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후퇴하면 이스라엘은 건립 이전까지 후퇴하는가
세계화와 미국 중심 질서가 후퇴한다고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 1948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현재 전략적 위치는 자국의 군사력만이 아니라 미국의 무기·외교력·해양질서·중동 개입이라는 거대한 외부 안전장치 위에서 형성돼 왔다. 지금 이란은 미국에 “앞으로도 이 비용을 계속 감당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고, 미국 사회는 그 답을 장기간에 걸쳐 다시 조정하는 중이다. 동시에 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걸프국 등 지역 강국들은 미국만을 전제로 하지 않는 새로운 안보·물류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변화가 계속된다면 이스라엘의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이 적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여전히 강한 채로 “이스라엘의 존재는 지키되 이스라엘이 원하는 중동까지 지켜주지는 않겠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 건국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생존은 누가 보장하는가”라는 건국 이전의 오래된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전후 처리는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 쓴 글에서 나는 오늘날 세계 곳곳의 분쟁을 20세기 강대국들이 남겨놓은 미결산서를 후대가 대신 갚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썼다. 한반도의 분단도, 중동의 국경선도, 팔레스타인 문제도 현재의 당사자만 바라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대 방향의 질문도 가능하다.
전후 세계질서가 후퇴하면 그 질서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국가들의 전략적 위치도 함께 후퇴하는가.
특히 이스라엘은 어떨까.
세계화와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후퇴한다면 이스라엘은 어디까지 후퇴하게 될까. 극단적으로 말해 건립 이전까지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문자 그대로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48년 이후 78년 동안 존재한 국가다. 자체 정부와 군대, 산업과 기술, 국민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내일 지원을 중단한다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다음 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을 미국이 만들어놓은 괴뢰국가라고 규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건국에는 19세기 말부터 이어진 시온주의 운동,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공동체의 조직화, 영국의 위임통치,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유엔 분할안과 1948년 전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1948년 5월 14일 독립 선언 직후 신생 이스라엘을 승인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단순히 미국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과, 이스라엘이 오늘날과 같은 전략적 위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문제인가.
여기서부터 미국의 존재가 훨씬 중요해진다.
흥미롭게도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한국이나 일본, NATO 회원국처럼 공격받은 상대를 방어할 의무를 규정한 공식 상호방위조약이 없다.
그런데 실제 관계는 많은 조약동맹보다 강하다.
미국법은 이스라엘이 중동의 잠재적 적국에 대해 ‘질적 군사우위(Qualitative Military Edge)’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미국은 2019년부터 2028년까지 총 380억 달러 규모의 군사·미사일방어 지원을 약속해 놓았다.
이스라엘의 주요 전투체계 역시 미국 공급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방산 수출국이면서 동시에 전투기와 장거리 정밀무기, 방공체계 등 핵심적인 전쟁수행 능력에서는 미국과 깊게 결합돼 있는 독특한 국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 관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전투기 몇 대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신의 국력보다 더 큰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군사력을 배치한다.
주요 항로의 자유로운 통항을 보장한다.
달러 중심 금융질서를 유지한다.
걸프 산유국들과 안보관계를 맺는다.
필요하면 이스라엘에 탄약과 요격미사일을 공급한다.
이스라엘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 함대와 방공자산이 움직일 수 있다는 기대가 존재한다.
그런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실제 국력보다 훨씬 큰 억지력이 만들어진다.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것은 어디까지 미국과 전쟁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요격탄이 소진되면 누가 다시 채워주는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뒤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한다면 누가 바다를 다시 여는가.
그 전쟁으로 세계 유가와 보험료가 폭등한다면 누가 그 후폭풍을 관리하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질문 뒤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미국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양국 관계의 특이한 점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힘에 깊이 의존하지만 자신의 안보에 관한 판단에서는 상당한 자율성을 고집한다.
1956년 수에즈 전쟁처럼 미국이 강하게 제동을 걸어 이스라엘을 후퇴시킨 경우도 있었고, 가자 전쟁처럼 미국의 만류에도 이스라엘 정부가 자신의 군사적 판단을 밀어붙인 사례도 있었다.
