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짜리 집을 가진 사람은 정말 부자일까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서 그만큼 부유해진 것은 아니다. 북아현2구역은 용적률을 높이고 일반분양 물량을 늘려 사업성을 개선하려 하지만, 정작 이주와 건축에 필요한 현금은 대출과 분양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이는 자산의 평가액과 실제 현금 유동성이 전혀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아무리 비싼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필요한 순간에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지속적인 소득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면 경제적 여유는 제한적이다. 진정한 부는 자산가격의 상승이 아니라, 자산을 유지하고 새로운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현금흐름과 자본 축적 능력에서 나온다.
부동산의 평가액이 아니라 현금 유동성이 부의 실체를 보여준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이 18년 만에 이주를 시작한다.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오랜 기간 사업이 지연되었던 이곳은 오는 11월 9일부터 본격적인 이주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존 최고 29층, 2,320가구로 계획되었던 아파트를 최고 40층으로 높이고, 약 300가구를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용적률을 높이고 일반분양 물량을 늘려 사업성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재개발을 기다려온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새로운 주택이 공급되고, 일반분양 수입이 늘어나면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사업비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식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이주비 문제다.
기사에 따르면 북아현2구역은 대출 규제로 이주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담보인정비율이 기존 70%에서 40%로 낮아지고,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도 제한되면서 조합원들의 자금 부담이 커졌다.
기본이주비 금리는 10월 13일 기준 연 3.87%, 추가이주비 금리는 연 6% 후반에서 7% 수준으로 예상된다. 조합은 이주비 선지급 비율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자금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수십억 원의 가치가 있는 서울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사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집값이 그렇게 많이 올랐는데, 왜 집을 새로 지을 돈은 없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집값이 올랐다는 것과 현금이 늘어났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시가 10억 원의 주택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분명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통장에 현금이 1,000만 원밖에 없다면 어떨까.
당장 2억 원의 공사비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가진 집의 평가액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집을 팔거나,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다른 소득과 저축으로 돈을 마련해야 한다.
집을 팔면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만큼 보유 자산이 줄어든다. 대출을 받으면 당장의 유동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리고 대출에는 한도가 있다.
자산이 10억 원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 10억 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자산의 평가액과 현금 유동성의 차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차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 왔다.
부동산 가격이 두 배가 되면 재산이 두 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채가 변하지 않았다면 자산의 평가가치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담보능력을 높이고 경제적 선택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월급이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매달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보유한 부동산의 가격이 높아질수록 자신이 상당한 부자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막상 큰돈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평가액은 높지만 현금이 부족하다. 자산은 많지만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수십억 원의 집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매달 들어오는 소득으로는 생활비와 금융비용을 충당하기 빠듯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자산부자와 현금부자의 차이다.
물론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만 부자라는 뜻은 아니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비교적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자산도 있고, 부동산에서 안정적인 임대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산을 얼마로 평가받느냐뿐 아니라, 필요한 시점에 얼마나 많은 현금을 동원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북아현2구역을 다시 바라보자.
재개발이 완료되면 조합원들은 새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다. 그 아파트의 시장가치는 기존 주택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건물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건설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철근과 콘크리트를 구입해야 하며, 설계비와 금융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건설사는 장부에 적힌 토지의 평가액이 아니라 실제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받아야 한다.
건축비는 부동산의 평가액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이 부족한 조합원들은 어떻게 새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일반분양이다.
기존 토지에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하고, 새롭게 입주할 사람들에게 분양하여 사업비를 조달한다.
북아현2구역이 최고 층수를 40층까지 높이고 약 300가구를 추가로 확보하려는 것도 이러한 사업성 개선과 연결된다.
이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다. 토지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면서 기존 조합원들의 부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제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높아진 용적률은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고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 분양수입이 공사비를 부담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소유자들이 가진 토지의 개발 가능 가치를 실제 사업자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존 소유자들의 현금소득이나 저축액이 증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토지에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건축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추가적인 주택이 생산되므로 단순히 기존의 부를 나누는 행위만은 아니다. 새로운 건물과 주거공간이라는 실질적인 가치가 창출된다.
