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미국의 구조적 위기는 어떻게 서로를 키우는가

미국의 문제는 트럼프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국가부채, 공급망의 중국 의존, 제조업 약화, 중동전쟁의 피로, 정치적 양극화 등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 위에 트럼프라는 정치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증폭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이란전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몇 주면 끝날 것이라던 전쟁은 장기화됐고, 60일짜리 호르무즈 개방은 영구적 성과처럼 포장됐지만 실제 상선 통항은 정상화되지 않았으며, 미국은 동맹국에 지원 부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강대국의 진짜 힘은 실수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해도 회복할 수 있는 여유에 있는데, 지금 미국은 그 전략적 여유가 줄어드는 와중에 정치적 리스크까지 국가정책에 여과 없이 반영되고 있다. 병약한 몸이 평소에는 견딜 바이러스에도 크게 흔들리듯, 미국 역시 구조적 체력이 약해지면서 기존의 정치적 결함과 지도자 리스크가 더 큰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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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키운 미국

사람은 몸이 건강할 때 웬만한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견딘다. 감기에 걸려도 며칠 앓고 일어나고, 작은 염증은 면역체계가 알아서 처리한다. 그러나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여러 장기의 기능이 동시에 약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전 같으면 별일 아니었을 감염이 중병으로 번지고, 한 곳의 이상이 다른 곳의 이상을 부른다.

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마가 내분 때문에 무너졌다는 설명은 절반만 맞는다. 로마가 계속 성장하고 충분한 세수와 전리품, 군사력과 정치적 잉여를 가지고 있었다면 상당수의 내분은 치명적인 위기로 발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반대로 성장이 둔화되고 방어해야 할 국경은 넓어지며 나눠 가질 몫이 줄어들자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정치적 결함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내분이 로마를 약화시켰지만, 약해진 로마가 내분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 미국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도 이 상호작용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쳤을 때, 미국 밖에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다소 생경했다. 미국은 이미 충분히 위대해 보였다. 세계 최고의 군사력, 달러 패권,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 명문 대학, 문화산업, 거대한 동맹망을 모두 가진 나라가 무엇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은 이미 다른 것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2016년 Pew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의 81%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삶이 50년 전보다 나빠졌다고 답했고, 68%는 다음 세대가 지금 세대보다 나쁜 삶을 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체 미국인의 국가 방향 만족도도 당시 Gallup 조사에서 28%에 불과했다.

밖에서는 미국이 가진 힘을 보고 있었고, 미국인들은 그 힘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여유가 사라지는 것을 먼저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MAGA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Great’가 아니라 ‘Again’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불안에는 근거가 없지 않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에 걸친 전쟁을 끝내고 2021년 8월 30일 철수했다. 중동의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중국이라는 더 큰 전략적 경쟁자에게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 그 이후 미국 대전략의 중요한 방향이었다.

하지만 중국과 경쟁하려고 돌아보니 미국은 수십 년에 걸쳐 너무 많은 공급망을 바깥으로 내보내 놓았다. 특히 핵심광물에서 미국은 50개 핵심광물 가운데 12개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추가 29개는 절반 이상을 수입한다. 신뢰할 만한 통계가 있는 43개 핵심광물 가운데 29개에서 최대 생산국은 중국이다.

돈도 예전만큼 가볍게 쓸 수 없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 부담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CBO는 2026년 국민이 보유한 연방부채를 GDP의 101%로 추산하고 있으며, 순이자지출만 GDP의 3.3%,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정책이 유지되면 2036년 부채비율은 120%에 이를 전망이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미국 국민에게 한 문장으로 미국의 방향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중동에서 빠져나와 중국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호르무즈를 이란의 영향력 아래 내버려둘 수도 없다.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공급망을 미국으로 되가져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물가상승은 최소화해야 한다.

제조업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가 값싼 상품을 포기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산업기반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도 관리해야 한다.

동맹국의 도움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 유권자에게는 동맹국 때문에 미국이 손해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

하나하나는 이해할 수 있는 목표다. 문제는 이것들을 모두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바로 그런 시기에 이란전이 시작됐다.

트럼프는 3월 31일 미국이 이란에서 “2주, 어쩌면 3주” 안에 군사작전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은 9월 현재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Reuters는 최근 상황을 양측 모두 쉽게 물러서지 못하는 ‘비용이 큰 교착상태’로 평가했다.

짧게 끝내고 싶다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한 목표였다.

문제는 그것을 적에게 말하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강대국과 싸우는 약소국이 반드시 전장에서 승리할 필요는 없다. 강대국이 오래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때부터 승리조건은 달라진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상대의 시간이 소모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전략이 된다.

좋지 않은 패를 들었다고 반드시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패일수록 상대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6월의 MOU는 그런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합의문에서 이란이 약속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의 안전한 무상통항을 60일간 보장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30일 안에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해제하고, 양측은 60일 동안 최종협정을 협상하기로 했다. 호르무즈의 장기적 관리체제와 핵 문제 같은 가장 어려운 사안은 뒤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정치적 설명은 전혀 달랐다.

미국은 힘으로 이란을 협상장에 끌어낸 승리라고 설명했고,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목표를 좌절시킨 자신들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그 순간 협상의 공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후 핵·농축·호르무즈 문제에서 이란의 추가 양보를 받아내야 했다. 반대로 이란은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더 이상 크게 양보해서는 안 됐다.