괴뢰라면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때때로 미국보다 먼저 행동하고, 그 행동 뒤에 발생한 훨씬 큰 전략적 비용을 미국이 감당할 것인지 되묻는다.
2026년 이란 전쟁은 그 구조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공격으로 사망했고, 혁명수비대 지휘부를 포함한 이란의 군사·정치 지도층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군사적인 의미에서 이란은 분명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과 국가를 붕괴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공격 이전 미국 정보당국 내부에서도 하메네이가 제거되더라도 혁명수비대 강경파가 권력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었다. 실제로 수개월 뒤에도 이란 정권은 유지되고 있으며, 미국이 원했던 빠른 체제 변화나 이란의 완전한 굴복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 점은 이스라엘의 전략적 문제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
미사일 기지를 파괴할 수 있다.
군 지휘관과 최고지도자를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란이라는 국가가 이후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까지 공습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란이 살아남아 다른 방식으로 반격하기 시작하면 문제의 규모가 갑자기 이스라엘의 능력 밖으로 커진다.
대표적인 것이 호르무즈 해협이다.
2026년 전쟁 과정에서 이란은 호르무즈의 통항을 심각하게 제한했고, 걸프 지역의 미군 시설과 주변국까지 공격했다. 전쟁 전 세계 석유와 LNG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던 항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세계 에너지 시장 전체가 흔들렸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수 있지만 호르무즈에서 수천 척의 상선을 장기간 보호하는 국가는 아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는 국가도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석유 수송을 보장하고, 걸프 지역의 미군기지를 지키고, 세계 곳곳에서 방공미사일과 장거리 정밀무기를 끌어와 전쟁을 지속하는 역할까지 맡기는 어렵다.
그 역할은 결국 미국의 몫이 된다.
실제로 5개월에 걸친 이란 전쟁은 미국의 군사적 자원에도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이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의 상당 부분을 소모했고 패트리엇과 THAAD 같은 방공 요격탄 재고도 크게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싸우면서 사용하는 무기는 동시에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잠재적 충돌에 대비해 보유해야 할 무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돈과 정치적 비용까지 더해진다.
8월 초 Reuters/Ipsos 조사에서 이란 전쟁을 지지한다는 미국인은 35%에 불과했다. 미국의 직접적인 전쟁 비용은 이미 수백억 달러에 이르렀고, 미국인들은 휘발유 가격 상승과 더 큰 중동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응답자의 절반은 미국의 군사행동이 앞으로 중동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쯤 되면 이란이 미국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군사적 질문이 아니다.
“너희는 얼마나 오래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세계화의 후퇴와 정확히 연결된다.
세계화의 전성기에는 미국이 제공하는 여러 공공재가 하나의 패키지처럼 존재했다.
미국 시장이 있었다.
달러가 있었다.
해상교통로가 열려 있었다.
미군이 있었다.
동맹체제가 있었다.
각국은 그 질서를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와 안보전략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화가 정점을 지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인들 자신이 그 패키지의 가격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왜 미국 노동자가 다른 나라의 값싼 제품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가.
왜 동맹국의 방위를 미국 납세자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가.
왜 중국으로 가는 원유를 미국 해군이 보호해야 하는가.
왜 다른 국가들의 에너지 수송로 때문에 미국의 미사일 재고와 병력을 소모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무역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관세가 되고 산업정책이 되고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같은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세계질서의 유지비용이라는 질문에 도착한다.
호르무즈에서 이란은 바로 그것을 묻고 있다.
자유항행이 미국 질서의 원칙이라면 그 자유를 미국이 실력으로 보장할 것인가.
그런데 미국이 그 질문에 답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민심이 변한다고 다음 날 항공모함이 철수하지는 않는다.
유권자의 생각이 변하고, 선거가 열리고, 정당의 노선이 달라지고, 대통령과 의회가 바뀌고, 국방예산과 외교정책이 조정된 뒤에야 실제 군사전략이 움직인다.
