냐에 있다. 미국의 민심이 국가전략으로 바뀌기까지는 여러 번의 선거와 정책 조정을 거쳐야 하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호르무즈에서 이란은 사실상 “미국은 앞으로도 비용을 치르며 자유항행과 달러 중심 질서를 지킬 것인가”라는 장기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미국이 그 답을 천천히 찾아갈 시간을 허용하지 않고 즉각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결국 현재의 혼란은 미국 패권이 갑자기 끝나는 과정이라기보다, 세계화 시대에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있던 안보·무역·달러·동맹의 비용을 각국이 다시 계산하고 협상하는 긴 전환기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은 묻고, 이스라엘은 재촉한다
세계화는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끝나지도 않는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화의 질서는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됐다. 자유무역이 확대됐고, 자본은 국경을 넘었으며, 기업들은 가장 값싼 생산지를 찾아 세계 곳곳으로 이동했다. 해상교통로는 열려 있었고, 원유와 상품은 세계를 오갔다. 그 거래의 중심에는 달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질서는 시장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자유항행의 뒤에는 미 해군이 있었고, 달러의 뒤에는 미국의 금융시장과 중앙은행이 있었으며, 국제무역의 뒤에는 미국 시장과 동맹체제가 있었다.
미국은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상당한 비용을 부담했고, 동시에 그 질서의 중심국이라는 막대한 혜택을 누렸다.
한동안 이 교환관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세계화가 정점을 지나기 시작하면서 이 암묵적인 계약도 흔들리고 있다.
그 출발점은 미국 밖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 안에 있었다.
중국의 WTO 가입 이후 값싼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을 뒤덮었고 제조업 지역에서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세계화는 전체적으로는 소비자에게 값싼 상품을 제공했지만 그 비용은 특정 산업과 지역,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런 불만을 더욱 키웠다.
세계화의 이익은 월스트리트와 다국적 기업이 가져가고, 실패의 비용은 평범한 사람들이 부담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누적된 변화가 정치적으로 표출된 결과에 가까웠다.
관세가 돌아왔고 산업정책이 돌아왔다. 팬데믹 이후에는 공급망의 효율성보다 안정성이 중요해졌으며, 바이든 행정부조차 반도체와 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정부 지원을 제공했다.
세계화의 방향은 이미 꺾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세계화가 후퇴한다면 세계화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안보질서는 어떻게 되는가.
미국인은 정말 세계와 교역하는 것 자체에 지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왜 세계화의 혜택은 세계가 함께 누리는데 그 질서를 유지하는 비용은 미국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가.
무역에서 이 질문은 일자리와 공장의 문제였다.
안보에서는 국방비와 미군의 위험 부담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중국으로 가는 원유를 왜 미 해군이 보호해야 하는가.
한국과 일본, 유럽이 사용하는 항로를 미국이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보를 이용하면서 얼마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는 결국 이 질문들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시장을 사용하려면 대가를 내라.
미국의 안보를 원한다면 비용을 더 부담하라.
미국이 제공하는 세계적 공공재는 더 이상 무조건 무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심이 변한다고 국가정책이 바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민심과 정책 사이에는 서로 다른 시차가 존재한다.
이란과 북한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대중의 생각이 정책으로 전달되는 과정이 매우 간접적이다. 중국도 다르고 일본도 다르며 한국도 다르다.
미국은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는 만큼 국민의 생각이 정책에 전달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심이 변하고, 선거가 열리고, 정당의 노선이 바뀌고, 대통령과 의회가 교체되고, 예산과 정책이 변하고, 그 뒤 군사전략과 동맹정책이 조정된다.
몇 년이 걸릴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세계화가 미국 정치에서 문제로 등장한 과정이 그랬다.
차이나 쇼크가 발생했다고 미국이 바로 자유무역을 버린 것은 아니다.
제조업 지역의 불만이 누적되고,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트럼프가 등장하고, 다시 여러 정부를 거치며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이 제도화됐다.
민심은 먼저 움직였고 국가전략은 뒤늦게 따라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6년 호르무즈 해협이 흥미로워진다.
이란이 미국에 던지는 질문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이렇다.
“너희는 앞으로도 계속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 지금의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이란이 공식적으로 달러패권을 지키려면 호르무즈를 보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르무즈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현실은 자연스럽게 그 질문을 미국에 던진다.