다만 기존 소유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 축적한 자본으로 건축비를 지급하는 것과 토지의 개발가치를 활용해 건축비를 조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추가적인 일반분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현금 유동성 문제가 즉시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분양대금이 실제로 들어오기 전에 이주비와 사업비가 필요할 수 있고, 공사비는 사업 진행에 따라 계속 지급해야 한다. 분양수입의 규모뿐 아니라 그 돈이 언제 들어오는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정비사업에는 금융기관의 대출과 보증, 시공사의 자금 조달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정비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완공될 부동산의 예상 가치뿐 아니라,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현금을 제때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개인의 경제생활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부유해졌다고 생각해 왔다.
집값이 3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랐다면 7억 원의 자산가치 상승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7억 원은 집을 팔기 전까지 생활비나 공사비를 지급하는 데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 아니다.
그리고 그 집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다고 해도 새로운 주거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면 상당한 비용을 다시 지출해야 한다.
물론 자산가격 상승은 실제 부의 증가일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자산가격의 상승과 지속적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
자산의 평가액은 현재 보유한 부의 가치를 보여주지만, 현금흐름은 그 부를 유지하고 새로운 자산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평가액이 아무리 높아도 소득이 부족하고 부채가 많다면 작은 금리 상승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대로 부동산 평가액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안정적인 소득과 충분한 유동자산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투자와 소비를 선택할 여력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부를 바라보는 기준에 현금 유동성을 함께 놓아야 하는 이유다.
지난 글에서 나는 부자는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저축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저축은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행위가 아니다. 오늘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일부를 남겨 미래의 선택권을 확보하는 행위다.
그 돈을 은행에 예금할 수도 있고, 금융자산에 투자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저축한 돈을 모두 현금으로 보관할 필요는 없다. 장기적인 자본 축적을 위해서는 생산적인 투자도 중요하다.
다만 충분한 소득과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산가격 상승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산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담보가치도 높아지고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빌린 돈은 결국 미래의 소득이나 자산 처분을 통해 상환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고 해서 그 이자를 갚을 현금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재무상태를 넘어 국가경제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서 그만큼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현금 창출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산가격이 오르면 기존 소유자들은 부유해진 것처럼 느끼지만, 새로운 소유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더 많은 소득을 주택 구입에 사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계의 소득과 저축이 주택 구입비와 대출 원리금 상환에 집중되면 다른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비싼 부동산은 많아졌지만, 그 부동산을 새로 짓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충분히 축적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재개발 조합원이 대출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자본을 축적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충분한 자산을 가진 사람도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자산가격 상승과 차입 확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현금이 부족할 때마다 자산을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빌리고, 건축비가 부족할 때마다 더 많은 주택을 일반분양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구매자들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은 미래의 소득을 현재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지, 그 자체로 새로운 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키워야 할 것은 담보로 제공할 부동산의 평가액만이 아니라, 부채를 감당하면서도 새로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소득과 생산성이다.
북아현2구역이 40층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것은 분명 도시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이다.
새로운 주택이 공급되고 낡은 주거환경이 개선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완공된 아파트가 얼마에 거래될 것인지뿐만이 아니다.
기존 소유자들은 얼마나 많은 현금을 부담할 수 있는가.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되는가. 금융비용을 감당할 능력은 충분한가. 그리고 다음 세대는 그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득을 미래에서 끌어와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야말로 부동산 가격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경제적 현실을 보여준다.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자산의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한 순간에 돈을 사용할 수 있고, 부채를 감당할 수 있으며,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자본을 계속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집값이 10억 원이 되었느냐, 20억 원이 되었느냐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집을 유지하고, 다시 짓고, 그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필요한 돈을 우리는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가.
진정한 부는 자산의 평가액만이 아니라, 그 자산을 유지하고 새로운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현금흐름과 자본 축적 능력에 있다.
우리는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집을 다시 지을 돈이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