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상가 재건축 갈등과 언론 프레임, ‘관리권’이라는 한 단어가 현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은마아파트 상가 갈등은 기사에서 ‘관리권 분쟁’으로 묶였지만, 실제로는 임차인들의 일상적 자치관리, 소유자들의 건물·재건축 관련 권한, 임대차 종료와 명도·보상 문제가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이들을 하나의 ‘관리권’이라는 말로 묶으면 마치 하나의 권한을 두고 소유주와 세입자가 다투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 사안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구조는 훨씬 단순해진다. 기사의 역할은 복잡한 현실에 극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권리와 이해관계를 분해해 독자가 사실의 구조를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독자가 기사가 씌운 프레임부터 걷어내야 현실이 보인다면, 기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묻게 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기사를 읽다가 이상한 표현 하나가 눈에 걸렸다. ‘상가 조합원과 세입자 간 관리권 갈등’이라는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읽힌다. 수십 년간 상가를 관리해 온 세입자들이 있고, 재건축을 추진하는 소유자들이 이제 그 관리권을 되찾으려 한다. 기사만 따라가면 하나의 권한을 놓고 양측이 맞서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다.
‘관리권’이란 대체 무엇인가.
상가의 청소와 경비, 공동전기료 정산, 쓰레기 처리처럼 매일 필요한 일상적 관리는 실제 상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해 처리할 수 있다. 임차인들이 번영회나 상인회를 만들고 공동비용을 걷어 필요한 업무를 처리한다고 해서 특별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공동생활에 필요한 일을 공동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반면 건물 자체의 가치와 기본 기능에 관계되는 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구조체, 외벽, 옥상, 공용배관의 대규모 수선이나 건물의 변경, 그리고 재건축과 같은 결정은 소유권의 영역이다. 당연히 구분소유자와 관리단, 재건축조합의 권한과 책임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임차인이 재건축으로 점포를 비워야 하는 문제는 또 별개다. 이것은 임대차 종료, 명도, 권리금, 이전비용과 보상의 문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사용의 문제는 사용자에게, 소유의 문제는 소유자에게, 퇴거의 문제는 임대차 법률관계로 돌려놓으면 된다. 굳이 하나의 ‘관리권’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데 기사에서 이 모든 것을 ‘관리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묶는 순간 사건의 모습이 바뀐다.
세입자들이 오래 관리해 왔다. 소유주들이 관리권을 되찾으려 한다. 세입자들이 이에 반발한다.
마치 하나의 왕관을 두고 양쪽이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런 프레임이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어떤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독자는 그 이름을 통해 사건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관리권 분쟁’이라고 부르면 누가 관리권을 갖느냐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포괄적인 권리 하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논점 역시 훨씬 세분되어 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청소와 경비는 청소와 경비의 문제로, 건물의 보존과 수선은 소유자의 문제로, 재건축은 재건축의 문제로, 세입자의 퇴거와 보상은 명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오히려 사건은 단순해진다.
그렇다면 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복잡한 사건을 간단하게 만드는 사람이 기자일 수는 있다. 하지만 간단하게 만든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뭉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사실을 분해하여 각각의 성격을 밝혀주는 일에 가깝다.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누가 무엇을 사용하고 있는가. 어떤 권리가 법에서 나오고, 어떤 역할이 관행에서 생겼는가. 당사자들이 실제로 다투고 있는 것은 돈인가, 점유인가, 권리인가, 절차인가.
이것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반대로 먼저 ‘관리권 갈등’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모든 사실을 그 틀 안에 배치하면 기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시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게 된다.
언론에는 언제나 프레임이 있다. 완전히 프레임 없는 기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제목에 넣고 무엇을 첫 문단에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부터 이미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기사의 기준은 프레임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그 프레임이 현실을 더 잘 보이게 하는가, 아니면 현실 위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덧씌우는가가 중요하다.
은마상가의 갈등을 ‘관리권 쟁탈전’으로 보면 복잡하다. 그러나 프레임을 걷어내고 보면 익숙한 문제들이 나온다.
소유자는 재건축을 추진한다. 임차인은 퇴거에 따른 손실을 걱정한다. 오랫동안 상가를 이용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온 운영방식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여기에는 충분히 취재할 만한 갈등이 있다. 굳이 존재하지 않는 왕좌를 하나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기자의 일은 사건에 극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 이름 없이도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실의 구조를 보여주는 일이어야 한다.
때로는 기사를 더 잘 읽기 위해 기사가 씌워놓은 프레임부터 벗겨내야 한다.
그리고 독자가 그렇게 해야만 사건이 제대로 보인다면, 기자에게도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기자는 무엇을 더 잘 보이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먼저 정해주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