자유항행이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의 중요한 원칙이라면 누가 그것을 지킬 것인가.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다니고 기뢰의 위험이 존재하는 해협에서 국제법만으로 유조선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
함정이 필요하고, 방공망이 필요하고, 정보력이 필요하고, 보험 위험을 낮출 압도적인 군사력이 필요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맡아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미국이 계속 지키겠다고 한다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반대로 더 이상 모든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호르무즈를 가진 이란과 새로운 질서를 협상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이란이 묻는 것은 단순히 통항료의 액수가 아니다.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유지비용을 앞으로 누가 부담할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미국의 답은 단답형으로 나올 수 없다.
‘예’나 ‘아니오’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 중동에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것인가.
동맹국들은 얼마나 더 부담해야 하는가.
중국은 자신이 의존하는 항로의 안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비용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달러체제와 미국의 군사력 사이의 연결은 어느 수준까지 유지될 것인가.
이 모든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답은 한 번의 선거, 한 번의 전쟁,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화가 정점에서 꺾이고 있다면 앞으로의 세계는 탈세계화라는 단순한 직선 위를 걷기보다 긴 재조정 과정을 거칠 것이다.
위기가 발생한다.
비용이 드러난다.
국민이 반응한다.
정부가 정책을 조정한다.
다른 국가가 그 변화에 대응한다.
그 결과 또 다른 비용과 문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정책이 조정된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탄생하는 순간이 아니라, 오래된 세계질서의 가격을 다시 흥정하기 시작한 시대에 들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긴 조정과정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나라가 있다.
이스라엘이다.
이란이 미국에 질문을 던지는 국가라면 이스라엘은 미국에 하나의 답을 강요하는 국가에 가깝다.
이란의 질문에는 여러 답이 가능하다.
미국이 계속 질서를 유지할 수도 있고, 동맹국이 더 많은 역할을 맡을 수도 있으며, 중국이 일부 비용을 부담할 수도 있다.
지역국가들이 새로운 안보체제를 만들 수도 있고, 미국과 이란이 일정한 타협을 할 수도 있다.
이란 입장에서는 시간이 반드시 적은 것만은 아니다.
미국 국민의 생각은 변하고 있고, 미국 정치도 변하고 있으며, 세계화의 비용구조 역시 천천히 바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내부에서 ‘우리가 왜 이 비용을 계속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란은 반드시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필요가 없다.
미국 사회가 스스로 비용과 편익을 다시 계산할 때까지 버티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시간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 지역 군사망의 성장을 장기간의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문제로 바라볼 여유가 없다.
이스라엘에게 그것은 훨씬 직접적인 생존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요구는 훨씬 간단해진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사용할 것인가,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결국 이스라엘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다.
“지금 답하라.”
여기에서 미국의 딜레마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사회가 세계화 이후의 역할을 다시 결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국민은 자신들이 세계질서에서 무엇을 얻고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정치권은 그 민심을 정책으로 옮겨야 한다.
동맹국들도 변해야 하고 중국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지려면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그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안보논리는 그런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란이 묻는다.
“너희는 앞으로도 이 질서의 비용을 계속 지불할 것인가.”
이스라엘은 재촉한다.
“그 답을 지금 내라.”
이 두 힘 사이에서 미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답을 계속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세계질서가 불안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다.
문제는 힘의 부족만이 아니다.
그 힘을 어디에, 얼마 동안, 얼마의 비용을 들여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미국 내부의 합의가 과거처럼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패권은 단순히 군사력의 크기로 유지되지 않는다.
필요할 때 그 힘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는 상대방의 믿음에 의해서도 유지된다.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군사력의 절대적 크기와 정치적으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힘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그래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 패권의 ‘종말’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많은 것을 지킬 것이다.
달러도 남을 것이고, 미 해군도 남을 것이며, 동맹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예전과 같은 가격으로 유지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디까지 미국이 부담하고 어디부터 동맹국이 부담할 것인지, 어느 항로를 미국이 지키고 어느 지역에서는 다른 국가가 더 많은 책임을 질 것인지, 어떤 시장은 개방하고 어떤 산업은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보호할 것인지가 하나씩 다시 협상될 것이다.
세계화의 전성기에는 하나의 거대한 패키지 안에 묶여 있던 것들이 이제 하나씩 가격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호르무즈는 그 협상의 가장 선명한 현장 가운데 하나다.
이란은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은 답을 재촉한다.
미국은 아직 그 답을 만드는 중이다.
그리고 아마 그 답을 완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어느 날 갑자기 끝나는 장면이라기보다 더 길고 복잡한 과정에 가깝다.
세계가 미국의 패권에 지친 것만큼이나 미국 역시 패권의 비용에 지쳤고, 이제 모두가 그 질서의 가격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 계산이 끝날 때까지 세계는 꽤 오랫동안 불안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긴 조정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결국 하나로 돌아온다.
누가 세계질서의 혜택을 얻고 있으며,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