세계화에 대한 미국의 반발도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됐다.
차이나 쇼크가 발생했다고 바로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
제조업 지역의 불만이 누적되고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진 뒤 트럼프가 등장했다. 그리고 트럼프 이후에도 산업정책과 공급망 안보라는 방향은 상당 부분 살아남았다.
민심이 먼저 움직였고 국가전략이 뒤따라갔다.
세계질서에 대한 미국의 답 역시 한 번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세계에서 완전히 철수할지 계속 패권국으로 남을지 선택하는 단답형 문제가 아니다.
어디까지 미국이 부담할 것인가.
어디부터 동맹국이 부담해야 하는가.
어느 항로는 미국이 지키고 어느 지역에서는 지역국가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
달러와 미국 시장이라는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미국은 어떤 대가를 요구할 것인가.
몇 번의 선거와 전쟁, 경제위기와 협상을 거치며 조금씩 답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란에게 이 시간은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이길 필요가 없다.
미국이 스스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게 만들면 된다.
실제로 미국은 이제 이란의 완전한 굴복보다 호르무즈를 다시 열기 위한 협상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 가운데에는 이란이 걸프만으로 진입하는 선박에 일정한 통제권을 갖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통항 관련 비용을 둘러싸고 미국·이란·오만 사이에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자유항행을 실력으로 강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란과 그 조건을 협상하는 상황 자체가 과거와 달라진 장면이다.
그리고 전쟁은 주변국의 행동도 바꾸고 있다.
걸프 국가들은 더 이상 호르무즈가 항상 열려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 모든 것을 걸 수 없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유전지대의 원유를 홍해의 얀부로 보내는 동서횡단 송유관 사용을 급격히 늘렸고, UAE 역시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오만만의 푸자이라로 원유를 보낼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UAE에서는 아예 호르무즈 바깥쪽 동해안에 새로운 항만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계획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 변화는 역설적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능력이 주변국에 충격을 주면서 단기적으로는 이란의 전략적 힘을 보여줬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변국이 이란을 우회하는 새로운 물류망을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세계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의 경로가 지정학적 위험을 피해 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안보에서도 비슷한 일이 시작됐다.
2026년 8월 7일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파키스탄은 상호방위를 내용으로 하는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세 나라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군사블록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로이터가 인용한 전문가들은 이 협정을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억지력을 키우고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는 지역 안보구조를 만들려는 흐름으로 평가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의 전략적 구조는 대체로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외부 강대국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역국가들이 스스로 군사동맹을 만들고, 자체 방공망을 구축하고, 미국 이외의 국가와 무기를 거래하며,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수송망을 만든다면 중동은 점점 다극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그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과거처럼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힘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거의 한 묶음으로 만들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튀르키예의 부상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변수다.
튀르키예는 이란과 성격이 전혀 다른 국가다.
NATO 회원국이고, 상당한 군사력과 방위산업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과 러시아, 중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갖는다.
동시에 에르도안 정부는 이스라엘에 매우 비판적인 정책을 취해왔고 양국 간 교역까지 중단했다.
2026년 6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시리아와 레바논 군사행동이 튀르키예의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시리아에서도 양국의 이해가 부딪힌다.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이스라엘은 시리아 남부에서 군사적 활동범위를 넓혔고, 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에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튀르키예는 새로운 시리아 질서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과 튀르키예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두 나라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싶어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중동이 과거처럼 이스라엘과 이란이라는 하나의 대립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란이 있고,
튀르키예가 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있고,
파키스탄이 있고,
걸프 국가들이 있고,
그 국가들이 미국 외에도 서로 안보관계를 만들기 시작하고 있다.
세계화의 후퇴는 고립된 국가들이 각자 성벽을 쌓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미국이 중심에서 모든 것을 연결하던 질서가 약해지고 여러 지역 강국들이 자기 주변의 질서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는 상당히 불편한 변화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이스라엘보다 훨씬 큰 인구와 영토를 가진 여러 지역국가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에서 영구적으로 압도적인 군사우위를 유지하는 비용은 계속 높아진다.