미국은 “우리가 이겼으니 네가 더 내놓아라”고 했고, 이란은 “우리가 버텼으니 당신들이 합의를 이행하라”고 했다.

같은 합의를 양쪽 모두 승리라고 선언했지만, 정작 최종합의를 만들려면 어느 한쪽은 자신의 승리서사와 모순되는 행동을 해야 했다.

그 모순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호르무즈였다.

MOU가 보장한 것은 60일이었다. 백악관에서 JD 밴스 부통령도 60일 이후 호르무즈의 관리조건은 최종협상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틀 뒤 60일 이후에도 통행료는 없을 것이며, 통행료를 부과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부과하는 경우뿐이라는 취지로 선언했다.

아직 협상해야 할 미래를 이미 얻어낸 전리품처럼 소비한 것이다.

60일간의 개방을 사실상 영구개방으로 설명하면 당장은 승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대가는 나중에 치르게 된다. 이란과 장기 관리체제를 다시 협상하는 순간 미국은 새로운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었다고 주장했던 성과를 지키는 사람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이란은 사실상 그렇지 않다고 맞선다. 9월 1일 Kpler가 포착한 호르무즈 통과 선박은 단 5척이었고, 액체화물 탱커는 한 척도 없었다. 10일 평균인 약 14척에도 크게 못 미쳤다. 같은 날 사우디 원유 200만 배럴씩을 실은 초대형 유조선 두 척은 호르무즈를 빠져나가다 발사체에 피격됐다.

여기에서 이란은 굳이 “우리가 호르무즈를 닫았다”고 선언할 필요조차 없다.

“미국은 열었다는데, 그렇다면 배들은 어디 있는가?”

라고 물으면 된다.

해협이 열렸는지를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것은 워싱턴의 성명도 테헤란의 성명도 아니다. 그곳을 실제로 지나가려는 선주와 선장, 보험회사의 행동이다. 군함이 항로를 확보했다고 해서 상업적으로 안전한 바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란전은 또 하나의 문제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개인의 위험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험으로 거의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8월 31일 트럼프는 이란의 핵심 석유시설인 하르그섬이 파괴되고 있다는 취지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영상은 AI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실제 하르그섬 공격은 없었다. 결국 밴스 부통령이 대통령의 게시물은 실제 공격 발표가 아니라 이란에 보내는 ‘메시지’였다고 설명해야 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트럼프는 한국이 이란전에서 미국의 지원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했고, 이를 한미연합훈련 축소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미국이 동맹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초강대국이라고 모든 일을 혼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전쟁을 처음에는 몇 주면 끝날 쉬운 작전처럼 설명해놓고, 반년 뒤 동맹국에게 “왜 그때 우리를 돕지 않았느냐”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모습은 처음 보여주려 했던 압도적 여유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트럼프만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면 오히려 본질을 놓친다.

트럼프가 미국의 국가부채를 처음 만들지 않았다. 중국에 공급망을 넘긴 것도 트럼프 혼자의 일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을 보낸 것도, 미국 제조업 지역의 쇠퇴도, 정치적 양극화도 그보다 훨씬 오래된 문제다.

오히려 인과관계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이 충분히 건강했다면 트럼프와 같은 정치적 충격도 지금보다 훨씬 쉽게 흡수했을지 모른다. 압도적인 재정여력과 산업기반, 경쟁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격차, 충분한 군수생산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동맹의 신뢰가 있었다면 대통령의 과장된 발언 몇 마디와 외교적 시행착오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강대국의 힘은 실수하지 않는 데만 있지 않다.

실수하고도 회복할 수 있는 데 있다.

문제는 미국의 그 회복 여유가 예전보다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구조적 여유의 감소가 트럼프 같은 정치의 출현 가능성을 높였으며, 그렇게 등장한 정치가 다시 미국의 구조적 문제를 확대한다.

병든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만도 아니고, 바이러스 하나가 건강한 몸을 갑자기 병들게 한 것도 아니다.

몸이 약해지면서 평소라면 견딜 수 있었던 충격이 커졌고, 커진 충격이 다시 몸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로마의 내분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내분이 로마를 쇠퇴시켰지만, 쇠퇴하지 않은 로마였다면 그 내분 상당수는 역사의 작은 소동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직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 가운데 하나이며, 미국의 몰락을 선언하기에는 가진 자산이 너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힘의 크기만이 아니다. 동시에 몇 개의 잘못된 선택을 감당하고, 실패를 수정하며, 동맹국을 안심시키고, 국민에게 미래를 낙관하게 할 수 있는 전략적 여유가 얼마나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밖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위대한 미국을 보았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이미 그 여유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위대하게”라는 말에 반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안을 가장 정확하게 읽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시대에, 미국은 바로 그 불안을 세계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란전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미국이 이란을 얼마나 압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짧게 끝내겠다고 시작한 전쟁이 반년을 넘기고, 60일짜리 호르무즈 개방을 영구적 성과라고 선언했다가 실제로는 선박이 다니지 못하고, 중동에서 벗어나 중국에 집중해야 할 미국이 다시 중동에 군사력과 정치적 자원을 쏟고, 동맹의 힘이 필요한 미국이 동시에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병은 트럼프 한 사람이 아니다.

트럼프를 낳은 구조적 피로, 그 피로를 증폭시키는 정치, 그리고 그 정치가 다시 미국의 선택지를 좁히는 악순환이 병이다.

미국은 하루아침에 병든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병을 키웠다. 그리고 지금 이란이라는 예상 밖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복력을 잃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