그리고 그 비용의 마지막 부분을 지금까지 메워준 국가가 미국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를 괴뢰와 주인의 관계로 이해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문제는 정반대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먼저 행동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율적이지만, 그 행동이 만들어낸 장기적이고 세계적인 비용까지 혼자 감당할 정도로 크지는 않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닫힌 호르무즈를 혼자 열 수는 없다.
이란의 지휘부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 이후의 정치질서를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시리아를 폭격할 수 있다.
그러나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국가 전체의 행동을 결정할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순간 미국이 필요하다.
그런데 바로 그 미국이 지금 자신의 세계적 역할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다시 계산하고 있다.
이란은 그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이스라엘은 기다리기 어렵다.
이란은 미국에게 묻는다.
“얼마나 오래 이 비용을 낼 것인가.”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요구한다.
“그렇다면 지금 막을 것인가, 막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미국의 답은 점점 단순한 ‘예’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더 현실적인 답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존재와 방어는 지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원하는 모든 전쟁에 미국이 참여하지는 않는다.
이란의 핵무장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이란이라는 국가 자체를 없애기 위해 무기한 전쟁하지는 않는다.
호르무즈의 자유항행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모든 비용을 미국 혼자 부담하지는 않는다.
중동에 남는다.
하지만 중동을 미국 하나가 관리하던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위험한 미래는 그래서 미국이 갑자기 약해지거나 적국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채로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다.
“이스라엘을 지켜주기는 하겠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원하는 중동까지 지켜주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세계화가 후퇴하면 이스라엘은 건립 이전까지 후퇴하는가.
국경이 1948년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사라진다는 의미라면 더욱 아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강력한 군대와 첨단산업을 가진 국가이며,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널리 평가되는 지역 강국이다.
그러나 전략적인 의미에서는 질문이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 유대인 공동체가 직면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었다.
다른 국가의 선의와 보장에 우리의 생존을 맡길 수 있는가.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는 그 질문에 극단적인 답을 남겼고, 스스로 국가와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이스라엘 국가안보관의 가장 깊은 토대가 됐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성장하면서 다시 더 큰 외부의 안전망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자신의 군대가 있었지만 그 뒤에는 미국의 무기가 있었다.
자신의 외교력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있었다.
자신의 억지력이 있었지만 그 바깥에는 미국이 관리하는 중동질서와 해양질서가 있었다.
세계화와 미국 중심 질서가 후퇴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국기가 내려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생존비용과 행동비용 일부를 외부에서 부담해주던 거대한 안전장치가 점점 비싸지고 좁아진다는 뜻에 가깝다.
더구나 그 빈 공간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란이 자신의 영향력을 주장한다.
튀르키예가 지역 강국으로 움직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국들이 새로운 안보관계를 만든다.
각국은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송유관과 항만을 만들고 군사비를 늘린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질서가 약해진 공간에서 여러 국가가 자신의 질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이스라엘은 1948년 이전의 영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1948년 이전과 놀랍도록 닮은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미국의 약속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혼자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우리보다 훨씬 큰 주변국들이 스스로 힘을 키우는 세계에서 군사적 우위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주변국과의 공존 없이도 장기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결국,
누가 우리를 지켜주는가.
전후 처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거에는 강대국이 중동에 그어놓은 국경과 만들어놓은 질서의 비용을 현지 주민들이 부담했다.
이제는 그 전후 질서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성장한 국가 가운데 하나인 이스라엘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질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이란은 미국에게 그 질서의 가격을 묻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답을 재촉하고 있다.
중동의 다른 국가들은 그 답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안전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는 아직 자신의 답을 만드는 중이다.
세계화가 후퇴한다고 이스라엘이 건립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화와 함께 확장됐던 미국 중심 질서가 충분히 후퇴한다면,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더 큰 힘의 뒤편으로 밀어두었던 가장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생존비용은 우리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